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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71화 (171/193)

171화

바로 신성력이 없는 사람이 ‘명제 증명’을 해 봤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하네스 자우어 대신관은 대신관이긴 하지만 신성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신벌이 내릴 리가 없었다.

문제는 대신관이 신성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요하네스 본인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신성력을 발휘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혹은, 그런 상황에서 다른 신관의 눈을 피하거나.

다른 신관이 보았다간 신성력이 없는 게 탄로가 날 테니 말이다.

‘다른 신관의 눈이라…….’

미아는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금발의 대신관 후보를 떠올렸다.

드미트리. 그는 차기 대신관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 신전의 행태에 씁쓸함을 느끼는 듯했으며, 원작에서도 그는 아주 선한 인물이라고 나와 있었다.

‘신성력은 사용하는 순간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어. 요하네스가 명제를 증명하려는 순간 드미트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어…….’

드미트리를 만나 볼 필요가 있겠는걸.

미아가 포크를 내려놓은 순간, 요아힘이 말했다.

“폐하. 아주 불유쾌한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엄하군요.”

요아힘의 질문에 답한 것은 문 앞에 서서 대기 중이던 제인이었다.

“설마 제가 생각한 질문을 하시려던 거라면 절대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마시길.”

그녀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레아 황비 전하를 모시던 시녀였고, 그분이 절대 템프라우 경과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단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확인 감사합니다.”

그녀답지 않게 조용히 진노한 모습에 요아힘은 별말 없이 그것을 수긍했다.

“하지만 그때 루드비히 선황제와 당대 대신관의 공증을 받은 서류는 소실되었고요.”

제인이 흠칫하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예.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제인은 레아 황비를 모시던 막내 시녀였다.

그녀는 레아 황비가 끌려가는 사변이 있던 날, 아딜로트를 챙기느라 공증 서류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했다.

누구도 그걸 탓하지 않았지만, 제인은 그 점에 대해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황태후의 기사들이 황비 궁을 뒤집어엎다시피 했는데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황비 전하께서 따로 어딘가에 숨겨 두신 것 같은데, 그게 어딘지는…….”

“네 잘못은 아니야.”

아딜로트가 팔짱을 낀 채 제인의 말을 잘랐다.

“잘못이라면 내가 아직 황태후를 살려 둔 게 잘못이겠지.”

피로와 동시에 지독한 환멸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레아 황비를 향한 온갖 불유쾌한 추측을 두 눈 뜨고 들어야 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에 미아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그 공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고백할까?’

하지만 그랬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 오면 할 말이 없다. 이건 뛰어난 정보원 정도로는 변명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떻게든 우연인 척 하는 수밖에.’

하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미아는 몽블랑 케이크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런데 대신전에서 온 교문을 밝힌 게 라인하르트 백작이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황태후 파 인사입니다.”

“흐음.”

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부분이 원작과 달라. 원작에서는 몰트 남작이었어.’

즉, 목소리가 더 커졌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그리고 왜?’

생각에 빠졌던 미아의 머릿속에 곧 파충류 같은 녹색 눈이 떠올랐다.

‘아. 크라우스 공작인가.’

원작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

그건 바로 크라우스 공작가의 입지였다.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 원작에서 크라우스 공작가는 망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세가 줄지도 않았다.

심지어 원작이 끝날 때까지도 크라우스 공작가는 고고하게 남아 있었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크리소르 황태후의 모략에 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크라우스 공작가의 자신의 계략으로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여기서 황태후까지 잃으면 그들은 중앙 정계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잘하면 크라우스 공작까지 묶어서 보내 버릴 수도 있겠는데?’

미아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아딜.”

미아의 부름에 아딜로트는 고개를 돌려 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미한 헛웃음을 흘리며 미아의 뺨에 붙은 케이크 크림을 닦아 주었다.

“왜?”

미아가 살짝 뺨을 붉히며 헛기침했다.

“흠흠! 나 믿어?”

미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딜로트와 요아힘이 동시에 흠칫했다.

“또 뭘 하려고?”

“뭘 하시려고요?”

“…….”

내가 뭘 했다고.

미아가 뾰로통하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나한테 완전 좋은 생각이 있는데 이게 쫌 아딜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가 필요한 일이라!”

“그 좋은 생각이 뭔지 일단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쫌 어렵겠는데요!”

요아힘의 말에 미아가 칼같이 답했다.

‘크라우스 공작은 만만하지가 않아서 리액션이 중요하거든.’

