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67화 (67/305)

67화. 결점(4)

워싱턴 형제의 동생 잭 워싱턴은 한국에서 온 두 명의 투수를 보고 크게 놀랐다.

“맙소사······.”

그래서 그 놀람이 긍정적인 의미였는지를 묻는다면 아쉽게도 그쪽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더 가까웠다.

“6-2에 183lb? 그리고 5-9에 163lb?”

센티와 킬로그램으로 표기하자면 190에 83킬로. 180에 74킬로다.

“좀 부실한 느낌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아, 그게 아무래도 한여름에 땡볕에서 이주일정도 연속해서 경기를 뛰다 보니까······.”

최수원이 자기도 모르게 변명을 했다. 물론 그 와중에 잭 워싱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백하민은 연신 최수원의 옆구리를 툭툭 찌르며 ‘뭐 문제 있어? 병이라도 발견된 거야? 근데 지금 체중이랑 키만 쟀는데 그런 게 가능한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면 대회 전에는 어땠습니까?”

“어음, 한 85킬로까진 찍었던 것 같은데요.”

“85kg면 187lb? 일단 증량부터 합시다. 식단 짜드릴 테니까 그대로 드세요. 아, 그리고 백, 백은 평소 체중이 얼마나 나갔습니까?”

“하민 형, 형 평소에 몸무게가 얼마나 나갔었냐고 물어보는데요? 이번 대회 이전 기준으로요.”

“몸무게? 평소에는 77킬로 정도?”

잭 워싱턴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고작 이 주짜리 대회에 7파운드나 빠졌다고요? 피칭 기록 보니까 엄청 오래 던진 날도 없었잖아요.”

“하민이 형 평소 체중도 엄청 잘 먹어서 유지하던 거라고 그러네요. 근데 여기 음식은 입맛에도 좀 안 맞고 더위를 먹었는지 소화가 잘 안 돼서 컨디션 조절하느라 억지로 먹지는 않았다고······.”

“맙소사,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면 코치나 감독이 특식이라도 챙겨 먹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명색의 국가대표였는데? 이거 안 되겠습니다. 식단 짜드릴 테니 그거 꼬박꼬박 챙겨 먹고 추가로 더 드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체중에 관해서는 두 사람 역시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만큼 별다른 이야기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형은 두 사람 모두 아주 좋습니다. 윙스팬이 6-5랑 6-3. 특히 백은 손가락 길이까지 아주 좋군요.”

윙스팬은 양팔을 좌우로 벌렸을 때의 길이를 이야기한다. 대부분 사람의 경우 키와 윙스팬은 비슷하다. 하지만 몇몇 경우 윙스팬이 키보다 긴데, 후천적인 영향도 조금은 있지만 아무래도 유전이나 인종과 같은 선천적인 부분이 더 크다.

“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 팔이 길어서 좋데요.”

“그래?”

수원의 팔은 키보다 9센티 정도, 백하민의 경우는 11센티 정도 더 길었다. NBA 편차의 평균치가 약 5센티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사람 모두 키에 비해 팔이 굉장히 긴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특히 하민의 경우 손가락 역시 굉장히 길었는데 잭 워싱턴은 특히 그 부분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좌우 불균형이 나이에 비하면 조금 심한 편이군요. 뭐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편측성 운동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부상 위험도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범위까지는 맞춰주는 편이 좋겠지요. 프로에 가서는 경기 숫자도 많아지고 트레이닝을 할 시간은 줄어드니 이 불균형이 더 심화할 확률이 높거든요. 이 부분에 관련된 운동법은 단기간에 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알려드릴 테니 저희 센터에서의 트레이닝이 끝난 이후에도 꾸준히 해주도록 하세요.”

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잭 워싱턴이 지금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몰랐지만, 수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백하민 역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원이 NBM 센터에서 기대한 것은 피칭의 스킬에 관한 코칭이었지 피지컬 쪽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의 몸은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사람도 매년 그 상태가 조금씩 다르죠. 저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상적인 피칭에 선수의 몸을 끼어맞추는 것이 아닌, 그 선수의 몸에 가장 이상적인 폼이 어떤 형태인가를 찾는 쪽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상 없이 선수가 가진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저희의 목표인 셈이죠.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선수들이 자기가 타고 태어난 피지컬적인 포텐셜을 최대한 발휘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거든요.”

