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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77화 (677/740)

677화 퀘스트 갱신

어디까지 내줄 수 있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하나씩 잃어 가는 공간.

내놓은 게 늘면 늘어날수록 밑바닥이 드러나는 게임.

그곳에서 난 어디까지 바닥으로 처박힐 수 있냐는 것과 같았으니까.

-저벅.

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뚫려 버린 옆구리로 피가 쏟아져 나온다.

다행히 장기가 찢어지진 않은 것 같지만 중상임은 분명한 상처.

뜨겁고 짜릿한 통증에 구역질이 났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고통스러워도 싸워야 한다.

이미 쉬운 길이란 것은 탑에 들어온 순간 사라졌다.

“내가 뭘 내줘야 하나?”

놈에게 되물었다.

왜 내가 내줘야 하냐고.

자신은 내줄 걸 다 내주었으니 나도 내줘야 하는 건가?

난 그럴 생각이 없다.

“그야……!”

-콰앙!

놈이 말을 잇기도 전에 앞으로 달렸다.

현재도 스킬이 빠르게 봉인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는 심해지겠지.

전력의 대부분이 스킬인 만큼, 스킬의 감소는 곧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스킬, 권능, 칭호.

그다음에는 뭐가 사라질까.

-콰가가가가가각!

놈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전력을 담은 검을 놈이 비껴 낸다.

힘에서 밀려 뒤로 물러서는 녀석에게 연달아 검을 휘둘렀고.

[파이어 밤(SSS) Lv.9]

-콰아아아앙!

아낌없이 스킬을 쏟았다.

[파이어 밤(SSS)을 일시적으로 상실합니다.]

푸쉬쉬.

연달아 폭발하려던 불길이 사그라든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내게는 여전히 스킬이 남아 있으니까.

[프로즌 브레이크(SS) Lv.4]

[일렉트릭 쇼크(SS) Lv.7]

-쩌저저적!

-콰지지지지직!

얼음과 전격의 콜라보.

놈을 붙잡은 빙벽이 폭발하며 주변을 찢어발기고 전격이 쏟아진다.

[천벌(SSS) Lv.8]

찌리리 요정의 지원은 덤.

허공에서 떨어진 벼락이 놈을 감전시킨다.

“크그그그그극!”

“끄으으읍!”

주변으로 방출되는 막대한 전격.

내성 스킬이 일시적으로 봉인되며 나 역시 감전을 피할 수 없다.

눈에서 불꽃이 튀는 기분.

내성 스킬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어지니 끔찍한 통증이 올라온다.

놈이야 통각을 잃어 그나마 낫겠다만.

-파스스.

놈의 귀가 재가 되어 사라진다.

조금씩 바스러지며 생명을 태우는 건 놈도 마찬가지.

“쿨럭.”

검은 연기를 뱉어 냈다.

입안은 증발하고 내장은 익어 버린 거 같다.

전기 통구이가 이런 건가.

그럼에도 누구 하나 멈추지 않았다.

-채가가강!

단번에 십여 번의 공방을 나눴다.

오로라 빔으로 놈의 머리통을 날리고 싶었으나.

[오로라 빔(SSS)을 일시적으로 상실합니다.]

스킬이 막히며 빈틈이 생겼고.

-빠악!

놈이 다리를 길게 뻗어 내 허벅지를 밀어냈다.

덜커덩하며 무릎이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탈모맨이 알려 준 오블리크킥인가.

이걸 NPC한테 맞을 줄은 몰랐는데.

인대가 나갔는지 제대로 지지가 안 된다.

“헤이, 절뚝이 파트너.”

놈이 이죽거린다.

“뭐래. 지도 발병신이면서.”

다리 한쪽이 나간 거야 뭐, 놈도 마찬가지니까.

사르르.

들고 있던 혼돈검이 사라진다.

놈이 가지고 있던 검도 마찬가지.

-콰르르르릉!

-콰아아앙!

그 와중에도 벼락은 끊임없이 치고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격통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권능과 칭호, 스킬을 상실했다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떠올랐지만 무시했다.

대신 앞으로 몸을 던져 놈의 멱살을 잡았고.

-빠각!

그대로 헤딩했다.

코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가는 녀석.

체중을 실어 팔꿈치로 놈의 코를 내리쳤다.

자고로 때린 데를 또 때리는 것이 국룰.

“저리 꺼져!”

“크합!”

놈 또한 가만히 당하지는 않았다.

굴러다니는 돌을 쥐어 내 관자놀이를 찍었으니까.

