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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14화 (413/740)

414화 합류

미스터 그린을 찾아 나서는 여정. 정확히는 심층부에 있을 탈모맨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이 녀석, 연옥계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심층부로 들어간 게 맞았다.

중앙부에서 탈모맨을 본 악마가 없는 것도, 심층부에 세력을 일군 것도 모두 이해됐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오자마자 심층부로 갈 생각을 하냐.

“하여간 또라이라니까.”

“그에?”

덕춘이가 띠꺼운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왜 눈을 그렇게 뜨냐. 눈빛에 불순한 생각이 가득 들어 있는데.

괘씸한 마음에 톡, 코를 두드렸고.

-찰싹!

“어억!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각!”

목이 돌아갈 뻔했다.

그래, 이 느낌이지. 우리 덕춘이 성격 어디 안 가는구나.

한동안 뺨 맞은 적이 없어서 그리운 마음까지 들었었는데, 덕분에 그리움이 싹 가셨다.

두 번 그리웠다가는 요단강 건널 거 같다.

“게흐으으.”

한숨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내는 덕춘이.

나도 안다.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 그도 그럴 것이 심층부를 돌아다니는 건 생각보다 지루한 일이었다.

중간중간 마물이 나타나기는 했으나 30명의 무지개단에 나, 임시기는 하지만 동행하게 된 듀발이 있으니 마계에서 위험하다는 마물도 어렵지 않게 퇴치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쿠우우웅

10급 마물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전투에 나선 건 듀발. 노인네 같은 말투와 모습이었지만 싸우는 것만 보면 펄펄 날아다닌다.

그가 쓰는 무기는 곡도. 꽤 인상적이다. 부드럽게 흘러가다가도 기회를 잡으면 맹렬히 달려드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보통 실력은 아니네.’

권능을 통해 봤던 정보. 천마대전에서 공을 세웠다는 게 거짓은 아닌 거 같다.

객관적으로 봐도 무지개단보다 노련하고 강하다.

백터랑 비교해도 절대 꿇리지 않는 실력. 아마 백터랑 정면으로 싸워도 미세하게 우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둘 다 천마대전에 참전했다는 걸 생각하면 전쟁에 참전해 살아남은 악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는 거겠지.

심층부를 양분하는 세력의 수장, 그리가도 천마대전 때 활동한 놈이라 했었나.

“듀발, 그리가는 어떤 놈이지?”

“흐음, 어려운 질문이군. 그리가만큼 평가가 갈리는 악마가 없소. 뜻이 맞거나 카리스마에 매료된 이들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라 평하며, 나와 같이 성향이 맞지 않는 이들은 질색하지.”

평가가 나뉜다라…….

곡도에 묻은 피를 닦아 낸 녀석이 눈썹을 찡그린다.

“놈은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고자 하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놈이 가진 소유욕 때문이지. 자신의 왕국을 가지고 싶은 게요. ‘원하면 이루어라. 자유 경쟁. 승리와 쟁취.’ 놈이 내거는 슬로건이오.”

“연옥계에 넘어온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슷하군.”

“그래서 그를 따르는 악마가 많소. 마계도 꽤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지만 연옥만큼은 아니니까.”

오케이. 거기까지는 알겠다. 제한 없이 경쟁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건 포부가 있고 혈기 왕성한 놈들에게는 꽤 매력 있게 들렸을 거다.

내가 봐 온 악마들도 대체로 그런 놈들이었고.

“그럼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그리가를 꺼리지. 놈도 그렇고 그의 무리도 그렇고 집착이 심한 편이라 한시도 쉬지 않고 주변에 알짱거리거든.”

“아, 그럼 스트레스받지.”

“맞소.”

나도 그 마음 안다. 관심이라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아서.

쁘찡 연합만 봐도 그렇다. 사방에서 ‘공듀 님! 공듀 님!’ 외치는 걸 보고 있자면, 몸이 떨리고 주먹이 쥐어지며 자괴감에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던가.

이곳에 와서 무지개단이라는 유사 쁘찡 연합이 생겼다는 게 슬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놈들은 날 ‘쁘띠 공듀’라고 부르지는 않으니까 상관없다.

괜히 울적해지는 찰나 듀발이 말을 이었다.

