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다음은 너희야
나를 향해 클레이모어를 겨누고 있는 펠.
누가 천사 아니랄까 봐 신성력을 온몸에 두르는 것만으로 모자라 검에도 씌워 놨다.
검강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꽤 잘 다루는데?’
신성력이 비교적 온화한 힘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어딘가에 불어 넣을 때는 스파크처럼 튀기 마련인데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정확히 검날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에 등 뒤로 뻗어난 2쌍의 날개.
허공으로 떠오른 다리.
‘날 수도 있군.’
까다로운 조건은 다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은 지상에서의 전투를 선호한다.
아무래도 물이나 공중보다는 땅이 움직이는 데 자유로워서.
그렇다고 아예 못 건들 정도로 힘든 건 아니고.
[러브 앤 피스(S) Lv.10]
[검강]
-파아아아앗!
나 역시 신성력을 검과 온몸에 둘렀다.
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신성력을 생각보다 잘 다루는군요.”
“뭘 이정도 가지고 놀라고 그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검을 돌리며 놈을 응시했다.
마음 같아서는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상대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서.
여전히 숭배자는 많고, 앞에서 분전하던 김조균이 땅에 꼴아 박혔다.
-후드드득
“크으, 저놈 만만치 않네.”
버둥거리며 땅에서 일어난 녀석이 펠을 노려본다.
그래. 한 방 먹었다고 쓰러지면 안 되지, 그나마 멀쩡한 놈인데. 다른 상위 헌터를 도와 싸워 줘야한다.
“이 녀석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넌 다른 애들 좀 돕고 있어.”
“아니. 내가 상대하던 놈은 마무리… 야아아!”
-콰앙!
놈이 뭐라 하든 말든 녀석의 밑에 어스 월을 사용해 다른 곳으로 날려 버렸다.
지금까지 당해 놓고 마무리는 개뿔. 다른 곳이나 도와주는 게 낫다.
신성력과 마기. 서로 상극인 에너지는 상대에게 더 많은 대미지를 주지만 반대로 받는 충격도 늘어난다.
이럴 경우에는…….
‘결국 출력이 더 높은 쪽이 이기게 된다 이거지.’
펠이라는 녀석은 어딜 봐도 신성력 스텟이 900대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거듭하며 신성력 스텟이 900을 넘긴 상황.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반면 김조균의 마기는 나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다. 아직 900대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
상극인 만큼 기습 공격 한 번만 제대로 들어가도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그전에 김조균이 박살 날 가능성이 더 높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성력과 마기가 붙는 편이 불리함을 이겨 낼 수 있는 가능성이긴 해.’
같은 능력을 베이스로 싸우면 이거야 말로 파워 게임이니까.
괜히 천족들이 신성력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게 아니다.
똑같이 신성력으로 싸우는 놈들이면 더 강한 신성력을 가진 녀석이 무조건 이긴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물론 난 천족이 아니고, 신성력뿐만 아니라 마력과 마기도 사용한다.
가능한 방법은 모두 동원한다.
아니면…….
“진짜 정면으로 부수던가.”
-콰앙!
놈을 향해 발을 박찼다.
[칭호, 부활한 교단의 성자가 환하게 빛납니다!]
칭호 효과를 받은 신성력이 더욱 진해진다.
후광처럼 번져나가는 새하얀 빛.
[홍예참(SS)]
순백으로 물든 검이 지나간 자리에 무지개가 남는다.
얼핏 보면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압도적인 신성력과 함께하니 그 자체로 신비로워 보인다.
놈 또한 급격히 늘어난 신성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일격을 경계했는지 빠르게 옆으로 날아간다.
날개도 안 퍼덕이는 녀석이 더럽게 빠르게 나네.
기동력에는 자신있다는 거겠지.
-콰아아앙!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충격의 여파로 움직임의 각도가 틀어지며 반발력을 받아 가속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경로 변화.
“보통이 아니군요!”
-카아아앙!
완전히 날 피했다고 착각하던 놈이 다급히 검을 후려친다.
클레이모어라 그런가. 물리적으로는 내가 밀린다.
게다가 놈의 검을 감싸고 있는 신성의 칼날.
‘단단해. 검강이랑 비교해도 비슷하겠어.’
겉모습뿐만 아니라 기능도 검강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아마 몸에 두르고 있는 신성력도 똑같은 성능을 자랑하겠지.
