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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90화 (90/193)

90화

“반사 마법 브로치!”

미아는 세레니티가 뭘 묻고 싶어하는지 바로 눈치채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은 분주히 물병의 마개를 따서 시녀의 얼굴에 뿌리는 중이었다. 다급한 마음이 표정에서부터 느껴졌다.

뒤늦게 세레니티도 정신을 차리고 남은 물병의 뚜껑을 모두 따기 시작했다.

‘의료원에서 봉사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 이런 일로 충격을 받다니!’

세레니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아는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부석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너, 마부! 이리 안 와!?”

“히, 히익…….”

마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감을 눈치챘는지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미아가 눈을 부릅뜨고서 외쳤다.

“어서 안으로 옮겨줘! 시간 없어! 황궁으로 가야 해!”

“저, 저는 모르는……!”

“모르긴! 여기서 멈추라고 사주받았을 거 아냐! 너 이대로 도망간다고 정말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황실의 감찰부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 거야!? 차라리 그냥 도와주고 정상참작 받아!”

“흐……!”

“어서!”

미아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압적인 외침이었다. 마부는 그제야 헐레벌떡 힐데가르트의 시녀를 마차 안으로 옮겼다.

내내 시녀의 얼굴에 물을 뿌려 주고 있던 세레니티가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외쳤다.

“미아! 이런 상처는 신관이 아니면……!”

“괜찮아! 황궁에 대기 중일 거야! 마차! 황궁으로!”

“네, 넵!”

“흑, 으흑……!”

흐느끼는 시녀를 태우고 마차가 출발했다. 바퀴가 빠질까 염려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가는 내내 미아는 시녀가 진정할 때까지 환부에 물을 뿌려 주었다.

“들려? 지금 황궁으로 갈 거야! 아, 괜찮다니까! 침착해!”

그 모습을 보며 세레니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냉정한 판단과 빠른 일 처리. 한 번도 이런 심각한 환자를 본 적이 없을 텐데, 미아는 너무나도 능숙하게 상황을 주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반사 마법 브로치라니.

‘알고 있었던 거야.’

세레니티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대비해 놓았다고 해도 분명 무서웠을 텐데, 액체가 뿌려지는 순간 미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미아…….’

세레니티의 머릿속에는 바깥일에만 신경쓰던 아버지, 자신을 구박하던 계모와 의붓언니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 상황에서 미아 말고 가족들이 있었다면, 그들도 미아처럼 행동했을까?

세레니티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아니겠지.’

누구도 그 상황에서 미아처럼 자신을 보호해 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아는 달라.’

긴장한 얼굴로 시녀를 돌보는 미아의 모습 주변으로 광채가 흐르는 듯했다. 원래도 귀여웠지만, 오늘의 미아는 멋있기까지 했다.

부푸는 마음 속에서 마차는 빠르게 황궁 레벤토르에 도착했다. 궁에는 미아의 말대로 정말로 신관이 대기 중이었다.

“신관!”

“세상에, 이게 무슨……!”

신관이 정색하고, 환자가 옮겨지는 소란이 한참 있었다. 힐데가르트의 시녀는 상처 입은 금수처럼 흐느끼며 들것에 실려 나갔다.

“하아…….”

모든 걸 끝내고 나서야 미아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마른 등을 바라보며 세레니티는 울컥하고 말았다.

‘자기를 해치려 한 사람인데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선할 수 있을까.

세레니티는 주먹을 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다음엔 절대로 이번처럼 짐이 되진 않겠어.’

절대 미아가 보호해야 하는, 어깨 위의 짐으로만 남지는 않으리라. 그런 세레니티의 생각을 모른 채, 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려 놔야 어떻게든 써먹을 거 아냐!’

아무튼 이놈의 소설은 멀쩡한 놈이 없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미아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냈다.

* * *

힐데가르트의 시녀, 예니 푹스는 개인 병실로 이동했다. 미아가 미리 말해 둔 덕이었다.

놀란 세레니티를 쉬게끔 보낸 뒤, 미아는 바로 병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예니 푹스가 누운 채로 신관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응급처치가 빨라서, 다행히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관이 말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금빛이 예니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예니는 더는 고통스럽게 신음하지 않고 주먹을 꼭 쥔 채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렇게 순순히 치료해 줄 순 없지.’

예니의 얼굴이 반쯤 수복되었을 때, 미아가 손을 들어 신관을 제지했다.

