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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94화 (94/193)

94화

“다 거짓말이에요! 예니는 지금 미아 셀레스티얼과 손잡고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깐 자기 시녀랑 가족 같은 사이라고 본인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읏……!”

누군가의 예리한 지적에 힐데가르트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그래 봐야 평민이고 시녀예요! 저 말을 믿으시나요? 저는 릴레 후작가의 사람이에요! 제가 거짓말을 할 리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 그래요! 미아 셀레스티얼, 저 계집애가 예니를 꾀어낸 거야! 나를 모함하라고 시킨 거라고요!!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을……!”

그 순간, 예니가 말했다.

“증거라면 있어요.”

힐데가르트가 눈을 홉뜬 채, 뻣뻣하게 예니를 돌아보았다.

“뭐……?”

예니는 차분하게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간 아가씨의 악랄한 명령을 적은 수첩이 있거든요.”

* * *

힐데가르트의 얼굴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하얗게 질렸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미아 역시 놀랐다.

원작에서 예니 푹스는 세레니티를 해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힐데가르트와 함께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그래서 저런 수첩이 있다는 이야기는 미아도 전혀 알지 못했다. 굳이 저런 수첩을 작성한 이유는 뻔했다.

‘예니 역시 앞뒤가 다른 힐데가르트를 믿지 못했구나.’

미아가 한 일이라고는 예니 푹스를 살려서 이용한 것뿐이다. 그런데 도미노처럼 힐데가르트가 쌓아 온 모든 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게 마음 좀 곱게 쓰지!’

미아가 안타까운 눈으로 상황을 관망했다.

“예, 예니. 그러지 마. 예니!”

“일단 헤르타 자머 양에게는 머리카락에 입히는 향을 전달하라고 하셨고요. 그것도 수은을 섞어서!”

“뭐, 뭐라고요!”

“수은?”

이 자리에 수은이 증기로 들이마시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예니!!”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폭로에 힐데가르트가 득달같이 예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예니는 빠르게 사람들 사이로 피하며 외쳤다.

“엘리제 보데 양에게는 피부에 바르는 용도의 진주 가루를 전달하라고 하셨죠! 납을 섞어서 말예요!”

“허……!”

“세상에……!”

납은 중독 시 언어 장애나 피부 괴사를 유발하기에 절대 화장품으로 써서는 안 되는 성분이었다.

명백히 범죄였다.

‘이런 방식으로 남들의 외모를 망쳐 왔구나.’

미아조차 그 지독함에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흥미진진하게 구경 중이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어쩐지 엘리제가 시름시름 앓더라니!”

“그러고 보니 나도 힐데가르트 양에게 받은 장미수를 쓰고 나서 피부가 망가졌어요!”

“저도요! 최근 손 떨림이 심해졌는데 설마……!”

“저, 저는 제가 말을 더듬게 된 게 병인 줄 알았는데!”

그제야 이 사태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눈에 칼을 세우고 힐데가르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전부 거짓말이야…….”

힐데가르트는 턱을 덜덜 떨며 그렇게 중얼거리다 쥐어짜듯이 외쳤다.

“하, 하지만 바람은 확실하잖아! 그건 확실하다고!!”

“그것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 난데없이 요제프 크네히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기 몸통만 한 분홍색 꽃다발을 든 채 짧고 파란 망토를 등 뒤로 넘겼다.

“왜냐하면 미아 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저와 사적인 만남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도도하시죠!”

“…….”

싸늘해진 분위기 사이에서 요제프가 미아에게 윙크했다. 미아는 다시 칼을 찾고 싶어졌다.

‘그래도 증언은 고마우니까 반은 살려 둘까. 세로로 반쪽만.’

완전히 분위기가 뒤집힌 와중,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저, 저도 드릴 말씀이 있어요…….”

주목을 받으며 걸어 나온 것은 겁먹은 얼굴의 영애였다. 일전에 헤롯 자작가의 티 타임에서 미아에게 사과했던 카린 슈미트였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리, 릴레 양은, 제게 미아 님과 세레니티 듀레인 양을 험담하고 다니라고 시키신 적이 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몇 사람이 더 앞으로 나섰다.

“사, 사실 저도 그 명령을 받았어요.”

“실은 저도, 미아 님을 더, 더럽다고 욕하고 다니라고…….”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죄책감 어린 눈으로 미아를 바라보았다.

