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화 악마 다음에는 천사
칼과 창이 오가고 온갖 스킬이 난무한다.
불꽃과 함께 튀어 오르는 뇌전. 땅이 움직여 지형이 바뀌고, 언제 밑으로 파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숭배자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온다.
“네 목은 내가 가져가마!”
“그럴 일 없으니 꺼져!”
[일렉트릭 쇼크(S) Lv.10]
-파지지지지지직!
호기롭게 덤벼든 것도 잠시. 강력한 전격에 숭배자가 감전되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절삭(S) Lv.10]
[검강]
-촤아아아악!
반월을 그리며 올려치기.
그대로 상체가 갈라진 녀석이 쓰러진다.
-파앙!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찔러 들어오는 창.
정확히 머리를 노리는 공격이었으나 급격히 몸을 회전해 피해 냈다.
완전히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 갑옷을 긁고 지나간 창날에서 불똥이 튀어 오른다.
“정신없이 몰려드는군.”
영악하기도 하지.
절대적인 인원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놈들은 방심하지 않았다.
대표 격인 3명을 제외한 놈들도 나와 김선혜, 김조균을 공격해 왔으니까.
물론 뒤에서 분전하는 상위 헌터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놈들도 커버하려고 했지만 이건 뭐…….
“상위 헌터는 뒷전이고 나만 노리는 기분인데.”
“그에에.”
동감하는지 덕춘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덕춘이 보고 상위 헌터들을 도와달라고 말하겠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누굴 챙기기에는 당장 내 목숨이 날아갈 거 같아서.
“어차피 네놈만 처리하면 저들은 우리의 뜻에 따를 거다.”
“그럴까?”
“삶에 대한 애착을 너무 가볍게 보는구나.”
천천히 내 체력이 깎이는 걸 기다리는 건지 트라할은 팔짱을 낀 채 참전하고 있지 않다,
이미 나에 대한 정보는 놈들에게도 퍼져 있다,
함부로 덤비지 않고 확실히 해치울 때를 기다리겠다는 거겠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나와 함께 돌진한 두 녀석도 좋은 상황은 아니다.
천족을 이끄는 펠과 악마들을 이끄는 데하일이 직접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정도로 날 잡으려 했냐! 계속해 봐! 해 보라고!”
“너희, 정상 컨디션이었으면 진작 죽었어! 알아?”
김조균과 김선혜 모두 예상보다 활약해 주고 있다는 것.
펠과 데하일 역시 위험성을 인지해서 적극적으로 덤비지 않고 있었다.
괜히 무리해서 들어갔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도 있으니까.
철저히 부하들을 이용해 힘을 빼면서 빈틈을 유도하고 있다.
하여간 숭배자 놈들. 같은 편끼리 아끼는 마음이 없어.
“내가 너무 풀어줬나? 건방지게 한눈을 팔아!”
-콰아아아앙!
급발진한 트라할이 참전했다.
저저, 성질 더러운 거 봐라. 눈알 좀 굴렸다고 열이 뻗쳐서는.
“꼬우면 진작부터 들어오지 그랬어? 그럼 관심 좀 줬을 텐데.”
날카롭게 파고드는 놈의 손톱을 검을 튕겨 냈다.
여유로운 척 말을 지껄였지만 속으로는 내심 놀랐다.
‘뭔 놈의 힘이?’
한 번의 휘두름.
손톱에서 느껴지는 대미지가 상당했다.
단순히 빠르고 강한 걸 떠나서.
“꽤 좋은 검인 모양이군. 부러트릴 생각이었는데.”
손톱으로 긁는 동시에 주먹으로 움켜잡아 검을 뜯으려 했다.
그 충격에 검이 울린다.
혼돈검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부러졌을 만한 위력.
“내 전용으로 만들어진 검이거든. 너 같은 놈 잡으라고 만든 건 아니지만. 혼돈의 파편을 잡으라고 만들어진 거야.”
“혼돈의 파편? 하하하하! 허세가 심하구나! 고작해야 80층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
“이미 한 번 잡았다!”
-콰가가가가각!
웃어 젖히는 녀석의 얼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이 좋게 잡담을 나눌 사이는 아니다. 가능한 빠르게 잡아 없애고 싶은 놈이지.
놈도 가만히 맞아 줄 만큼 만만한 놈은 아니었지만.
팔뚝으로 검을 쳐 낸 것이, 손톱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단단한 모양.
어쩐지 옷차림이 가볍다 했다.
바지 달랑 하나 입고 무기도 들지 않았으니까.
괜히 탈모맨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탈모맨이 저 정도는 아니지.’
그럼 그럼. 그저 초록 쫄쫄이를 좋아하는 동네 착한 바보일 뿐이다.
