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진이 리치를 잡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사령술사 전직용 아이템을 얻기 위한 것.
그는 리치에게서 얻은 오브를 이용해 인근의 좀비들을 쓸어 담으며 이동했다.
퍼석!
“벌써 부서졌군.”
마력이 아까워서 그냥 오브를 휘둘러 좀비의 머리를 때려 부수고 다니니 얼마 못 가 오브가 그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최대한 조심히 쓴 건데.”
그간 성진이 사용했던 대부분의 무기가 그랬다.
전설의 검이라도 성진의 주먹에 비하면 솜방망이나 다름없었다.
무기를 들면 오히려 맨손보다 약해지는 것.
고대의 대장장이 신이 만든 청동망치쯤 되면 모를까.
그의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있는 무기는 흔치 않았다.
리치를 잡고 나온 저주받은 사신의 대낫 또한 맨손보다 약하니까 미련 없이 남에게 줘버린 것.
“그래도 좀비를 이만큼 잡았으면 괜찮겠지.”
리치의 오브를 이용해 죽인 좀비는 600마리를 조금 넘었다.
이 숫자라면 10스테이지에 존재하는 모든 NPC의 영혼을 해방시키더라도 사령술사 전직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허억! 허억! 같이 좀 가자니까!”
부서진 오브를 갖다 버린 성진은 헉헉대며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남태수를 바라보았다.
착용해제가 불가능하다는 건 인벤토리에 넣지도 못한다는 것.
남태수는 성진에게서 받은 사신의 대낫을 계속 지고 다니고 있었다.
“…… 요!”
조금 쳐다봤다고 겁을 먹는다.
역시 근접 전투에 적합한 성격은 아니었다.
저런 성격에 탱커인 성기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사령술사가 나을 텐데.”
“아니, 사령술사를 하면 기껏 플레이어가 되고서도 버러지 취급을 받는다니까요? 어디 산골짜기서 도 닦다 나오셨나. 어떻게 그것도 모른대?”
남태수는 그리 내뱉고 나서 문득 자신의 말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도 닦다 왔어요?”
보통 뛰어난 유망주는 유명 클랜에 소속되어 이름이 알려졌던가, 아니면 그냥 본인이 유명했다.
성진 정도 되는 인간이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이상했다.
‘아무튼 저 인간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둘째치고!’
강력한 무기를 얻었지만, 전직을 생각하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좀비와 싸울 방법이 없는 남태수로서는 성진을 따라가야만 살 수 있었다.
‘그래도 따라온다고 대뜸 주먹부터 날리는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야. 방해만 안 하면 말리진 않겠다는 걸 보니.’
남태수가 직접 따라다니며 지켜본 성진은 생각보다 멀쩡한 사람이었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이 통한단 말이지.’
사실 한심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빛을 보면 과연 자신을 동등한 객체로 보긴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좀비보다는 나았다.
자신의 얼굴만 봐도 물어뜯으려 들진 않으니까.
“무기가 부서졌으니 더 이상 사냥도 의미가 없군. 거점으로 간다.”
“오오, 드디어…….”
남태수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던 NPC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받았던 거점 호위 퀘스트는 그가 성진을 따라다니는 동안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빨리 성진과 헤어져서 거점으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살기 위해서 따르던 상황.
이제 저 무시무시한 인간과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없던 기운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아니, 잠깐.”
그러다 문득, 5층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당신 설마 여기서도 NPC를 다 죽이려는 건 아니죠?”
남태수의 질문에 성진은 답을 하지 않았다.
“…… 아니죠?”
미약한 발악과도 같은 재질문.
성진은 그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 * *
백화점.
10층의 스테이지 전역에서 물자를 노리고 플레이어와 NPC들이 몰려드는 구역.
그곳에 도착한 성진은 얌전히 남태수가 퀘스트를 완료하고 지도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녀석들을 구해줘서 고맙소. 보아하니 실력이 상당한 것 같은데 이 거점에 남을 생각은 없소? 백화점 소속이 되겠다고 하면 합당한 대우를 약속하지.”
NPC는 퀘스트를 완료한 남태수와 그 일행으로 보이는 성진에게 연계 퀘스트 이야기를 꺼냈으나 두 사람 모두 그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었다.
“이제 네 볼일은 다 끝났겠지.”
“예, 예에…….”
“그럼 이제 내 볼일을 볼 생각인데.”
여기 있는 NPC들을 몰살할 생각이니 이제 꺼지렴.
그러한 의미를 담은 한마디에 남태수는 질색을 하면서도 마지막으로 성진을 설득해 보았다.
“아니, 그러지 말고……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애초에 이번 스테이지는 NPC와 힘을 합쳐 버티는 스테이지라 플레이어만 남겨놓는 건 저희를 다 죽이는 거랑 다를 게 없다니까요?”
“그럼 네가 방법을 말해봐라. 들어보고 정말로 괜찮다면, 고려해 보지.”
