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올스타전(4)
“와, 개 미쳤네.”
“뭐가?”
“이번 올스타전.”
“왜? 또 누가 멍청한 옷이라도 입고 나왔어?”
“그거야 매년 하는 거고. 이번엔 진짜 대박이야.”
“대체 뭐길래 그러는 거야.”
“예고 홈런.”
“예고 홈런?”
***
[첫 번째 타석에서 임광형 선수를 상대로 멋지게 예고 홈런을 성공시킨 최수원 선수. 두 번째 타석. 조창혁 선수를 상대로도 또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와, 제가 정말 살아 생전 KBO에서 예고 홈런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이게 그러니까 루스 선수가 했던 퍼포먼스죠?]
[네, Called Shot. 그러니까 예고 홈런에 관해서는 실제로 했다. 안 했다부터 해서 불치병에 걸린 아이를 위해 했다. 상대 투수를 도발하기 위해 했다 등등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튼 베이브 루스의 전설적인 일화 중 하나입니다. 다만 앞서 임광형 선수를 상대로 예고 홈런을 성공시켰는가. 뭐 이건 사실 정말 최수원 선수의 저 퍼포먼스가 홈런 예고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고. 사실 예고 홈런이라는 건 그 타석에서 홈런을 치겠다. 뭐 그런 게 아니라 예고하고 그대로 쳐야 그게 진짜 루스의 예고 홈런이거든요.]
조창혁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앞선 임광형이 어지간하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는 것과 달리 자신의 감정에 상당히 솔직한 타입이다. 개인적으로 포커페이스 쪽이 조금 더 껄끄러운 투수인 건 맞는데, 프로에서 투수해보니까 알겠더라. 포커페이스 유지하기 어려운 성격인데 그거 하겠다고 괜히 피칭에 힘 빼느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공에만 더 신경 쓰는 게 나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조창혁 역시 앞서 1회에 공을 던졌던 나와 마찬가지로 오늘 경기에서는 딱 1이닝만 던지면 끝난다. 충분히 몸을 끌어올렸고 전력으로 공을 뿌릴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나의 강력한 도발이 더해졌다.
초구.
그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공. 100마일에서 고작 0.1마일 정도 부족한 160.9km/h의 속구가 제법 예리하게 날아왔다.
구속과 구위로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공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딱!!!
치기 좋은 공이었다.
높게 치솟은 타구가 쭉쭉 뻗어나갔다. 앞서 임광형의 공은 솔직히 쳐내고도 좀 아리까리했다. 하지만 이번 공은 손에 느껴지는 감각에서 확신했다.
넘어간다.
나눔 올스타팀의 중견수인 라찬명이 이번에도 멍하니 타구를 바라봤다. 사실 이번 타구는 저 아저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홈런임을 예측할 수 있는 거대함이 있었다.
[좌중간!! 외야 관중석 최상단을 때리는 큼지막한 대형 홈런!! 최수원 올스타전 첫 줄장에 연타석 홈런을 기록합니다!! 박동식 위원님 어떻습니까? 이건 예고 홈런 인정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 인정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와······. 최수원 선수.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선수네요. 사실 전 방금 타격 순간에 이거 넘어가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네? 그게 무슨······. 누가 봐도 무조건 넘어가는 홈런성 타구였는데요.]
[아뇨, 담장 말고 경기장을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말입니다. 조금만 더 강했으면 이거 장외홈런이었어요.]
[하긴 조금만 더 강했으면 경기장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 게다가 최수원 선수 같은 경우 사직 구장에서도 장외 홈런 기록을 갖고 있거든요.]
[드림 올스타팀의 팀원들이 나와서 같이 좋아해 주고 있네요. 근데 멤버들이 이거 유니폼만 달랐지 마린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번 시즌 마린스의 돌풍이 그만큼 대단했다. 뭐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자, 경기 계속됩니다.]
***
3연타석 홈런.
지금까지 KBO 올스타전에서 한 경기에 3홈런이 나온 경기는 2000년의 딱 한 경기뿐이었다. 게다가 그 올스타전의 경우 1, 2차전으로 나눠서 경기를 치렀던 탓에 한 경기, 한 경기에 참여하는 투수들의 집중도나 이름값이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심지어 예고 홈런이었다.