대가리가 깨질 것 같다.

사라진 패시브 스킬.

거기에 상실은 장비에도 적용이 됐다.

펠라인 세트가 벗겨지며 투구를 비롯해 다른 펠라인 파츠도 반 이상 사라졌다.

-뻑! 빠각!

-콰앙!

무기고 뭐고 없이 이어지는 개싸움.

눈에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절뚝이 둘이서 볼품없이 공격을 주고받는 건 생각 이상으로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놈과 싸우면 싸울수록 더 빠르게 상실이 일어나고 있다.

[날개 없는 천사의 오른쪽 날개(SSS)를 일시적으로 상실합니다.]

[마그나로크의 왕관(SSS)을 일시적으로 상실합니다.]

신성력을 보조하던 아이템이 장착 해제되며 허공에 떠올랐던 신성의 태양이 온몸을 태운다.

실시간으로 피부가 타들어 간다.

뜨거운 열기에 온몸에 물집이 잡힌다.

얼굴까지 번진 건가.

흐르는 진물에 눈앞이 흐려진다.

“너도 나처럼 되니 별거 없구나. 흐흐.”

입안이 터져 붉어진 이를 보이며 놈이 웃는다.

이거 웃기는 녀석일세.

“내가 왜 너랑 같냐.”

“그에에엑!”

난 나름 인싸인데.

품에서 나온 덕춘이가 녀석의 목을 잡고 흔든다.

특성도, 고유 능력도 사라져 좀 강한 개구리일 뿐이었지만 이게 어딘가.

그뿐일까.

“이야아압! 공블아이 괴롭히지 마랑!”

지원군은 더 있다.

어디서 구했는지 야구 방망이를 쥐고 달려온 냥펀이 그대로 놈의 정수리를 깬다.

아이템도 아티팩트도 아닌 평범한 방망이다.

가지고 온 물건 대부분이 기능을 상실했는지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장비가 빛을 잃었다.

상실의 시대에 노출된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거지.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 지원이 없더라니.

“잡아! 잡아!”

“그에에!”

“곱게! 가자궁!”

내가 놈의 다리를 붙잡고 덕춘이도 하나 남은 팔을 붙잡는다.

냥펀이 말뚝을 박듯 방망이를 내리치는 것의 반복.

이것이야말로 사회성의 승리이자 무리의 힘!

“크아아아아악!”

놈이 괴성과 함께 몸을 일으킨다.

아직도 이만한 힘이 남았나.

피로 범벅이 된 녀석이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며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른다.

-파스스스.

내게 덤벼든 녀석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하체가 회색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분한 듯 엎어진 모습 그대로 땅을 내리친 녀석이 몸을 뒤집는다.

수없이 떨어진 벼락과 나와의 전투.

벗겨진 피부는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가쁘게 숨을 내쉬는 녀석.

오르내리는 가슴이 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반쪽짜리 혼돈의 파편.’

혼돈의 파편은 자신의 규칙에 피해를 보지 않는다.

델버튼이 뿌리는 역병의 안개가 스스로를 병들게 하지 않는 것처럼.

놈은 달랐다.

반쪽짜리이기에 규칙은 그에게도 엄격히 적용되었으니까.

“씨발.”

놈이 침을 뱉더니 욕을 흘린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벌리다 도로 다문 녀석이 나와 덕춘이, 냥펀을 바라본다.

“…넌 더럽게 행복하겠군.”

비아냥거리는 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놈에 비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나.

그런 나는 행복하냐고 묻는 것이었으니까.

“네놈 또한 나처럼 될 거다. 넌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거든.”

웃기고 있네.

닮은 건 하나 없구만.

“많이 가져 봤자 좋지 않은 것도 있지. 적이라든가 원한이라든가. 그리고 너는.”

녀석이 지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혼돈도 많군.”

순간 몸을 굳혔다.

놈과 난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딱 하나 비슷한 게 있다면 혼돈 수치가 높다는 것.

녀석이 실실 웃는다.

악의에 가득 찬.

어쩌면 진심 어린 충고일지도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마라. 넌 반쪽으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 어쩌면…….”

-파스스스스.

놈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하나 남은 팔.

이어 몸과 목을 지나 얼굴까지.

“그분처럼 될지도 모르지.”

피식 녀석이 웃는다.

“네 세상을 지키고 싶다면 버릴 것은 버려라.”

마지막 말을 남기고 녀석은 사라졌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무너진 잔해의 먼지처럼.

