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잊어라(1)
[한국의 오타니? 중앙고 최수원 노히트 노런 그리고 1홈런 결승타]
─k109910: 고2가 노히트에 홈런? 미쳤네. 진짜 한국판 오타니 등장한 건가?
─무적엘리츠: 기자 설레발 좀 보소 ㅋㅋㅋ 고딩경기에 노히트랑 홈런 나왔다고 오타니? ㅋㅋㅋ
─거포이주혁: 이주혁 오늘 4타석 4타수 4홈런 장전 중
─삼전96층: 노히트면 대단한 거 아닌가? 게다가 1:0인데 홈런이면 야구 혼자 한 것 같은데. 심지어 노히트도 1회 초에 데드볼 하나 나온 거 제외하면 거의 퍼펙트잖아.
─무적엘리츠: 쯧, 저렇게 보는 눈이 없으니 삼전을 96층에 물리지. 아재요. 고딩야구는 노히트 3, 4년에 한 번씩은 꼭 나옵니다. 프로랑 달라요.
─마수원: @무적엘리츠 야구도 모르는 게 야구 아는 척하기는. 고교야구 역대 노히트 딱 22번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상대가 경하고였음. 장담하는데 24년, 25년 경하고는 84년, 85년 천남고 이상의 전력이었다. 지난 2년 동안 경하고는 고교야구 역사상 최강의 팀이었어.
─무적엘리츠: @마수원 고교야구 1946년부터 치면 80년? 80나누기22는?? ㅋㅋㅋㅋㅋ 게다가 그 노히트했던 22명의 선수 중에서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 몇 명? ㅋㅋㅋㅋㅋ
─대전의아들최수원: 내년 피닉스의 비상이 기대되는군요.
─8888577: 올해 꼴찌는 마린스. 최수원도 마린스.
─886899: 니네가 작년에 꼴찌 했으니까 올해는 우리 차례지.
─자강두병: 부럽다······. 근데 니들 아이디 이제 슬슬 새로 바꿔야하지 않음? 둘 다 최근 성적 71078910, 91010109잖아.
─8888577: 응 내년에 정병철 오면 마린스 우승. 그리고 최수원으로 왕조 건설.
─886899: 응 내년에 조규찬 오면 피닉스 우승. 그리고 최수원으로 왕조 시작.
─안타왕이치로: 킁킁, 크보 팬들 행복 회로 타는 냄새 오지고요. 상식적으로 최수원이 크보를 가겠냐?
고작 고등학교 선수의 노히트 노런이었다.
바로 직전 한민준의 노히트는 물론이거니와 재작년에도 한 차례 노히트가 있었지만, 그 기사들에 달린 댓글이라고는 지금까지 서른 개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최수원의 노히트는 그 반응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준결승이 있기 하루 전 날 저녁에 방영을 시작한 교육 방송의 다큐멘터리가 저 반응에 매우 큰 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이었다.
본래 방송국의 계획은 한 편짜리 다큐로 최종 성적까지 나온 이후를 방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경아는 인터뷰를 진행하면 할수록 이건 그렇게 끝낼만한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스포츠선수의 미래는 모른다. KBO를 평정하고 MLB에 갈 것 같던 선수가 부상으로 쓸쓸하게 커리어를 마감하는 경우도 있었고, MLB는 엄두도 못낼 것 같던 선수가 KBO를 평정하고 꾸역꾸역 MLB에서 생존하는 일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경아는 최수원이라는 선수가 더 높은 곳까지 갈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느꼈다. 결국 상부와의 조율을 끝내고 일주일 텀을 두고 이부작으로 다큐를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현재 그녀의 선택은 대박으로 돌아왔다. 노히트라니. 게다가 저 화제성을 좀 보라. 그녀는 어쩌면 고등학생의 기사에 꾸역꾸역 댓글을 달러 나타난 저 사람들도 최경아 자신과 비슷한 예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쏜 살처럼 흘러갔다.
물론 그 기간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중앙고의 선수들을 따라다녔다. 분위기는 조금 묘했다. 승리는 항상 옳다. 하지만 과연 경하고와의 경기에서 얻은 승리가 옳았던가를 묻는다면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스포츠계의 금언 가운데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중앙고의 학생들 가운데 그 말을 자신 있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과연 준결승전에서 중앙고 야구부는 최수원이라는 개인보다 위대했던가.