-딱!!!
세 번째 타석.
또다시 초구를 때려내는 강력한 홈런포.
경기는 여전히 드림 올스타가 9:5로 지고 있었지만, 오늘 경기의 MVP는 최수원으로 확정되는 홈런포였다.
“야······. 나 이거 슬슬 미래가 그려지는데?”
“무슨 미래?”
“4연타석 예고 홈런.”
“에이, 설마······.”
“설마는 무슨. 너 상식적으로 3연타석 예고 홈런은 가능했겠냐?”
“아니, 무슨 투수들이 죄다 병신도 아니고. 홈런 예고를 하는데 좋은 공을 왜 주는 거야 대체? 당연히 존나 빠지는 공 던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거야 조창혁은 미친놈이잖아. 그리고 최으뜸은 병신 맞지. 제구력 병신······.”
사실 이번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패배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긴 했다. 나눔 올스타의 경우 다섯 개 팀에서 매우 균등하게 선수들이 뽑혔다. 물론 그들이라고 전성기를 한참 지나 기량이 떨어진 선수나 이제 막 비상하기 시작한 유망주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림 올스타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마린스의 선수만 여덟 명.
그 가운데 투수는 딜튼 도일리 하나뿐이었으니 무려 일곱 명의 스타팅 타자가 마린스 멤버인 상황이다. 마린스가 현재 리그 1위를 달리는 팀이기는 했지만, 축구와 달리 야구는 팀원간의 협업보다는 개인의 기량이 더 중요한 스포츠였다. 각 팀의 우수한 자원들만 모아둔 나눔 올스타보다 그 수준이 높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홈런을 뻥뻥 때려대는 최수원의 앞에 정지운과 조유진이라는 출루율 0의 타자들까지 있는 판국이었다.
[아, 타자 교체. 노형욱 선수를 대신해서 백강호, 백강호 선수가 올라옵니다.]
[이번 올스타전에 지명타자 후보로 올라왔다가 최수원 선수에게 밀려 투표로는 뽑히지 못했던 백강호 선수. 최근에는 3루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3루 수비가 일단 가능은 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게 덕아웃 구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아주 강력하게.
-딱!!!
[볼카운트 1-1. 3구째!! 잘 잡아 당긴 타구!!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넘어!! 갔습니다!!]
[백강호 선수의 백투백 홈런!! 점수는 다시 9:6. 드림 올스타가 1점을 따라붙습니다.]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은 백강호가 덕아웃으로 빠르게 돌아와 최수원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이제 2개 남았다.”
“네?”
열흘 전.
마린스가 리그 1위로 올라선 이후 백강호는 최수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딱 끊었다. 그나마 그보다 우위를 접하고 있던 것이 팀 성적뿐이었는데 그것마저 뒤지게 된 탓이었다.
백강호는 자신의 말을 절반 정도 지켰다.
5회에 교체 출장하여 남은 4이닝.
그는 타석에 두 번 더 출장하여 한 개의 홈런을 추가했다. 어지간한 올스타전 MVP급 활약을 보인 셈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KBO 올스타전에서 멀티홈런을 기록하고 MVP를 획득하지 못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백강호는 그냥 매우 운이 없었던 셈이다.
-딱!!!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올스타전에서 최고의 투수들을 상대로 4타석 연속으로 홈런을 칠 수 있을까?
[최수원!! 6구째 타격!! 넘어가나요? 아!! 넘어 갔습니다!! 4타석 연속 홈런!! 드림 올스타의 최수원 선수가 4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박동식 위원님의 기준대로면 예고 홈런은 아니네요.]
[아니. 지금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맙소사. 4연타석 홈런!! 4연타석 홈런이에요!! 그것도 지금 엘리츠의 마무리 문찬영을 상대로요. 문찬영 선수 이번 시즌 평자책이 1.56에 WHIP이 0.95입니다.]
그리고 최수원이 그것을 해냈다.
하지만 의외로 4연타석 홈런을 해내는 순간에도 경기장에 가득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역시 그냥 올 게 왔다라는 분위기에 더 가까웠다.
