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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18화 (417/740)

418화 너희두? 우리두!

그리가와의 전투가 끝나며 순조롭게 녀석의 세력을 확보했다.

마기를 흡수한 건 당연했고, 함께 싸웠다는 공통점 덕분일까 탈모맨의 무리와 무지개단도 어렵지 않게 섞일 수 있었다.

애초에 제7 마계의 악마들은 한번 인정하면 방금까지 싸웠던 적이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성격이다.

한 번에 3개의 세력이 합쳐진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그리가가 가지고 있던 위치를 생각해 봤을 때 심층부에서 가장 큰 세력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다르게 말하면 연옥계를 삼킬 가능성이 가장 큰 무리가 됐다는 거지.’

예상보다 좋은 결과에 흡족하던 찰나, 수풀에서 악마가 튀어나왔다.

큰 부상을 입은 채 반쯤 기다시피 다가온 녀석.

“도와, 주시오.”

“저놈은?”

안색을 굳힌 그리가가 눈짓하자 악마 한 명이 그를 데리고 온다.

상태가 안 좋다. 상처만 봤을 때는 죽었어야 정상이었으나 악마의 끈질긴 생명력과 그가 가지고 있는 회복 아티팩트 덕에 살아남은 모양.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게 분명하다.

여전히 포션은 여유가 있었기에 치료에 나섰다.

그리가를 상대로 효과는 검증된 상태. 벌어져 있던 복부의 상처가 아물며 호흡이 정상화된다.

“메피스토의 밑에 있던 녀석이군. 얼굴이 기억나.”

“녀석한테 문제가 생긴 건가.”

“설마, 연옥계를 양분하고 있는 놈이야. 나 말고 건들 수 있는 세력이 있을 리가 없어.”

그리가는 그렇게 말했지만 동의는 못 하겠다.

겉으로 보이는 세력들로만 따지면 그렇겠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반쯤 기절한 악마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메피스토 님이, 당했, 소.”

그 말을 끝으로 정신줄을 놓는 녀석.

간신히 목숨은 붙여 놨지만 제정신을 유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20명만 따라오고 나머지는 부상자를 지키고 대기해.”

“알겠습니다! 부상자 한쪽으로!”

“얼른 움직여!”

내 지시에 무지개단이 부상자를 추려낸다. 꽤 많다. 그만큼 그리가와 우리의 세력은 호각을 다투었으니까.

전투 불능의 부상을 입은 악마만 열댓 명. 경상까지 합치면 30명이 훌쩍 넘는다.

이들을 지켜야 할 인력도 있어야 하니 20명을 데리고 가는 게 최선.

“근처에서 은신 잘하고. 호각 있지? 일 터지면 불어야 된다.”

“다녀오십시오!”

“이쪽은 저희가 경계하고 있겠습니다!”

탈모맨이 손짓하자 그린파 악마들이 경례를 하며 보초를 선다.

아직 합쳐진 지 얼마 안 돼서 익숙한 인원끼리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단합력을 위해서라도 이름도 새로 지어야 할 거 같다. 그리가야 흡수된 거니까 그렇다 치지만 무지개단과 그린파는 융합되는 느낌이니까.

뭐, 당장 급한 건 아니니 나중에 짓자.

“그리가, 이놈들을 부탁하지.”

“이거 미안하게 됐군.”

그리가는 남아 있기로 했다. 중요한 전력이기는 하나 우리와 싸우며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상처를 치유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괜히 무리하다 아물었던 상처가 터지면 그게 더 곤란하다.

‘한 명쯤은 믿고 맡길 전력을 놔두는 편이 좋기도 하고 말이야.’

혹시나 부상자들을 노리고 다른 세력이 덤벼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이 자리에 모인 모두 심층부에 진입한 강자들이다.

전투는 일상이고 노숙하며 재정비를 하는 건 익숙한 일.

임시 거처를 구성하며 나와 탈모맨을 따라 움직일 인원이 모이는 건 금방이었다.

“다들 갔다 올게!”

“회복에 집중해. 놀라고 놔두는 거 아니니까 일 터지면 그리가 네가 책임지고 수습하고.”

“걱정 마시지. 몇 놈을 본대로 보내 지원군을 데려올 생각이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그리가를 뒤로한 채 메피스토의 부하가 나왔던 수풀을 향해 움직였다.

* * *

선두는 나와 탈모맨. 상처가 컸던 만큼 놈이 움직인 경로에는 혈흔이 남아 있다.

