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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94화 (694/740)

694화 투구

독극물로 이루어진 바다라.

“바다가 맞기는 한가.”

“그에에.”

모르겠다.

그냥 엄청 넓은 호수 같은 것일 수도 있어서.

모래사장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바다가 맞아 보이지만.

“스마일캡 그 녀석은 왜 이런 데에 사는 건지 모르겠네.”

개인적인 취향인가.

아니면 97층의 컨셉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건데.

“이거, 이상한 데 떨어진 기분이란 말이지.”

물론 90층대는 아무 데나 떨어지는 게 맞다.

안전지대도 아니고 필드니까.

중앙에 떨어지든 외곽으로 떨어지든 그건 개인의 운.

스마일캡은 배신자가 이곳으로 넘어오자마자 바로 잡았다.

그 말은 곧 그가 어디로 떨어질지 알고 있었다는 뜻인데.

‘직접 개입한 건가.’

자기 앞으로 떨어지도록 지배자의 권한을 이용한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난 일부러 이쪽으로 보냈다는 거고.”

어디까지나 예상이다.

그냥 별 관심이 없어서 놔뒀는데 운 나쁘게 이곳에 떨어졌을지도.

중요한 건 아니다.

-띠링.

-띠링.

지금도 멤버들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니까.

96층에 모였던 이들 대부분이 97층으로 올라왔다.

이준석은 좀 더 치료가 필요해서 남아 있지만.

그와 함께 움직이기 위해 연합 사람 몇 명도 남았고.

‘빅스타도 일부 남았지.’

97층부터는 죽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길드원 중 누가 밖으로 나가든 이곳에서 수집한 자료를 전달할 수 있게 자료를 정리하고 나누는 작업을 하고 있다 했다.

쁘찡연합을 제외하면 대형 길드와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집단.

상당히 체계적인 방식이었다.

아무튼.

[니머리 탈모]: 여기 사방에 시첸데?

[정수리 핥짝]: 내 쪽도. 어, 잠깐만. 퍼스트 몬스터 시체도 있다

[냥냥펀치]: 너흰 또 어디로 간 거냥!

메시지를 보아하니 멤버들도 사람 사는 곳에 떨어진 거 같지는 않았다.

97층 전체가 이 모양이라 보면 되겠군.

혹시나 싶어 섬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다 쓰러져 가는 집 하나.

해변가에 묻혀 있는 돌조각 하나.

인어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거?

워낙 대충 깎아 만든 돌 인형이라 잘 모르겠다.

여기 더 남아 있을 필요는 없고.

작게 혀를 차며 바다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수영 좀 하겠네.”

저런 곳에서 헤엄치긴 싫었는데.

후우. 작게 숨을 내뱉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보랏빛과 청록빛이 섞인 독극물 바다.

올라오는 악취와 독소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독 내성(SSS) Lv.3]

[저주 내성(SSS) Lv.2]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고.

‘물속도 개판이군.’

[수중 시야(S) Lv.MAX]

[수중 호흡(S) Lv.MAX]

잠수까지 해 봤지만 물이 워낙 탁해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이 정도로 오염됐으면 해양 몬스터도 살아남기 힘들다.

그 증거로.

“그에에.”

“씨 서펀트도 그냥 죽었네.”

대형종에 해당하는 놈들도 떼죽음을 당했다.

죽은 지 좀 됐는지 가스가 차 몸이 빵빵하다.

괜히 건드렸다가 터지면 나만 손해니 옆으로 빙 둘러 갔다.

대략 1시간가량 헤엄쳤을까.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으니.

“이 필드, 해양 게이트가 많이 발생했군.”

해양 몬스터들이 집단으로 죽은 구역이 곳곳에 있다.

게이트가 터져 밖으로 나왔지만 살 만한 환경이 안 돼서 죽은 것.

이쯤 되면 누군가 일부러 해양을 오염시킨 게 아닌가 싶다.

지구였다면 시도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만 여긴 탑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과하지만.

‘난파선.’

반쯤 좌초된 배가 보인다.

위로 올라갔다.

방치된 지 시간이 좀 된 것 같기는 하지만 물건이 전부 삭지는 않았다.

식량과 옷감 등을 실은 선박.

선장실에서 항해 일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 일을 끝으로 선박 사업을 접는다.

-바다 그 깊은 곳에는 절망이 가득할지니!