“힐데가르트 양은 릴레 후작 영애니까…… 그녀의 말을 거절할 순 없었어요. 그, 그리고 저도 소문만 믿고 미아 님을 오해했고요……. 하지만 듀레인 양의 설득으로,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힐데가르트는 얼이 빠진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미쳤어……?”

“잘못을 바로잡는 거예요.”

“릴레 후작가가 두렵지도 않아!?”

힐데가르트가 사납게 외쳤지만, 영애들은 각오가 빛나는 눈으로 미아를 향해 말했다.

“죄송해요, 미아 님.”

“……아. 음.”

미아는 당황으로 입술을 내민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자신을 변호해 주고, 자신에게 사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렌……. 얼마나 나를 추켜세워 놓은 거야……?’

옆에 있는 세레니티를 슬쩍 넘겨보자, 그녀는 자신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가슴이 조금 뭉클했다. 세레니티가 그동안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변호하고 다녔을 모습이 떠올라서.

게다가 지금 나선 영애들에게서는 미아가 황제의 비호를 받는 애완동물이라서 잘 보이겠다는 속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수한 개과천선.

‘여자주인공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이런 건.’

어쩐지 긴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으며, 미아는 힐데가르트를 돌아보았다.

힐데가르트는 얼이 빠진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힐데가르트에게 혐오의 시선을 보내며 쑥덕거리는 게 보였다.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고결한 성녀 이미지는 날아가 버린 셈이었다.

게다가 예니의 수첩이 공개되었으니, 릴레 후작가는 다른 귀족들에게 보상까지 해야 하리라.

“말도 안 돼……. 이럴 리 없어…….”

그때, 힐데가르트가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럴 리 없다고……. 저 별 볼 일 없고 더러운 것 때문에 내가……!”

실성한 것처럼 중얼거리던 힐데가르트는 별안간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너 때문에!!!”

그녀는 곧 귀신처럼 울부짖으며 미아에게 달려들었다. 그 손에는 어느새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꺄악!”

“피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고, 미아가 기겁해 팔로 얼굴을 가렸다.

“미아!”

그 순간, 세레니티가 미아를 끌어안았다. 가려진 틈 사이로 세상이 주마등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그리고 미아는 보았다.

픽.

어딘가에서 익숙한 비수가 날아와, 힐데가르트의 드레스를 꿰뚫고 바닥에 꽂히는 것을.

‘―율리시즈!’

“악!”

중심을 잃은 힐데가르트의 무릎이 꺾였다.

“어어……!”

“세상에! 저기 봐요!”

그 바람에 그녀가 들고 있던 것은 모조리 힐데가르트 자신에게로 쏟아졌다.

“아아악!”

곧 힐데가르트의 비명이 사위를 갈랐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사람들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물 가져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미아였다.

미아의 외침에 시종들이 부랴부랴 물을 들고 와 힐데가르트에게 끼얹었다.

몸부림치던 힐데가르트는 한참 뒤에야 들것에 실려 빠져나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었다.

* * *

힐데가르트 릴레가 빠져나간 볼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힐데가르트가 더는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렌. 나 이제 괜찮아.”

“미, 미아…….”

미아는 꼼지락거리며 여전히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세레니티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울상을 짓고서 미아를 내려다보았다.

“괘, 괜찮은 거죠?”

“응.”

뭔가를 더 말하려던 미아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왜 자신을 끌어안았냐거나.

너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거나.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거야말로 세레니티가 늘 자신에게 해 오던 말이었으니까.

‘이런 기분이구나?’

감동적이지만 그러지 않아 줬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세레니티의 진심이 느껴졌다. 미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세레니티를 향해 미소 지었다.

“고마워.”

“……천만에요.”

세레니티 역시도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이제 다 끝났으니, 우린―”

“악독한 여자 같으니!”

그때, 미아의 말을 가르고 누군가 외쳤다.

‘하. 저놈이 있었지!’

미아가 징그러워 죽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요제프 크네히트가 꽃다발을 들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미아 님! 괜찮으십니까? 저런 악랄한 여자 때문에 이런 고초를 겪으시다니!”

“…….”

“하지만 이로써 저희 사이에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안되는데. 있어야 하는데.

미아가 질린 얼굴로 물러났으나, 요제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저는 여기 있는 모두를 증인 삼아! 미아 님께 청혼하고자 합니다!”

“……시, 싫어!”

“미아 님! 제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싫다니까!”

그 순간.

“미아.”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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