만약 적이 따라오려 했다면 진작에 따라왔겠지.

“일부러 도망치게 둔 거 같지?”

“그럴 듯? 못 가게 할 거였으면 여기 오기 전에 죽었어. 확인 사살을 안 했다는 뜻이지.”

탈모맨의 말대로다.

왤까?

다른 놈도 아니고 메피스토의 부하가 왔다. 메피스토가 당했으니 도와 달라고.

메피스토를 공격해 승리한 이들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생존자를 놔둘 이유가 뭘까.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인가.’

첫 번째. 메피스토와 싸우면서 타격을 입어 빠르게 후퇴했을 경우.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놈들도 우리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우리를 의식해 메피스토를 잡자마자 자리를 벗어난 거다.

두 번째. 함정.

일부로 생존자를 보내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메피스토를 잡았다는 건 악마들을 적대시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예로 들자면 천족의 잔당들.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악마 무리가 들어와 난동을 부렸을 가능성은 없다.

심층부 밖은 백터가 관리하고 있고, 그리가는 우리에게 패배했으며, 중립을 지키던 이들은 탈모맨의 밑으로 들어갔으니까.

“저쪽에 싸운 흔적 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것도 잠시. 탈모맨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했다.

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건가. 일대가 산산조각났다.

급하게 현장을 치운 것 같다만 흙 위로 올라오는 핏물은 숨길 수 없었고…….

“이블아이, 너도 지금 같은 생각 하고 있지?”

“어. 이거 마그마 요정이야.”

“마그마 요정?”

“너희한테는 엘로이즈라고 했지. 닉네임이 마그마 요정이래.”

“오오, 마치 누구의 무엇과 같은 느낌이네.”

지그시 날 바라보는 녀석.

애써 무시하며 전투 현장을 확인했다.

이번 일에 누가 개입했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커먼 대지와 굳어 버린 용암. 탄내와 함께 올라오는 매캐한 연기.

대기실에서 만났던 마그마 요정이 한 게 분명했다.

대기 화면에서도 보지 않았던가. 영웅이 탄생했다고. 천족 진영에서 활약하는 모습도 봤다. 실력이 대단했었지.

한 가지 걸리는 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불가능해.”

마그마 요정이 메피스토를 이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직접 싸워 본 적은 없다. 실제로 전투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그럼에도 마그마 요정이 메피스토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권능으로 정보를 봤을 때 칭호랑 기타 정보들이 보였어.’

적어도 나보다 강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다. 가지고 있는 권능에 따라서도 갈리고, 정보가 보인다고 무조건 나보다 약하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대체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당장 나도 정보가 안 보이는 강적을 상대로 이긴 적이 수차례 있지 않았던가.

“탈모맨, 그리가랑 비교했을 때 메피스토는 어느 정도지?”

“음, 직접 붙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는데 대충 느낌상으로는 비슷했어.”

그렇겠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연옥계의 주인이 가려졌을 테니까.

마그마 요정의 수준을 상향 조정하더라도 혼자서 메피스토를 잡았을 거 같지는 않다.

모든 수를 동원하지는 않았다고 하나 나와 탈모맨이 꽤 고생하고 나서야 그리가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가와 동급이라 여겨지는 메피스토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이뿐만일까.

“근데 걔가 왜 메피스토를 공격했지? 이곳에서 기습을 노렸다기에는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아.”

탈모맨의 의문에 동의한다.

메피스토와 그리가는 나와 탈모맨을 잡기 위해 임시적으로 동맹을 맺은 상태.

마그마 요정이 둘 중 하나를 잡기 위해 매복해 있었다면 사전에 그들이 이곳에 올 걸 알고 있었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한쪽을 치면 근처에 있을 다른 한쪽이 덤비러 올 것을 가정하고 있었을 거라는 뜻.

비록 우리가 싸우느라 결과는 달라졌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고 원래라면 그랬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하나.

“자신이 있었다는 거지. 다른 악마들이 끼어들기 전에 메피스토를 처리할 수 있는 자신이.”

조심스럽게 흙을 파냈다.

매장된 악마들의 시체 사이로 메피스토의 얼굴이 보인다.

대략적인 특징과 외향은 무지개단이 말해 줬기에 기억하고 있다.

“메피스토 맞네.”

탈모맨도 확인해 줬으니 분명하다.

