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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4화 (4/193)

4화

아딜로트는 움직이긴커녕 건드린 흔적조차 없는 주변 물건을 살핀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옆에서는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났고, 오후의 햇살은 부드러웠다. 반역은 해결했고, 가끔 옆 사람이 뒤척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주변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아딜로트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랜만의 깊고 평온한 잠이었다.

* * *

짹짹, 짹짹.

귓가에서 새소리를 감지한 순간, 미아는 불안을 감지했다. 그런 말이 있다. 아침에 너무 개운하게 잠에서 깨면, 그건 망한 거라고.

“……내가 언제 잤지!?”

미아가 벌떡 일어났다.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이치고 있었다. 옆을 보니 아딜로트의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미아가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대로 잘 수가 있어! 눈치를 백만 번 봐도 모자랄 판에!”

미아는 자신이 잠꼬대하진 않았는지, 잠결에 아딜로트를 발로 차거나 하진 않았는지 고민하다 괴롭게 신음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아딜로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흰색의 긴 토가를 입고 허리를 자수 끈으로 묶은 차림새였다. 갓 씻었는지 머리카락 끝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미아의 당황한 표정을 보곤 실소를 흘렸다.

“집 지킨다던 사람은 어디 가고.”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미아는 한참을 낑낑대다 구슬피 외쳤다.

“……개집이면 지킬 수 있었는데! 폐하 침대가 너무 푹신해서! 저를 아주 호강시켜 주시니까!”

“내 탓이야?”

“이제 끝났어요! 폐하 애완동물은 호강의 맛을 알아 버렸다고요!”

빨간 얼굴로 절규처럼 내지르는 말에 아딜로트가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그보다 준비하고 따라와.”

“……어디 가는데요?”

여전히 울상인 미아가 물었다. 아딜로트의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서늘한 미소였다.

“감옥.”

* * *

아딜로트는 미아를 데리고 황궁의 아주 깊은 곳으로 향했다. 마법과 주술, 기사들이 지키는 육중한 문을 몇 개나 지나쳤는지 모른다.

보안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벽의 횃대마저 사라졌다. 아딜로트는 작은 황동 촛대 하나만 들고 그 어둠을 성큼성큼 가로질렀다.

미아만 죽을 지경이었다.

“끄흑, 키히힉…….”

“흐억!”

“끄륵, 끄륵…….”

“히익!”

어디에선가 죄수들의 신음이 들릴 때마다 미아는 파들파들 떨었다.

“으, 흐어엉……. 엄마…….”

보다 못한 아딜로트가 한마디 했다.

“고작 소리인데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거야?”

“소리라 무서운 거예요! 뭐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 봐야 죄수뿐이야.”

“그, 그치만 사, 사, 살인귀가 갇힌 문이 살짝 열려 있다거나 하면 어떡해요…….”

“나라면 족쇄에 쇠공까지 차고 있을 사, 사, 살인귀보다 네 옆의 칼 든 남자를 무서워하겠어.”

“하지만 그 칼 든 남자는 좋은 사람이니깐…….”

그 말에 아딜로트가 걸음을 멈췄다. 미아도 덩달아 멈췄다.

“왜, 왜, 왜요!? 뭐 있어요!?”

그녀는 겁에 질려 아딜로트의 옷자락을 덥석 붙잡았다가, 자기 행동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그러고도 불안한지 분홍색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눈물에 젖은 눈이 애처롭게 빛났다.

아딜로트는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잡고 걷든가.”

“감사합니다!”

미아가 냉큼 아딜로트의 등에 달라붙었다. 미아의 손이 닿자 아딜로트의 등이 잠깐 움찔했으나, 그는 이내 태연하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선 계단을 돌아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횃불 여러 개가 밝히고 있는 공간을 간수 한 명이 지키고 있었다.

간수가 경례하자 아딜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죄수는?”

“안에 있습니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감옥 안쪽에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히, 히익.”

미아가 아딜로트의 등 뒤에 숨어 말했다.

“여, 여긴 왜 오신 거예요?”

“보여 줄 게 있어서.”

“저한테요?”

미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혹시 셀레스티얼 백작이 잡혔나?’

아딜로트가 말없이 턱짓했다. 미아는 아딜로트를 놓고, 조심스레 감옥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감옥 안에는 갈색 머리에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중년 여자가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미아의 입이 벌어졌다.

“……메어리?”

미아가 당장 감옥 창살로 달려갔다.

“메어리! 메어리 맞지!?”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메어리가 고개를 들었다. 곧 그녀의 눈이 미아와 마주쳤다.

“미아 아가씨……?”

피로만 가득하던 메어리의 낯에 서서히 당황과 반가움이 교차로 떠올랐다.

“아가씨세요……? 정말 제가 아가씨를 보고 있는 게 맞나요……?”

“메어리, 못 도망친 거야!? 왜 이런 곳에 있어!”

메어리는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하녀장이었다. 셀레스티얼 백작가가 망한 날, 미아는 일찌감치 그녀를 성 밖으로 내보냈다.

메어리는 눈물을 훔치며 미아가 무사히 살아남길 빌어 주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잘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메어리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험한 취급을 당한 게 분명했다.

“새벽에 잡혀 왔지.”

옆에서 아딜로트가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말했다. 미아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폐하…….”

“왜?”

“다…… 잡아들이신 거예요?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하인들 모두?”

“다는 아니고. 필요한 인원만.”

“저, 저 하나로는 안 되는 거예요……?”

아딜로트가 대답 없이 고개만 기울였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었다. 미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제 아버지의 반역에 가담했을 뿐이에요……. 제발, 선처를…….”