“그리가의 세력은 서로 집착하기에 꽤 단합이 잘되오. 놈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지. 동시에 그리가 본인의 무력도 만만치 않다오.”

“너랑 비교하면 어떻지?”

“100전 4승. 내가 그와 싸운다면 그 정도의 승률을 가질 것이오. 다른 악마의 개입 없이 둘이 싸운다는 전제하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가가 이긴다는 거네.

그래도 4승 정도라면 아예 가능성은 없다는 거 아닌가?

“그 4승마저도 날 집착해 손속에 사정을 뒀다가 당했을 때의 가능성이지만 말이오.”

“보통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군.”

“끈질긴 놈. 그리가를 표현하는 데 그보다 적합한 말은 없소이다. 성격이든 전투 스타일이든.”

바퀴벌레 같은 놈이라 이건데.

몸뚱이 믿고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싸우는 것이 묘하게 탈모맨이랑 닮았을 거 같기도 하고.

뭐, 실제로 어떤지는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만.

그보다…….

“언제 모습을 드러내려나.”

망할 탈모맨을 찾으러 나선 지도 벌써 이틀째다.

심층부에 오래 있었던 듀발 덕에 대략적인 심층부의 구조를 알게 됐고, 현재 우리는 그리가와 메피스토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이동 중이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메피스토와 그리가 모두 탈모맨을 노리고 있기에 녀석도 두 악마의 세력권 밖에서 주로 움직인다고 했다.

“이블아이 님, 이쪽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습니다.”

“좌측으로 가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요.”

듀발의 기억과 후렌이 가지고 있는 정보 탐색 능력 덕에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잠깐.”

난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려는 놈들을 멈춰 세웠다.

흙이 밀린 흔적이 보였다. 무심코 지나갈 만큼 사소한 흔적. 마물이 득실거리는 심층부에서 땅 좀 뒤집힌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악마들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나 역시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꽤 익숙한 형태의 땅 오름이다.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후렌, 네 능력으로 한 장소에 있었던 기억을 읽을 수 있지?”

“그렇죠? 지정 범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볼 수 있으니까요.”

녀석이 정보를 얻어오는 데 특화된 이유도 그 능력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그 능력 땅 아래에서 있던 일도 볼 수 있나?”

“어. 그건 따로 시도해 본 적이 없는데. 기본적으로 제 시야에 닿는 범위로 되니까 안 보일 겁니다.”

“그거였군.”

어쩐지 그동안 흔적이 너무 안 보인다 했다.

내가 그동안 땅굴 이동을 많이 써서 아는데 안쪽으로 길을 뚫다 보면 압력에 밀려 위쪽으로 땅이 올라오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깊숙이 들어가면 그런 흔적도 남지 않지만 표면과 가까이 움직이면 땅이 들춰진 듯한 흔적이 남는다는 말.

-쾅!

-쿠르르릉

튀어나온 흙더미를 향해 발을 구르자 땅이 꺼지며 통로가 드러났다.

“오오! 땅굴이군요!”

“과연, 이곳을 통해 움직였다는 건가요.”

“그렇겠지.”

심층부를 양분하는 두 세력에 쫓기는 동시에 마물과 천족, 숭배자들의 견제까지 받는 게 탈모맨이 상황이다.

그 와중에 세력을 꾸준히 늘리고 있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머문 흔적이 남는 게 정상.

흔적이 이상하리만치 없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땅 밑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는다.

‘그동안 내가 땅굴 이동으로 돌아다니는 걸 봤기도 했으니 녀석한테는 익숙한 방법이었을 거야.’

풀쩍 땅굴로 뛰어내렸다.

조명 하나 없었지만 야간 시야가 있는 만큼 보는 데는 문제없었다.

“후렌.”

“안 그래도 바로 능력을 쓰고 있습니다요. 앞으로 쭉 가시면 되겠습니다.”

사이코메트리로 탈모맨이 이동한 방향을 확인한 후렌이 가리킨 곳을 향해 전진했다.

혹시 추격자가 붙을 것을 대비해 구멍을 다시 메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어두운 통로, 우리는 천천히 이동했고.

“누구냐!”

“제길, 벌써 들킨 건가.”

