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빅토르를 포함한 몇 명의 팀원들이 경비원의 정신을 읽어보려 시도하는 동안 베르나데트는 인간목장 내부를 돌아보았다.
“바닥도, 벽도, 천장도 모두 그래픽 깨진 공간마냥 새까맣긴 한데, 구조 자체는 조폐국 건물과 똑같이 생긴 것 같네.”
다행히 그들은 금고 안으로 들어오기 전, 이미 조폐국 건물을 충분히 조사해본 뒤였다.
“문이나 창문은 다 막혀 있고. 딱 본관 건물만 한 공간인가.”
일단 벽을 부수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안에 딱히 생활공간은 없었다는 점.
“저 경비원이 여기서 사는 게 아니라면 나가는 방법도 있겠지.”
탈출의 희망이 보이니 자연스럽게 다른 문제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어어어…….”
이곳에 갇힌 인간들.
그들은 좀비처럼 이성을 잃은 상태로 바닥에 뿌려진 무언가를 주워 먹고 다녔다.
주사위 꼴로 잘라놓은 호박석처럼 생긴 ‘먹이’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이러한 ‘먹이’들은 젤리처럼 말랑거리는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약한 마력을 띄고 있는 데다, 보고 있으면 왠지 입에 가져다 대고 싶어지는 게 일종의 유혹 효과가 걸려 있는 물건인 듯했다.
“여기서 데리고 나간다고 해도 이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순 있는 건가? 젠장 돌아 버리겠네.”
사도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고 있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당장 센트럴 시티에서도 웨어울프들이 마약을 유통시키고 있었으니까.
다만 이렇게 대놓고 인간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건 충격이었다.
“세계정부가 전부터 이러고 있었다면 지난 3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놈들의 입에 들어갔다는 거야?”
성좌의 위협은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가 아니었다.
이미 인류는 성좌에 의해 존속을 위협받고 있었다.
“언론도 세계정부의 것, 군대도 세계정부의 것. 당장 범죄 현장을 발견했음에도 고발은커녕 어떻게 살아 돌아갈지 고민하는 처지라니.”
탑에 들어가기 전의 베르나데트는 어서 빨리 탑에 들어가기를 바라며 본인의 입신양명을 꿈꿨다.
탑에 들어간 베르나데트는 열심히 돈을 벌어 바깥에 나갔을 때 떵떵거리고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게 손 쓸 도리도 없는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진 상태였다.
평범한 사람의 힘으로는 신들의 행사를 막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초인.
“베르나데트 님!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았습니다!”
남들이 고통받든 말든 자기만 괜찮으면 된다고 말하는 놈들이 늘 그렇듯, 경비원은 자신이 고통받기 시작하자 금세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 젤리들이 열쇠였습니다. 이것들을 이용해 특정한 마법진을 그리기만 하면 됩니다.”
젤리에 마력이 깃들어있으니, 이걸 이용하면 따로 마법을 가르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것.
“밖으로 나가면 스노 글로브를 통해 이 공간을 통째로 들고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바로 나가자. 조사는 복귀해서 한다.”
그리하여 스노 글로브 밖으로 나온 조사팀은 현실의 금고로 돌아와 자신들의 침입사실을 지우기 시작했다.
작업은 순식간.
오래 걸리지 않아 청소를 마친 그들은 금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재미있는 손님들이 왔군.]
사도가 그들을 반겼다.
* * *
산달폰의 인생은 항상 공포에 떠는 삶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종족은 3단계 문명을 이룩하고 ‘신’을 보유한 고위 종족이었다.
그러나 산달폰이 어른이 되기도 전에 그녀의 신은 그녀를 버렸다.
[천상에 오르고 싶은데 힘을 빌려주지 않을래?]
신의 부탁에 모두가 흔쾌히 나섰고, 그렇게 나선 모두가 한입에 잡아먹혔다.
자신의 동족이자 신도였던 이들을 모두 잡아먹은 신은 천상에 올라 성좌가 되었다.
성좌가 된 그것은 후에 다시 돌아와 남아 있던 동족들을 모두 천사로 만들어 버렸다.
산달폰은 그렇게 전장에 나섰다.
전장에선 많이들 죽었다.
천사가 되기 전부터 친구였던 이들도, 천사가 된 후로 만난 이들도.
전장에 나타난 적룡 한 마리에게 부대가 궤멸한 적도 있었고, 기껏 재편된 부대의 지휘관이 요정기사들에게 찢겨나간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녀를 천사로 만든 일족의 성좌마저도 거신왕의 손가락에 벌레처럼 짓이겨져 죽었다.
산달폰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살아남기를 계속한 결과 그녀는 나름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수많은 성좌들 사이에서 자신의 성좌를 잃은 완전한 중립천사.
그러면서도 나름의 실적이 있어 마냥 소모품으로 써버리기엔 아까운 존재.
산달폰은 이러한 점들을 이용해 탑의 관리자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가진 것을 모두 활용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서워.’
천사의 정신은 많은 감정이 거세되어 있다.
그러나 성좌의 혈족이었던 그녀는 감정이 거세되기 전, 어린 시절의 감정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서 멈춰 버린 그 감정은 강박이 되었다.
지구에서의 30년에 달하는 요양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여유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돌아온 100층에서 특이점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지금까지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강렬한 공포가 엄습했다.
특이점.
왕들의 검.
성좌 살해자.
수많은 이름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이것.
사룡왕의 계약자.