-뻐엉!!
“수고하셨습니다.”
“야, 몇 개만 더해보자. 감 올 것 같은데.”
“선배······.”
한참 동안 조유진을 바라보던 안병영이 자신의 짧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 기분이 진짜.”
적어도 준결승만 따졌을 때 안병영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점수를 못 낸 것은 타자들이었고 최수원이 105개를 넘어 113개의 공을 던진 것은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이니까.
‘지랄······.’
안병영이 고개를 저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 사내는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하지만 성공적이었던 그 경기가 너무 괴로웠다.
해내고 싶었다. 준결승전의 최수원이 보여준 것과 같은 그런 무대를.
“야, 진짜 딱 하나만.”
“선배 그러면 진짜 마지막입니다.”
“아, 새끼. 잔소리하기는. 누가 보면 네가 선밴 줄 알겠다.”
공을 움켜쥐었다.
커다란 와인드업.
팽팽하게 당겨진 몸의 중심을 뒤로 하고 굳이 최고점에서 끌어모은다고 느끼게 하지 않고 한순간에 쾅!!!
그리고 결승전의 아침이 밝았다.
***
서울 브레이브스가 목동 구장을 떠난 이후 목동 구장에서 열리는 야구 시합에 이만한 관중이 모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프로야구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브레이브스의 평균 관중 수를 생각해보면 오늘 경기장에 모인 인원수는 어쩌면 브레이브스의 평균 관중 수 이상일지도 몰랐다.
“저기, 저기 중앙고 애들이야.”
“와, TV로 볼 땐 되게 앙상해 보였는데 실제로 보니까 덩치가 제법 좋은데?”
“쟤가 걔다. 최수원. 와, 쟨 진짜 비율이 미쳤네.”
교육 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은 2.7%
이 프로그램의 작년 최대 시청률이 3.4%이긴 했지만 그건 3부작 다큐의 3편 시청률이었음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시청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많은 사람의 숫자는 납득이 되지 않는 숫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튜브.
현대인에게는 어쩌면 TV보다 더 강력할지 모르는 플랫폼.
교육 방송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는 생각보다 너튜브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알고리즘의 신이 그들을 도왔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필연인지도 몰랐다. 최근 최수원이라는 이름은 알음알음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있었고 그만큼 그를 검색해보는 프로야구 팬들의 숫자도 늘어가는 추세였으니까.
어쨌거나 그 결과 목동 구장의 10,600개의 좌석 가운데 무려 6,500개의 좌석에 사람이 꽉 들어찼다. KBSA는 늘어난 입장료 수익에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마운드의 백하민이 웃었다.
전반기 왕중왕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가득 찬 경기장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긴장으로 심장이 더 크게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그것조차도 반가웠다.
이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였다.
백하민의 공이 날카롭게 날아가 꽂혔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그의 소년미 넘치는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그득했다.
7월 말의 더운 날씨는 고작 공 열 개를 던졌음에도 그의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했다. 잠시 모자를 벗어 이마를 훔쳤다.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곱슬머리가 그의 손길을 따라 찰랑였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찾아왔던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중앙고 소년들의 가슴 두근거리는 도전을, 혹은 투타 양면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보이는 초고교급 선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백하민의 피칭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강제로 자신에게 끌어 모았다.
“와, 쟤만 혼자 그림체가 다르네.”
“그러게? 왜 혼자 순정만화야?”
야구선수의 여섯 번째 툴인 외모.
사실 불합리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도 그러지 않았나. 아름다움은 선한 것이라고. 그렇듯 대부분 사람은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그리고 분명 마운드에서 150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이 소년에게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느새인가 자신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고 싶게 만들 만큼 말이다.
세 번째.
타석에 최수원이 섰다.
한 순간에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변했다. 단순히 최수원이라는 이름값 때문이 아니었다. 백하민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이라는 여섯 번째 툴이 있었다면, 그것은 결은 다를지언정 최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190을 넘어가는 큰 키. 그리고 그 큰 키에 어울리는 길쭉한 팔다리. 백하민에게 고정됐던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새 최수원에게 넘어갔다.