“다들 예상했잖아. 놈들의 추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오래지 않아 한 무리의 악마들이 모여 있는 공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등장에도 당황하지 않고 전투태세를 갖추는 이들.

척 보기에도 한가락 할 거 같은 놈들로만 이루어져 있었으며…….

“나 왔다.”

“오오오오! 고오옹, 이블아이!”

그 중심에는 평소와 같이 초록색 쫄쫄이를 입은 탈모맨이 서 있었다.

고오오옹? 이놈이 누굴 암살하려고.

순간 울컥했지만 SSS급 정신 보호 스킬 보유자인 만큼 너그럽게 넘어갔다.

그래도 저번처럼 공듀라고 외치지는 않았으니까. 애가 모자라서 발전이 더딘 것뿐이지 점점 나아지고 있지 않은가.

“하하하하! 찾아올 거라 믿고 있었다고!”

“그런 놈이 이렇게 꼭꼭 숨어 있었냐.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설마 땅굴에 있을 줄은 몰랐지. 제2 천계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해서 그런가 지하 참 좋아해.

“미스터 그린과 아는 사이라더니 진짜였구려.”

듀발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고 무지개단 또한 탈모맨을 빤히 바라본다.

“초, 초록색!”

“이블아이 님의 잃어버린 초록색을 되찾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했어. 무지개 중 초록색만 없었잖아!”

“드디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얘네는 또 왜 헛소리를 해 대는 걸까.

잃어버린 초록색은 개뿔, 정신 나간 소리 하고 있어.

작게 혀를 차고 있는데 어째 탈모맨 쪽 악마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과연 그랬단 말인가.”

“이제야 탈모맨의 행동이 이해되는군.”

“소문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탈모맨의 다른 한쪽이 여기 있었어!”

“이블아이라고 했나? 그럼 둘이 합쳐지면 탈모아이가 되는군! 이름부터 무시무시하다!”

끔찍한 소리를 진지하게 하고 있네.

합체를 왜 해. 변신 로봇도 아니고. 것보다 둘이 합치면 이블맨도 있고, 이블모맨도 되고, 탈블아이도 가능한데 왜 하필 탈모아이…….

따지지 말자. 악마 놈들 하는 짓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만큼 생산성 없고 피곤한 일이 없다.

어찌 됐든 합류에 성공했으니 앞으로는 좀 더 수월하게 심층부를 공략할 수 있을 거다.

이전까지는 세력에서 밀렸지만 이제는 그리가나 메피스토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 모였으니까.

멍청이들 사이에서 건설적인 생각을 이어 나가려던 때, 탈모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짜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안 그래도 요즘 위험했거든.”

“위험? 왜?”

“가뜩이나 그리가가 추격해 대는데 이번에 메피스토도 같이 움직이고 있어. 일단 지하 굴로 피하기는 했지만 여기도 곧 들킬 듯?”

“잠깐만, 두 악마가 손을 잡았다고?”

왜? 대체 왜? 두 악마는 경쟁 상대 아니었나?

두 녀석이 힘을 합칠 이유가 대체 뭐가 있다는 걸까.

뜻이 맞으면 협력할 수는 있다. 큰 적이 나타난다면 싸움을 멈추고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을 수도 있겠지.

탈모맨이 그 정도로 위험하다고 판단한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직 세력이 작다.

인원만 보면 고작해야 열댓 명. 물론 심층부에서 중립으로 활동한 만큼 실력이야 좋겠지만 절대적인 인원 차이가 있다.

미리 싹을 잘라 두려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차라리 먼저 접선해서 세력을 통째로 흡수하거나 공격해 마기를 획득하는 편이 이득이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

-쿠구궁

-쿠구구구구궁!

땅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흙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공간 자체가 충격에 요동친다.

충격의 근원지는 위.

쩌적. 천장에 금이 가는 것도 잠시.

-콰아아아아아앙!

공동이 무너져내렸다.

무너지며 드러난 하늘. 꽤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만큼 새롭게 뚫린 구멍은 길었으나 그 위에 얼굴을 드러낸 악마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다른 악마들을 통해 수없이 들었던 악마.

“그리가?”

탐욕의 악마 그리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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