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93화 (93/170)

<93>

100층으로 돌아온 성진은 다나와 남태수를 모아놓고 101층 이후의 계획을 설명했다.

“우리의 계획은 마계대전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101층부터 이어지는 오픈월드 스테이지 마계.

그간 센트럴 시티나 거인의 나라처럼 다양한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한 곳에 모이는 스테이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반면 마계는 아예 101레벨부터 150레벨까지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진행하는 스테이지.

공적치를 쌓고 레벨을 올리는 RPG형식의 스테이지였다.

“마계대전을 종결시킨다니 그게 가능해요? 거긴 완전 춘추전국시대잖아요.”

수많은 마왕들이 마계일통이라는 위업을 놓고 군웅할 거의 시기.

플레이어는 그런 난세의 한복판에 떨어져 마왕과 계약하고 공을 세워야 했다.

“이미 3강 5약의 여덟 마왕으로 세력도가 자리 잡았다고 들었는데. 어느 마왕과 계약하시게요? 신성황녀? 시체궁주? 아니면 마리아나 테레사 씨처럼 마계에도 아는 사람이 있으신가?”

“아쉽지만 마계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거기 있던 놈들은 죄다 증오의 성좌에게 영혼을 빨아 먹혔거든.”

결국 실제 역사에서 마계를 통일한 것은 삼황오제라 불리던 상고시대의 마왕들이 아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청소부 슬라임이었다.

“우리는 기존의 마왕을 옹립하지 않는다.”

“아니, 삼국지나 다름없는 스테이지에서 세력을 고르지 않겠다니. 무소속으로 플레이하시게요?”

마계대전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들은 삼국지의 장수가 된 것처럼 계약한 마왕에게 몸을 의탁하여 그들 밑에서 싸우게 된다.

진짜 삼국지 게임에서 커스텀 장수를 만들어 플레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스테이지였다.

능력이 있으면 마왕이 먼저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도 하고, 능력이 없으면 만년 식객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기도 했다.

물론 무소속으로 낭인처럼 떠돌며 전장에 참가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플레이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무소속으로 해봐야 기여도를 쌓는 시간만 길어질 텐데요. 성진 씨 능력이라면 어딜 가더라도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남태수는 이 인간이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이러나 투덜댔다.

한편 조용히 듣고 있던 다나는 성진의 생각을 눈치챘다.

“설마…….”

“네 예상대로다. 나는 마왕으로서 마계대전에 참가할 거다.”

장수가 아닌 군주 플레이.

“플레이어도 마왕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보통은 안 되겠지. 하지만 내겐 자격이 있다.”

<진마왕의 계승자(신화)>

마계 최초의 통일왕조를 이룩한 진마왕의 적법한 계승자.

그 어떤 NPC를 데려다놓더라도 성진에 비하면 마왕의 자격이 없는 셈이니 마계대전에 참전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다만 마왕의 자격을 얻어 마계대전에 참전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통일을 이루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하기야 마계대전의 마왕들은 원래 플레이어가 잡으라고 나오는 NPC가 아니니까요.”

남태수는 자신이 수집한 마왕들의 정보를 확인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가 아무리 강해 봐야 마왕군에 소속된 일개 장수에 불과했다.

심지어 각각의 마왕들은 자기 휘하의 군세보다 강하기에 그들을 부하로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장수가 되지 못하고 병사에서 그치는 플레이어도 많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거기 마왕들이 많이 세요?”

“글쎄. 마왕 레벨은 전부 ???로만 표기된다고 해서. 얼마나 센 건지 알려진 바가 없는데.”

다나와 남태수는 답변을 요구하듯이 성진을 바라보았다.

성진은 그들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마계대전의 마왕들은 죄다 초월자들이다.”

“초월자라면…… 신화급 카르마를 가진 존재들이라고요?”

“그래. 마왕이라면 유명하지 않은 놈들도 최소 1단계 초월자. 3강 5약이라 불리는 놈들도 각각 2, 3단계 초월자일 거다.”

즉, 신화급 카르마 두세 개씩 가진 놈들이라는 뜻.

“애초에 그쯤 되는 놈들이니 신성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마계일통의 카르마를 추구하는 거지.”

당연한 말이지만 플레이어가 잡으라고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마왕은 어지간한 사도보다도 강력한, 마리아나 테레사에 준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성진 아저씨라면 문제없죠?”

