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그런데요, 아저씨!”
“…….”
너무나 쾌활하고 격의 없는 서두에 귀족들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아가 이어 말했다.
“그럼 만약 폐하가 진짜 슈뢰더 황가의 적통이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 * *
회의장에 침묵이 끼얹어졌다.
라인하르트 백작은 잠시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아딜로트 역시 살짝 놀란 얼굴로 미아를 바라보았다.
“……뭐?”
라인하르트 백작이 가까스로 반문했다.
“그렇잖아요?”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쌜긋거렸다.
“폐하를 감히 출신이 더럽다고 욕하고 있는 건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아니에요?”
“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한데…….
라인하르트 백작은 당황하여 크리소르 황태후를 돌아보았다.
‘요하네스 대신관이 명제 증명을 하기로 한 걸 보면 황제는 슈뢰더의 적통이 아니야. 아마 전 대신관은…… 레아 그년이 돈으로 매수해 공증을 받은 모양이지.’
크리소르에게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네 행동에 책임을 져라’라는 말을 들으니 어쩔 수 없이 망설여졌던 것이다.
크리소르는 그런 라인하르트 백작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는 이크 하고서 다시 미아를 향해 눈을 치떴다.
“감히 어딜 나서느냐! 썩 저리 물러서거라!”
그러나 라인하르트 백작의 호통에도 미아는 똑같이 눈을 부릅뜰 뿐 물러서지 않았다.
“원래 애완동물은 위아래가 없어!”
“……!”
지 좋을 때만 애완동물을 들먹이는 모습에 라인하르트 백작은 기가 막혔다.
그런 백작을 두고 미아는 화난 포메라니안처럼 사납게 외쳤다.
“그래서 아저씨가 틀린 거면 어떻게 할 건데? 설마 ‘내가 실수했네? 아이쿠, 미안합니다?’하고 끝낼 건 아니지!?”
“아니 뭐, 그야……!”
“그치! 사람을 모함할 거면 자기도 뭘 걸어야지!”
“걸다니, 뭘…….”
“당연히 모가지지!”
미아가 손으로 자기 목을 툭툭 치며 외쳤다. 라인하르트 백작이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목숨을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거나!”
“우리 폐하의 명예가 걸렸는데 이게 함부로야!? 폐하! 저 새끼의 충심이 의심스럽습니다!”
“너 이……!”
그때였다.
“감히 외제니의 홀에서 주제넘은 개새끼 한 마리가 짖는군. 통탄할 노릇이야.”
차가운 목소리가 라인하르트 백작의 말을 잘랐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감이 스치는 소리에 라인하르트 백작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미아 셀레스티얼.”
곧 크리소르 크라우스가 미아 앞으로 다가가 오만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으레 귀족들이 침을 삼키며 주눅 들고는 하는 스산한 눈빛이었다.
“짐승이면 짐승답게 발밑에서 재롱이나 떨 것이지. 고작 그걸 못해서 이 사달을 만들어?”
누구라도 겁먹지 않을 수 없는 광기 어린 시선이었으나, 미아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몹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게요. 왜 그러셨어요! 죽은 황태자 엄마라고 꿀이나 빨고 사시지.”
귀족들은 소리 없이 놀랐고, 크리소르는 잠시 자기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으음!”
미아가 고민하듯 눈을 굴렸다. 그러고는 잠시 끼고 온 반지를 매만지더니, 돌연 순진하던 눈빛을 벗어던지고 까르륵 웃었다.
“그게 말이죠! 주제넘은 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
놀란 사람들, 승천하려고 하는 슐츠 공작, 웃음을 참는지 부들거리고 있는 요아힘, 대놓고 실소를 터뜨린 아딜로트 등을 둘러본 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지 않아요? 자기 자식이 뿌린 대로 거둔 걸 가지고 몇 년이 지나도록 남 탓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는 상관없지 않나!?”
“아, 아니. 저…….”
“감히 황태후 폐하께……!”
지켜보던 귀족들이 경악했으나 미아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몹시 신나 보였다.
“의원도 클라우디오가 알아서 자빠져서 죽었다고 했고, 당시에 부상이 더 심했던 것도 폐하였고, 사냥을 나가자고 했던 것도 클라우디오였는데, 나쁜 건 우리 폐하다? 원래 무식할수록 목소리가 크다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커흑.”
누구도 크리소르 면전에 대고 하지 못한 말을 미아가 해냈다.
크리소르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됐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뭐……. 뭐라고 했느냐? 네가 지금…….”
미아가 싱긋 웃었다.
“이해력이 좀 부족하시네! 죽어도 싼 놈이 죽은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대단하다고요.”
“―이 계집애!!”