“아 씨…….”
당연하게도 방법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남태수는 성진이 왜 NPC들을 죽이려고 하는 건지도 몰랐으니까.
‘어떡하지?’
남태수라고 딱히 NPC 인권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인간을 닮은 NPC가 죽어 나가는 꼴은 좀 거북한 정도.
다만 10스테이지는 달랐다.
‘여긴 NPC랑 같이 싸워야 하는 스테이지인데.’
리치가 죽어도 좀비들은 멀쩡히 남아 있었다.
NPC가 몰살당한다면 플레이어들끼리 이곳 스테이지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으리라.
1,201회차까지 오며 플레이어들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온 만큼 NPC 없이 버티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대신 NPC가 사라지면 플레이어 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
‘덤으로 그렇게 되면 나도 성기사 전직하겠다고 뻗댈 수 없을 테고.’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던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남태수에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주성진 선생?”
“반갑습니다, 주 선생. 저는 리 메이양이라고 합니다.”
중국계로 보이는 인명의 플레이어들.
특수부대같이 전투복을 차려입고 자신들의 소속을 과시하는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성진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표로 보이는 리 메이양이라는 여성 플레이어는 실전적인 차림새로도 상당히 돋보이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무슨 용건이지?”
“선생께서 상당한 실력자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5층에서 다나라는 플레이어를 쓰러뜨렸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대화에는 문제가 없었다.
탑의 시스템은 언어는 물론 문자까지도 사용자에 맞게 자동으로 번역되었으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성진이 5층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엮였을 때, 리 메이양은 그곳에 없었다.
같은 회차 플레이어라도 진행 속도에는 다들 차이가 있으니 같은 층을 서로 다른 방에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리 메이양과 그녀의 부대원들은 상당히 빠르게 스테이지를 공략한 편.
반면 성진은 영혼을 챙기며 올라온 터라 진행 속도 자체가 그렇게 빠른 건 아니었다.
리 메이양은 내내 성진보다 앞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성진에 대해 듣게 된 리 메이양은 일부러 공략 속도를 늦춰 10층에서 성진을 기다렸다.
‘이 남자가 바로 1,201회차 수석을 쓰러뜨린 그 남자.’
다나는 1,201회차 사이에서는 이미 그 이름이 높은 유망주였다.
단체면 모를까 개인의 무력으로는 단연 최상위권.
그런 다나를 가볍게 제압했다면 1,201회차 내에서 가장 뛰어난 건 성진이리라.
‘이 남자를 영입한다면 원래 계획보다 더 높은 층도 노려볼 수 있어.’
탑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나 한 번뿐.
그렇다면 강한 자를 끌어들여서라도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게 이득이었다.
“그랬던 것 같군.”
“그렇다면 주 선생께서는 저희 극동군구와 탑에서 공동전선을 펼칠 의향이 있으십니까? 물론 곁에 계신 남 선생도 함께 말입니다.”
리 메이양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남태수까지 포함시켰다.
이미 두 사람이 이곳에 함께 들어왔다는 사실을 전부 체크하고 왔다는 뜻이었다.
“극동군구라면 너희들은 세계정부의 개새…….”
“자, 자, 잠깐만요!”
성진은 바로 거절하려 했으나 남태수가 그런 그를 말렸다.
‘성진 씨, 잠깐 제 말 좀 들어봐요.’
그는 필사적이었다.
‘리 메이양이라면 제가 알기론 분명 세계정부 정규군 소속 유망주거든요? 여기서 사고를 쳤다간 앞으로 탑을 오르는 동안 엄청 귀찮아질 거라고요.’
남태수는 성진이 ‘너는 내가 사도랑 싸우는 것도 봤으면서 이제 와서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그는 황급히 덧붙였다.
‘그야 사도는 탑 안으로 따라 들어와서 방해할 수 없지만, 쟤들은 앞으로 계속 봐야 한다고요.’
탑의 스테이지는 5층이나 10층처럼 여러 플레이어가 멀티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중에는 플레이어 간에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스테이지도 있었으므로 적이 많아지면 오르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경우에 따라선 아예 진행 자체를 막아버리는 게 가능한 층도 있었으므로 남태수는 성진을 말려야 했다.
‘얘들은 지금 나도 성진 씨와 같은 파티인 줄 알고 있잖아?’
잘못하면 자기까지 싸잡아서 힘들어질 상황.
문제는 성진이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거절한다.”
리 메이양은 그 대답에 표정이 굳어졌다.
“망할 빵즈가.”
순간적인 욕설이 탑의 번역기능을 뚫고 원어 그대로 튀어나왔다.
“오만하군요. 우리는 세계정부 소속의 군인입니다. 우리야 당신이 없어도 아쉬울 게 없지만, 당신은 아닐 텐데요? 설마 당신이 우리와 동등한 입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동등하지 않다.”