한참 동안 잭 워싱턴의 이야기가 이어지던 그때였다.

-똑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

그리고 대답도 하기 전에 벌컥 문이 열렸다. 그 아무 의미 없는 노크의 주인공은 워싱턴 형제의 첫째인 윌리엄 워싱턴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일단은 신체 사이즈만 재기로 했잖아.”

상기된 얼굴.

그들이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돈 벌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뿐이라고 강변하던 윌리엄 워싱턴은 그것이 순 거짓말이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자자, 일단 기본적인 피칭 모션을 체크해보겠습니다. 이건 모션 센서랑 근전도 센서, 그리고 근육 반력 센서인데 뭐, 이런 기술적인 부분은 굳이 알아둘 필요 없고 나중에 결과 값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상의를 탈의하고 몸에 각종 센서를 부착한 채 글러브와 공을 들고 간이 마운드 위에 올랐다.

몇 번의 가벼운 몸풀기.

윌리엄 워싱턴이 그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이제 시작해보죠.”

전력을 다한 속구 열 개.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슬라이더 다섯 개와 커브 다섯 개. 백하민의 경우 속구와 슬라이더 고속슬라이더 커브를 보여주었다.

“수고했습니다. 그러면 잭, 너는 가서 마무리 운동 좀 도와주고 하는 김에 운동능력도 잠깐 체크 좀 해줘 봐.”

결과는 바로 나왔다.

남은 것은 그것을 해석해야 하는 윌리엄의 몫이었다.

최수원과 백하민이 잭 워싱턴을 따라 익숙한 동작 몇 가지. 그리고 생소한 동작 몇 가지를 수행했다.

그리고 윌리엄이 처음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노크와 함께 등장했다.

***

“네? 귀국을 하지 않았다고요?”

인천 공항.

기자의 숫자는 제법 많았다. 기껏해야 U-18. 심지어 그것도 우승을 한 것도 아님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숫자였다.

그리고 그 이례적인 숫자의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최수원이었다.

마린스와 피닉스.

그 두 팀의 승부는 팽팽했다. 1차전에서 승리 당했던 마린스는 2차전에서 패배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18연패라는 기록을 이미 가지고 있는 피닉스가 그것을 갱신하여 전입미답의 19연패로 나가는 것을 방관할만큼 호락호락한 팀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날, 피닉스 분명 약했지만, 마린스는 한층 더 약했다.

1승 1패.

피닉스의 위대한 도전이 18연패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피닉스 팬들이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그들의 위대한 도전이 종전과 동일한 18연패에서 끝났다는 사실보다 그들의 승률이 마린스와 동률이 됐다는 부분이었다.

승률 0.303. 33승 76패 1무.

그리고 이러한 승률 2할을 노리는 두 팀의 치열한 승부의 최대 수혜자는 역시 최수원이었다. 이제는 주류 언론에서 두 팀의 위대한 도전과 더불어 ‘최수원 리그’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최수원 선수와 백하민 선수가 뉴욕의 피칭랩에서 연수를 받기로 했다고요?”

그런 상황에서 이건 정말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안 그래도 특타니 혹사니 하는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팀에서 가장 크게 활약했던 선수가 함께 귀국하는 대신 미국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도 심지어 이번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마린스에 드래프트 된 백하민과 함께?

“야, 백하민 지금 마린스랑 계약 했어?”

“아뇨, 아직일 겁니다. 드래프트 직후에 이번 대회가 있었던 터라······.”

“다른 애들은? 이번 대회에 1라운드들 대거 참석했잖아. 걔들 중에 계약 아직 안 한 애 있어?”

“그게 그러니까······. 조규찬!! 조규찬이 아직 계약을 안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조규찬 빼고는 다 했다는 소리야?”

“네.”

단순히 전체 1번과 2번이라서 조건을 조율하느라 아직인 걸까?

아니면 지금 최수원과 미국에 남은 것이 단순한 피칭랩 연수가 아닌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게다가 지금 이렇게 혹사와 관련된 문제로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이번 결승전 패배에 면죄부가 쥐어질만한 선수 둘이 쏙 빠졌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 무엇일까?

