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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01화 (500/740)

501화 유령 마을 진입

뒤를 돌아봤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일격. 제국군에서 보냈다던 마법사보다 강력한 위력의 폭발이 일었고 마법을 쏜 당사자에 대해.

“신성 마법사다! 교단에서 보낸 거야!”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샤일이 정체를 말해 줬다.

굳이 샤일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보이기는 했다. 순백의 망토에 황금으로 만든 장신구. 안에 갖춰 입은 옷은 활동하기 좋아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저게 교단의 상징인가.’

교단을 뜻하는 상징이 망토에 커다랗게 박혀 있다는 거였다.

금색 가시나무로 만든 왕관. 뭐라 했더라, 이들이 모시는 신은 빛과 순리의 신이라고 했던가.

저 동그랗게 생긴 왕관도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를 뜻하는 것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거기까지는 별 관심 없고.

“다른 마법이랑 다르긴 하군.”

녀석이 사용하는 마법에 관심이 갔다. 신성력이 느껴지는 건 당연했는데 또 다른 특징이 있었으니 딜레이가 짧다.

일반적인 마법사들 또한 숙련도에 따라 시전 속도가 천차만별이지만 저 녀석은 유독 빠르다.

마법적 수식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마법을 뽑아내는 느낌.

굳이 따지자면 스킬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스킬이라는 것도 구조는 모르지만 쓰는 사람은 무리 없이 발동할 수 있으니까.

“휘장을 보아하니 청금 마법 사단 소속이군. 좋지 않아.”

“청금은 또 뭐야.”

그런 금도 있나? 나도 무기 제작을 좀 해 봐서 광물에 대해서는 좀 아는데. 하기야 차원은 많고 특이한 금속도 많으니 그런 것도 있지 말란 법은 없었다.

“신성 마법 군단 아래에 있는 거라고! 백금 아래 황금여단, 그 바로 밑에 있는 게 청금과 홍금인데. 아무튼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거지.”

대충 3, 4티어라는 거 아닌가. 그럼 낮은 거지. 난 또 뭐라고.

내 태평한 표정을 보자니 속이 뒤집혔는지 샤일이 거품을 물고 뭐라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생각해야 할 건 저 녀석을 어떻게 할지지.

의도한 것 중에는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제국군과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교단을 끌어들여 흑마법사와 마족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도 있었다.

용사 무리와 그를 따르는 온갖 사람이 혼령탑으로 향하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충분한 전력인지는 확실치가 않아서.

다만 제국과 교단이 나를 노리게 된다면 일이 틀어진다. 대부분의 마탑이 흑마법사에게 넘어간 시점에서 아군이 될 수 있는 마법 집단은 두 개.

‘무너진 마탑과 교단의 신성 마법 군단.’

괜히 척을 질 필요는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날 쫓고 있는 녀석을 죽이는 건 안 될 거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자니 자꾸 뭘 쏘아 대고.

죽이지는 말고 격추만 시켜?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다. 대충 20미터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이 정도 높이라도 살살 떨어지면 괜찮지 않으려나.

“샤일, 팔 하나 정도 사라졌다 쳤을 때 떨어지면 착지할 수 있겠어?”

“뭔 개소리야?”

안 되나 보군. 어쩔 수 없지. 쫓아낼 수 없다면 끌어들인다.

자연스럽게 유도해서 유령 마을과 혼령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 준 다음 밖으로 빼돌리면 신나서 교단 사람들을 데리고 오겠지.

그때까지는…….

“귀찮더라도 놔두는 수밖에.”

-타앗

무지개다리를 타고 유령 마을에 진입했다.

짙게 깔린 안개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 주변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린지 뭔지 모를 것들만이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려 줬다.

“그아아아.”

“구어어어.”

목소리만 들어도 언데드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콰직

안개를 뚫고 덤벼든 좀비의 머리통을 부쉈다. 손맛이 좀 있는 걸 보니 보통 좀비는 아닌 거 같고.

“튼튼하네?”

머리가 사라져 움직임을 멈춘 좀비를 집어 들었다.

피부도 그렇고 근육도 그렇고 쇳덩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무기는 박히지도 않겠는데.

가뜩이나 머리를 날려 버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움직이는 게 좀비인데, 물량까지 확보된다면 가히 재앙이나 다를 바 없을 거다.

물론 일반인이나 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 한정에서지만.

