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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24화 (624/740)

624화 저지하다

동맹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된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은 타이밍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술 좀 마셨다고 정신 못 차리는 이는 없으니까.

간부들이야 태생이 몬스터인 만큼 해독 능력이 사람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플레이어들 또한 40레벨에 들어선 만큼 육체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술에 독이 타 있다면 말이 달라졌다.

“으으음? 이게 무슨 소리여?”

“아 씨, 머리야.”

“과음했나? 별로 안 마신 거 같은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거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네.”

사람을 죽게 만드는 극독이 아니다. 반응을 봤을 때 취기를 올려 버리는 수준이지.

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뭔가다. 알코올이 온몸에 빠르게 퍼지도록 촉진하는 종류였으니까.

‘이런 잔머리를.’

나의 독 내성 스킬은 SSS급. 사실상 독에 면역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

경미한 독쯤은 스킬이 발동할 필요도 없다. 조금 더 취하는 수준의 독은 내 몸이 받아들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니까.

차라리 독이 강해서 내성 스킬이 떠올랐다면 알아차리기 쉬웠을 텐데.

아니.

그걸 떠나서.

[맥주]

-93층, 판타데미아에서 만든 맥주!

-청량감이 일품입니다!

술 자체에서는 독이 들어 있다는 정보가 뜨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권능으로 주변을 살피는 만큼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에 알아차려야 했다.

혹시 몰라 맥주컵에 독을 바른 걸까도 살폈다. 굳이 맥주에 독을 타지 않더라도 입이 닿는 부위에 독을 바르면 중독시킬 수 있으니까.

당연하게도 컵에도 독은 없었다.

“미니믹 이거 설마 다른 거랑 섞여야 효과가 발생하는 종류인가?”

“으응, 맞아. 일각수의 체액은 발효시킬 때도 쓴다고는 들었는데 콩기름이랑 섞이면 독이 되거든. 혈관 팽창, 간 기능 저하 같은 거. 그 자체로도 많이 먹으면 배탈 나고.”

어쨌든 지금은 술을 만들 때 쓰이지 않는 재료라는 거다. 여러 부작용 때문에.

이번 일을 주도한 녀석은 연금술에 지식이 있는 자다. 못해도 포션을 만들거나 주류에 대해 잘 아는 자일 확률이 높다.

게다가 적들이 침입해 오는 타이밍.

‘이 안에 내통자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타이밍이다. 도대체 누가?

숭배자?

아니다, 숭배자는 아니다.

가르티가 내 요청을 받아 93층에 있는 숭배자들에게 전면전을 벌이기 전에는 돌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으니까.

우리가 마왕성을 치기 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후에는 평소대로 하라고 해 놨지만. 숭배자들이 가르티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위에 있는 다른 숭배자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어서.

“다들 무기 들어! 적들이 몰려온다!”

내통자는 나중에. 지금은 적들의 침입에 대항해야 한다.

쳐들어온 적? 말할 것도 없이 마왕성이다. 그곳이 아니면 올 곳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왕성, 왕성의 문양이다!”

순찰을 나섰던 병사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지는 분위기. 술기운에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어정쩡하게 움직이는 녀석의 멱살을 붙자고 뺨을 때렸다.

-찰싹!

“정신 차려! 술이 그렇게 안 깨? 안 깨냐고!”

“어으으으.”

“그럴 땐 숙취 해소 음료를 먹으라고.”

“으겍!”

턱을 붙잡고 생명수를 부었다.

신성력을 기본적으로 정화의 힘을 가진 힘. 생명수의 다양한 효과 중에는 해독 능력도 있었으며 그 효과는 프램버그에서 확인했다.

고작 숙취 해소용으로 쓰기에는 아까웠지만 지금은 급하니 써먹는 수밖에.

“미니믹! 해독 포션 만들 수 있지?”

“그렇기는 한데, 으응.”

“만들어서 나눠 줘. 부탁할게.”

“부탁한다면, 알았어. 그런데 나 재료 없는걸.”

“여기 있으니까 마음껏 써.”

나 또한 포션 제작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만큼 각종 약재와 재료들을 가지고 다닌다.

따로 골라 줄 시간이 없어 바닥에 대충 뿌려 버렸고.

“나, 나 이거! 이거 가지고 싶었어!”

“아니, 지금 그럴 때가. 그래! 가져가!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챙겨. 애들 해독해 주는 것만 잊지 말고!”

“응응! 알았어!”

근래에 본 표정 중 가장 밝은 표정을 지은 미니믹이 불을 피우더니 온갖 재료를 입에 넣고는 커다란 솥 안으로 들어간다.

괴상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슬라임인 녀석이니 저런 식으로 포션을 만드는 모양.

마시는 사람들은 슬라임에서 우러나오는 물을 먹는 건가.