-심해의 분노를 덮기 위해서는 더 끔찍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충분하지 않았다! 그자는 틀렸다!

-이런 짓은 괴물의 분노를 더욱 키울 뿐이다! 어리석은 것!

이거 외에도 자잘한 항해 기록이나 일기가 쓰여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독성 가스가 가득해서 종이도 상했고.

그래도 몇 가지 키워드는 찾았다.

“심해. 분노. 괴물. 그자.”

심해의 분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몬스터 같은 게 아닐까.

해양 게이트라든가.

끔찍한 것이라는 건 아마 독극물이지 싶고.

끼워 맞추기에 가까운 추측이기는 하다.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으니 상상력을 동원해 꾸미는 수밖에.

“쓸 만한 거나 뒤져 봐야지.”

일단 일기장을 아공간에 넣고 선박을 더 살펴보기로 했다.

30분가량 투자한 결과 몇 가지 물건을 찾았다.

항해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지도.

나침반.

워키토키? 통신 구슬 같은 거랑.

“오. 이거 쌍둥이 아티팩트 아닌가?”

“그에에.”

쌍둥이로 만들어진 아티팩트.

서로를 향해 방향을 알려 주는 물건이다.

쇠막대기 같이 생겼는데 가만히 쥐고 있으니 한 방향으로 기운다.

그 방향과 지도에 기록된 항해 경로를 대조하니 얼추 맞다.

지도의 축척을 봤을 때 목적지와의 거리는.

“대충 400km.”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다.

가깝지는 않지만 아예 방향성이 없던 것과 비교하면 양반이지.

이걸 발견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진짜 망망대해에서 헤맬 뻔했잖아.

그럼 출발하자.

“대충 시속 100km로 가면 4시간 컷이라는 거 아니야.”

파악.

갑판을 차고 위로 올랐다.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착용합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를 착용합니다!]

양쪽으로 뻗어 나온 날개를 펄럭였다.

신성력과 마기가 소모되기는 하지만 이만한 게 없다.

보통은 공중전이나 상성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쓰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지.”

-콰아아아아앙!

빠르게 하늘을 나는 동시에 파이어 밤을 터트려 추진력을 더했다.

봐 보자.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지.

* * *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은 의외로 힘든 일이다.

힘이 드는 걸 제외하더라도 방향을 알려 줄 이정표가 없으니까.

그나마 쌍둥이 아티팩트로 대략적인 방향이나마 안다는 게 다행.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눈에 보이는 섬에서 종종 쉬었는데.

“여기에도 있네.”

들렀던 섬마다 공통점이 있다.

내가 맨 처음 떨어진 곳에도 있었던 돌 인형.

섬마다 있는 걸 보니, 유행하던 물건 아니면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종의 토테미즘이라든가.

아니면 무언가를 상징하는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약속된 미래의 신자에게 자비를

-범람의 신의 종

어떤 것에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것과.

“혼돈이 깃든 물건이라.”

탑에서도 보기 힘든 혼돈이 깃든 돌 인형도 있다는 것.

일단 챙겼다.

뭔가 단서가 될 수도 있거니와.

“귀한 재료거든.”

“그헤헤.”

릴카도 구하기 힘든 물건 아니던가.

이거야말로 개꿀이지.

안 그래도 99층에 있는 놈 상대하려면 그런 물건들이 필요했는데.

나야 혼돈검이 있지만 다른 멤버들은 아니라서.

“그러고 보니 핥짝이가 퍼스트 몬스터 시체를 봤댔지.”

모든 퍼스트 몬스터가 그런 건 아니지만 혼돈을 품고 있는 개체가 있다.

놈들의 주인인 에이션트 몬스터는 말할 것도 없고.

특이 게이트도 있는 듯하니 놈들 부산물도 좀 얻어야겠다.

[카메라(S) Lv.MAX]

찰칵.

돌 인형을 찍어서 멤버들에게 전했다.

[쁘띠공듀]: 요기에 혼돈 깃든 물건들 있는데 챙겨 놓으세욧! 재료로 쓰게!

[쁘띠공듀]: 아 글구, 요렇게 찌그러진 탈모맨같이 생긴 물건 보셨나용?

[정수리 핥짝]: ㅋㅋㅋㅋㅋㅋㅋ탈모맨이랑 똑 닮았네ㅋㅋㅋㅋ

[냥냥펀치]: 0.8 탈모맨 정도 되는 듯!