최수원이 왼손으로 헬멧을 고쳐 쓰고 머리를 탁탁 두 번 두들겼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배트를 두 번 강하게 꾹 쥐고 홈플레이트를 한번 톡 두들긴 뒤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것은 너튜브 하이라이트 영상에 나온 그대로였다.
백하민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망울로 덕아웃을 한 번 바라봤다.
천남고의 감독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뻐엉!!
절대 칠 수 없는 공.
어떻게 해도 방망이가 닿지 않는 저 먼 곳을 야구공이 지나갔다.
고의사구.
최수원이 방망이를 내던지고 1루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세 걸음 반.
살짝 낮춘 자세로 투수를 위협했다.
백하민이 날카롭게 최수원을 한 번 바라봤다.
최수원 몸의 무게 중심이 살짝 다시 일루로 넘어간 그때. 백하민이 번개처럼 세트 포지션에서 공을 던졌다.
와인드업 포지션보다는 못한 위력. 하지만 타이밍은 한 박자 빨랐다.
타석의 조규혁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높게 솟은 타구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나 도무지 뻗어나가지 못했다. 거의 70도에 가까운 타구각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아무리 힘이 장사라고 해도 내야를 벗어날 방도가 없다.
마운드에서 몇 걸음을 옮긴 백하민이 멋들어지게 공을 잡아냈다.
“아웃!!”
1회 말. 천남고의 공격이 이어졌다.
“응? 뭐야? 우리 수원이는 어디 가고 웬 멍게같이 생긴 애가 올라오는 거야?”
“그러게? 뭐지? 수원이 어디 아픈가?”
“아니 근데 아까 타자로는 잘 나왔잖아.”
“글쎄, 이틀 전에 공 그렇게 던졌으니 감독이 휴식일 준 거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결승전인데?”
“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연투를 시킬 수 있겠냐? 무슨 80년대에 한국시리즈도 아니고.”
고교야구 의무 휴식일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프로야구를 보는 팬들도 고교야구의 규칙을 모르는 경우는 많았으니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규칙을 아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내심 오늘 최수원의 등판을 기대하며 찾아왔던 관중들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운드에 선 안병영 역시 그런 그들의 감정을 확실하게 느꼈다.
최수원이 평가한 그대로 멘탈리티 적으로 봤을 때 안병영은 비범한 구석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만한 사람 앞에서 갑자기 마운드에 섰을 때 정신이 새하얗게 질리기에 십상이다.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저만한 사람들이 실망을 표시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안병영은 지금 이 상황에서 오히려 의지를 불태웠다. 저들의 실망을 감탄으로 돌려놓겠노라고.
-딱!!
물론 의지를 불태운다고 해서 모든 일이 이뤄진다면 세상에 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병영의 피칭 역시 그와 같았다.
중앙고의 이루수 임지민이 빠르게 타구를 쫓았다. 제법 어려운 타구였다. 심지어 그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그의 신경을 갉아 먹었다. 원바운드된 타구가 글러브를 피해갔다.
노아웃 주자 1루.
안병영의 뜨거운 시선이 임지민을 향했다.
-꿀꺽.
임지민의 등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위 탓일까? 아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대체 얼마나 심한 말을 할까? 안병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지민아. 우리 제발 잘 좀 하자. 어? 이 형이 이렇게 부탁한다.”
안병영이 돌아섰다.
끝?
에이, 설마.
하지만 정말로 끝이었다.
그 두 마디를 내뱉은 안병영이 다시 마운드에 섰다. 임지민이 느끼기에 이건 거의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에 비견될만한 기적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와 같은 기적이 오직 안병영의 성품에만 한정됐다는 점이었다.
안병영이 던지는 공은 여전히 안병영이 던지는 공이었다. 134km/h의 속구를 기반으로 상당히 좋은 커브와 제법 괜찮은 슬라이더.
그리고 그 모든 레퍼토리는 같은 권역 팀인 천남고에는 너무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전광판에 쓰인 천남고의 숫자가 차근차근 올라갔다.
반면 중앙고의 숫자는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3회 투 아웃 주자 없는 상황.
최수원의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