기어코 크리소르의 얼굴에 귀기가 서리며 그녀가 노호를 내질렀다.
그에 그치지 않고 크리소르가 손을 치켜들었으나, 그 손은 미아의 뺨을 내려치지 못했다.
“까르륵!”
미아가 뽀르르 움직여 그것을 피한 것이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이제 팔랑팔랑 걸음을 옮기며 청량한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속이 편할까~ 지 좋을 대로만~ 남 탓하고 살면~ 세상이 참 꽃밭이겠어~?”
“……!”
“멍청하면~ 살기 편해서 좋겠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길 자신이 없지~”
“―기사들! 당장 저년을 잡아! 찢어 죽이란 말이다!”
크리소르가 목에 핏대가 오르도록 외쳤을 때였다.
“누구 맘대로?”
내내 잠자코 있던 아딜로트가 말했다.
“내 앞에서 내 소유물에 손을 대겠다? 어떤 일이 생길지 두렵지도 않나 보지.”
턱을 괸 채 살짝 미소를 보인 그는 이 상황이 즐거운 듯했다.
그럼에도 잘 벼려진 칼날 같은 목소리는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엄이 있었다.
그에 화답하듯 외제니의 홀을 둘러싸고 있던 붉은 사자 기사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척. 쿵.
쇳소리와 갑옷의 둔중함이 약하게 홀 바닥을 울렸다.
황제의 기사들은 찌를 듯한 시선으로 크리소르 황태후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큭…….”
그 압박감에 귀족들을 비롯해 황태후가 데려온 소수의 기사가 움찔했다.
아딜로트는 절차를 무시하는 법은 좀처럼 없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아 셀레스티얼이 관련되지 않은 일에서였다.
붉은 눈을 치뜬 채 오연하게 홀을 내려다보는 황제의 모습에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이를 요정처럼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건 오직 미아 셀레스티얼뿐이었다.
“거참 나였으면 그냥 차·포 다 떼고 모가지 한번 걸었을 텐데, 고걸 못 해서 짖기만 하네. 자식놈 복수에 눈은 멀어 놓고 또 살고는 싶으신가?”
진작부터 웃음을 참는 것 같던 요아힘은 사레가 들렸는지 뒤에서 쿨럭이기 시작했다.
크리소르 황태후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싹 사라졌다. 모두가 그 순간 크리소르가 뭔가 사달을 내도 낼 거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는 망부석처럼 자리에 멈춰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후……. 하하…….”
그러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외제니의 홀에 귀기 어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아 역시도 민들레 홀씨처럼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 멈춰 섰다. 다른 귀족들처럼 움츠러든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도전적으로 눈을 빛냈다.
얼마 안 있어 크리소르 황태후가 웃음을 뚝 그쳤다.
“그래……. 듣기론 네가 좀 미친년이라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좀 독창성이 떨어지는 칭찬이네요.”
“네가 뭘 원하는지 알 것 같군.”
“그래요?”
크리소르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목을 걸라고 하였나?”
미아 역시도 기다렸다는 듯이 웃었다.
“아들 보고 싶으시잖아요. 보내드린다는 거예요.”
분홍색 별사탕 요정처럼 순진한 미소였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아하하하하!”
황태후가 재차 소름 끼칠 정도로 높은 목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돌연 시체처럼 창백한 무표정으로 말했다.
“좋다. 내 목과 크리소르 크라우스의 이름을 걸지. 만약 황제가 슈뢰더의 적통이라면 내 시체를 저잣거리에 던져 개먹이로 줘도 좋다.”
“……!”
“화, 황태후 폐하!”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미아만이 순수함과 천연덕스러움, 그 사이 광기가 섞인 눈빛으로 크리소르를 응시했다.
“그런 거 먹을 개 입장도 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네 이년! 감히 황태후 폐하께!”
발끈하고 나선 라인하르트 백작의 말에 미아는 팔짱을 끼고 어깨만 으쓱했다.
“방금 건 농담이지만, 그렇잖아요? 감히 폐하의 친모이신 레아 황비를 부덕하다고 몰아갔으니, 고작 그 정도로는 좀 부족한데?”
그녀의 시선이 라인하르트 백작을 꿰뚫듯이 빛났다.
“말했잖아요. 차‧포 다 떼자니까요?”
“그건 내가 할 말이군.”
대답한 것은 크리소르였다.
“설마 내 목까지 걸었는데 네까짓 계집애의 목으로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크리소르의 삼백안이 스르르 상석으로 향했다.
아딜로트가 있는 곳이었다.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미아는 몸을 돌려 아딜로트를 바라보았다.
“…….”
두 사람은 아주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미아의 말갛고 흔들림 없는 눈을 마주한 아딜로트는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내 목도 걸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