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밀리아의 각성기 오라토리오는 태평궁 대웅전 일대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꿔 버렸다.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일종의 아공간과 같은 곳.
‘원래라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지만…….’
막말로 이런 곳이면 그냥 문 닫고 도망가기만 해도 안쪽에서 굶어 죽거나 공기가 다 떨어져 숨 막혀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마법사에겐 자신의 아공간에서 싸우는 게 수많은 이점이 있다던데, 다나는 마법사가 아니라 대충 들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법은 자기 전공이 아니니 구체적인 원리보단 대응법만 익혀둔 것.
‘지금은 인연의 반지가 있지.’
최악의 경우에도 즉시탈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외부와 격리된 밀실이라는 점은 그녀에게도 장점이 될 수 있었다.
‘아저씨의 앞길을 막아서는 놈들은 모두 벤다.’
신시아를 데리러 온 길이었지만, 죽일 수 있는 사도는 죽인다.
웨어울프인 다나는 지금까지 살아오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다.
웨어울프가 생간을 먹는 행위는 어떠한 성분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동족포식의 카르마를 채우기 위함이었으니까.
제 손으로 직접 죽인 것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그 정도 각오는 이미 끝냈으니까.’
망설임 없는 검이 청원을 향해 나아갔다.
초음속의 도약과 거의 동시에 이뤄진 찌르기.
청원은 다나의 찌르기를 맞찌르기로 막아냈다.
“고작 200층에서 놀라운 실력이로군!”
“고작 300층 주제에 남을 품평하는군.”
격돌 직후, 다나의 혈검이 액체로 변하며 청원의 검을 타고 흘렀다.
이어서 상대의 검신을 통과해 다시 칼날을 이루고 적을 베어낸다.
칼로 물 베기.
초인의 육체로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빠른 형태변화.
다나는 익숙하지 않은 혈검술을 실전에 써먹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촤아악!
청원은 피가 터져 나가는 와중에도 물러서는 대신 반격을 시도했다.
팔 근육을 베인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검을 바꿔 쥐고 공격에 집중하고 있는 다나의 급소를 노린다.
다나는 그 카운터를 피해냈지만, 비었다고 생각한 청원의 오른손에는 그새 인벤토리에서 꺼낸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푸욱!
어깨로 받아내 물러난다.
‘내장을 상하지만 않으면 괜찮아.’
아무리 강화되어도 인간의 육체를 베이스로 한 이상 흡혈귀, 웨어울프 혼혈이 된 다나의 회복력을 따라올 순 없었다.
‘똑같이 다치면 재생이 빠른 내가 더 유리해.’
남태수가 그의 겁 많은 성격대로 승리를 확신하고서야 전면에 나서 일방적으로 적을 두들겨 패는 것과는 정 반대.
다나는 원래 성진과 만나기 전에도 제 언니를 막아서려 했던 성격이었다.
그녀는 제가 손해를 보는 국면이라도 물러서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살면 누적되는 패배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러나 다나에게는 패배의 아픔을 버텨낼 강인한 정신력도, 경험을 승리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재능도 있었다.
“이그나이트.”
“생사결.”
두 사람이 능력을 발동하자 양쪽 모두 동시에 피를 토했다.
“쿨럭!”
혈검으로 적을 벨 때 침투시킨 자신의 피에 검기를 발현해 적을 속에서부터 찢어발기는 이그나이트.
적을 하나 지정해 자신이 받는 모든 대미지를 공유하는 생사결.
덕분에 두 사람은 똑같이 치명상을 입었다.
“큭큭큭…….”
생사결은 일방적인 대미지 공유 스킬이었다.
내가 상대를 때리는 건 상대만 아프고, 상대가 나를 때리는 건 같이 아픈 일대일 필살기.
상대가 도망치더라도 일단 생사결을 걸었으면 자해하는 것으로 언제 어디서든 계속 대미지를 넣을 수 있었다.
