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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59화 (59/193)

59화

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바닥에 하트를 그렸다. 별 의미는 없고, 봐 달라는 애교였다.

“…….”

“……아딜?”

“아.”

잠시 멈칫했던 아딜로트가 헛기침했다.

“……그래?”

“네!”

그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고.”

그러고는 다정하게 말했지만, 눈빛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서늘했다. 그는 조금 망설이다, 미아의 귀 가까이서 속삭이기까지 했다.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건데.”

“……?”

“내가 다 죽일 수 있어.”

“…….”

폭군에게서 듣기엔 좀 무서운 말이다. 미아는 땀을 삐질 흘리며 할 말을 잃었다. 아딜로트는 그런 미아를 내려다보다 다시 몸을 떼어 냈다.

“그래서 안 덤비는 거야. 네 새 친구와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그 말에 미아는 두려움도 잊고 멍하니 아딜로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딜로트는 어쩐지 피로해 보였다.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삶은 대체 어떤 삶일까.

‘무섭진 않아. 오히려…… 안쓰러워.’

쉴 새 없이 주변을 경계해야 하는 삶이.

거기까지 생각한 미아가 부러 씩씩하게 외쳤다.

“걱정하지 마요, 아딜! 날 뭘로 보고! 지옥에 가서도 아득바득 살아남을 사람이라구요, 내가!”

“네 새 친구는 네가 살아남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을!”

가당찮다는 듯한 아딜로트의 반응에 미아가 씩 웃었다.

“제 새 친구는 할 줄 아는 게 많거든요!”

* * *

며칠 뒤.

“암, 암살자가 너무 많아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슬프게 울먹이는 율리시즈를 발견한 미아가 고개를 들었다.

“시즈, 안녕!”

미아는 침대에 누워 포도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태연하게 포도를 뇸뇸대는 미아를 보고 율리시즈가 재차 울먹였다.

“귀, 귀족들이 암살자를 자꾸 보내요……. 미, 미아 님이 뇌물을 먹고 튀었다면서…….”

“응, 고마워! 수고해 줘!”

“…….”

“난 그렇게 될 줄 몰랐지. 하지만 계약 내용이 그거잖아!”

“…….”

“힘내! 그러게 계약서에 누가 함부로 서명하래!? 좋은 경험 하나 했다고 생각해!”

율리시즈의 얼굴에서 점점 표정이 사라졌다.

‘이크. 너무 장난쳤나.’

미아가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농담이야. 안 그래도 언제 오나 싶었는데!”

“이, 이래 봬도 제, 제가 미아 님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잊으신 건 아니죠……?”

“아니? 나도 내내 생각은 했는걸!”

율리시즈가 못 믿겠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미아가 씩 웃었다. 아딜로트를 간호하며 내내 생각했었다. 원작 소설에 대해서.

‘그라스 후작은 원작에서도 딱히 몰락하거나 하진 않았어. 드러난 거라곤 몇 가지 가벼운 약점 정도…….’

그리고 미아는 그 ‘가벼운 약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야. 분명 숨겨진 게 더 있을 거야.’

사실, 그라스 후작을 책임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 정도는 지금도 아딜로트에게 말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민간 길드에 사업을 맡기는 것은 다르다. 이미 한번 나라의 손에 들어간 사업을 민간사업으로 돌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좀 더 기다려. 최적의 시기를 노려야지.”

미아가 중얼거렸다. 율리시즈가 잠깐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허튼 생각을 하면…….”

“계약서는 내 목도 날릴 수 있잖아? 잊지 말아 줘.”

“……좋아요.”

또다시 미아에게 말리고 만 율리시즈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 몇 걸음 물러났다.

“그래서 내가 부탁한 정보는? 세레니티 듀레인이 살던 마을과, 잭 아저씨 말이야.”

미아가 하품을 하고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아, 아하. 그거요…….”

율리시즈가 뺨에 홍조를 띠더니,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당사자인 세레니티 님에게 묻지는…… 않으시네요.”

미아가 멈칫했다.

‘세레니티 님?’

묘하게 존경심이 엿보이는 단어다. 미아는 일단 기억해 두기로 하고, 모르는 척 대화를 이었다.

“그 좋은 ‘율리시즈’ 놔두고 굳이 물어볼 필요 없잖아?”

“흐, 흐음…….”

율리시즈의 의미심장한 시선에 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아, 아니에요……. 황제나 세레니티 님을 위하는 것치곤…… 그들에게 거리를 두는 게 확실해서, 신기해서요.”

미아가 멈칫했다.

“내가?”

“네.”

미아의 분홍색 눈이 당황으로 물든 것을 지켜보던 율리시즈는 쌕 웃었다.

“뭐, 저는 관계없지만요…….”

“…….”

“그래서 그 정보 말이죠……. 재밌던데요…….”

“변태같이 웃지 말고 말이나 해 줘.”

“…….”

“빨리!”

“좋아요. 이름은…… 잭 와인더.”

미아가 눈을 부릅떴다.

‘저는 잭 와인더입니다. 아주 오래전…… 황태자 저하를 모셨습니다.’

소설 속의 그 사람이 확실했다.

“그래서? 어디 있는데?”

“그 사람은…….”

율리시즈가 아주 느리게, 미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죽었어요.”

미아의 사고가 멈췄다. 그녀가 가까스로 얼어붙은 입을 열었다.

“……뭐?”

