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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72화 (172/193)

172화

미아는 속을 숨기고 약간은 서글픈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저는 폐하가 어릴 적엔 도와주지도 않았던 신전이 이제야 나타나서 폐하를 몰아가는 게 너무 억울한걸요…….”

“미아 님…….”

드미트리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주 살짝 미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부분은…… 저 역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신관이 되면 바꿔 나갈 일이기도 하고요.”

“히잉…….”

미아가 말끝을 흐릴 때였다.

“……사실 저도 요하네스 대신관님의 행보가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 역시도 여신의 품 안에 계신 분입니다. 분명 제가 모르는 큰 뜻이 있으실 겁니다.”

그 순간, 미아가 번개같이 고개를 쳐들었다.

“만약 없다면요?”

“예?”

“만에 하나, 정말로 사리사욕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거라면요?”

자칫 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미아는 최대한 슬픔에 겨워하듯이 말했다.

다행히 드미트리는 그런 미아에게 화내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어르듯이 말했을 뿐이다.

“정말 그렇다면 저도 더는 좌시할 수 없겠지만……. 저는 타인을 의심하기보단 믿고 싶습니다, 미아 님.”

미아의 눈빛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러니까 만약 정말 사리사욕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거라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거죠?”

“예? 아……. 물론 그렇습니다.”

미아가 쌕 웃었다.

너 말했다?

그녀는 이내 기운을 차린 양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알겠어요……. 저기, 그럼 혹시 드미트리는 다음 국무 회의에 참석하나요?”

“아뇨. 저는 대신관님의 명으로 그날은 종일 기도하기로 했습니다만…….”

“앗.”

미아가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물었다.

“와 줄 수는 없어요? 드미트리가 와 주면 힘이 될 것 같은데……. 제가 자리는 마련할게요!”

“예?”

왜인지 드미트리는 약간 당황한 듯했다. 그러더니 망설임 끝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야…….”

“와! 고마워요!”

미아가 방긋 웃으며 드미트리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못 믿겠다니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

미아는 그대로 일어나 드미트리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그럼 국무 회의 당일에 뵐게요!”

곧장 달려가려던 미아는 몇 걸음 가지 않아 멈춰 섰다. 그리고 드미트리에게 물었다.

“드미트리. 신관은 어떤 때에 신성력을 잃나요?”

드미트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으로도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여신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고 선한 것을 좇지 않을 때, 신관은 신성력을 잃습니다.”

미아가 화사하게 웃었다.

“그 말 잘 기억해 둬요!”

* * *

일주일 뒤, 국무 회의가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전보다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평소에는 불참하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순간이 오르퀘니나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전에는 후계자 문제와 변경의 임무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던 지로티 공작과 키토 후작 역시도 참여했다. 황제파 귀족은 모두 굳은 얼굴이었다.

반면 태후파 귀족은 전부 배부른 사자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이거 오늘 아주 재밌는 광경이 벌어지겠소?”

“아. 카르디날레 공께서는 뭔가 들으신 바가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렴. 달이 기우는 꼴을 내가 직접 보게 되다니 말이오. 하하!”

카르디날레 공작을 비롯해 이죽거리는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오직 크라우스 공작만이 그들 사이에서 냉엄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릴레 후작을 필두로 한 중립파 귀족들은 모두 약간은 긴장한 듯했다.

“그럼 국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슐츠 공작의 주도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두의 시선은 당연하다는 듯이 라인하르트 백작에게 꽂혔다.

“크흠.”

라인하르트 백작 역시도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가슴을 부풀리고 입을 연 순간이었다.

“존경하는 귀족……!”

“잠깐만요!”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외제니의 홀로 들어섰다.

“……?”

“제가 좀 늦었죠! 구두를 고르느라고!”

연단과 가까운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은 황제의 애완동물인 미아 셀레스티얼이었다.

그녀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요란하게 땋아 내리고 마치 웨딩드레스처럼 반짝이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외제니의 홀이 두 배쯤 더 밝아질 정도의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상태로 성큼성큼 걸어가, 비어 있던 아딜로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딜! 나 왔어!”

“응.”

황제는 태연하게 그런 미아에게 답했다.

“저, 저…….”

“이런 자리에서까지?”

“출생이 그 모양이니…….”

