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화 합류와 합류
지하상가는 어쩌다 지하상가가 되었는가.
근원은 간단했다.
멀쩡한 토지에서 장사하기 힘든 사람들이 지하로 내려와 장사한 게 시작이니까.
그 특성상 같은 이유로 밖에서 처분하기 힘든 장물이나 물건을 구하려는 이들이 모였으며 자연스럽게 치안이 개판이 됐다.
경비대는 굳이 이런 곳까지 관리하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지하상가 상인들은 저마다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여긴 치안이 안 좋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빼앗긴다.
3대 조직이 지하상가를 어지간하면 건들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지하상가는 일종의 카르텔.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
“우리 영역에서 개짓거리하지 마라!”
“너희 이러고도 앞으로 괜찮을 거 같아?”
“용병들은 언제 오냐!”
“어, 걔네도 저기 섞여 있는데?”
“다른 사설 경비 불러, 그럼!”
바로 이렇게.
졸지에 전쟁터가 된 곳.
지하상가의 상인들이 저마다 가드를 불러 모았다.
뭐든 전례가 생기면 골치 아파지는 법.
이번에 무시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럼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거든.’
그렇기에 이들은 무조건 우리를 저지하려 들 거다.
대충 3대 조직에 지하상가까지 뭉텅이로 싸운다는 뜻.
내가 바라던 바다.
모두가 피해를 보는 상황.
노리고 있던 건 그거니까.
“정면!”
“옙!”
내 외침에 빅튼이 팔로 머리를 감싸며 앞으로 달린다.
전투 능력은 별거 없지만 덩치가 크다.
힘도 좋은 편.
적당히 튼튼한 방어구로 도배해 놨으니.
“뭐야, 이 덩어리는!”
“밟아! 밟아!”
“으아아아악! 형니이이임!”
훌륭한 고기 방패가 됐다.
달려가기 무섭게 패대기쳐져 밟히는 녀석.
좋았어. 저쪽은 잠시 저렇게 놔두고.
“트랄로우, 저놈은 네가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아는 얼굴이군.”
“친구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나를 배신했던 놈이다.”
아, 그러냐.
얜 배신을 몇 번 당한 거야.
보니까 작은 손가락에서 온 놈도 아닌 것 같은데.
개인적 원한이 있다니 풀게 두고.
“가자. 덕춘이, 망구.”
“그에엑.”
“끼아아아아!”
난 측면에서부터 깨고 들어오는 놈들을 향해 돌진했다.
세쌍둥이라도 되는 건지 비슷하게 생겼지만 차이가 있었으니.
왼쪽부터.
눈썹 두 개, 한 개, 민눈썹.
대충 첫째, 둘째, 막내 느낌이 아닐까.
눈썹 밀고 싶은 놈은 없을 테니까.
“크하아아아!”
“우아아아아!”
놈들이 소리를 지른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는 거친 포효 소리.
전투하던 이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오오! 톱니뿔의 파괴자 삼 형제!”
“놈들까지 올 줄이야. 용병단에서 칼을 갈았군!”
파괴자?
파괴된 건 눈썹 말곤 없어 보이는데.
뭐든 싸워 보면 알겠지.
내 쪽도 셋이다.
사람, 개구리, 망령.
“다종족 트리오의 힘을 보여 주자!”
“그에에엑!”
“끼아아악!”
우리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놈들의 눈에 순간 의혹이 비쳤으나 이내 자세를 잡는다.
상대를 얕보지 않는 모습.
아주 바람직하다만.
[검강]
[절삭(SSS) Lv.2]
[영혼 찢기(SSS) Lv.1]
-촤아아악!
그런다고 실력 차가 좁혀지지는 않는다.
놈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상대방을 얕볼 생각은 없으니까.
견제고 뭐고 없다.
내가 선택한 전략은 하나니까.
‘정면을 부수고 진형을 무너트린다.’