반면에 저놈은…….
‘늑대인간이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몸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털로 뒤덮여 있다. 머리에 돋아난 뿔과 유독 긴 손톱. 발도 사람의 발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타조같이 생겼다.
동물 이것저것 대충 섞어 놓은 느낌. 키메라가 아닌가 싶었지만 악마가 맞다.
척 봐도 육체파. 거기에 온몸에 자라난 털은 갑옷과도 같다.
오히려 갑옷보다 좋지. 가벼우니까. 놈도 그걸 아니까 거추장스럽게 장비를 입지 않은 거고.
“나야 딱히 상관없지만.”
타악.
가볍게 발을 박찼다.
강한 방호력을 가지고 있는 거? 좋다. 누군가는 상대하기 힘들겠지.
날붙이는 잘 통하지도 않고 갑옷과 달리 빈틈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공략하기 힘드니까.
어디까지나 외적인 부분은 그렇다.
[영혼 찢기(S) Lv.10]
-찌이이익
견제하듯 휙 휘두른 검. 카운터를 칠 생각이었는지 손을 뻗었던 놈이 급히 몸을 뒤로 뺀다.
느낌이 왔다. 손끝이 걸렸다.
아쉽네. 좀 더 안으로 들어왔으면 손가락이 아니라 손을 못 쓰게 만들 수 있었는데.
놀란 눈으로 본인의 손가락을 내려다본 녀석이 입가를 비튼다.
“사이한 술법을 쓰는군.”
“불만이면 너도 쓰던가.”
방호력이 무의미한 공격. S급 스킬인 만큼 마력을 많이 잡아먹었지만 80층을 목전에 둔 만큼 마력 스텟에 여유가 있다.
무게보다 속도.
쾌검을 내질렀다.
검강을 이용해 검의 범위를 넓혔다 줄이고, 절삭을 사용하다가도 마력 대신 신성력을 넣어 상극의 타격을 입혔다.
그러다 영혼 찢기.
-찌이이익
이번에는 어깨 일부를 잘라 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실제로는 어깨 일부를 못 쓰게 됐다.
영혼 찢기는 육체가 아닌 영혼을 직접 타격하는 스킬이니까.
놈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 연달아 이어지는 검격 중 어느 게 영혼 찢기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가벼운 공격도 무시할 수 없을 거다.
영혼 찢기는 강하게 휘두른다고 위력이 강해지는 게 아니니까.
즉, 내가 내지르는 모든 공격을 전력을 다해 피해 내야 한다는 것.
-슈슈슈슛!
-사아아아아악!
탄력을 받은 검이 더욱 빨라진다.
놈의 발이 어지럽게 움직인다. 대응하기보다는 피하는데 급급한 모습.
“크읍!”
“왜 그래? 아까처럼 계속 덤비지 않고?”
차라리 무기를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검을 쳐 내면 되니까. 스스로의 육체를 믿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된 순간.
-빠악!
“으읏! 트라할 님!”
뒤로 물러난 녀석이 옆에 있던 숭배자를 잡아끌더니 내 쪽으로 걷어찬다.
갑자기 자신을 밀칠지 몰랐는지 무방비하게 놈이 내게 다가왔고.
-서걱!
-콰아아아아앙!
그대로 베어 내며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상처 깊숙이 파고든 열기에 그대로 전투 불능에 빠진 녀석을 발로 밟아 마무리한 후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때마다 자신의 부하를 내게 밀어 버리는 녀석.
“이야, 진짜 너무하네. 그래도 네 부하인데.”
“나를 위한 희생이니 놈들도 영광일 거다!”
아닌 거 같은데. 저 봐라. 자신도 밀쳐질까 봐 슬금슬금 뒤로 빼는 거.
나와 직접 싸우지 않겠다 이거지?
[어스 월(A) Lv,7]
-콰드드드드드
놈의 뒤로 벽을 세웠다.
막아 세우려는 건 아니다. 저 정도 피지컬이면 흙과 돌로 만들어진 벽 따위는 우습게 부술 테니까.
-콰앙!
역시나 몸통박치기 한 번으로 뚫어 버린다.
팔을 허우적거리며 파편을 던져 내는 것이 내 시야를 가리려는 거 같은데.
“쫓을 생각도 없었다, 멍청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어스 월을 사용한 이유? 간단하다. 저놈이 뚫고 갈 거라 생각했고, 그로 인해 벽이 무너지며 시야가 가려질 거라 판단했으니까.
“굳이 녀석 한 명만 상대할 필요 있나. 결국 다 잡아야 하는데.”
놈은 자신과 싸우는 데 집중할 거라 생각했을지 몰라도 내 적은 여기 있는 숭배자 전원이다.