대중은 본래 가십을 사랑한다.

그리고 대부분 언론에게 대중의 사랑과 관심은 목표 그 자체다.

각종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다.

백하민과 최수원이 미국 쪽 팀과 접촉을 하고 있다는 기사부터 U-18의 다른 선수들과 불화가 있었다는 이야기. 사실 마린스에서 백하민과 계약이 거의 다 체결된 상황에서 미국 쪽 연수를 시켜줬고, 거기에 내년에 1라운드에 뽑힐 최수원까지 함께 한다는 이야기까지.

고작 하루 만에 쏟아진 기사라고는 믿기 힘든 양의 트래픽이었다.

2할이라는 위대한 기록에 도전하는 두 팀이 있는 상황이었다. 기본적으로 최수원 리그, 최수원 리그 하는 말이 있긴 했지만, 마린스와 피닉스를 제외한다면 거기서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기사의 홍수 덕분에 최소한 프로 야구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라면 ‘최수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를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그런 기사를 읽은 이들 대부분은 대체 최수원이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이기에 이렇게 난리인가를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KBO의 팬이라고 해서 모두가 야구를 깊숙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OPS니 WAR이니 하는 것만 제대로 알아도 야구에 대해 제법 많이 아는 팬이고, IsoP라느니 wOBA라느니 wRAA같은 말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수백 명의 팬들 가운데 한둘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러한 숫자가 아닌 그저 호쾌하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자와 시원하게 공을 뿌리는 투수. 최선을 다해 달리는 주자와 신이 들린 것 같은 놀라운 수비였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최수원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선수였다.

그에 관한 자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너튜브에는 하이라이트 영상까지 존재했다. 고교리그와 왕중왕전부터 최근 WBSC U-18 Baseball World Cup 경기들까지 최수원의 활약만을 모아 둔 영상이었다.

-딱!!!

몸쪽 공이 담장을 넘어갔다.

-딱!!!

바깥쪽 공이 담장을 넘어갔다.

-딱!!!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이 담장을 넘어갔다.

-딱!!!

원바운드된 공이 외야 깊숙한 곳까지 날아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팬들은 충분히 최수원이라는 선수에게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154km/h의 강속구가 시원하게 루킹 삼진을 뽑아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터무니없는 덩치의 미국 타자가 156km/h의 강속구에 헛스윙 삼진을 기록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타석을 내려갔다.

최수원이라는 이름 석 자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너튜브 인기 급상승 영상에 그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올라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거 보십쇼. 제가 이거 대박이라고 했잖습니까.”

“어휴, 경아PD. 나도 너 눈 좋은 거 잘 알지. 그래서 나도 어 2부작으로 팍팍 밀어줬잖아. 안 그래?”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채널의 최경아가 국장에게 슬쩍 다가갔다.

“그래서 말인데요 국장님. 우리 이거 후속작 하나 더 찍으시죠.”

“어? 후속작? 하지만 이제 고교 대회는 당분간 다 끝난 거 아닌가?”

“어휴, 누가 그거 찍잡니까? 사실 지금 인기 이거 중앙고 야구부의 인기가 아니잖아요. 조회수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수원. 얘 하이라이트 클립이 특히 조회수가 대박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지금 최수원이 어딨습니까. 미국에서 피칭랩에서 있는 거 아닙니까.”

“경아야, 너 설마······. 에이. 아니지? 야, 알잖아. 요즘 우리 제작비 사정.”

“잘 알죠. 그래서 제가 우리 국장님 다음번 예산 타낼 때 큰소리 빵빵 치게 만들어 드리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뉴욕 보내주세요. 촬영감독 둘, 아니 셋만 붙여서요.”

“세······, 셋이나?”

“네. 셋이요.”

항공권.

체류비.

뉴욕의 살인적 물가.

교육방송 다큐국 국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잭 워싱턴은 또 다시 크게 놀랐다.

이번에는 그들의 키와 체중을 쟀을 때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운동 능력이······.”

순발력과 협응력. 그리고 동체시력.

잭 워싱턴이 생각했다.

‘이거 아무래도 얜 피칭 랩을 찾아올 게 아니라, 그냥 지금이라도 외야 수비를 익혀서 외야수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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