끝내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최후치고는 보잘것없었다.

“갈 때까지 악담이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박살 날 것 같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최근 들어 이렇게까지 몸을 굴린 적이 있던가.

플래티넘 등급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이런 놈이 한 명 더 있다는 거지.’

동맹을 맺은 가르티와 이번에 잡은 파히루를 제외하고도 플래티넘 등급은 더 있다.

그 위에는 모든 숭배자의 왕이라는 놈도 있고.

마지막에 녀석이 말했던 그분이라는 것도 아마.

‘숭배자들의 왕, 베드록 바알루제.’

이 녀석을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상실한 것을 되찾습니다.]

[파이어 밤(SSS)을 되찾습니다.]

[펠라인의 노란 몸통(E)을 되찾습니다.]

.

.

.

놈을 해치우니 상실했던 것들이 되돌아온다.

패시브 스킬과 아이템이 돌아오자 신성의 태양도 버틸 만하다.

덕춘이도 회복 능력을 되찾았는지 상처를 핥아 주고.

“크흐.”

나 또한 포션을 꺼내 마셨다.

개처럼 구르고 마시니 포션도 마실 만하네.

쯧.

작게 혀를 차며 놈이 있었던 자리를 내려다봤다.

놈의 이명은 외로움의 파히루.

말하지 않아도 놈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혼돈의 파편.

그들을 이루고 있는 개념은.

‘그동안 살아온 삶과 같으니까.’

죽음의 비가 내렸던 거인계의 델버튼.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보내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스쿠룬타.

그들은 자신의 삶과 세계의 혼돈 속에서 태어난 괴물이다.

놈은 지독하게 외로웠을 거다.

의지와 상관없이 멸망하는 세계는 많은 것을 빼앗았을 것이며.

‘스스로도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겠지.’

난 파히루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가 어떤 희생을 하고 갈취당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그것 또한 멸망한 세계를 구하기 위한 발버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있었으니.

“버리긴 뭘 버려. 챙길 수 있는 건 챙겨야지.”

놈은 실패했다는 거다.

세계를 지키고 싶다면 버릴 건 버려라?

놈 또한 겪은 게 있으니 한 말이겠다만.

멸망한 세계의 망령이 남긴 푸념 따위.

‘내 알 바냐.’

내게는 의미가 없다.

나도 안다. 혼돈의 파편은 100층에 도전한 자이고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움직였던 이들이라는 것을.

그 과정 자체는 숭고할지 모른다.

지금은 세계를 파괴하는 괴물이지만.

실패자로서 조언은 해 줄 수 있을지언정 결코 정답은 내줄 수 없는 이들.

-꾸국.

주먹을 쥐었다.

놈들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더 나아가야 한다.

뚜둑.

몸을 풀자 메시지가 떠오른다.

[외로움의 파히루를 처치했습니다!]

[95층의 지배권을 확보합니다!]

“드디어 지배권을 얻었네.”

그냥 누워서 쉬고 싶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현자, 존 트레일러와 몇 명의 NPC를 더 불러와야 한다.

이곳에서 살게 될 테니 정돈 좀 해야 할 거고.

‘연합 사람들이 숭배자의 영혼석을 보낼 때까지 기다리기도 해야지.’

망할 시스템 퀘스트도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으아아. 질긴 녀석이었당.”

“인정.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짝.

냥펀과 하이파이브 했다.

녀석과 찌리리 요정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힘든 싸움이 되었을 거다.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며 입꼬리를 올리는 타이밍.

[막대한 혼돈 수치를 획득합니다!]

-스으으으으.

끈적이면서도 이질적인 기운이 몸에 스며들었다.

혼돈.

가뜩이나 많았던 혼돈이 더욱 커지며 존재감을 보인다.

알 수 없는 불안감.

또 다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혼돈 수치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자격 일부를 획득합니다.]

[히든 퀘스트 내용이 갱신됩니다!]

-츠즈즈즈즈.

[히든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히든 퀘스트]

-탑을 오르세요.

-퀘스트 생성 조건: 루나티스의 안배 퀘스트 클리어.

-???퀘스트는 탑 생성 후 한 번만 생성됩니다.

-히든 퀘스트 수행자에게는 제약이 걸립니다.

-숨겨진 등반가. (무한 코인 정보 누설 금지.)

-욕심 금물. (최대 세 명의 NPC의 계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알 수 없는 비밀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New!)

-보상(???)

한동안 갱신이 멈췄던 히든 퀘스트가 갱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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