상대방을 돌파해야만 의미가 있는 전략이었지만 난 자신 있었다.
[파이어 밤(SSS) Lv.8]
-콰아아아앙!
레벨 업이 된 지금, 화력으로는 밀릴 자신이 없으니까.
정면에서 터진 불길.
이어지는 검격.
놈이 이를 악물며 쥐고 있던 메이스를 휘둘렀지만 어깨로 받아 냈다.
살짝 욱신거리기는 했으나 못 버틸 수준은 아니었고.
[달라붙기(S) Lv.MAX]
“읍? 왜 안 떨어--!”
-콰직!
달라붙기로 메이스를 갑옷에 붙인 후 검 손잡이로 놈의 머리통을 찍었다.
머리뼈가 들어가는 감각을 보아하니 최소 그로기 상태.
뭐든 확실한 게 좋은 만큼 검을 휘둘러 놈의 목을 날렸다.
피를 뿌리며 머리통이 날아간다.
“형!”
“말도 안 되는!”
그 사이로 보이는 경악한 삼 형제.
아니, 이제는 형제의 표정이 보였다.
자고로 전투 중 한눈을 판다는 것 목을 내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법.
“끼에에엑!”
망구의 창이 상대의 목을 꿰뚫었고.
-짜아아악!
-우드득!
덕춘이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녀석의 목에서 나서는 안 될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됐다.
조금은 허무할 만큼 빠르게 끝난 전투.
순식간에 3명을 잃은 놈들과 달리 우리 쪽 피해는 미미했다.
얻어맞은 어깨야 몇 번 돌려 주면 풀릴 거고.
“거의 다 끝났군.”
난 남은 이들을 살폈다.
도시의 음지에서 활동하는 세력이 모두 뒤엉킨 곳.
“젠장, 빠져!”
“더 이상 우리가 끼어들 싸움이 아니다!”
계산이 빠른 지하상가 놈들이 하나둘 물러났다.
본인들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차라리 한발 물러서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걸 선택했다.
나야 좋다.
어떤 결과가 나든 승복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남은 건 3대 조직뿐인데.
“크아아악!”
“작은 손가락의 간부를 잡았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가장 먼저 탈락한 건 작은 손가락.
타격을 입은 채로 전투에 참여했으니 힘이 밀리는 건 당연했다.
영악하게도 검은 갈고리와 톱니뿔 용병단이 손을 잡았다.
“이걸 편을 먹네.”
대단한 놈들 같으니.
오케이.
너희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작은 손가락이 무너졌다! 용병단을 공격하자! 검은 갈고리 만세!”
“마, 만세!”
“거, 검은 갈고리의 힘을 보여 주자!”
크게 소리치며 옆에 있는 폴과 빅튼의 옆구리를 찔렀다.
눈치껏 나를 따라 외치는 놈들.
우리가 이러니 드렉프리의 부하들도 소리 질렀다.
“무슨, 무슨 소리냐!”
“우리가 언제!”
우리의 외침에 검은 갈고리 놈들이 당황한다.
놈들이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일제히 돌격했다.
“검은 갈고리 만세!”
“망할 용병단을 때려잡아라!”
공격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톱니뿔 용병단.
검은 갈고리 쪽은 쳐다도 안 봤다.
오로지 톱니뿔 용병단만 공격해 댔고.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다니!”
“이 더러운 놈들!”
“죽여! 이딴 것들과 손을 잡는 게 아니었다!”
“아니다! 우린 그럴 생각이!”
“닥쳐!”
“끄아아악!”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용병단이 검은 갈고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서로 신뢰도 없는데 팀을 맺으면 되나.
이렇게 쿡 찌르면 바로 흩어질 거면서.
“제, 젠장! 이렇게 된 것, 일단 공격이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라!”
용병 단원 중 한 명이 검은 갈고리 조직원을 찔렀다.
피가 솟는 걸 봐서는 살긴 힘들 터.