성진이 세계정부의 군인 ‘따위’를 자신과 동등하게 볼 리가 없었다.
“너희가 엎드려 부탁해도 모자랄 입장이지.”
철컥!
그 말에 리 메이양의 뒤에 서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총을 뽑아 들었다.
“감히 저를 모욕하고도 멀쩡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부하들을 등에 업은 리 메이양은 ‘네깟 게 어쩔 거냐?’는 듯이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제 권한이라면 이곳에서 일반 플레이어 하나 묻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에요.”
실제로 리 메이양이 세계정부 소속인 이상 그녀가 다소의 잘못을 저질러도 상부는 그 일을 무마시켜주리라.
세계정부로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정당성을 깎아 먹는 것보다 사건 하나 덮어버리는 편이 유리할 테니까.
세계정부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이 시대.
세계정부의 군인으로서 탑의 플레이어가 되는 게 확정되어있던 그녀는 선택받은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깔보며 살아왔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탑의 도전을 포기하고 나가는 것으로 봐 드리죠.”
레벨이 계급인 사회에서 겨우 10층에서 탑을 나가라는 건 죽으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남태수는 그녀의 말에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하며 리 메이양을 기쁘게 하고 있었지만, 성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리군.’
성진이 보기에 플레이어로서의 전투능력이라면 이들 부대원 중에서도 리 메이양이 독보적이었다.
그녀가 대장을 맡고 있는 것도 탑에서는 연공서열보단 전투력이 우선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리더로서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성진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그 판단은 정확했다.
“당신이 아무리 잘났어도 10레벨 플레이어는 총에 맞으면 죽죠. 우리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럼 맞지 않으면 될 일이다.”
“총알을 피한다고요? 당신이 무슨 주인공이라도 된 줄 알아요?”
“해 보시지.”
“……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요?”
“그럼 너는 자신도 없으면서 요란만 떠는 거였나?”
“무례한……!”
그 말에 총을 든 부하들이 움직이려 했으나 성진이 더 빨랐다.
성진은 우선 가장 왼쪽에 서 있던 플레이어의 총구를 잡아내리고 방아쇠에 걸려 있는 손가락을 후려쳤다.
손가락이 부러지며 총알이 발사된다.
자신의 발을 쏴버린 플레이어가 비명을 지르는 동안 놈의 팔을 꺾어 총을 빼앗고 발로 차버렸다.
넘어지는 동료에게 엉켜 다른 이들의 대응사격이 늦어진 사이, 성진은 빼앗은 총을 자동으로 놓고 탄창을 전부 비워 버렸다.
드르르르륵!
기관단총이 불을 뿜으며 플레이어들이 황급히 펼친 마력 보호막을 찢어놓았다.
꼴에 방어 스킬도 가지고 있었으나, 10층 스탯으로는 마력량도 뻔했다.
철컥.
마지막으로 성진은 리 메이양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이런 실력으로 내게 덤빈 건가?”
“감히!”
그녀는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머리를 겨눈 총구를 쳐내고 성진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어설픈 총질보다 훨씬 위협적인 발차기였으나, 어림없기는 매한가지.
성진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 그대로 유리창에 던져 버렸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6층 높이에서 리 메이양이 낙하했다.
허나 이건 괜한 플레이어들이 말려들지 않도록 자리를 옮긴 것뿐.
‘훈련된 플레이어라면 이 높이로는 다치지도 않아. 제대로 쫓아가서 마무리 짓는다.’
성진은 이어서 자신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리 메이양을 쫓았다.
덕분에 남태수는 여기저기 총상을 입은 리 메이양의 부하들과 함께 남겨졌다.
“으윽, 으으윽……!”
“어윽!”
“어…… 그, 괜찮으세요?”
마력 보호막에 마법이 인챈트된 방탄복까지 입은 그들은 기관단총 사격에도 죽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방탄복의 보호를 받지 못한 팔다리는 총알에 관통되어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 망할 새끼가!”
개중 멀쩡한 팔을 가진 플레이어 하나가 남태수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들이 보기에 남태수는 성진과 같은 파티였다.
“어어, 저는 사실 저 사람이랑 상관이 없…….”
타다다당!
“으아아!!!”
한없이 억울한 비명과 함께 총알을 피해 달린 남태수는 황급히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
낙하하는 와중에도 남태수는 들고 있던 사신의 대낫을 어디 걸어보기 위해 쭉 내밀었다.
그러나 885라는 공격력을 자랑하는 사신의 대낫은 백화점의 콘크리트 벽면을 두부처럼 갈랐기에 낙하속도를 줄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성진 이 개……!”
덥썩!
떨어지던 몸이 갑작스레 멈춘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엔 신호등 위에 선 성진이 자신을 받아 들고 있었다.
“개 뭐라고?”
“…… 멋있다고요?”
성진은 남태수를 그냥 놔버렸다.
버려진 자동차 위에 떨어진 남태수는 끙끙대며 바닥을 굴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