특히 요아힘처럼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미리 알려 주기 어렵다.

그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은 채 눈썹을 찌푸렸다.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미아가 뭔가 더 설명하려던 찰나, 아딜로트가 말했다.

“믿어.”

“…….”

“믿기로 했잖아.”

그는 대수롭지도 않게 말하고서 미아에게 다른 케이크가 담긴 그릇을 건네주었다.

“폐하.”

요아힘이 곤란하다는 듯이 이름을 불렀지만 아딜로트는 그걸 무시하곤 제 찻잔을 들었다.

그런 아딜로트를 미아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이거 엄청 중대사인데. 그래도 믿어?”

“믿어.”

“내가 일 잘못하면 아딜 모가지 날아가는데?”

“내 반려동물은 외모지상주의라서 내 미모가 날아가게 두진 않을 거거든.”

아딜로트가 찻잔에 입술을 대며 무심히 대답했다.

“내 미모가 좀 영원불멸해서.”

“…….”

미아의 뺨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엠브라……. 어디까지 말한 거야…….’

에헷! 하는 엠브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미아는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무튼, 그럼 이번엔 저한테 맡겨 주세요!”

스케일은 크게. 복수는 화려하게.

그게 미아의 모토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 * *

나선 정원을 끈질기게 감시한 결과.

미아는 ‘만나야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드미트리!”

연한 레몬색 금발과 흰 신관복을 발견한 미아가 당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미아 님?”

드미트리가 몸을 돌리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아무리 봐도 힐링 되는 미소다. 미아가 방긋 웃었다.

“네! 드미트리도 잘 지냈어요?”

“예. 걱정해 주신 덕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산책 나오신 거예요?”

“네. 사실은 나오면 안 되지만…… 황궁에만 있으려니 갑갑해서요.”

드미트리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렇구나! 하긴 나선 정원은 볼 게 많으니까요!”

“예. 전 보이진 않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는 정원이라는 건 느껴집니다.”

“그런 것도 느껴지나요?”

“신성력 덕이죠.”

“흐음!”

미아는 흥미롭다는 듯이 호응하며 드미트리를 올려다보았다. 드미트리는 그런 미아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히 먼 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가 고개를 내렸다.

“어디 앉을까요? 말씀하실 게 있으신 듯한데.”

미아가 잠시 놀랐다가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켰네요. 알고 있었군요?”

“저도 차기 대신관으로서 듣는 게 있으니까요.”

드미트리는 그렇게 말하고서 능숙하게 미아를 나선 정원 구석의 벤치로 인도했다.

그는 심지어 손수건을 깔아 주기까지 했다. 드미트리 본인을 닮은 흰 손수건으로 말이다.

두 사람이 벤치에 앉았고, 바람이 잠깐 그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본론부터 말할게요. 아딜로트 폐하가 슈뢰더의 적통이라는 명제 증명을 대신관님 말고 드미트리가 해 줄 수 있나요?”

미아의 말에 드미트리는 약간 놀란 듯했다.

“……황제가 슈뢰더의 적통이라고 거짓말을 해 달라는 게 아니라요?”

“네? 어차피 명제 증명으로는 거짓말을 못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리고 폐하는 어차피 슈뢰더의 적통이 맞는걸요. 그런데 왜 굳이 그런 걸 요청하겠어요!”

그 말에 드미트리는 약간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조금 망설이는 태도로 말했다.

“그럼 어째서 미아 님은 제게 증명을 요청하신 건가요?”

이런 추리력은 아주 좋다. 미아가 방긋 웃었다.

“왤까요? 그건 드미트리가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어리둥절한 얼굴의 드미트리를 보며 미아는 재차 미소 짓고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거절하겠다는 거죠?”

정신을 차린 드미트리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 죄송하지만 저는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미아는 부러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어째서요?”

“그 문제는 이미 요하네스 대신관님이 맡기로 하셨습니다. 대신관 후보에 불과한 제가 나서는 것은 월권인지라…….”

“그치만 전 대신관님보다 드미트리가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걸요!”

순간, 드미트리는 약간 흠칫하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신관님도 많은 덕을 쌓으신 분입니다. 그분도 여신의 품에 안겨 있으니까요.”

즉각 미아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역시 드미트리는 요하네스 대신관이 신성력을 잃었다는 걸 몰라.’

그리고 말을 들어 보면 드미트리는 교리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듯했다.

‘이거 판만 깔아 주면 되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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