산달폰은 불사의 군대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함께 싸우던 이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
죽음에서 되살아난 이들이 그녀를 향해 창을 겨누던 모습.
산달폰은 성좌들을 좋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무서워하진 않았다.
그러나 사룡왕은 무서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행성 반대편까지 도망쳐도 한순간에 따라온 검강.
잡혔을 때는 정말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 이들과 함께하며 두려움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똑같아.’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것은 이들도 자신과 똑같다.
이해가 두려움을 몰아냈다.
그러자 공감이 싹텄다.
자신은 결국 이렇게 됐지만,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호오, 100층의 관리자네? 관리자까지 끌어들이다니. 과연 어떤 성좌가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몰래 사도를 준비했는지 확인해보도록 궁금해지는걸.]
때문에 산달폰은 신호를 받고 불러온 베르나데트의 뒤를 따라 오메가가 딸려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파괴광선.
산달폰이 발사한 파괴광선은 오메가의 방어막에 막혀 사라졌다.
“산달폰 너……!”
그 모습을 본 베르나데트는 눈을 부릅떴다.
산달폰은 무려 성좌의 혈족인 고위 천사.
어스름의 사룡왕은 그녀를 붙잡아 목줄을 채울 때 온갖 금제를 걸어두었다.
“허가를 구하지 않고 행동하면 너는 분명…….”
죽는다.
심지어 죽는 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베르나데트는 오메가의 눈을 생각해 뒷말을 삼켰다.
‘영혼이 사룡왕의 손에 빨려 들어가 그대로 노예가 된다.’
죽음으로는 끝낼 수 없는 영원한 고통.
산달폰은 그것을 알면서도 베르나데트를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빨리 도망이나 쳐 이 바보야!
산달폰은 필사적으로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베르나데트도 어쩔 수 없었다.
베르나데트와 빅토르를 포함한 조사팀은 겉으로 보기에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메가는 상대가 사도의 하수인이라 판단하고 곧장 영혼을 타격했다.
덕분에 그들의 영혼은 현재 찢겨나가기 직전.
성진의 카르마 효과가 아니었다면 진작 영멸(永滅)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영혼이 그 모양이니 육체가 멀쩡하다 해도 장기만 멀쩡한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
[고위 천사라고 해봐야 주인 잃은 케루빔. 더 이상 힘을 내려줄 성좌가 없는 천사 주제에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오메가는 권능스킬도 없이 플레이어로서의 능력만으로 산달폰을 몰아붙였다.
아무리 산달폰이라도 원래 이렇게까지 전투능력이 떨어지진 않았으나, 사룡왕의 금제를 어긴 그 순간부터 실시간으로 죽어가고 있는 탓에 제힘을 낼 수가 없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곱게 죽어.]
뎅겅!
잘려나간 산달폰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베르나데트는 마지막 순간 그녀의 입모양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 안, 해…….’
산달폰이 쓰러지자 다음으로 베르나데트를 지키며 앞으로 나선 것은 빅토르였다.
[이야,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네?]
오메가는 빅토르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를 비웃었다.
[사도가 되지 못한 떨거지 아니야? 굴라그에선 그리 열심히 도망쳐놓고 이제 와서 무슨 자신감으로 내게 덤비는지 모르겠네?]
빅토르는 세계정부에게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혀 레벨을 봉인 당하고 굴라그에 떨어지기 전까지 299레벨의 랭커였다.
지구상에 300레벨을 넘어가는 플레이어는 사도뿐.
빅토르는 사도가 아닌 플레이어 중에선 가장 레벨이 높았다.
이에 ‘사도가 되지 못한 자’라는 조롱인지 경외인지 애매한 별명마저 붙었을 정도.
당연하게도 그는 초창기 플레이어로서 지금의 사도들과 함께 탑을 오르던 인물이었다.
[새로운 사도 밑에 붙기로 했나? 그놈도 참 멍청하네. 우리가 버린 녀석을 주워가다니.]
오메가는 빅토르를 도발했다.
[그래 봐야 결국 선택받지 못한 실패자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데.]
빅토르는 도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녀석. 네놈 따위가 그분의 뜻을 알 수 있을 리 없지.”
빅토르는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와중에도 팔을 들어 복싱 자세를 잡았다.
[주제를 모르는 놈에겐 매가 약이지.]
산달폰이 죽었으니 더는 토끼굴을 통해 도망칠 수도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데트를 지키고 나선 빅토르의 의기는 대단한 것이었으나, 결과는 산달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커헉!”
[네놈을 죽이는 건 잠시 미뤄두기로 할게. 네놈들한테는 천사와 달리 물어볼 게 많으니까.]
순식간에 빅토르를 제압한 오메가는 일행의 대장으로 보이는 베르나데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베르나데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투명한 손에 붙잡힌 것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고작 100레벨인 주제에 내 물건에 손을 대다니. 무슨 생각인지 머리통을 뜯어서 속셈을 알아보도록 할까.]
모든 사도가 공통적으로 부여받는 정신을 조작하는 권능스킬.
그 마수가 베르나데트를 덮치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치지직!
“내 부하에게서 손 떼라.”
사룡왕의 금제를 어겨가며 자신을 내던진 산달폰의 희생.
금제를 어긴 영혼이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사룡왕의 손에 빨려 들어가는 과정에서 성진 일행에게도 그 사실이 전해졌다.
천사의 죽음이 그들에게 알려진 순간 성진은 인연의 반지에 내장된 능력을 발동했고,
“보…… 스?”
고양이 성진이 탑의 차원장벽을 넘어 그들 앞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