371화 두건을 쓰자
어두운 밤하늘. 폭죽이 터져 하늘이 여러 색으로 물들었다가 잦아들길 반복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었으나.
“그래, 그냥 지나갈 리가 없지.”
오랜만에 여유 좀 즐기려 했더니만.
멤버들을 보자니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거 같다. 나도 권능이 아니었다면 파악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하늘 위로 보이는 것.
[인비져블 벌룬 (AA)]
-보이지 않는 풍선!
-작은 물건도 함께 투명화시킬 수 있습니다.
-조종할 수 있습니다.
투명한 풍선이다.
투명하다고 말은 하는데 등급의 한계인지 식별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인식하고 있으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이것만 보면 좀 특이한 물건 정도로 볼 수 있지만.
[마도공학 폭탄 (AAA)]
-마법과 공학의 만남!
-하급 아케인 젬으로 만들었습니다.
-폭발력 하나는 발군!
풍선에 달려 있는 저게 문제다.
아케인 젬은 강력한 에너지원을 담은 물건. 사용에 따라서는 폭탄이 될 수도 있다.
튜토리얼 구간인 3층에 있던 함정 중에도 있었다. 그때 얻었던 아케인 젬이 현자가 만든 물건이었지.
각설하고 저게 있다는 것은…….
‘테러를 하겠다는 거지.’
어떤 타이밍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테러를 하려 했다면 모두의 눈길이 폭죽에 쏠린 지금이 적기다. 아직 폭탄을 떨구지 않았다는 것은 노리는 것이 있다는 것.
뭐든 상관없다. 뭘 노리든 없애 버릴 거니까.
톡. 냥펀의 어깨를 두들겼다.
“응?”
해맑은 얼굴로 날 바라보는 녀석.
즐기는 중에 미안하다만…….
“나 저거 없애러 간다. 움직여. 다른 곳에도 있을지 몰라.”
“어? 야! 뭔뎅!”
난 투명 풍선이 있는 곳을 가리킨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아티팩트도 있으니 내가 뭘 없애려 가는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인파들이 몰려 있다. 폭탄이 터진다면 대형 사고.
문제는 저런 물건이 몇 개나 있을지 모른다는 거다.
왕족도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위험 요소는 모두 제거했다. 벨브레그가 눈에 불을 켜고 지시를 내렸으니 확실하겠지.
어디까지나 귀족과 왕족이 다니는 곳은 말이야.
일반 시민이 있는 구역은 사실상 완전히 통제하기 불가능하다.
- 타앗!
인파가 적은 골목으로 빠지며 발을 박찼다. 건물 벽을 번갈아 디디며 위로 돌진.
옥상에 도달한 난 다리에 힘을 모아 점프했다.
- 콰앙!
이미 대부분의 스텟은 800대를 넘어 900대에 진입했다.
어지간한 헌터들은 엄두도 못 낼 신체 능력.
포탄이 쏘아지듯 하늘로 치솟자 부유감이 느껴진다.
여기서 파이어 밤.
- 콰아아아앙!
홍염을 일으키며 인비져블 벌룬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소수의 시민이 폭발을 목격했지만 폭죽놀이 덕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
귀족 라인에 있던 벨브레그를 비롯한 몇몇이 경계심을 드러냈으나, 나인 걸 확인했는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펠라인 세트가 이럴 땐 좋다. 멀리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까.
벨브레그가 이상을 감지하고 뭔가 지시를 내린다. 빠르게 움직이는 군인들.
인파 사이로 냥펀과 핥짝이, 탈모맨이 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폭탄의 위치를 알아차린 거겠지.
“망할 놈들, 꼭 좋은 날에 사고를 친단 말이지.”
“그에에.”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며 상공으로 날아갔다.
[외톨이의 길 (A) Lv.9]
혹시 모를 혼란에 대비해 모습을 감추었다.
레벨도 좀 올랐고, 사람 대상으로 효과가 좋은 스킬이니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
폭발을 멈췄다.
이미 추진력을 얻은 상황.
난 망설임 없이 벌룬을 끌어안았다.