“꼭 그렇지만도 않다.”

“네?”

“탑의 관리자를 상대할 때는 망치를 초 단위로 소환하는 걸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놈들은 그렇지도 않아.”

초월 1단계를 이루며 천사의 피를 흡수한 성진은 마력에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망치를 얼마든지 소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소환할 수는 없었다.

“망치를 너무 오래 소환하면 성좌들에게 들킨다. 그리고 마왕 놈들은 10초, 20초 정도론 쓰러뜨리기 힘들 테지.”

망치 없이 잡아야 한다.

즉, 초월 1단계의 힘만을 가지고 3단계에 도달한 놈들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뜻.

“거기에 놈들은 홀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세력을 이끌고 있지. 한 놈 한 놈 신중하게 공략해야 한다.”

단순히 탑을 올라가는 것이라면 모를까, 마계대전에 출현하는 마왕들을 모두 잡는 것은 성진에게도 신중해야 할 일이었다.

“대신 공략에 성공하면 마계일통의 카르마를 얻을 수 있을 거다.”

“그건 무슨 등급인데요?”

“아마 전설급.”

그 말에 다나가 눈을 빛냈다.

“게다가 내가 얻는다면 망치에 옮겨둔 진마왕의 계승자가 강화되겠지. 나한테는 신화급에 준하는 효과를 낼 거다.”

성진에게는 이것이 초월 2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이 되리라.

“나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성검을 얻은 다나.

사룡왕의 사도가 된 남태수.

어스름에서 자신들의 시체를 가지고 나온 NPC 영혼들.

그리고 센트럴 시티에서부터 따라온 플레이어들까지.

“새로운 마왕이 발호하기에 충분한 전력이다.”

성진이 두 사람에게 계획을 공유하던 도중, 베르나데트가 성진을 찾아왔다.

“보스, 말씀하신 대로 플레이어들을 모두 모아놨습니다.”

“곧 가지.”

베르나데트는 성진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휘하의 플레이어들은 물론, 어스름에 끌려갔다 온 기존 100레벨 플레이어들과 새롭게 올라온 이들까지 모두 모아두었다.

전자는 이미 세계정부와 사도의 진실을 깨닫고 그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후자에 해당하는 플레이어들은 아직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산달폰이라고 했나? 네 차례다.”

* * *

카심은 줄곧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거인의 나라에서 다나와 남태수, 성진에게 연달아 치이며 와해된 공격대의 수장.

그는 탑의 도전을 포기하는 척하면서, 실은 대기실에서 버티며 성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몰래 도전을 재개했다.

‘젠장, 진작 지나갔을 줄 알았더니 왜 저놈들이 아직 100층에 있는 거야.’

한편 다른 플레이어들도 성진 일행의 등장에 골치가 아픈 건 똑같았다.

‘남태수에 주성진이라면 분명히 세계정부에서 수배한 테러리스트들이잖아.’

‘괜히 나대다가 칼 맞지 말고 구조될 때까진 조용히 있어야지.’

‘어차피 탑에서 층을 넘어가다 보면 떨어질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세계정부가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른 덕분에 성진을 마주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인질’의 사고방식대로 행동했다.

이들은 굳이 성진에게 거스르지 않고 협조적으로 행동했다.

카심은 그들 사이에 섞여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런데 이번엔 무슨 일이래요?”

“글쎄요. 뭔가 발표라도 하려는 모양인데.”

일반 플레이어들이 불려온 야외 광장에는 이미 센트럴 시티의 플레이어들과 NPC들이 가득했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남태수에 의해 소환된 NPC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당황했다.

“저거 명예의 전당에 등장하던 챔피언들 아니에요……?”

“저쪽 요정들은 30층에서 본 적 있는 얼굴 같은데…….”

“수도회의 고위 수도자들도 모여 있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NPC들은 군인처럼 절도 있는 자세로 정면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음은 명백한 상황.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는 금방 밝혀졌다.

파앗!

강렬한 광채와 함께 토끼 수인의 모습을 한 산달폰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성좌에 의해 천사로 개조되기 이전, 영혼의 본 모습 그대로의 육체였지만 모두가 그녀가 천사임을 알 수 있었다.

산달폰에게서 흘러나오는 카르마는 카르마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라도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게 했다.