“거기까지!”

“예?”

신관이 멈칫했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도 금빛이 사라졌다.

당황한 예니가 찰흙처럼 흘러내린 눈두덩이 아래의 눈을 크게 떴다.

“나머지는 죗값을 치른 다음에!”

미아가 쾌활하게 말했다.

신관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방글방글 웃고 있는 미아의 눈이 차가운 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손을 거둬 냈다.

“큼. 치료는 언제든 할 수 있으니, 나중에 일이 끝나고 불러 주시지요.”

“감사합니다!”

절망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예니를 외면한 채 신관은 슬금슬금 병실을 나섰다.

남은 건 예니와 미아, 둘뿐이었다.

“…….”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정적 속에서, 예니는 반쯤 패닉 상태로 미아의 작은 몸짓에도 집중했다.

그녀를 지배한 감각은 두려움이었다.

“안녕.”

그때, 미아가 경쾌하게 말했다. 그녀는 움찔한 예니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었다.

“이름이 뭐야?”

“예, 예니 푹스입니다!”

예니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지금 자신의 처우가 누구에게 달렸는지 깨달은 것이다.

미아는 그런 예니의 태도가 재밌다는 듯이 꺄르르 웃으며 그녀를 침대에 앉히고, 자신 역시 그 옆에 앉았다.

“그래, 예니……. 내가 왜 너를 도왔을 것 같아?”

꿀처럼 달콤하고 은근한 목소리가 예니의 귓가에 들렸다. 예니는 미아의 눈치를 보며 답했다.

“힐데가르트 아가씨에게…… 복수하시려고.”

“맞아.”

미아가 예니의 손가락을 잡으며 더 낮고 사랑스럽게 속삭였다.

“나는 예니를 구해 주고, 얼굴도 고쳐 주고, 그 비싼 신관까지 불러 줬어. 그럼 예니는 나한테 뭘 해 줘야 할까?”

미아의 분홍색 눈동자가 웃음기에 반쯤 접혔다. 끝이 사랑스럽게 휘어지는 눈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무정함을 발견한 예니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제, 제가 복수를 도와드리면…… 될까요?”

“예니는 똑똑하구나!”

미아가 상황에 맞지 않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천연덕스러움에 예니는 더 공포에 질렸다.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다고…….’

솔직히 말해서 예니는 미아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아양을 잘 떨어 황제에게 총애 받는 계집.

딱 그 정도였다.

살롱에서도 미아는 그저 새실새실 웃고 다닐 뿐이었기에, 심계를 꾸밀 만한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레기아 용액을 뿌리라는 힐데가르트의 명령에도 기꺼이 응했던 거였다.

‘그랬는데…….’

잘못 보고 있었다.

예니는 그제야 미아가 왜 그렇게 잘 웃고 다녔는지 깨달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값비싼 신관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일이든.

황제에게 부탁해 사람 목을 치든 것이든.

남의 계략을 역이용해 그 수족을 쳐내는 일이든 말이다.

미아가 예니의 귓가에 속삭였다.

“물론 넌 속이 어떻든 힐데가르트를 배신하겠다고 말하겠지? 그건 현명한 선택이야! 난 네가 거절하는 순간 널 죽일 거니까.”

“흐읍…….”

“그래도 난 기왕이면 네가 배신하지 않았으면 해. 나 말고…… 널 위해서.”

몸을 덜덜 떠는 예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미아는 계속해서 천사의 얼굴로 악마 같은 내용을 속삭였다.

“내가 어떻게 물을 준비했겠어? 난 릴레 후작가의 내부 사정까지 알고 있어. 이 일이 아니더라도 힐데가르트는 무너져. 좋게 제안할 때 수락해.”

“…….”

“수락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슬퍼서 너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거든.”

그 최후통첩에 예니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말이 맞아. 그렇게 많은 수의 물병이, 마차에? 분명 뭔가 알고 있었던 거야.’

이번 일은 정말 비밀리에 이루어진 계획이었다. 힐데가르트의 최측근 시녀인 자신에게만 특별히 내려진 명령이기도 했다.

그걸 이 먼 황궁에서 간파했을 정도라면…….

‘그걸 어떻게 이기냐고……!’

예니가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리고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아가씨……?”

* * *

예니가 돌아간 뒤.

가장 먼저 들이닥친 건 아딜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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