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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78화 (178/193)

178화

“짐작 가는 게 있다고?”

“예. 명제 증명의 허점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대신관이 아닌가? 신성력이 없을 수는…….”

“모든 답을 제거하고 남은 게 하나뿐이라면,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그것이 정답입니다.”

요아힘이 담담하고 날카롭게 말했다.

지로티 공작이 끙 하고 수염을 쓸었다.

그를 대신해 그때껏 잠자코 있던 페르디안이 입을 열었다.

“크리소르는 이걸 알고 있을 거라 보나?”

요아힘이 고개를 저었다.

“태도를 보면 모르는 듯합니다. 알았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요아힘이 싱글싱글 웃고 있던 미아를 돌아보았다.

“……우리의 사자께서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히히!”

요아힘은 이제 더는 충격받을 것도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저희는 합법적으로 황태후파 귀족들과 신전, 크라우스 공작까지 죽일 수 있는 상황이 된 거군요……. 하. 재상은 제가 아니라 미아 님이 하셔야겠습니다.”

미아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아는 원작은 곧 끝나는걸. 그리고 그게 끝나면…….’

미아는 원작이 끝나면 자신이 주말농장, 혹은 상단주, 혹은 평범한 더부살이 신세가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자신은 뭔가 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상단 일도 할 수는 있지만 전혀 재미있지 않다.

더부살이는 마음이 불편하다.

‘기왕 새로 태어난 신세인데 마음이 가는 걸 해야겠지.’

미아는 이제 아주 작게만 보이는 아딜로트를 일별했다가 활짝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서류, 잠깐 빌려야 할 것 같아요!”

끌어낼 사람이 아직 두 명 더 있었다.

* * *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다. 귀족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수도 구석의 어느 선술집.

턱수염이 무성하게 난 한 중년이 침까지 튀기며 말했다.

“자네 들었는가? 글쎄, 황제가 알고 보니 슈뢰더 황가가 아니라지 뭔가!”

마주 앉은 중년도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지, 당연히. 요즘 제일 뜨거운 이야기가 그거 아닌가? 알고 보니 양친이 모두 젠타리아 출신일 수도 있다던데…….”

“사실이라면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거 왜, 황태자를 황제가 죽였다는 말도 있지 않았나!”

“그렇지. 나도 그 말은 안 믿었네만, 만약 황제가 타민족 출신인 게 사실이라면 진짜 그랬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선황제가 대신관을 불러서 공증하지 않았어? 그때 꽤 크게 기념했잖나.”

“그 서류가 없다더군!”

“알고 보니 돈으로 매수한 것일수도…….”

“아니면, 아예 그런 서류가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지!”

“허…….”

남자가 혀를 내둘렀다. 그는 맥주를 크게 마시더니, 맥주잔을 거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난 용납할 수 없네. 외국인이 황제라니! 말도 안 되지 않나!”

엄밀히 말하면 오르퀘니나에서 나고 자랐으니 외국인은 아니었으나,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하는 분위기였다.

“말도 안 되지. 우리가 라지푸트며, 산트나르 때문에 대체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렇게 지켜온 나라를 외국인 황제에게 넘기는 건 어불성설이야!”

“다행히 귀족들도 전부 거병을 준비하는 것 같더구만. 황제가 얌전히 물러난다고 약속은 했지만, 모르는 일이니…….”

“그런데 어차피 대신관이 밝혀낸 거면 확실할 텐데, 대체 일주일 유예는 왜 둔다던가?”

“그 애완동물이 간청했다지 뭔가? 쯧쯧. 연놈이 쌍으로 지랄이구만…….”

“목숨이 아까운 게지.”

“하기야 일주일 뒤에도 반박할 만한 증거를 못 가져오면 목이 매달릴 테니 말이네.”

냉정하게 사태를 비판하던 중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황제가 바뀌면…… 다음 황제는 누가 되나?”

“그러게 말일세. 마땅한 이가 없는데…….”

그때, 가만히 있던 누군가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사실 지금 황제가 일은 잘하는 것 같더만. 난 좀 아쉽군.”

그 말에 주변이 더 놀라 인상을 찌푸렸다.

“큰일날 소리! 나라를 망치려고 작정했나!”

“하지만 웬만한 귀족들보다는 지금 황제가 낫지 않았나…….”

“그래도 외국인 아닌가! 애초에 백성들을 기만한 사람을 어떻게 따르겠나!”