“왜 웃는 거지?”
그러나 상대가 자신보다 튼튼할 경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다.
“이상한가? 그럴 만도 하지. 웨어울프인 자신에게 생사결을 걸어봐야 자기 체력이 더 뛰어날 테니까.”
청원이 받으면 죽으나, 다나는 버틸 수 있을 만큼만 때리면 생사결이 걸려 있어도 상대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생사결은 일대일이라고 반드시 승리를 보장해주진 않았다.
대신 한쪽의 사망은 확실히 보장한다.
“근데 우린 둘이거든.”
목 잘린 연주가의 음율이 울려 퍼졌다.
바드의 각성기 오라토리오.
이 공연장 안에서는 어디에 숨든 시전자의 음율을 피할 수 없다.
심지어 밀리아는 어디 굴러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머리통으로 노래까지 불렀다.
그 노랫소리에 청원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심장마비는 겪어본 적 있나?”
“뭐?”
청원은 그와 동시에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동시에 다나의 가슴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핫, 하하하핫!”
청원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 노릴 것도 없이 배고 가슴이고 마구잡이로 찔러댄다.
밀리아의 노랫소리는 순식간의 그의 상처를 치유했다.
덕분에 남은 것은 다나의 상처뿐.
일방적인 공격이었지만, 그렇다고 청원이 고통까지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고통. 고통이야말로 삶이야.”
대신 그는 고통을 즐겼다.
다나는 청원에게 달려들어 그의 자해를 막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자해를 막으려고 자신이 공격하면 청원이 다치고 자신에게 피해가 전해지는 건 똑같았으니까.
일대일이라면 저러다 청원이 먼저 죽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밀리아 란부터 처리해야 해.’
“눈 돌아갔네?”
다나가 심안을 떠올리려는 찰나, 청원이 검을 휘둘러왔다.
청원은 급소 따윈 노리지 않는다.
그의 검을 덮은 건 평범한 검기가 아니라 생과 사의 권능.
피차 가호를 받고 있으니 닿기만 해도 사람을 즉사시키는 원래 효과는 써먹지 못한다.
그래도 상처를 곪고 썩게 하며 병마를 심고 정신을 쇠약하게 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신성존재의 권능이었으므로 단순히 체력과 정신력이 좋다고 벗어날 수도 없다.
“둘이라는 건 나한테 저년이 붙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저년한테 내가 붙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청원은 무리해서 공격하지 않고 그냥 다시 거리를 벌리고는 자해를 시작했다.
이 짓거리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지 무작정 쑤시는 게 아니라 아주 창의적으로 후벼 파고 있었다.
“히히 눈알 발사!”
“미친 새끼가…….”
그러는 사이에도 다나의 상처는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역시 사도라는 놈들은 단번에 끝장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다나는 전투가 지지부진하게 끌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기다렸다.
[나랑 무르무르는 끝. 남은 건 안쪽에 있는 그 둘 뿐이야.]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이제 ‘그걸’ 쓰더라도 보는 눈은 없어.]
하늘에 가득한 인공위성의 눈들은 이미 이클립스의 어둠이 가리고 있었다.
괜히 먼저 꺼내 들었다가 밖에 있던 다른 사도들에 의해 목격될 가능성은 없어진 것.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다나의 혈검이 피로 화해 몸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피로 덮여 있던 것이 드러나듯, 성검이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
“신검합일.”
순백의 후광이 일었다.
어스름 수도회는 수많은 차원과 교류하는 3단계 문명이었으나, 신성존재는커녕 소속된 초월자의 숫자도 한 시대에 열을 넘지 못했다.
영혼을 키우는 것이 미덕인 문화권에서 최대한 재능을 개화시켜주어도 손에 꼽는 것이 초월자.
초월자였던 성녀의 카르마를 끌어내자 모두가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면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는 힘.
“이래서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선 쓸 수가 없단 말이야.”