빛으로 이루어진 갑옷.
[데몬 스피어(S) Lv.10]
그것을 꿰뚫을 악마의 창.
마기를 듬뿍 담아 내던졌다.
-콰지지지직!
놈이 클레이모어를 몸에 바짝 붙이며 창을 막아 낸다.
상반된 기운이 뒤섞이며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그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불경한 짓을 하는군요! 그정도의 신성력을 지녔으면서 어찌하여!”
“뭘 하나 하나 따져. 그럼 넌 스킬도 쓰지 마! 신성력만 써, 날파리 같은 놈아! 날개만 많아가지고.”
“나, 날파리? 중급 천사의 상징도 몰라보는군요!”
날개 개수로 등급을 정하나? 어떤 천계 소속인지는 몰라도 특이하네.
것보다.
‘중급 천사라.’
못해도 상위 천사는 될 줄 알았는데.
놈보다 강한 놈이 아직 많다는 거 아닌가. 녀석이 따른다는 유헤다는 상급쯤 되려나?
골드 등급 위에 있는 다이아 등급은 뭐, 최상급 천사랍시고 날개 한 8개 달려 있고.
그렇게 많으면 깃털 때문에 기관지 안 좋아지겠다.
[오로라 빔(S) Lv.10]
날개를 넓게 펴며 위로 솟아오려는 녀석을 향해 오로라 빔을 쐈다.
목표는 날개. 몸통보다는 저쪽이 더 커서 노리기 편하다.
-우우우우우웅!
“워우.”
놈의 날개가 하얗게 불타오르더니 오로라 빔을 소멸시킨다.
불처럼 솟아오르는 신성. 펠의 안광이 번뜩인다. 빛 쏘아져나와 눈동자마저 보이지 않는다.
뭐랄까.
“빡쳤냐?”
“날개를 건드리려하다니. 곱게는 보낼 수 없겠네요.”
“어, 미안.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지 몰랐지.”
그런 의미에서.
[오로라 빔(S) Lv.10]
[오로라 빔(S) Lv.10]
[오로라 빔(S) Lv.10]
[오로라 빔(S) Lv.10]
날개에 하나씩 한 번 더 싸 줬다.
“이이이익! 불싸지르겠습니다!”
분노하며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녀석.
그냥 도발하려고 쏜 건 아니다.
‘날개가 핵심이군.’
놈의 신성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 보려 한 거다.
천계와 마계는 여러 차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몇 번 천계냐에 따라 천족의 모습, 형태, 문화 등등이 바뀐다는 말.
그럼에도 천족이라는 하나의 종족으로 묶이는 건 그만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공통점이고, 두 번째 공통점은…….
‘천족들은 신성력의 원천이 있어.’
제2 천계의 천사들은 뿔이 신성력의 원천이었다. 제1 천계는 날개가 그거인 모양.
그 증거로 몸에서 신성력이 뻗어나가 날개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날개에서 자체적으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어쩐지 날개가 많을수록 등급이 올라가는 거 같더라니. 날개가 늘어나면 신성력도 같이 올라가서 그런 거였나.
“펠! 진정해라! 이곳을 전부 날려 버릴 생각이냐!”
“저 성격 아직도 못 버렸군. 고상한 척하다가도 화만 나면 눈깔이 뒤집힌단 말이지. 목적을 잊지 마라, 펠!”
데하일과 트라할이 말렸지만 펠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
녀석의 위로 거대한 신성력의 구체가 만들어진다.
분명 밤이건만 태양이 떠오른 것만 같다. 신성함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파괴의 힘이 일렁인다.
“뒤로 빠져! 대비해라!”
“이거 잘하면 일 꼬이겠군. 상위 헌터들 데리고 가려다가 뭔 꼴인지.”
펠이 멈추지 않을 거란 걸 직감한 데하일과 트라할이 부하들을 이끌고 뒤로 빠진다.
이미 녀석의 공격을 본 적이 있는지 숭배자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나간다.
갑작스러운 철수.
철수라기 보다는 잠깐 자리를 비우는 거에 불과했지만 덕분에 한숨 돌린 상위 헌터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는 거 같다.
뭐, 그냥 놔두면 죽겠다만. 저 커다란 공격을 맞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이, 이블아이. 저거 어떻게 해?”