근처에 함정은 없다. 권능과 감각으로 인기척을 살폈지만 매복한 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를 떴다는 건데…….

“후렌.”

“넵! 어디로 갔는지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메피스토가 어떻게 당했는지도 같이 확인해 봐.”

나를 따라온 후렌 키아노가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했다.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안 됐으니 보다 상세한 정보를 읽어 낼 수 있을 거다.

성급히 움직이는 대신 확실한 정보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웬 용암 쏟아지는 갑옷 입은 녀석이랑 천족들이네요. 마무리는 천족이 한 거 같고… 어디 보자, 이야. 얘들 엄청 강한데요?”

“용암 갑옷이?”

“예. 그 녀석도 그런데 천사들의 수준이 상당합니다. 이건 거의 대천사급일 거 같은데. 하하! 물론 저는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요!”

머리를 긁적인 후렌 키아노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대략적으로 요약해 보자면.

‘마그마 요정이 천족 30명으로 메피스토를 잡았다? 천족 수준은 묘사로 봤을 때 신성력이 최소 700대 이상이야.’

후렌이 악마들이 사용한 저주와 디버프가 튕겨 나가기도 했다고 했다.

프램버그에서 그랬지. 신성력이 700은 넘어야 질병과 저주에 강한 내성을 가진다고.

심층부에 남아 있는 잔당이라면 확실히 강한 놈들이겠다만 그 정도 수준의 천사들이 수십 명이 뭉쳐 다닌다?

‘그 정도면 숨어 있는 게 아니라 게릴라전이든 뭐든 해서 악마들의 전력을 깎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어째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의문점만 생긴다.

미간을 좁힌 채 머리를 굴리던 탈모맨이 입을 연다.

“말이 안 되는데? 나도 중립 지역에 계속 있었지만 천사들을 마주친 적은 거의 없거든, 그치?”

“보통 서너 명이서 움직였죠. 메피스토를 잡을 정도로 강한 놈들도 없었고.”

“천족들은 무리를 짓는 것보다는 점조직으로 활동합니다. 적어도 제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는 그랬습니다.”

탈모맨을 따르던 이들도 의견을 냈다.

기간으로 따지면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심층부에 머물던 이들. 천족의 잔당에 대해서도 나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

그나마 그쪽 사정을 알고 있는 녀석들에게 연락을 취해야겠다.

“너희는 잠깐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어. 우린 근처 좀 확인하고 오지.”

“어? 그래.”

탈모맨에게 눈짓하자 나를 따라온다.

자연스럽게 악마들을 놔두고 충분한 거리를 벌렸을 때 커뮤니티를 켰다.

“애들한테 물어보자. 지금 어디에 있는지. 천족들 동향은 어떤지.”

“좋지. 안 그래도 요즘 커뮤니티 금단증상이… 후후. 우후후!”

커뮤니티 얘기에 좋다고 웃는 녀석.

평소에는 상주하다시피 커뮤니티에 있던 놈이니까 그동안 하고 싶었겠지.

멤버들이 있는 비공개방으로 들어갔다.

[쁘띠공듀]: 하잉! 하잉! 다들 어딨나욧? 저는…….

채팅을 치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탈모맨이 날 바라보고 있다.

“…뭐. 왜. 뭐.”

“아냐, 난 항상 널 응원하고 있어.”

측은한 눈길. 촉촉한 눈에는 동정심이 가득하다. 그러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그머니 한 발 멀어진다.

뭐지? 왜 기분이 나쁘지?

무시하자. 탈모맨은 항상 이상하니까 지금도 이상한 행동을 할 뿐이다. 그럼. 그렇고말고.

[니머리 탈모]: 나 공듀랑 합류함. 악마들 쪽 거의 다 잡긴 했어.

[쁘띠공듀]: 소☆SO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요.

[정수리 핥짝]: 아, 너희 만났어? 어쩐지 잠잠하드라.

[냥냥펀치]: 너희두? 우리두! 심층부에 있는 천족들 다 합침!

[정수리 핥짝]: 진짜 뿔뿔히 흩어져 있는 애들 찾느라 고생 좀 했다.

[냥냥펀치]: 악마 쪽도 끝났음 이제 계획대로 자리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님?

“어?”

“응?”

나와 탈모맨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심층부에 있는 천사들을 흡수했다고?

“그럼 여기 있던 애들은 뭔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그때.

-쿠구구구구구구궁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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