됐다.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내가 먹는 거 아니니까 뭐.

“넌 일로 오고.”

“예? 으엑!”

“히메룬도 따라와!”

“그러죠.”

베놈의 입에 포션병을 쑤셔 넣고 내 뒷담을 까느라 술에 입을 대지 않은 히메룬을 데리고 종이 울린 곳으로 달렸다.

우리 쪽도 문제지만 다른 곳에서 행사를 즐기던 이들 태반이 비몽사몽이다. 억지로 전투했다가는 실력 발휘도 못 한 채 목이 날아갈 터.

미니믹이 사람들을 해독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콰아아앙!

-쿠르르르릉

굉음이 들려온다. 이미 탈모맨과 원정대가 전투를 시작한 모양.

그나마 다행이다. 플레이어 최강 전력들이 멀쩡해서. 저 녀석들도 당했다면 곤란할 뻔했는데.

-파앗

발을 박차고 성벽 위에 올라섰다.

휴펜피디아의 병력과 수성 무기는 침공을 막기 위해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그동안은 나랑 싸웠으니 당연한 이야기.

다르게 말하면 지원 물자를 보내오던 왕성 쪽에는 공격을 대비한 인력과 무기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놈들도 그걸 아니까 이렇게 오는 걸 테고.

“상황이 좋지는 않군.”

“그에에.”

작정하고 공격해 오고 있다.

놈들도 상황이 바뀌고 수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왔다는 건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아는 거다.

멀찌감치서 본 게 전부라 어떤 녀석인지 몰랐는데 머리가 꽤 돌아가는 녀석인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왕의 자리에 있는 거겠지만.

“전장을 경직시키고 히메룬은 바로 괴이궁으로 돌아가 원정을 준비해. 내가 신호하면 바로 출전할 수 있도록.”

“그러도록 하죠.”

“바로 움직이지.”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탈모맨과 원정대가 성문 앞에서 방어진을 짜고 있지만 왕성의 기사와 병사들의 레벨은 결코 낮지 않다.

아니군. 이제는 등급이 높다고 해야 하나.

[플레버 레인]

-93층 NPC.

-4성급 악마 계약자입니다!

[하시미로]

-93층 NPC.

-4성급 악마 계약자입니다!

.

.

.

기사급은 최소 4성급.

분대장이나 다른 직책을 가지고 있는 녀석 중에는 5성급까지 몇 명 보인다.

일반 병사들은 3성급부터 시작. 몇몇 뛰어난 무위를 보이는 녀석은 4성급 정도 될 거 같은데.

갑작스럽게 마왕이 되면서 특전이 있던 거 같다.

총 인원은 적은 편이지만 하나같이 강력한 왕성이었던 만큼 무장 상태는 말할 것도 없었고.

“어허. 공성 장비까지 가지고 왔네?”

“군수물자만 보면 저쪽이 우위입니다.”

“다 부수면 되는 거 아니야?”

둘 다 맞는 말이다. 인원도 인원이지만 공성 장비는 반드시 부숴야 한다. 벽까지 무너지면 적을 저지할 수단 자체가 없어지니까.

“공공아이 왔어?”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안에 내통자가 있어. 해독제를 만들고 있지만 정신 차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때까지는 우리가 막아야 돼.”

빠르게 상황 설명을 마치고 앞으로 돌진했다.

“해보자고.”

“좋았어! 사람도 늘었겠다! 지원군 없는 것도 알겠다! 날뛰자고!”

“허허. 이 또한 시련. 비 온 뒤 땅이 굳는 법. 이겨 낸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법이오.”

수비에만 집중할 수 없다. 머릿수로 밀고 들어오면 결국 무너질 테니까. 성벽에 가까워지기 전에 놈들을 해체해야 한다.

스타트는 파이어 밤.

붉게 타오르는 화염이 응축되는 것과 동시에 터져 나간다.

-콰아아아아앙!

출력을 조절할 필요 없이 터트렸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역시 난 다수를 상대하는 게 마음 편하더라.”

휩쓸릴 사람 걱정 없이 싸울 수 있어서.

한순간에 일대가 터져나가고 땅이 그슬린다. 밀려오던 적들 사이에 공간이 생긴 시점.

“물러서세요.”

-사락

히메룬이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었고.

[석화금정(SSS) Lv.1]

-쩌저저저적!

금빛 안광이 터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적들이 돌로 변했다.

눈이 마주친 모두를 돌로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석화의 저주.

“흐하하하하! 어디 잔챙이들이 형님을 노리느냐!”

멈춰 버린 적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 베놈이 온몸으로 놈들에게 돌진한다.

나와 히메룬의 공격에 자신감이 올라간 걸까, 녀석의 몸이 급격히 성장했으며.

-콰아아아아앙!