[저는 탑의 100층을 관리하는 천사, 산달폰이라고 합니다.]

천사의 카르마가 실린 그녀의 목소리에는 성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힘은 순식간에 대중을 장악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간악한 세계정부의 진실을 알리려 합니다.]

“뭐라고?”

“세계정부의 진실이라니…….”

웅성웅성.

군중 속에서 카심은 못 박힌 듯 산달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사람을 미혹하는데 특화된 카르마.

그 카르마는 마력과 카르마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이들에게 최면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했다.

거기에 이미 바깥에도 잘 알려진 천사라는 존재까지.

카심은 이상함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그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세상을 제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행동은 신들의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신의 사도를 참칭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한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성좌의 진실을 다 밝히면 설명이 복잡해지는 데다, 오히려 진실을 알고 성좌들에게 항복하는 이들이 나올 수도 있었다.

때문에 성진은 산달폰에게 ‘적당한 진실’을 요구했다.

[따라서 저는 바로 여기, 진실한 신의 사도인 주성진님과 함께 세계정부를 무너뜨리고 정의를 실현할 것입니다.]

“주성진이 사도라고?”

“그럼 지금까지 테러리스트니 뭐니 하는 게 사도들끼리의 기싸움 같은 거였어?”

산달폰의 소개에 성진은 사람들 앞으로 나아갔다.

‘사도라. 틀린 말은 아닌가.’

성좌는 인간의 관점에서 신이라기보다는 강력한 괴수에 가까운 존재였고, 여덟 왕의 대전사인 성진이야말로 신의 사도에 부합했으니까.

“나는 세계정부와 싸울 것이다. 함께하겠는가?”

그 말에 베르나데트를 필두로 센트럴 시티의 플레이어들이 동조했다.

“함께 싸우겠습니다!”

카심을 비롯한 일반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나는 그들의 뒤에 있는 성좌들과도 싸울 것이다. 함께 하겠는가?”

또다시 성진이 묻자 이번에는 어스름의 육체로 언데드가 된 NPC들이 동조했다.

“함께 싸우겠습니다!”

천사에 이어서 마리아와 테레사를 비롯한 NPC들도 성진을 따랐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침묵과 광기의 혈족. 너희도 함께할 텐가?”

그 말에 다나는 달부름 없이 카르마를 움직여 웨어울프의 피를 끌어올렸다.

검을 다루기 위해 외형변화를 최소화하여 귀와 꼬리 정도에서 그친 야수화.

다나가 앞으로 나서자 신시아의 영향력을 벗어나 다나의 무리로 들어간 센트럴 시티의 웨어울프들이 일제히 하울링 했다.

“네, 마지막까지.”

이어서 성진은 일반 플레이어들을 바라보았다.

“우리와 함께할 테냐, 아니면 이곳에서 꺼질 테냐.”

그 말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세계정부와 사도들이 거짓 선지자들이라 해도 그들의 힘은 거짓이 아니었다.

일개 플레이어에 불과한 그들은 세계정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못하겠다고 하면 당장 탑에서 나가야 할 판.

‘여기선 일단 함께 하겠다고 하고 탑을 오르다가 나중에 눈치껏 대기실 등으로 빠지면 되는 거 아닌가?’

당장 탑을 나가서 세계정부와 싸우라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세계정부와 싸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병사가 필요할 테고, 그들이 더 높이 올라가야 강해질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 뻔한 생각을 모를 성진이 아니었다.

“함께 싸우겠다면 증명해라. 나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녀석만 데려가겠다.”

[스테이지 목표가 갱신됩니다.]

[힘을 합쳐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십시오!]

[자격의 증명은 임무의 성패와 상관없이 기여도에 따라 개별 평가됩니다.]

[증명에 실패할 시 도전자의 레벨을 비롯한 모든 시스템 특전이 소멸합니다.]

[증명에 성공할 시 능력에 따라 <공백의 사도> 카르마를 부여받습니다.]

[평가가 완료되기 전까지 모든 도전자는 탑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산달폰의 관리자 권한을 이용한 시스템 조작.

카르마에 대한 정보가 해금되자 플레이어들은 주르륵 갱신되는 시스템 창을 보며 당황했다.

성진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향해 퀘스트를 내려주었다.

“나를 쓰러뜨려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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