격식을 무시하는 듯한 모양새에 뭇 귀족들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미아는 그것을 기민하게 눈치챘다.

‘역시 피아 식별에는 이만한 퍼포먼스가 없지!’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둔 구석 자리에 로브를 쓴 남자가 앉아 있는 것 역시도 확인했다.

‘좋아. 비숍은 제자리에 있고.’

미아가 방긋 웃으며 라인하르트 백작에게 말했다.

“시작하세요!”

라인하르트 백작은 표정을 구겼으나, 이내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귀족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는 저번에 말씀드렸던 안건을 여기서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시선이 라인하르트 백작에게 집중되었다.

“지금 우리를 발밑에 깔고 폭정을 저지른 저 황제는! 슈뢰더 황가의 적통이 아닙니다!”

그의 연설이 마치 파도처럼 외제니의 홀 곳곳에 퍼져 나갔다.

“저는 그 확인을 위해 이 자리에 아주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라인하르트 백작이 눈을 빛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육중한 홀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중앙에 난 길을 통해 걸어 들어왔다.

“걷기엔 괜찮으십니까, 자우어 대신관?”

한 명은 검은 머리에 병색이 완연한 중년 여인.

크리소르 황태후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친절하시군요……. 폐하께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대신관 요하네스 자우어였다. 그는 수염이 아주 길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에는 뼈마디가 부러지진 않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두툼한 금가락지를 여럿 끼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지팡이 역시도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것이었다.

‘여기까진 원작대로야.’

미아가 웃는 낯을 하고서 주변을 살폈다.

원작에서도 이 장면은 똑같이 흘러갔다. 진행되는 국무 회의. 난입하는 대신관과 크리소르 황태후.

“흠……. 이 노구가 이런 곳까지 와도 될지…….”

“옳은 일을 위함입니다, 대신관.”

자못 친밀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며 크리소르 황태후와 요하네스 대신관이 중앙에 섰다.

그제야 크리소르는 아딜로트를 올려다보았다.

“폐하. 궁의 소란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잘도 머리를 내미는군.”

아딜로트가 냉기를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출생이 부덕한 자가 오르퀘니나를 주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품이 부덕한 자에게 듣기엔 과히 허울 좋은 말이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자라가 머리 감추듯 귀족들은 숨을 죽였다.

크리소르 황태후는 그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크라우스 공작과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한 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크리소르는 대신관을 자리에 앉히고는 그 옆에 앉았다.

“계속하시게, 라인하르트 백.”

“예!”

라인하르트 백작이 천군만마를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여기에 요하네스 대신관께서 와 주셨으니 더욱 확실해지겠군요.”

라인하르트 백작이 요하네스 대신관 앞으로 다가갔다.

“요하네스 대신관님! 말씀해 주십시오! 아딜로트 겐첸 슈뢰더는 우리가 모셔야 할 황제가 아니라는 것을! 부적격한 피를 이은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요하네스 대신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좌중을 둘러본 뒤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신전은…… 본디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미덕입니다. 하지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면…… 여신의 뜻을 전하는 신관이라 할 수 없겠지요…….”

그가 사슴 같은 눈망울을 슬픔에 적시며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아는 차가운 눈으로 방글방글 웃었다.

‘염병하네!’

원작에도 나왔지만 요하네스 대신관이 크리소르 황태후에게 협력한 이유는 돈이었다. 그가 끼고 있는 금붙이가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전부 크리소르, 그리고 크라우스 공작가의 기부금이었다.

요하네스 대신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여 저는 이 자리에서 여신에게 기도하려 합니다……. 아딜로트 황제의 출생을 밝히는 기도를 말입니다.”

“…….”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대로 요하네스 대신관이 지팡이를 들어 올린 순간.

‘슬슬 나가 볼까!’

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방글방글 웃으며, 사뿐사뿐 라인하르트 백작 앞까지 다가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평온하게 이루어진 행진에 모두가 미아를 바라보았다.

쟤가 갑자기 왜? 라는 얼굴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미아는 가만히 반지를 매만졌다.

가운데에는 진주를 박고, 그 주위를 루비와 사파이어로 두른, 레아 황비가 썼다던 반지였다.

‘힘을 주세요. 황비 전하…….’

미아가 눈을 부릅떴다.

‘개 쌍년이 될 수 있는 힘을……!’

동시에 미아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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