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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27화 (127/193)

127화

다르켈 시의 축제는 한 방향으로 길게 이어졌다.

끝부분에 이르면 인적이 드문 시 외곽이 나왔기에 사람들은 적당히 중간에서 돌아가곤 했으나, 미아는 아니었다.

미아는 축제를 전부 즐길 각오로 꿋꿋이 끝까지 향했다. 가판대와 노점상을 지날 때마다 기념품을 쓸어모아 주머니가 불룩해지는 건 덤이었다.

그리하여 건물도 많지 않은 빈 공터에 이르자 그녀는 그제야 벤치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흐어어…….”

미아가 손바닥을 파닥거리며 얼굴을 식히고 있자, 곧 아딜로트가 산더미 같은 길거리 음식을 들고 돌아왔다. 마지막 재고인 듯했다.

“진짜 이걸 다 먹겠다고?”

“응! 먹을 건데?”

“도마뱀이랑 전갈이 섞여 있는데.”

“단백질은 몸에 좋아!”

미아가 눈을 반짝 빛내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 힘내든가.”

아딜로트는 미심쩍은 눈으로 사과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와!”

미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짜 먹어 보고 싶던 거였어!”

축제라 하면 결국 길거리 음식 아니겠는가. 물론 구경도 좋지만.

그중 사과에 설탕물을 입혀 굳힌 사탕은 미아가 정말 먹어 보고 싶던 거였다.

“달아!”

“달겠지.”

“아하하!”

미아가 소리 높여 웃었다. 전생을 포함해 태어나서 이렇게 신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서커스도 재밌었고, 마술쇼도 재밌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몇 번이고 인파에 섞여 흘러갈 뻔해 마지막엔 결국 아딜로트가 구해 줬지만.

“재밌었어?”

옆에 앉은 아딜로트가 물었다. 오늘따라 유독 그의 표정도 부드러웠다. 턱을 괴고 앉아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미아는 괜히 전갈 꼬치 뒤로 얼굴을 숨겼다.

“엄청 재밌었어…….”

이런 별거 아닌 일에 신나 한다고 촌스럽게 보면 어떡하지.

하지만 걱정과 달리, 전갈 다리 사이로 아딜로트가 살짝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그럼 다음에 또 와야겠네.”

“…….”

오늘따라 왜 이리 친절하지?

미아가 문득 축제에 오기 전, 아딜로트가 했던 말을 떠올리려고 할 때였다. 아딜로트가 들고 있던 군것질거리를 살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지 않나?”

“응? 그거 다 먹을 건 아냐. 반은 요아힘 줄 거야.”

무심코 대답하며 미아가 순진한 얼굴로 웃었다.

“…….”

그 순간 아딜로트가 멈칫하더니, 미아의 손에 들린 달 모양 튀김을 덥석 물었다.

“아! 먹지 말라고! 아! 아!”

황당해진 미아가 그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지만 소용없었다. 아딜로트는 꿋꿋이 남은 군것질거리를 먹어 치웠다.

“요아힘은 뭐 먹고 살라고!”

미아가 울상을 지은 채 외쳤지만 그는 태연히 엄지로 입가를 문지를 뿐이었다.

“요아힘은 이런 거 안 좋아해. 하도 많이 먹어 봐서.”

시큰둥한 음성을 들은 미아가 멈칫했다.

“많이 먹었다고?”

난꽃에 맺힌 새벽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사람인데.

아딜로트는 큰 비밀도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요아힘이랑 처음 만난 건 달타이 산맥에서였으니까. 요아힘은 라지푸트에서 도망친 상태였거든. 음식 가릴 처지였겠어?”

“아…….”

때마침 떠오르는 게 있었다. 징병을 거부했다는 말.

‘라지푸트의 징병을 거부했다는 뜻이구나.’

병무청의 압박 때문에 국경까지 넘다니. 무시무시한 세상이군.