“역시······. 저 미친놈 상대로 볼넷 안주고 무조건 정면승부 하면 리그 최고의 선발이건 리그 최고의 마무리건 다 아작나는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4연타석 홈런은 좀 선 넘은 거 아니냐?”
“선 넘은 건 저 미친놈이 공까지 던지겠다고 메이저 안 가고 여기 남은 거지. 저 정도면 당장 메이저리그 가도 진짜 알렉산더 맥도웰만큼 하겠구만.”
“너 알렉산더 맥도웰이 이번 시즌 신인왕 확정에 MVP도 노릴 만한 성적인 건 알고 있지?”
“그래서 넌 알렉산더 맥도웰이 지금 여기에 오면 4연타석으로 예고홈런 칠 수 있다고 생각하냐?”
“······.”
“진짜 쟨 당장 메이저로 보내야 해. 내가 볼 때 쟨 명예의 전당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야구 GOAT 다툴 만한 놈이야.”
야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로 NFL에 밀렸다고는 하지만 야구는 스스로 미국의 ‘국기’를 자처할만한 입지를 갖춘 스포츠였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농구, 축구, 미식축구 등등에서 천재라고 할만한 이들이 GOAT를 자처할만한 기록을 만들어낸 데 반하여 야구는 감히 GOAT를 자처할만한 이를 배출하지 못했다. 그나마 현대 야구에서 가장 걸출한 마이크 트라웃조차도 역대 모든 선수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한계다.
“근데 최수원 저 미친놈 하는 거 보면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쟤는 괜히 한국에 몇 년 잡아두지 말고 1년이라도 빨리 미국 가서 커리어 쌓아 올려야 해. 나중에 막 커리어 홈런 숫자 750개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면 그 1년이 얼마나 아쉽겠냐. 안 그래?”
“그건 그렇지. 막 4,000안타까지 30개 남기고 은퇴. 이러면 너무 빡치잖아.”
그렇기에 우습게도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더 크게 반응한 것은 최수원의 4연타석 홈런이 아니었다.
[라찬명!! 라찬명 달립니다!!]
[좌중간 깊숙한 곳!! 라찬명이!! 라찬명이!! 잡아 냅니다!!]
“아웃!!”
[최수원 선수가 9회 말 원아웃에서 아쉽게도 연타석 홈런 기록을 마무리 짓습니다.]
[이건 라찬명 선수를 칭찬할 수밖에 없어요. 라찬명 선수 스타트가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반응속도부터 타구 판단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수비였어요.]
오히려 그의 연타석 홈런이 4연타석에서 끊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더 컸다. 자신들이 너무나도 당연히 또 넘어가리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이게 안 넘어가네.”
“그러게 이왕 하는 거 5연타석 홈런까지 해버리면 진짜 불멸의 기록일 텐데.”
“확실히 경기 막판쯤 되면 체력에 좀 문제가 있는 건가?”
“야, 멍청한 소리들 작작 좀 해. 최수원 오늘 1이닝 던졌고 지명타자로만 뛰었는데 무슨 체력 문제냐? 그리고 애초에 올스타 투수들이 이 악물고 던지는데 4연타석 홈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지. 방금도 까다로운 코스였는데 억지로 잡아당긴 거잖아. 난 저 공이 워닝트랙까지 나간 것 자체가 놀랍다.”
“그런가? 근데 난 그냥 왠지 최수원이면 투수들이 정면승부만 해주면 다 넘길 것 같은 느낌이라서······.”
“나도.”
-딱!!!!
그리고 이어지는 백강호의 담장을 두들기는 1타점짜리 2루타를 마지막으로 드림 올스타는 추가점을 만들지 못했다.
결과는 드림 올스타의 14:9 패배.
MVP는 너무나도 당연히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최수원의 몫이었다.
[KBO 별들의 잔치!! 21세기 최고 시청률 기록!!]
[백강호 “아, 이게 안 넘어가네.”]
[최수원 ‘예고 홈런? 준비된 것은 아니고 나눔 올스타팀 포수 김승진이 권유하여 즉석에서 실행한 것.’]
[김승진 “퍼포먼스를 권유했을 뿐, 예고 홈런은 최수원의 아이디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