“대충 20마리는 있는 거 같군.”

“아이언 좀비라,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건 흑마법사밖에 없지. 키메라나 다를 바 없는 괴물이거든. 대량 생산은 힘들다고 들었는데. 정말 던전이라도 되는 건가.”

이곳의 흑마법사가 손을 썼다기에는 좀비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게 샤일의 판단이었다.

유적에 배치해 뒀던 놈들이라고 보는 게 맞다는 거겠지. 게다가.

“안개가 걷히는군. 이쪽으로 오라는 거 같은데.”

손톱과 이빨을 들이미는 놈들의 머리통을 부수고 있자 안개 일부가 사라지며 시야를 열어 줬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고 길을 터준 느낌. 그 너머로 보이는 것들은.

“맙소사, 이건 마계의 흔적이야.”

좀비를 비롯해 온갖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언데드와 어딘가 비틀어진 양식의 건물이었다.

폐가라고 하기에도 음산한 모양. 나도 이쪽 세계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 왔던 건축 양식과 전혀 다르다.

적어도 사람들은 거대한 짐승의 뼈와 가죽으로 집을 짓지는 않으니까.

지붕으로 쓴 건 와이번의 날개인가. 취향 참 독특하네. 그래도 방수는 되니까 꽤 실용적인 것도 같다.

“신성 마법사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군.”

기껏 떨어트리지 않고 왔더니만 이래서야 영 쓸모가 없다. 오히려 녀석이 죽으면 내가 한 짓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

“그 녀석 먼저 찾지.”

“왜? 교단 놈들이랑 엮이면 골 아파져.”

“녀석이 죽어도 곤란해지는 건 마찬가지야.”

내 의중을 읽었는지 얼굴을 찌푸린 샤일이 입을 다문다.

마계에서 넘어온 유적이라는 것이 확인된 상황, 증인이 필요했다.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권능도 제대로 작동하질 않는다. 일단 시야에 보여야 정보를 뽑아내든 하니까.

감각을 예민하게 펼쳤다. 시야는 차단됐지만 다른 감각은 있으니까. 게다가 녀석은 신성 마법사.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을 찾아 움직였고.

-쿠르르르릉

사방으로 울리는 굉음과 함께 신성력이 선명해졌다.

저기다.

“떨어지지고 말고 따라와.”

샤일이 뒤에 딱 붙어 있는 걸 확인하며 앞으로 달렸다.

튀어나오는 좀비의 머리를 터트리기를 한참.

“날 함정에 빠트리다니! 더러운 흑마도들!”

궁지에 몰린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마법으로 인한 소음에 몬스터가 몰려든 거 같다. 바닥에 쓰러진 놈들만 수십. 그 이상의 숫자를 자랑하는 좀비와 스켈레톤, 구울이 달려들었고.

-꾸드득

“이런!”

빈틈없이 다가오는 놈들에게 정신을 팔린 찰나, 바닥에서 솟아오른 뼈다귀 손이 신성 마법사의 발목을 붙잡았다.

언데드가 저게 무섭지. 몸을 일으키기 전에는 어디에 잠들어 있는지 확인하기가 힘들거든.

뒤늦게 신성 마법사가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스켈레톤이 온몸을 끌어안으며 버텼다. 그사이 지척까지 다가온 몬스터들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손을 뻗는다.

사색이 된 녀석이 눈을 질끈 감았고.

[파이어 밤(SSS)Lv.1]

[러브 앤 피스(S)Lv.10+]

-콰아아아아아앙!

신성하게 물든 파이어 밤이 일대를 쓸어버렸다.

등급이 올라서 그런가, 아니면 언데드 상성인 신성력을 담아서 그런가 효과는 발군.

지우개로 지워 버린 듯 재가 되어 날아간 몬스터 사이로 나아갔다.

“너는?”

“이블아이라고 한다, 신성 마법사.”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녀석이 입을 딱 벌린다.

“설마 네가 한 일이냐?”

“보다시피.”

“어찌 이만한 신성력을… 호, 혹시. 교단에서 오셨습니까?”

“그렇다.”

옆에 있던 샤일이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가볍게 어깨를 주물러 주자 몸을 비틀며 시선을 돌렸다.

피곤하면 말을 하지. 왜 자꾸 이럴까.

아무튼.

“청금 신성 마법사단 소속 나그마입니다! 그, 실례지만 어느 소속인지?”