“그런 거 알려 줘도 돼?”

“황제인데 뭐 어때.”

“그치만 요아힘 사정이고…….”

“…….”

아딜로트는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붉은 눈이 뭔가를 회상하는 듯하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아마 본인도 된다고 할걸.”

“……?”

이유는 모르겠지만 목소리에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권태기인가? 끼어들지 말아야지.’

미아는 얌전히 전갈의 마지막 다리를 뜯어먹었다.

‘전갈은 쓰구나.’

그보다 정말로 일이 바쁘긴 한 것 같던데, 여기 나와도 괜찮은 걸까.

미아가 아딜로트를 흘끔거렸다.

희미한 거리의 불빛이 드리워진 얼굴은 수려했다. 동시에 속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미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딜로트가 눈동자를 움직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움찔.

무심하게 허공을 보던 붉은 눈이 자신을 향하며 희미하게 웃음기를 머금는 것을 본 미아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요! 요아힘 혼자 일하고 있을 게 걱정돼서…….”

“알아서 잘하겠지. 요아힘인데.”

“……그건 그러네.”

원작에서도 그라스 후작은 작은 비리로 세가 줄었다고 했으니, 요아힘이라면 무난히 증거를 찾아낼 터였다.

‘문제는 호흐실트 후작인데.’

율리시즈도 호흐실트 후작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라지푸트가 엮인 문제라면 그가 그 정도로 깔끔하게 흔적을 처리한 것도 이해가 갔다.

들키는 순간 최소 사형이니까.

‘근데 호흐실트 후작이 라지푸트와 무슨 연이 있어서 그쪽에 줄을 댄 거지?’

원작에서는 호흐실트 후작의 이야기가 없다시피 했다. 좀 의뭉스럽긴 해도, 그저 우리 편인 조연에 불과했던 걸로 기억한다.

세레니티가 여기 에트루리나 지역에 도착해 에트루리나의 철광석에 대해 알게 되는 에피소드에서도 그는 이름 한번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원랜 무슨 일이 있어야 했더라?’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대로라면, 세레니티는 여기서 에트루리나의 철광석을 둘러싼 이권 경쟁에 어쩌다 휘말려야 했다.

그러다 가동이 중지된 제철소에 갇히기도 하고.

거기서 우연히 그 경쟁을 끝낼 비밀 서류를 찾기도 하고.

그리고 폐광이었던 에트루리나 광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기도 하고.

미아가 빙의하자마자 셀레스티얼 백작을 독촉해 에트루리나 땅을 샀기에 이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때, 뭔가가 미아의 볼을 눌렀다.

“…….”

꾹. 꾹.

미아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옆을 돌아보았다.

아딜로트가 시큰둥하게 자신의 뺨을 달 모양 나무 지팡이로 찌르고 있었다. 아까 기념품 삼아 산 것이었다.

“…….”

꾹. 꾹.

“…….”

꾹. 꾸우욱.

“왜? 왜!”

미아가 왈칵 성을 내며 지팡이를 잡아 내렸다.

아딜로트가 물었다.

“왜 그렇게 요아힘을 신경 써?”

그 말에 미아가 치를 떨며 아딜로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아딜은 이 시간에 일하는 직장인이 있다는데 신경을 안 써?”

“정말 단순히 그래서야?”

“그게 아니면 뭔데?”

“뭘 것 같은데?”

“……?”

미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스무고개야?”

“…….”

그 말에 아딜로트는 묘하게 감탄 섞인 시선으로 미아를 바라보았다.

“넌…… 좀 눈치가 없어.”

갑자기 왜 욕이지? 미아가 얼굴을 팍 구기자 아딜로트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땠는데?”

“응? 재밌었어!”

“그거 말고.”

아딜로트가 턱을 괴며 고개를 기울여 미아를 바라보았다. 북극여우의 털 같은 은발이 사르르 흘러내리는 모습이 묘하게 관능적이었다.