이걸로 검은 갈고리와 용병단은 완전히 갈라섰다.
검은 갈고리 쪽 지휘관이 뇌 정지만 안 왔어도 대응했을 텐데.
‘이래서 상사를 잘 만나야 한단 말이지.’
어쩌겠는가? 본인들 운이 안 좋은 것을.
협공 아닌 협공으로 용병단을 궤멸시키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머릿수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걸 어떻게 다 막을 건데?
한 명 두 명 잘리다 보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
“크하악!”
마지막 한 명이 쓰러지는 걸로 용병단은 전멸했다.
승리의 함성을 뱉어도 좋은 타이밍.
그러나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날을 세우며 으르렁거린다.
돌발적으로 용병단을 공격하기는 했지만 우리와 검은 갈고리는 적이니까.
“왜! 왜 이런 짓을 벌인 거냐!”
“여기서 살아 나가 봤자 남는 건 파멸뿐이다!”
놈들이 소리쳤다.
어느덧 지하상가에 남은 건 검은 갈고리뿐.
서로를 향해 무기를 내미는 상황 속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파멸뿐이다?”
“그래. 이곳에 모여 있는 건 일부에 지나지 않지. 우리뿐만이 아니다!”
대충 실장 정도 되어 보이는 놈이 주변을 가리켰다.
“작은 손가락과 용병단 모두 보복을 가할 것이다. 네놈이라고 무사할 성싶더냐!”
“흐음. 틀린 말은 아니긴 해.”
“지금이라도 목숨을 빌면 다른 나머지는 살려 줄 수 있다.”
난 안 살려 준다는 거네?
거, 앞에서 듣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아무튼 지금이라도 멈추면 봐주겠다는 건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네놈인 것 같군.”
턱으로 지하상가 입구를 가리켰다.
우리가 이곳에서 싸우는 동안 초코쪼코와 드렉프리라고 놀고 있지는 않았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각 조직의 수뇌부를 치고 있었지.
나도 이쪽이 정리되면 도우러 가려 했는데.
‘보아하니 그럴 필요는 없겠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일단의 무리.
누군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각 조직의 수뇌부를 처치하고 살릴 놈들은 살려서 이곳으로 오고 있었으니까.
그 얼굴을 본 실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혀, 형님?”
“다 무기 내려, 새끼들아!”
피떡이 되어 등장한 간부의 외침에, 망설이던 이들이 무기를 내려놓는다.
특별히 충성심이 있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이미 끝났다는 걸 받아들인 거지.’
초코쪼코에게 잡혀 질질 끌려오는 이들.
하나같이 거물이다.
검은 갈고리의 간부와 용병단의 수뇌부.
드렉프리의 손에는 각 조직 두목의 머리가 들려 있다.
이미 윗대가리는 전부 처리했다는 뜻.
사실상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목숨 걸고 싸워 봤자 보상해 줄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다들 무기 버려.”
“예, 옙!”
“무기는 발로 차서 떨어트려라!”
하나둘 무기를 저 멀리 밀어낸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며 양손을 올리는 건 덤.
어떻게 되려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끝난 모양.
다들 고생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툭.
드렉프리의 등을 밀었다.
잠시 묘한 눈길을 주던 녀석이 이내 목을 가다듬는다.
“모두에게 알린다! 3대 조직은 통합되었다!”
우렁차게 외친 선언.
지하상가에 속해 있던 상인들에게도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였고.
“내 이름은 드렉프리!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불릴 것이다!”
녀석이 양손을 뻗었다.
“도심, 단 한 개의 조직! 큰 갈고리로!”
“와아아아아!”
“초대형 조직의 등장이다!”
환호하는 이들.
새롭게 바뀔 정세에 침묵하는 이들.
앞으로 어떤 식으로 관계를 구축해야 할지 고민하는 상인들까지.
그 사이에 껴서 난 생각했다.
‘얘 닉네임 센스 구리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 *
95층의 대도시, 파우저 시티.