“쩝……. 그래도 아쉽구만.”

중년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황태후 폐하가 이번 일을 벼르고 별러서 터뜨린 거라고 들었네. 난 차라리 크라우스 공작이 다음 황제가 되어 주었으면 하네!”

그때, 누군가 덥석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 이보시오! 그게 사실이오?”

“뭐야, 이 노인네는!?”

로브 쓴 남자였다.

중년은 급하게 팔을 뿌리치려 했으나 노인은 신기할 정도로 강한 힘으로 팔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이냐고! 황태후가 황제를…… 끌어내리려 한다고? 다, 다음 주에 황제의 결백을 밝히지 못하면……? 모, 모조리 죽는다는 거요!?”

“그렇소만…….”

로브를 쓴 남자가 충격받은 듯이 자기 머리를 부여잡았다.

“안 돼……. 안 된다……! 그 악마가 또 사람을……!”

그는 미친 사람처럼 흐느끼더니 비척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봉변을 당한 중년이 옷자락을 털어 냈다.

“뭐야? 미친놈인가…….”

그러자 옆에서 동행인이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왜 그 숲에 사는 그 미치광이 노인네 아니오? 맨날 허공에 대고 미안하다고 지껄이던…….”

“아. 그 사람인가?”

중년은 로브 쓴 남자가 떠나간 자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악마라니, 무슨 말이지?”

* * *

밤의 나선 정원.

구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코가 가려지도록 깊은 로브를 쓰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남자의 정체는 드미트리였다.

그는 국무 회의가 끝난 시간부터 지금까지 나선 정원의 벤치에 앉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온갖 생각으로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딜로트 겐첸 슈뢰더에게 슈뢰더의 피가 흐른다면, 계시를 내려 주십시오……!’

요하네스 자우어 대신관이 아딜로트의 핏줄을 검사하겠다며 기도했을 때, 드미트리는 자신을 의심했다.

‘왜…… 기도하지 않으시는 거지?’

그에게서 신성력이 단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요하네스 대신관의 실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속이는 대신관의 행태를 들으며 드미트리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여신의 뜻을 따라야 할 대신관이, 명제 증명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민 것이다.

아마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드미트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으나, 요하네스 대신관은 그걸 보지 못했을 것이다.

드미트리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나 정체를 밝힐 뻔했다.

그런 그를 막은 것은 뒤에서 다가온 시녀의 조용한 속삭임이었다.

‘미아 님께서 초청하신 분이시죠?’

‘……!’

‘미아 님께서 일이 끝나고 따로 찾아뵈겠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그저 지켜봐 달라고 하시네요.’

지켜봐 달라.

그 의미가 뭔지 드미트리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여신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고 선한 것을 좇지 않을 때, 신관은 신성력을 잃습니다.’

‘그 말 잘 기억해 둬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관이 신성력을 잃고 황태후와 손잡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신전을 대표해야 할 대신관이 선을 저버렸다는 점이었다.

“어째서……. 대신관님…….”

드미트리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는 양손에 얼굴을 묻고 괴롭게 신음했다.

요하네스 대신관이 여신의 가르침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전을 위하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젊을 때 놀라운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구한 자였다.

그 업적으로 대신관이 되었고, 자연히 대신관이 된 그에게 더는 누구도 신성력의 증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체 왜…….”

“드미트리.”

그 순간, 구슬이 굴러가듯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드미트리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있었다. 눈앞에서 달콤한 향기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미아 님.”

“잘 봤어요?”

미아가 사근사근하게 말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드미트리는 고개를 떨궜다.

“예. 전부…… 보았습니다. 이걸 제게 보여 주려 하셨군요…….”

“네. 드미트리는 좋은 사람이니까 직접 봐야 믿을 것 같았어요!”

좋은 사람.

과연 좋은 사람일까?

정말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왜 요하네스 대신관이 저 지경이 되도록 말리지 않았을까?

나는…….

“어허.”

생각을 이어 가려던 드미트리가 움찔했다.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떨어져 나간 작은 몸짓 때문이었다.

“너무 골몰하지 말아요! 드미트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잖아요!”

“…….”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안 걸까.

드미트리는 멍하게 생각했다.

그런 그를 보며 작게 웃은 미아는 곧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뭔가를 꺼냈다.

“드미트리. 이게 뭔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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