“내가 살려 주겠다고 한 건 미아 셀레스티얼, 너뿐이야. 게다가…….”

아딜로트의 예쁜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저들이 ‘억지로’ 반역을 도왔다고?”

비아냥대는 듯한 음성에 미아가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메어리 레만, 56세.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하녀장.”

아딜로트가 느른하게 말하며 메어리를 내려다보았다. 메어리는 뱀 앞의 쥐처럼 움찔하더니 그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뒤로는 사람을 납치해 팔아치우는 불법 조직의 단원.”

“네?”

미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딜로트의 말이 이어졌다.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반역을 도운 이유는, 황제 아딜로트가 선황제 루드비히와 달리 노예제를 불법으로 전환했기 때문.”

“…….”

“당연하지만, 성심성의껏 반역을 도운 주범이지. 틀린 거 있나?”

“큭…….”

메어리가 인상을 쓰며 이를 악물었다. 미아는 뻣뻣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메어리……. 정말 그랬어?”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던 메어리가 이내 눈을 부라렸다.

“……어쩔 수 없었어요!”

“뭐?”

“먹고 살기도 어려웠고!”

“하, 하지만 내가 패물을 챙겨 줬잖아. 평민들의 1년치 생활비였는데…….”

“그, 그건 사정이 있어서……!”

“노름빚.”

아딜로트가 노래하듯 말했다.

“도박에 손을 댔다가 판돈이 부족해지자 인신매매단에 제 발로 들어갔지. 그 돈으로 또 노름하고, 돈이 부족해지면 아이들을 납치하고, 또다시 노름하고.”

메어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메어리, 어떻게…….”

미아가 한 발짝 철창에서 물러났다. 메어리의 얼굴에 뒤늦게 두려움이 떠올랐다.

“살려 주세요, 아가씨!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저도 끊고 싶었는데, 중독이란 게 그렇잖아요……!”

메어리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야, 상대가 아딜로트 겐첸 슈뢰더였다.

젊고 오만한 이 황제는 반역자와 범죄자를 곱게 죽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아를 데리고 자신을 보러 왔다.

이 상황에서, 미아는 메어리의 유일한 희망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그 아이들은 원래 거리에서 부모 없이 살던 애들이에요! 어쨌든 집이 생기긴 한 거니까, 괜찮잖아요!”

미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훌쩍였다. 메어리의 애가 탔다.

‘이 계집애. 빨리 나 대신 빌어 달라고……!’

그녀는 노선을 바꿔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가 기억 상실 때문에 고생하셨을 때, 제가 많이 도와드렸잖아요. 기억나시죠……?”

“그건…….”

미아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분홍색 머리카락으로 입을 가리고서, 떨리는 눈을 내리깔았다.

“응. 알아……. 나 그때 메어리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야.”

미아가 소설 속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여긴 어디야……? 내가 왜 이런 곳에…….’

소설 속 세계는 힘들고 낯설기만 했다. 두고 온 가족과 고향이 떠올라 밤마다 운 적은 셀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미아는 살아남기 위해 공부했고, 일해야만 했다. 누구도 미아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도와주지 않으리란 것이 확실했다. 어쩌다 하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 뒤부터였다.

‘미아 아가씨, 깨어나신 뒤로 좀 달라지셨지?’

‘뭐가 됐든 전처럼 극단적인 선택만 안 했으면 좋겠어.’

‘하긴! 신관이 빨리 왔기에 망정이지, 그날은 정말 시체 치우는 줄 알았다잖아.’

‘몸이 안 좋으면 가만히 침대에서 뒤지길 기다리기나 할 것이지, 왜 포도밭까지 기어들어 가서 그 짓을 한 거래? 관심받고 싶었나?’

대화를 들은 미아는 원래의 ‘미아 셀레스티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일기장을 보자 그 추측은 더 확실해졌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전병을 앓고 있었고, 그녀의 일기장에는 긴 세월만큼이나 깊은 슬픔이 눌러 담겨 있었다.

그래서 하인들도, 셀레스티얼 백작도 달라진 태도에 아무 말 하지 않는 거였다. 죽었다 살아난 영애가 기억 상실에, 행동은 이상하고,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게 이상할 법도 한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미아에게 살가운 관심을 보여 준 건 아니었다.

셀레스티얼 백작은 출세욕만 많고 무능했으며, 셀레스티얼 백작 부인은 진작 병으로 세상을 뜬 상태였다. 친부인 백작이 그럴진대, 하인들이라고 미아에게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그 힘들었던 시절, 그나마 미아에게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 준 것은 메어리뿐이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기억을 찾으셔도 되고, 그러지 않아도 좋아요. 아가씨는 아가씨인 걸요. 이 메어리는 안답니다?’

미아는 그녀를 많이 의지했다.

“메어리가 꼭 엄마 같았거든…….”

과거를 회상하는 미아의 중얼거림에 메어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가씨……, 저도 아가씨가 꼭 딸 같아서 좋았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딜로트는 조용히 검을 뽑았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때때로 감정에 휘둘린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범죄자를 옹호한다거나,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치 그의 어머니처럼.

미아 셀레스티얼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이럴 줄 알았는데, 난 뭘 기대하고…….’

아딜로트가 메어리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철창 앞으로 다가간 순간이었다.

“근데 메어리…….”

미아가 속삭였다. 명랑하고 쾌활하던 평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딜로트가 자리에 멈춰 섰다.

“아가씨……?”

메어리 역시 이상함을 느끼곤 목소리를 낮췄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미아는 느리게 얼굴을 들었다. 그녀는 상냥하리만치 부드러운 몸짓으로 철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속삭였다.

“우리 엄마는 인신매매 같은 거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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