트라할은 그저 상대하기 더 까다로운 녀석에 불과하다.
게다가.
“나 없으면 슬슬 밀릴 거 같거든.”
김조균은 강하다.
김선혜 역시 기대 이상으로 잘 싸워 주고 있다.
컨디션이 엉망이라도 상위 헌터는 상위 헌터라고 후위에서 전투 중인 녀석들도 바로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바구니에 있던 음식이 사라진 거로 봐서는 싸우는 틈틈이 먹은 것 같다.
밥 좀 먹었다고 다들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 어디까지나 조금.
하지만 머릿수 차이가 너무 많이 났고, 점차 밀리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게다가…….
‘지금은 당황해서 물러난 거 같지만 결국 상대할 방법을 찾을 거야.’
실버 등급. 그중에서도 최상위권.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아 잠시 자리를 이탈했지만 계속 당하고 있을 리가 있나.
스킬을 쓰든 무기를 쓰든 상대를 바꾸든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거다.
게다가 숭배자들이 쓰는 괴이한 수법이 또 있지 않던가.
가호.
보다 높은 등급의 숭배자가 자신을 따르는 이에게 내려주는 버프.
그 외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나기 전에 최대한 숭배자의 수를 줄여 놓는다.
[파이어 밤(S) Lv.10]
-콰아아아앙!
폭발을 일으키며 숭배자 사이로 몸을 던졌다.
대인전. 그것도 다수를 상대로 싸우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게 나다.
특히나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사방이 적일 때는…….
“맘 놓고 터트릴 수 있어서 좋더라.”
[칭호, 폭탄마가 빛납니다!]
[파이어 밤(S) Lv.10]
[파이어 밤(S) Lv.10]
[파이어 밤(S) Lv.10]
[되갚기(S) Lv.10]
-쿠와아아아아아앙!
적진 한복판 시원하게 폭발을 일으켰다.
칭호 효과로 더욱 강력한 위력.
홍염이 하늘로 치솟고, 파괴의 파동이 공간을 울리며 퍼져 나간다.
하나하나 확실히 끝낼 필요는 없다.
“저 녀석 장난 아닌데?”
“쓰러진 놈들쯤은 우리로 충분하지!”
“최대한 밟아 놔! 기세가 꺾이면 당하는 건 우리다!”
삐쩍 곯은 상위 헌터라도 확인 사살할 능력은 충분하니까.
지금이야 어찌 됐든 이곳까지 올라왔다는 건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후우.”
거친 숨을 내뱉으며 적들을 바라봤다.
방금 폭발로 몇 명이나 잡았을까.
일일이 셀 여유는 없지만 어림짐작해 6명 정도?
실제로는 더 적을 거다. 폭발에 직접 노출된 게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견뎌 냈을 테니.
“징그럽네, 진짜.”
체력적인 부분도 신경 써야 한다.
나 혼자라면 무지개다리로 탈출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
내가 가 버리면 상위 헌터들은 반강제적으로 숭배자에 붙게 될 거다.
기껏 지금까지 버텨 왔는데 허무하게 밖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나도 김선혜와 내기를 한 게 있어서 가능한 상위 헌터를 전부 데리고 위로 올라가고 싶고.
“애들이 빨리 와 줬으면 좋겠는데.”
GPS 아티팩트를 부수기는 했는데 제대로 구조 신호가 전달됐을지 모르겠다.
만약 구조 신호가 가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진짜 위험하겠다.’
[심연의 눈동자(S) Lv.3]
[집착하는 망령(S) Lv.6]
[버프 다이스(S) Lv.10]
[1]
[호흡 조절]
다시금 내게 덤벼오는 놈들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허공을 가르고 나타난 눈동자와 망령이 몇몇 발을 묶는 사이에 버프 다이스.
운도 없지 눈금 1이 나왔다. 그래도 뭐. 덕분에 거칠었던 숨이 조금 돌아왔다.
손목을 돌리며 다음 타깃을 찾던 그때.
-콰아아아앙!
내 옆으로 뭔가가 날아와 박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조균. 어찌나 세게 날아왔는지 머리부터 땅에 박혀 다리만 보인다.
녀석을 이렇게 만든 건.
“신성하지 못한 자에게는 죽음뿐입니다.”
천족들을 이끌고 있는 녀석. 펠이라고 그랬나.
악마 다음에는 천사네.
저놈은 트라할과 달리 무기를 쥐고 있다. 하얗게 빛나는 클레이모어.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검날을 보아하니 영혼 찢기로 상대하기는 힘들 거 같다.
그럼 뭐.
“힘으로 찍어 눌러야지.”
-우우우우웅!
전신에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