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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23화 (123/193)

123화

마차는 다르켈 시의 공관으로 향했다.

“저흰 관료들이 증거를 은폐하기 전에 상황을 파악해야 하니 미아 님은 먼저 방에 가 계십시오.”

요아힘은 그렇게 미소 짓고는 아딜로트와 함께 곧장 영주를 만나러 갔다. 안전상 미아는 공관 옆에 따로 마련된 별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심심할 수도 있었지만 미아는 마냥 신났다.

‘축제는 역시 밤 축제지!’

그렇게 한두 시간을 기다렸을까. 아무리 그래도 혼자 있기 적적해진 미아가 빼꼼 문을 열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 반색했다.

“켄달 경!”

문 앞에는 골든 래트리버를 닮은 갈색 더벅머리 기사가 경계를 서고 있었다.

“미아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프리 켄달 역시도 웃으며 미아에게 경례했다. 일전에 미아가 ‘발라뒤르 클럽’에 페르디안과 함께 잠입할 때 도움을 주었던 기사였다.

“이런 데서 뵙네요!”

미아가 쪼르르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예. 어쩌다 제가 이쪽에 배속되었습니다.”

“이쪽이요?”

“아. 모르셨습니까? 폐하가 이동하실 땐 늘 가짜 마차를 여러 대 준비해서 출발시킵니다. 호위 인력들도 자기가 진짜 폐하를 호위 중인지 알지 못합니다.”

“와…….”

어쩐지 황제의 행렬치고는 좀 허술하지 않나 싶었는데 그런 페이크가.

켄달 경은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암살 대책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생각보다 말재간이 좋았고, 덕분에 미아는 순식간에 심심함을 잊었다.

그러다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켄달 경이 주변을 살피더니 낮게 물었다.

“그날 <발라뒤르 클럽>에 가신 걸 들키진 않으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다행입니다. 들키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요? 왜요?”

켄달 경이 얼굴을 흐렸다.

“부단장님의 훈련이 평소보다 더 고됐습니다…….”

“…….”

붉은 사자 기사단의 부단장은 바이지겔 백작. 그녀가 한바탕한 모양이었다.

미아가 켄달 경의 어깨를 토닥였고 켄달 경은 몇 번 우는 척하더니 이내 씩 웃었다.

“괜찮습니다. 기사에겐 이쯤은 일도 아니죠.”

제법 잔망스러운 표정에 미아가 까르륵 웃었을 때였다.

“저…….”

사실은 내내 뭔가 다른 말이 하고 싶은 것 같던 켄달 경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그 일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만.”

“응? 뭔데요?”

망설이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로 단장님께서 미아 님께 허튼짓하신 것은 아닙니까?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전혀 아니에요! 페르는 그럴 성격이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켄달의 안색이 흐려졌다.

“단장님이 뭘 잘못 드시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 데다, 그때 미아 님도 함께 계셨고…….”

“음음…….”

미아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처럼 칼 같았다고 변호해 주고 싶지만 역시 페르가 멍청한 짓을 한 게 맞지.’

미아의 미진한 반응을 보고 켄달은 숨을 삼켰다.

“……정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뇨! 그냥 약간! 진정할 수 있게 도와줬을 뿐이에요!”

“도와…… 주셨다고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켄달의 얼굴의 파랗게 질렸다. 그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침통하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역시 그런 위험한 곳에 가시겠다는 걸 말렸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비장한 반응이?

“아니에요. 제가…….”

미아가 급하게 손을 내저었을 때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뒤쪽에서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아와 켄달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아딜로트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하고서 서 있었다.

“페르가 뭘 했다고?”

* * *

에트루리나 광산 개발 사업을 총지휘하는 다르켈 시.

관료들은 갑작스러운 황제의 등장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라스 후작의 입김 때문인지 그들은 광산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숨기려 했다.

번거로운 게 귀찮았던 아딜로트는 한숨을 쉬고는 칼의 마법을 부렸다.

감찰부의 보고에 따라 그 자리에서 가장 비리가 심한 자의 목을 치는 것으로, 사용하면 주변이 조용해지는 마법이다.

예상대로 지지배배 떠들던 이들이 조용해졌다. 그사이 요아힘은 그들이 미처 폐기하지 못한 서류를 찾아냈다.

‘아무래도 저는 오늘 이쪽을 맡아야 할 듯합니다.’

요아힘은 그렇게 말하며 공관에 남았다. 알아서 잘할 것이다. 요아힘은 그 정도의 인재니까.

‘내 역할은 정탐 쪽인가.’

보통은 황제가 머리가 되지만, 아딜로트 자신의 무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이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번처럼 적은 수로 이동한 경우엔 더 자주 그랬다.

아딜로트는 마차를 타고 오며 보았던 거리를 떠올렸다.

축제의 열기로 가리려 애쓴 듯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뒷골목에서 빈민들이 죽은 눈으로 옹송그리고 있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에트루리나 광산에서 일하며 빈민 구제책의 지원을 받아야 했을 이들이었다.