- 틱
뭔가가 점화하는 소리.
그와 함께 느껴지는 굉음과 열기, 반발력.
- 쿠과과과과광!
풍선에 설치되어 있던 폭탄이 터졌다.
[강철의 의지 (S) Lv.10]
[강체强體 (S) Lv.10]
[물리 공격 내성 (S) Lv.10]
[화기 내성 (S) Lv.10]
[되갚기 (S) Lv.10이 데미지를 충전합니다!]
“후우. 따끈하네.”
몸을 뒤흔드는 충격이 이어졌지만 숨 한 번 내뱉는 것으로 받아 냈다.
이 정도로 다칠 수준은 아니니까.
접근하자마자 터트리다니. 내가 날아든 걸 확인했다는 거겠지.
“와아아.”
“방금 건 좀 큰데?”
“이번에 공을 많이 들였나 봐.”
구경꾼들은 문제를 눈치채지 못한거 같고.
다시금 파이어 밤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다른 풍선도 있을까 싶어 확인해 봤지만 더 보이는 건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고작 하나만 준비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보나마나 이번 테러를 주도한 건 가디슈. 자그마치 왕족이었고, 그가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은 막대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금액은 제한이 있겠지만 이런 폭탄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을 텐데.
이건 마치…….
“미끼?”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나팔소리가 들렸다.
- 뿌우우우우!
왕족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폭죽은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고, 폭죽놀이가 끝나면 왕족의 행차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상을 감지했지만 어디까지나 나 혼자 확인한 상태.
10년에 한 번 돌아오는 행사를 멈출 리가 없었다.
왕족의 체면도 엮여 있기도 했고, 지금 자리를 빼면 벨브레그 장군을 비롯한 가신들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과 같다.
- 빰빠라밤 빰빰빰 빰빠라밤!
관악 연주와 함께 일반 시민들이 있는 구역과 독립된 공간이 오픈되었다.
쭉 이어진 레드카펫.
기사들과 병사들이 절도있는 동작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웅장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호위기도 하다.
벨브레그의 언질이 있었는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고, 이내 왕족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타이밍.
“와아아아아!”
“국왕이시여!”
“크롬벨! 크롬벨! 크롬벨!”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제2 천계가 멸망의 기로에 선 것은 맞으나 미래가 바뀌어 버린 지금, 조금이지만 멸망을 벗어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조금씩 영토를 내주었던 것도 과거. 지금은 동부에 새로운 왕국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2왕자와 가디슈가 계승권을 가지고 싸우는 이유기도 하고.
“무슨 생각이냐, 가디슈.”
얼굴을 찌푸리며 놈을 노려봤다.
뻔뻔하게도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짜증이 올라온다. 이 순간에도 행사는 진행되는 중.
저쪽으로 합류해야 하나? 간다면 이쪽은 어떻게 할까. 폭탄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봐.”
지나가는 병사 하나를 붙잡았다.
곧장 경계심을 올리며 내게 창을 겨누려 했지만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들어 올리자 바로 창을 내리고 고개를 숙인다.
“예! 이블아이 공!”
“시민들 사이에 폭탄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바로 보고하고 조치해.”
“포, 폭탄 말입니까?”
“얼른!”
“옙!”
빠르게 달려가는 병사.
일단 저쪽으로 합류하자. 다른 날도 아닌 오늘 일을 벌인다는 건 목적이 있다.
여러 상황을 봤을 때 짐작할 수 있는 건…….
‘왕족과 관련이 있어.’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여기서 대놓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국민뿐만 아니라 귀족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테러를 2왕자나 다른 귀족이 한 것처럼 꾸미는 방법도 있지만.
‘사실상 어렵지.’
자그마치 왕이 공격받은 사건인데 철저한 조사가 벌어질 건 분명한 일 아닌가.
특히나 왕이 죽으면 2왕자가 있다. 귀족이 두 파로 나뉜 만큼 견제가 들어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테러 한 번으로 모든 경비를 뚫고 왕과 2왕자를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아!