[니머리 탈모]: 어… 뭐지? 나 기분 나빠해도 되는 거지? 맞지?

[정수리 핥짝]: 뭐래. 칭찬하고 있는데

[냥냥펀치]: 우리의 순수한 발언을 왜곡하는 거임?

[니머리 탈모]: 아닌데? 어? 나 바보 아니야

[쁘띠공듀]: 그럼용. 아주 스마트하져!

[냥냥펀치]: 우웅. 그래 우리 탈모 바보 아냥… 으응

[정수리 핥짝]: 과학적으로 머리털 없으면 열기 배출 잘돼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까?

탈모맨 연전연패!

다들 커뮤니티 하는 걸 보아하니 위험한 상황에 놓이진 않은 것 같고.

이제 내륙으로 들어갈 차례다.

저 멀리 보이는 대륙.

뭐, 진짜 대륙인지 커다란 섬인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우우우웅.

쌍둥이 아티팩트의 진동이 커진 걸 보아하니 목적지에 가까워진 건 분명했다.

시야에 들어온 이상 이동은 편했다.

[무지개다리(S)]

-촤아아아악!

편하고 빠른 이동 수단이 있으니까.

내륙에 가까워질수록 역했던 공기가 맑아진다.

바다가 이 모양인데 어떻게 살 수 있나 했더니만.

“결계를 쳐 놨군.”

대규모 정화 마법 장벽을 설치해 뒀다.

땅과 지하까지 오염되지는 않도록.

저걸 유지하는 데만 상당한 비용이 들지 않을까.

뭐, 나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타박.

땅에 발을 내디뎠다.

모래보다는 바위와 돌멩이가 많은 곳.

확실히 이곳에는 사람이 사는 게 맞다.

희미하지만 느껴지는 장작 타는 냄새.

해는 이미 지고 있었고 뭔가를 굽는 듯한 노릇한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야영? 아니면 집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씩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해안가를 지나자 키 높은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짐승이 돌아다니며 만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진입하니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내 말이 맞지? 이게 돈이 된다니까?”

“아 씨. 더럽게. 내가 먹으면서 떠들지 말랬지.”

“거, 깐깐하기는. 오늘 이만큼 벌었으면 좀 봐주라.”

“것보다 넌 좀 씻어야겠군. 분뇨 냄새가 난다.”

“아니, 내가 더러운 역할 했으니까 그렇지!”

떠들썩한 분위기.

오랫동안 함께 움직인 이들인가.

서로 투닥거리기는 하지만 사이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은신해 나무 사이로 놈들을 지켜봤다.

인원은 총 3명.

남자 2명에 여자 1명.

말린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술에다가 음료를 섞었는지 미묘한 알코올 냄새도 나고.

모험가?

어쩌면 그냥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용병이나 노동자일 수도 있다.

97층에 있는 만큼 일반인은 아니겠지만.

오면서 확인한 몬스터의 흔적만 여러 개다.

몬스터 따위는 충분히 상대할 능력이 있으니 노숙을 하는 거겠지.

‘그건 그건데.’

눈을 찌푸렸다.

-빠악.

돌멩이를 차 놈들의 모닥불을 터트렸다.

거기에 워터로 완전히 꺼트렸고.

“뭐야! 어떤 새끼야!”

“닥치고 무기나 들어, 등신아!”

“으으음!”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각자의 무기를 뽑는 놈들.

전투에 익숙한 놈들이다.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휘됩니다.]

[밤이 찾아옵니다.]

[어스월(S) Lv.MAX]

-쿠드드드득.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방을 에워싼 채 앞으로 다가갔다.

“이봐.”

놈들 또한 야간 시야 정도는 가지고 있는지 곧장 내게 무기를 겨눈다.

검, 창, 한 명은 마법사인가?

석궁과 스태프를 쥐고 있다.

뚜렷한 살기.

정돈된 자세만 봐도 평범한 놈들은 아니었으나.

“그거 어디서 났지?”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모닥불 근처에 놔둔 놈들의 짐.

그 옆에 놓인 물건.

난 그거에 볼일이 있었으니까.

“그 물건 주인은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하는 게 좋을 거야.”

투구.

내가 잘 아는 사람의 투구였다.

그 주변에 있는 굳은 용암만 봐도 안다.

마그마 요정.

그녀의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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