기어이 빌딩 수준으로 거대화한 베놈의 꼬리 짓 한 번에 석화된 병사 전원이 박살 나 가루가 되었다.

그레이트 베놈. 던전의 주인의 본래 모습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미친, 언제 저런 괴물들을 모은 거야.”

옆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척. 질린 표정을 지은 송곳 요정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날 보며 인상을 쓴 그녀가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아니, 쏘아져 나갔다고 느꼈다. 눈으로 좇기 힘들 속도로 적들 사이로 파고들었으니까.

-피슉

작은 소음.

한 박자 느리게 허공으로 치솟는 피 분수.

“앞은 내가 흩트려 둘게.”

송곳 요정의 목소리가 들린다. 방향을 알 수 없게 웅웅 울리는 목소리.

암살 계열인 거 같더니만 이런 능력도 있는 건가. 탈모맨을 비롯해 원정대의 레벨은 50을 넘긴 상황. 그렇다고 한들 아직 원래의 힘보다는 약할 텐데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인다?

‘적으로 돌리면 곤란하긴 하겠네.’

나야 상성이 우위라 괜찮겠지만. 아무리 은신을 잘하더라도 권능을 피할 수는 없다.

은신이야 나도 제한 시간이 있지만 완전 은신이 가능하고.

-촤아아아악

곳곳에서 솟는 핏줄기에 마왕군이 동요한다.

악마와 계약하면서 전반적인 스펙은 올라갔지만 그렇다고 목에 구멍 뚫리는 게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니까.

오히려 갑자기 악마화가 된 것에 당황스러운 게 크겠지.

그건 그거고.

“오면 다 뒈진다! 안 와도 맞는 거야!”

-콰앙! 쾅! 쾅! 쾅!

탈모맨도 신났네. 요즘 많이 심심했나.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무슨 대포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대포가 맞나. 주먹에 맞은 녀석들이 대포알처럼 날아가니까 얼추 비슷한 거 같기는 한데.

“야야. 너무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애들 다 잡는 게 목표가 아니라 성벽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그렇군! 적들이 없으면 성벽이 멀쩡할 거란 뜻이지?”

“아니, 그… 마음대로 해.”

“하하하하! 간단명료하군!”

말을 말자. 깊숙이 들어갔다고 못 빠져나올 애도 아닌데.

“으아아아아!”

혼란스럽게 서로가 뒤섞인 공간, 우리가 분투하기는 했지만 절대적인 인원의 차이가 있다.

앞에서 날뛰는 우리를 피해 안으로 파고드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걱정은 없었다.

“쏴! 쏴 버려!”

“어딜 감히!”

원정대 멤버들의 실력도 수준급이었고 무엇보다.

“다들 성격이 그리 급해서야. 화를 억누르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명경지수. 흔들리는 자는 훨훨 날아가는 법이오.”

[태풍(SSS) Lv.2]

-푸콰가가가가각!

저기 화무선이 있는 이상 성벽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간단하다 못해 명사 그대로인 스킬. 저거 암만 봐도 태생 SSS급 스킬이다.

[화무선 Lv.56]

“쟤도 상당히 높네.”

현재 탈모맨의 레벨은 58. 플레이어 중 가장 높다. 그나마 비교해 볼 수 있는 게 송곳 요정. 녀석이 57레벨이고.

세 명 다 만렙에 근접했다. 같이 움직였던 원정대도 기껏해야 51, 52 이 정도인데 확연히 차이가 나는 상황.

녀석을 살피는 것도 잠시. 화무선이 다시금 손을 휘저었다.

[십이대신법十二大神法(SSS) Lv.1]

-구구구구구궁!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의 형상을 한 석상 12개가 솟아난다.

동시에 바뀌어 버리는 기류. 안개가 끼듯 뿌예지는 시야 속 화무선의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이 뒤로는 못 가오.”

진법 계열의 스킬인 거 같은데 보아하니 보통 스킬은 아닌 듯싶고.

이 와중에도 적진에서는 피 분수가 이어지고 있다. 송곳 요정이 아예 작정을 한 모양.

괜히 상위 헌터 그룹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각자의 능력도 있지만 위에 있는 멤버들과의 교류, 지원을 통해 더욱 강해졌겠지.

여기 있는 녀석들도 이 정도면.

‘위에 있는 놈들은 더 괴물이겠군.’

뭐.

“그건 우리도 비슷하지만.”

[정의의 일격(SSS) Lv.4]

-콰아아아아아아앙!

탈모맨이 내지른 주먹. 거대한 전차가 돌진한 듯 뚫려 버린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파이어 밤(SSS) Lv.6]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검강]

[칭호, 발목 수확자가 빛납니다!]

굳이 다 죽일 필요 없다.

무력화. 그걸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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