번뜩, 뭔가가 떠올랐다.
“그거군.”
생각이 미치자마자 바로 뛰었다. 찾는 사람은 탈모맨.
열심히 구석구석을 살피는 녀석을 불렀다.
“같이 온 애들 있지? 애들 모아.”
“대원들? 갑자기 왜? 지금 폭탄 찾아야 하는데.”
“몇 개나 있는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어. 이미 병사들한테 찾으라고 명령해 놨고. 이쪽은 핥짝이한테 맡기면 돼. 핥짝이도 병력 움직일 권한이 있으니까.”
“알았어. 핥짝이한테 메시지 보낸다? 냥펀은?”
“2왕자 옆에 붙어 있으라 그래.”
척. 보물 주머니에서 조명탄을 꺼냈다.
무슨 뜻인지 알아챈 탈모맨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부터는 속도전이다. 왕족 행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도 있었으며, 왕족이 있으면 시민들이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길 수 없기 때문.
‘예정된 행진 시간은 30분. 이제 15분 안이면 끝나.’
그리고 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그 전에 일이 터질 거다.
폭탄이 터지든 폭동이 일어나든.
그쪽은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자. 내가 해야 할 건 따로 있다.
벨브레그를 비롯해 귀족들은 왕족을 따라 이동하는 중.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병력을 제외한 모든 전력은 왕족을 지키기 위해 밀집되어 있다.
만약 나와 멤버들도 저쪽에 합류해 있었다면 꼼짝도 못 했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적어도 나 혼자만큼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 다른 병력을 이동시키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 파아아앗!
빠르게 발을 옮겼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수도 외곽.
번잡해질 것을 우려하여 위성도시와의 통로를 모두 개방해 놨다.
이미 행사 지역은 사람으로 가득 찬 상태. 만약 이때 테러가 벌어지면 왕족은 어떻게 대피할까?
‘밖으로 돌아서 왕궁에 진입하는 거지.’
내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동할 수 없다.
행진 코스가 외곽을 따라 도는 것도 이 때문. 여차할 때 바로 이동하기 위함이다.
여기가 포인트.
놈이 계승권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 확실하게 왕이 되는 방법.
왕과 2왕자의 죽음.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제2 천계 전체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
숭배자의 목적은 탑이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며, 헌터들이 정상적으로 등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어차피 놈에게 이곳은 챕터가 끝나면 리셋 되는 신기루나 마찬가지.
미친 짓을 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 타악!
외벽을 타 넘는 것으로 교외를 빠져나왔다. 뒤편에서는 축제의 열기가 느껴진다.
그에 대조되듯 적막한 곳. 나 역시 벨브레그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대피 경로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빠져나오는 루트는 다양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길로 합쳐진다.
당연하게도 대피로를 지키기 위해 대기 중인 병력이 있어야 정상인데.
“돌겠군.”
“그에에.”
나쁜 예상은 틀리질 않는다더니.
근처 초소에서 경계를 서고 있어야 할 병사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묘하게 다른 흙바닥. 감추기는 했지만 핏물을 덮은 흔적이 남아 있다.
초소도 마찬가지.
몸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다. 뿌리까지 뽑힌 손톱.
저항하다 초소를 긁은 거 같은데. 병장기가 부딪친 흔적이 없는 거로 봐서는 빠르게 제압당했다고 봐야 한다.
기습 혹은…….
“같은 병사한테 당한 거야.”
가디슈에게 매수당한 이들도 분명히 있을 거다.
근방 지리는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다.
으득. 이를 갈며 안으로 들어갔다.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을 거다.
가장 확실한 타이밍. 타깃을 제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겠지.
무작정 들어가는 건 안 된다. 어떤 놈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니까.
자, 이제 어쩐다.
위기기는 위긴데.
“미리 알고 있으면 위기가 아니지.”
입꼬리가 올라간다.
안 그래도 왕관을 어떻게 얻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네.
“하여간 나쁜 놈들 같으니. 왕관까지 훔쳐 가려 하고 말이야.”
갑옷을 벗고 상점창에서 두건을 사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