“죽, 죽었어요, 이미.”

“어째서? 설마 황태후가?”

미아의 질문에 율리시즈가 고개를 갸웃했다.

“크, 크리소르가 여기서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그, 그냥 자살이에요.”

“자살……?”

미아가 충격에 빠졌다.

‘원작과 달라. 대체 왜?’

말이 없어진 미아를 두고 율리시즈가 이어 말했다.

“에, 에트루리나 철광산을 두고 미로미스 상단과 힘겨루기를 하던 상회를 기억하시나요……?”

“호흐실트 후작의 세빌 상회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페룸 상회?”

“페, 페룸이에요……. 그, 잭 와인더라는 남자가 페룸 상회에 자기가 가진 돈을 전부 투자했는데, 상회가 망한 거죠…….”

문득 미아의 뇌리에 세레니티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미안해요, 미아. 하지만 이건 미아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미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세레니티는 알고 있었던 거다. 잭 와인더가 미로미스 상단에게 밀려난 페룸 상회 때문에 죽었다는 걸.

‘이래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구나.’

어쩐다?

미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잭 아저씨’를 찾으려 한 건 미래를 위해서였다. 암암리에 아딜로트가 받고 있는 황태자 살해 의혹을 벗겨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아딜로트의 측근도 아닌 일반인. 같은 대중을 상대로 가장 좋은 패였는데.’

하지만 원작과 달리 ‘잭 아저씨’는 죽었다.

‘잠깐, 설마?’

약간 초조함을 느낀 미아가 율리시즈를 향해 말했다.

“혹시 몇 가지만 더 조사해 줄 수 있어?”

율리시즈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고개를 기울였다.

“율리시즈의 정보료는 비싼데요…….”

“알아. 돈을 바라는 게 아니지?”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서도 그랬다. 정보 길드 ‘율리시즈’는 정보료를 돈으로만 받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렌이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지.’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뭘 원해?”

“…….”

율리시즈의 다갈색 눈이 더 가늘어졌다. 이제 그 눈은 고목나무의 갈라진 틈처럼 보였다.

“그럼…… 반지를 주세요.”

“뭐?”

“그 루비 반지요…….”

율리시즈가 소매를 흔들거리며 미아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건…….”

미아는 당황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아딜로트가 주었던 루비 반지.

항상 끼고 있다 보니, 이제는 제 몸의 일부분 같았다.

“이, 이거 비싼 건데…….”

“그렇다곤 해도 못 살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렇죠?”

“그야…….”

“셀레스티얼 백작가를 일으켜 세웠던 분이라면, 솔직히 금방 다시 벌 수 있는 돈이고요…….”

율리시즈가 속삭였다. 그 말이 맞았다. 비싸긴 해도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마법이 걸려 있긴 하지만……. 좋아요. 비슷한 새 반지를 가져다드릴게요. 황제에겐…… 잃어버렸다고 하시면 되겠네요.”

“…….”

정보료라고 생각하면 싼값이다. 어차피 정보원이 필요하기도 했고, 율리시즈는 최고급 정보원이다.

‘고작 반지 하나로 거래할 수 있다면 이득이야.’

그걸 알면서도 미아는 망설였다.

한참 뒤, 그녀가 답했다.

“……그래도 이건 안 돼.”

혼란스러운 얼굴의 미아를 바라보던 율리시즈는 고개를 귀엽게 기울였다.

“엄청 비효율적인…… 선택인 거 아시죠?”

“……알아.”

미아가 시선을 피했다. 율리시즈는 소리 내어 웃었다.

“좋아요……. 계약으로 이어진 인연이니, 특별히 외상으로 해드릴게요.”

“……고마워.”

“별말씀을요…….”

“하는 김에 무이자로 해 줘.”

“…….”

* * *

얼마 뒤, 율리시즈가 갖다 준 정보를 내려다보며 미아는 경악했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못 쓰게 됐잖아!”

황태자 살해 의혹을 벗겨 주었던 잭 아저씨는 자살했다.

아딜로트의 선한 성품을 널리 알렸던 거리의 꼬마는, 부모가 미로미스 상회에 투자했던 것이 대박이 나서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딜로트 덕에 목숨을 구했던 신문사 기자는 셀레스티얼 백작가의 부흥을 조사하다 어느 귀족가 아들과 눈이 맞아서 은퇴했다.

전부 그런 식이었다.

“왜 바뀌라는 건 안 바뀌고!”

원작에서 렌이 아딜로트의 오해를 풀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들이 전부 사라졌다. 이대로는 아딜로트는 평생 손가락질이나 당하며 살 터였다.

‘게다가 묘하게 전부 내 탓 같기도…….’

잠시 멈칫한 미아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렀다.

‘아, 아무도 모르니까 괜찮아!’

빠르게 자기 합리화를 마친 미아가 생각을 돌리며 외쳤다.

“그치만 아딜 평판 생각보다 괜찮지 않나!?”

미아가 보기에 아딜로트는 애초에 깔 게 없었다.

잘생기고.

일 잘하고.

젊고! 몸 좋고! 키 크고!

슈뢰더 황가 적통인데!

우리 애가 어디가 문제라고!

‘그래! 어쩌면 내가 안 나서도 해피 엔딩으로 잘 굴러갈 수도!?’

거기까지 생각한 미아는 결심했다.

‘밖으로 나가자! 나가서 확인해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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