도시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공장과 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빈민촌과 각종 산업의 본사가 모인 부촌.
그곳에 보기 힘든 이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부촌 최대 샬롱인 요정 클럽.
고급스러운 연회장에는 음악도 흐르지 않았다.
이번에 모인 것은 친목을 다지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3대 조직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소식은 들었겠죠?”
차분하게 찻잔을 든 여인의 말에 다른 이들이 그녀를 바라봤다.
“다들 모르는 척하지 말고 이야기해 보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기존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어떻소?”
“적당히 뒤를 봐주며 서로의 영역은 건들지 않는 것이지.”
“그들도 딱히 부촌에 들어올 생각은 없지 않겠는가.”
저마다 한마디 했지만 여인은 혀를 찰 뿐이었다.
“안일한 생각이군요.”
“뭣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욕심이 없는 자가 3대 조직을 통합할 것 같나요?”
한심한 눈빛으로 사내를 깔본 여인이 손가락을 들었다.
“하루. 단 하루에 모든 일을 끝낸 자입니다. 오랫동안 일을 계획했다는 뜻이죠. 야망이 큰 사람이에요.”
“동의하네. 정보통에 의하면 지하상가도 장악했다고 하는군.”
“지하상가를? 그건 흘려 넘길 일이 아니군요.”
“술집 같은 동네 장사를 하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산업까지 건드린다는 건 우리와 경쟁하겠다는 뜻이야.”
술렁이는 이들.
차를 홀짝인 여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샬롱의 주인이자 요정 클럽의 일원. 찌리리 요정은 티 나지 않게 혀를 찼다.
‘초코쪼코 그년이 그쪽에 있을 줄이야.’
95층에서 무려 3년간 마찰을 빚어 왔던 대상이 초코쪼코다.
부촌에서 샬롱을 만들고 입지를 다지기까지 온갖 일이 있었고 그 뒤에는 주로 초코쪼코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각자 할 일을 한 것이었고 때로는 서로 돕기도 했지만 상극인 건 분명했다.
이번에 드디어 초콜릿 무스를 해체시키고 피의 제단으로 보낸 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로 일어설 줄이야.’
피의 제단에서 살아 돌아올 건 알았다.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니니까.
다만 회복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샬롱을 운영하는 만큼 온갖 소식이 들려온다.
초코쪼코가 새롭게 등장한 큰 갈고리 조직의 핵심 인원이 되었다는 건 확인했다.
‘드렉프리, 그 사람 때문인가.’
꽤나 수완 좋은 사채업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일을 벌이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괜찮아. 인재를 영입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짝짝.
찌리리 요정이 박수를 쳤다.
각각 앞으로의 계획을 짜며 이야기하던 이들이 그녀를 바라본다.
“상대방이 하나로 뭉쳤다면 우리도 덩치를 불리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네만.”
“신흥 세력들이라도 데려올 생각인가?”
“초콜릿 무스가 망했으니 불가능하진 않겠군.”
“무슨 소리. 우리가 한 짓이 있는데 들어오겠나? 본인들끼리 뭉치겠지. 들어와도 신뢰도 안 들고.”
여러 반응이 있었지만 중론은 기존에 있던 신흥 세력을 끌어모으기는 부담스럽다였다.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 찌리리 요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기존에 있던 신흥 세력들과 힘을 합치는 건 어렵죠. 하지만 이제 막 등장한 신예라면요?”
짝.
다시 손뼉을 친 찌리리 요정이 뒷문을 향해 팔을 뻗는다.
“믿을 만한 친구를 소개할게요! 새롭게 부촌에 들어온 냥냥펀치라고 합니다!”
그녀의 소개와 함께 열리는 문.
휘황찬란한 장신구와 옷을 입은 냥펀이 스윽, 샬롱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더니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곧게 편 허리에서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반갑당!”
냥펀, 95층 진입 한 달 차.
부촌의 멤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