“좀 꼬셔졌어?”

“…….”

즉각 미아는 딱딱하게 굳어,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머리는 하얗게 표백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미아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사랑은 뭘까……. 연애란 뭘까. 이게 썸이란 걸까? 인류애랑은 무슨 차이일까? 애초에 이게 호감이 맞나?’

미아는 사람과 관계를 맺은 경험이 극도로 적었다. 누군가가 자신과 관계를 맺기 위해 다가온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게다가 미아는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의 독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소설 인물들에게 느끼는 호감이 독자로서의 마음인지, 새로 생겨난 감정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

미아는 그걸 설명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침묵이 길어지자 아딜로트는 실소했다.

“설마 했는데 하나도 안 넘어왔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미아가 울먹였다.

“……진짜야?”

“뭐가?”

“……꼬……, 꼬…….”

미아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화제를 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편한 대로 해석해. 나도 내 편한 대로 할 거니까?”

아딜로트가 기댔던 상체를 세우며 말했다. 미아가 멍하니 물었다.

“편한 대로……?”

“편한 대로.”

분홍색 눈에 사르르 방어기제가 돌기 시작했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아딜로트가 덧붙였다.

“어차피 나중 가면 날 의식하면 될걸.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

돌아가던 방어기제가 멈추고, 미아는 다시 물음표와 느낌표를 백만 개 정도 띄운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그러니까 왜 고백 비슷한 걸 받았는데 세상이 뒤집힌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에게는 이 정도로 확실하게 말을 해 놔야만 한다.

‘귀엽기도 하고.’

아딜로트는 쿡 찌르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쩔쩔매는 미아를 느긋하게 감상했다.

그때였다.

“잡아!”

“싫어! 살려 줘! 살려…….”

누군가의 찢어질 듯한 비명.

미아와 아딜로트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 * *

대화하는 사이 축제가 끝났는지 주변은 어느새 고요해져 있었다.

“내 뒤에 있어.”

빠르게 로브를 뒤집어쓴 아딜로트가 즉각 미아를 가리고 섰다. 미아도 아딜로트의 등 뒤에 숨은 채 가만히 자리에 멈춰 섰다.

얼마 안 있어 배가 뚱뚱한 사내 한 명이 멀리 보이는 골목으로 뛰쳐 들어왔다.

“살려 줘! 헉, 흐윽…….”

허겁지겁 달려오던 그는 힘이 빠졌는지 결국 무릎을 꿇었다.

“아무에게도 말 안 할 테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안 되겠는데 어떡하나? 명령받은 게 그게 아니라서.”

중년남은 가로등을 등진 채 뒷걸음질 쳤고, 곧 그 앞에 여러 명의 젊은 사내들이 나타났다.

끼어들어서 좋을 게 없는 상황인 건 확실했다.

“미아. 조용히 뒤로 물러나.”

아딜로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직하게 속삭였다. 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였다. 불빛을 등지고 있던 중년남이 계속해서 뒤로 물러남에 따라,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

그 얼굴을 확인한 미아는 놀라고 말았다.

“살려……!”

“어딜!”

때마침 젊은 사내 중 한 명이 칼을 빼든 순간.

“저 사람 구해 줘야 돼!”

미아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아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아딜로트의 신형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나간 아딜로트는 손짓 한 번으로 괴한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꽈르릉!

‘사람 머리가…… 돌바닥을 부술 수가 있구나.’

미아가 슬쩍 눈을 피한 사이 모든 게 끝났다. 아딜로트는 순식간에 괴한들을 제압했다.

“…….”

“…….”

미아는 할 말을 잃고 가을철 낙엽처럼 널브러진 괴한들을 바라보았다. 중년남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아딜로트만이 기절한 이들의 가슴을 밟고 서서. 무심히 미아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러면 돼?”

뭔가…… 황제를 잘못 길들인 것 같은데. 미아가 땀을 삐질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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