“저건 좀 난감한데. 일단 우리도 보호 스킬을 최대한 사용해 보는 게…….”
“아니.”
뚜둑. 몸을 풀었다.
피하기에는 범위가 넓고 받아내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그렇다면 뭐.
“뚫어야지, 덕춘아.”
“그에에.”
올라가기 전, 덕춘이는 놔두었다. 부상자들이 많아서 치료가 필요할 거다.
이쪽은 덕춘이한테 맡기고.
[무지개다리(S)]
-촤아아아아악!
“우린 끝을 봐야겠지?”
무지개다리가 뻗어나간 곳은 펠.
빠르게 놈을 향해 이동했다.
폭주하다시피 쏟아지는 신성력.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혔는지 표정 변화가 없다.
그저 지금 사용하는 기술을 완성시키고 모든 걸 부숴버리겠다는 의지만 남은 모습.
“불타 올라라.”
이윽고 준비를 마쳤는지 펠이 위로 들었던 팔을 천천히 내린다.
손짓에 맞춰 새하얀 태양이 떨어졌다.
-구구구구구구구궁!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기가 찢어지고 바람이 몰아친다.
그것을 정면에 두고 있으니 보이는 거라고는 눈부신 광채뿐.
“무식하게도 크네.”
입가를 비틀었다. 식은땀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진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검을 들어올렸다. 여전히 홍예참은 꺼지지 않은 상태.
무지개다리의 이동 속도와 칭호 효과로 올라간 능력치.
후우. 가볍게 숨을 내뱉는 것으로 정신을 다잡았다.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휘됩니다!]
[칭호, 부활한 교단의 성자가 번뜩입니다!]
[러브 앤 피스(S) Lv.10]
[검강]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장착합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날개가 하나 있더라고.”
-푸화아아아악!
왼쪽 어깻죽지에 순백의 날개가 펼쳐진다.
온몸을 타고 흘러넘치는 강대한 신성력!
[파이어 밤(S) Lv.10]
-콰아아아아앙!
등 뒤로 폭발을 일으켜 속도를 더했다.
이어 날개를 퍼득였으니.
-후우우우우웅!
내 몸은 한 줄기 빛이 되어 앞으로 뻗어 나갔고.
“목숨 한 번은 내주마.”
-파스스스스스스
그대로 신성의 태양에 몸을 던졌다.
[강철의 의지(S) Lv.10]
[강체强體(S) Lv.10]
[화기 내성(S) Lv.10]
[빛 내성(S) Lv.3]
보호 스킬이 발동된다.
지옥불보다 더한 초고온.
갑옷 틈으로 들어와 몸을 좀먹는 파괴의 힘에 눈앞이 흐려진다.
빛 내성 스킬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던가. 모르겠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
몸이 바스라지는 감각은 결코 좋지 않았으나.
‘네놈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야.’
[정신 보호(SSS) Lv.10]
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강렬한 빛에 앞이 보이지 않았으나 예민하게 벼려진 감각은 놈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고.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빛납니다!]
[절삭(S) Lv.10]
[영혼 찢기(S) Lv.10]
-서걱
-찌이이이익
단 한 번의 휘두름.
놈의 목을 베어 냈다.
비명은 없었다.
그저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던 신성력이 무너져 깨져나갈 뿐.
-사아아아아아
태양과도 같았던 신성의 구체가 파편이 되어 밤하늘을 빛낸다.
아래로 추락하는 펠.
나 또한 아래로 떨어졌으나.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가 추락을 거부합니다.]
천사의 날개는 내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몸과 날개.
허공에 멈춰선 내게 변화가 생겼다.
[구사일생(S) Lv.10]
-꾸득, 꾸드드득
뼈가 자라나고 새살이 돋아났다.
펠의 공격에 사라졌던 몸이 재생성되었다.
신성력이 흘러나오며 재생을 가속한다.
잃었던 시력이 돌아오고 손끝이 움직인다.
부활.
“오오, 오.”
“…천사, 천사다.”
“이 무슨 신성함이란 말인가.”
상위 헌터, 숭배자 할 거 없이 하늘을 우러러본다.
밤하늘. 홀로 빛나는 존재.
적이 분명한 천족들마저도 잠시 멈춰 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이건 확실하다.
검으로 트라할과 데하일을 가리켰다.
“다음은 너희야.”
이길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