성검 위로 순백의 검기가 치솟았다.
“강ㅅ……!”
사태가 심상치 않은 청원은 강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스킬이 발동되는 것보다도 먼저 그의 영혼이 잘려나갔다.
청원의 목이 잘림과 동시에 다나의 목에도 참격이 전해졌지만, 그 참격은 다나의 머리칼만을 목 언저리에서 잘라내는데 그쳤다.
잘려나간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끼며 후광을 받아 반짝인다.
단발이 된 다나는 말없이 청원에게 검을 겨눴다.
청원은 놀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알았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래. 누가 먼저 죽는지 어디 한번 해보자!”
생과 사의 사도.
청원 또한 목숨을 건 듀얼에서 물러날 성격이 아니었다.
검기가 난무했다.
다나는 청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상처를 입었다.
생사결.
상대를 공격할수록 자신도 다친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성녀의 카르마와 연결된 지금, 그녀의 영혼은 사도인 청원과 비할 바가 못 됐다.
육체의 상처?
그쯤은 마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의 상처는 달랐다.
청원이 생사결을 걸고 백 번을 고쳐죽어도 성녀의 카르마를 다 깎아낼 수는 없었다.
“뭐냐! 왜 안 죽는 거냐!”
“못 버티겠어?”
마침내 다나의 검기가 마지막 한줌 남은 청원의 영혼을 갈랐다.
“어떻게 사도도 아니면서 그런 힘을…….”
“거저 얻은 힘을 네 것이라 착각하지 마. 이게 원래 인간의 힘이니까.”
청원은 허망하게 쓰러졌다.
딱히 이상할 건 없는 일이었다.
사도는 원래 성좌에게서 직통으로 권능을 받아쓰고 있는 걸 빼면 하위 천사와 다를 거 없는 놈들이었다.
오히려 지구는 마법이나 카르마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1단계 문명이었기에 사도라고 해도 천사보다 약한 편이었다.
걱정해야 할 건 권능뿐.
성진의 존재를 숨겨야 할 필요가 없었다면 진작 남태수와 다나 두 사람의 힘으로도 세계정부를 엎어버릴 수 있었으리라.
이미 그 둘은 초월자의 영역에 걸쳐 있는 강자.
고위 천사가 상대라도 거리낄 것 없었다.
‘아직 놀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밀리아 란.
미와 사랑의 사도가 남아 있었다.
다나는 심안에 집중해 태평궁 근방을 살폈다.
이미 반경 수 킬로미터를 감지할 수 있는 그녀의 심안은 이내 사라졌던 밀리아의 머리통을 찾을 수 있었다.
툭.
늑대의 발이 떨어진 머리통을 짓이겼다.
콰직.
“강해졌음에도 여전히 허술하구나.”
풀려난 신시아는 야수화한 상태로 밀리아의 간을 으적으적 씹었다.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과, 실제로 싸울 수 있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 노력했구나.”
신시아는 청원을 쓰러뜨린 다나의 강함을, 그렇게 되기까지의 노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성좌에겐 안 돼.”
그리고 목표를 부정했다.
“고작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성좌에게 덤볐다간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남태수의 힘을 합친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그만하면 됐으니 이만 포기하렴.”
다나에게서 느껴지는 영혼의 크기는 분명 심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신성존재와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사도로서 침묵과 광기의 성좌를 마주한 적 있는 신시아는 고작 저 정도로 성좌와 대립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말로는 안 될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다나는 이미 신시아의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과 다나의 안위를 위해 사도가 된 거라면, 그만큼 성좌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때려눕혀서라도 데려가겠어.”
다나의 검이 그녀의 하나뿐인 가족을 향했다.
신시아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아플 테지만 참으렴. 그냥 예방주사 같은 거니까.”
신시아의 발톱이 그녀의 하나뿐인 가족을 향했다.
직후, 순백의 광채와 붉은 안광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