“백금.”

“배, 백금! 증표가 있으십니까?”

“없다.”

당당히 외치자 녀석이 눈을 꿈뻑인다.

없는 걸 어떻게 해. 교단의 문양도 지금 처음 알았다. 휘장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설사 알았다 한들 위조품을 만들 시간 따위는 없다.

이렇게 된 거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교단이 얼마나 체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각 구성원이 교단 전체 얼굴을 알지는 않겠지.

샤일이 말하길 청금 소속이라고 했으니 백금 소속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은 더 모를 거다.

“용사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비밀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 지금의 난 일반인 신분으로 움직이고 있다.”

제법 그럴싸한 핑계를 대자 납득하려던 나그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저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용사 쪽에는 프리스트 교단에서 사람을 보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외의 작업이니 비밀임무인 것이지.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긴 합니다만 어째서 굳이 정문으로?”

“계획의 일부다. 그 이상은 알려 줄 수 없군.”

비밀임무. 얼마나 편한 변명거리인가. 못 믿겠으면 교단가서 물어보던가. 물론 그사이 난 다른 곳으로 떠날 거다.

나그마가 의심쩍은 시선을 보냈지만 내가 보여 준 신성력은 진짜다. 샤일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었으나 어찌 됐든 증거가 없지 않은가.

어떻게 회유를 해서 교단으로 보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성 마법사를 사칭하자.

“제국군과 함께 진입 타이밍을 보고 있었겠군, 맞나?”

“예, 그렇습니다만.”

“주둔지에는 같이 파병된 인원이 있겠군. 잠시 나와 함께 움직여도 되겠어.”

“그건 근무지 이탈입니다. 징계를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연락망이 있을 테니 보고하면 될 거다. 내 이름을 말하면 상부에서 허가해 줄 터. 내가 직접 하지.”

통신 구슬을 달라 손을 뻗자 나그마가 주섬주섬 수정구를 꺼내 건넸고.

-우우우웅

-파삭

한계치 이상으로 신성력과 마력을 받아들인 통신구가 부서졌다.

“이런, 불량품이로군. 관리를 잘하지 그랬나. 어쩔 수 없다. 선 조치 후 보고를 하는 수밖에.”

“아니, 그게 무슨!”

“변명은 필요 없다. 전쟁터로 나가는 자가 장비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하다니. 닥치고 따라오도록.”

망설임 없이 손에 남은 파편을 바닥에 버리고 안으로 향했다.

녀석이 뭐라 구시렁거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언데드가 득실거리는 유령 마을, 안개로 인해 빠져나가는 것 또한 마땅치 않았으니 일단은 함께해야 한다.

안개가 걷힌 곳을 향해 진격하고 얼마 뒤.

[마계의 흔적- 유적, 망자의 고향에 진입합니다.]

유적의 입장을 알리는 알림이 떠올랐다.

나그마의 안색이 딱딱해진다. 마계의 유적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으니까.

망자의 고향이라, 이름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마을 내부에는 안개가 없다는 것?

우르르 몰려 있던 언데드는 마을에 진입하는 자를 막기 위한 장치였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폐가만 잔뜩 있는 유적에서 뭘 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으나 가야 할 곳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스스스스스

마을 곳곳에 박혀 있는 비석. 그곳에 적힌 글귀가 보라색 빛을 내뿜으며 흔들리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마을이 이 꼴이 된 것과 연관이 있을 듯싶었다.

가까이 다가가 내용을 살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언어였지만 통역이 있는 만큼 읽는 건 어렵지 않았고.

“게드릭의 고향, 영원한 잠에 빠지다. 불사자不死者의 안식은 영원한 잠이리라.”

“마계의 언어를 아신다니. 과연 백금 소속이군요.”

그 모습을 본 나그마가 감탄했다.

반면 샤일은 눈을 부릅떴으니.

“게드릭? 마계의 3군단장?”

그에 호응이라도 하는 걸까. 땅이 시커멓게 죽기 시작했다.

마을 외곽부터 점차 번지는 검은 땅. 동시에 차례대로 글귀가 빛나기 시작하는 비석들.

입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구울 한 마리가 검은 땅에 닿았고.

-치이이익

그대로 말라비틀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죽은 언데드의 미약한 생기마저도 빨아들이는 것. 난 다음 비석을 가리켰다.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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