‘할 일이 많겠군.’

오지 않았다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일. 전부 미아의 덕이었다. 그렇기에 요아힘도 오늘은 군말 없이 자신을 보내 준 것이리라.

기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아딜로트는 별채에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으려나.’

미아를 떠올리자 속이 복잡해졌다. 자신과 미아의 방이 있을 최상층으로 향하는 걸음은 더 빨라졌다. 내내 참고 있던 조급함이 올라왔다.

그는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정말로 짜증이 났다.

그녀는 대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시즈라는 놈에 이어 페르디안까지. 전부 쓸데없이 눈이 높은 놈들뿐이다.

그때쯤 아딜로트는 최상층에 다다랐다.

“저…… 안 그래도 그 일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만.”

“응? 뭔데요?”

미아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쪽은 기사인 듯했다. 그때까지 아딜로트는 빨리 저놈도 보내 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정말로 단장님께서 미아 님께 허튼짓하신 것은 아닙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단장님이 뭘 잘못 드시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 데다, 그때 미아 님도 함께 계셨고…….”

“아뇨! 그냥 약간! 진정할 수 있게 도와줬을 뿐이에요!”

“…….”

반 계단 아래에서, 아딜로트는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착실히 대화를 짜 맞추었다.

모든 것이 이해되었을 땐, 아딜로트의 입에서 칼날 같은 목소리가 튀어 나간 뒤였다.

“페르가 뭘 했다고?”

아딜로트의 등장에 미아와 기사 제프리 켄달이 동시에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심증을 확신으로 굳혔다. 이상하게도 확신은 들었는데 그의 내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발라뒤르 클럽인가.”

움찔.

미아가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그 와중에 그녀가 제프리 켄달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 아딜로트는 헛웃음 쳤다.

“거기에 네가 함께 갔다고? 세레니티 듀레인과 파자마 파티를 한 게 아니라?”

“그, 그게…….”

“그럼 그날 밤 페르디안과 둘이 있었나? 그것도 페르디안이 뭘 잘못 먹은 상태에서?”

“폐하.”

기사가 다급하게 앞으로 나섰지만 아딜로트는 눈빛 한 번으로 그를 제자리에서 멈춰 서게 했다.

“제프리 켄달 경. 경을 탓할 생각은 없으니 물러나.”

“하지만.”

“두말하지 않는다.”

“폐……!”

“그, 그냥 가세요…….”

그때 미아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기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제법 친근해 보이는 동작에 아딜로트의 심기가 한 번 더 뒤틀렸다.

“…….”

기사 제프리 켄달은 불안한 눈으로 미아와 아딜로트를 번갈아 보았지만, 이내 말없이 경례하고 물러났다.

‘불민한 눈.’

물러나는 기사의 표정을 살핀 아딜로트는 빠르게 허리춤의 단검을 움켜쥐었다.

‘주제도 모르고.’

그러나 다음 순간 보드라운 것이 그의 손등을 덮었다.

미아의 손이었다.

“페, 페르가 위험해질 것 같다는 정보를 들어서…….”

미아는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강아지처럼 처진 눈이 울상 지었다. 평소 같았다면 그 애처로운 모습에 바로 화가 풀렸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페르디안 키토는 기사야. 그 정도도 각오하지 않았을 것 같아?”

“…….”

미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게다가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나, 나 방해 안 했어……. 그, 그리고 그냥 연기를 도왔…….”

“……연기?”

아딜로트가 기가 차다는 듯이 실소했다. 나오는 말마다 청천벽력이었다.

“그, 그냥 연인처럼…….”

“…….”

“시, 시늉만…….”

“…….”

시늉.

“하.”

짧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연인 시늉.

아딜로트 자신이 미아와 하던 바로 그것 아닌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말해.”

아딜로트가 짓이겨지는 심장을 내색하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에도 잇새 사이로 흘러나온 낱말에는 분노가 서렸고, 미아는 더 움츠러들었다.

“내, 내가 철없는 귀족 영애인 척 했어. 페르가 의심받고 있어서, 내가 페르를 억지로 거기에 데려간 것처럼…… 연기했어.”

“그리고.”

“…….”

“해서?”

“방에서 잠깐 쉬는 척을…….”

“…….”

그때부터 아딜로트는 미아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페, 페르가 알고 마신 것도 아니고, 나한테 손도 안 댔어! 그냥 내가 무릎베개를…….”

전부 그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미아는 페르디안이 질책받을까 봐 걱정인지 그가 얼마나 기사도를 지키려 애썼는지 변호하기 바빴다.

“…….”

아딜로트는 뭐든 좋으니 다 부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물론 미아는 많은 이들에게 다정했다. 특히 몇몇 사람에게는 유난히 사근사근하기도 했다. 페르디안도 그중 하나인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늘 자신에게 가장 활짝 웃어 주었으니까.

‘조금쯤은 특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심장이 땅밑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대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미아를 어쩌고 싶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날 좋아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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