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3)2021.11.26.
한유라 보좌관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국회의사당의 옥상. 이곳에 다른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올라오면서 본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꽤나 굳어 있었다. 업무할 때의 무심하고 시크한 표정이 아닌, 조금은 엄숙한 표정. 내가 마돈나와 통화한 내용을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럴 리는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이지? 이렇게 따로 불러낸 적은 처음인데. “최 비서.” 그녀는 난간에 기대어 선 채 나를 불렀다. “네, 보좌관님.” “진짜 할 거야?” “예?” “이번 일 말이야. 의원님께서 지시한 일. 할 거냐고.”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하아.” 한유라 보좌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달리 염려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무슨 이유로 불러냈나 했더니, 아무래도 내가 걱정이 되어서 불러낸 모양.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이번 일이 발각된다면 나는 대한당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아무리 청와대의 막내아들이라고 한들, 이런 상황은 쉽게 넘어갈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지금 상황이 돌아가는 그림을 보면, 아버지까지 이번 정책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이 잘못되면, 아버지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최 비서.” 한유라 보좌관은 허심탄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야 정치를 그만두면 끝이야. 꿈을 못 이루는 건 아쉽겠지만, 정계를 떠나서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면 그만이라고. 그런데 너는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나는 이들과 다르다. “너희 집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안에서 아버지에게 찍힌다면. 그리고 정계를 나가게 된다면, 모든 걸 잃는 것과 같으니까. 넷째 형, 최지성만 보더라도 아버지를 거역하고 연예계로 나아갔다가 ‘딴따라’ 소리를 들으며 아들 취급도 못 받는 상황이다. 이번 일이 잘못 된다면, 나도 그렇게 된다는 뜻이지. “모험해 보려는 마음이 이해는 가. 신입이잖아. 게다가 이번 일을 해내면 우리 의원님은 물론이고 당 대표인 백태성 의원님도 널 신뢰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다. “걸리면 정말 큰 문제가 되겠죠.” 하지만 미래 문자를 봤기 때문일까. 입가에선 여유로운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걸리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거 아닙니까?” 한유라 보좌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마음대로 됐다면 우리도 했지. 요즘 언론은 대한당 소굴이야. 몇 년 전에 개정한 미디어법 때문에 어지간하면 출처를 찾아낼 수 있다고.” 어지간하면. 즉,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번 법안은 단순히 환경 규제가 아니야. 일자리 창출과 관련되어 있어서 다수의 대기업들이랑도 관련이 되어 있잖아.” 일자리는 곧 정권의 성패와 이어진다. 아버지께 영향이 미친다는 뜻. “잘못되면 의원님도 못 지켜준다는 건 알지?” “그러니까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봐야죠.” 한유라 보좌관은 내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더니. “혹시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야?” “그걸 만드는 게 정치 아니겠습니까?” “하아…….”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내가 말하지 않아도 최 비서가 모를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조심해야 돼. 더욱 더.” “의원실에 있는 다른 누구들이랑은 다르네요.” 그들은 자신의 어깨에서 짐이 떨어진 것만으로도 안도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녀는 내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최 비서.” “네, 보좌관님.” 그리고는 주변을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외부의 적도 위험하지만, 내부의 적도 조심해야 돼.” 머릿속에 문득 김치호 비서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주의 인물이긴 하다. 다른 인물들은 이치현 의원에 대한 충성심과 민국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도 입을 다물 테지만. 나를 시기하는 김치호 비서관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니까. “주의하겠습니다.” “김치호 비서관 관련해서는 내가 의원님한테 한 번 더 말씀드려 놓을게. 그래도 긴장 늦추진 말고.” “예, 감사합니다.” “그래.” 한유라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살포시 톡 쳤다. “필요한 거 생기면 연락해. 도울 수 있으면 도울 테니까.” “예, 보좌관님.” “먼저 내려간다.” 그녀는 나를 뒤로하고 옥상을 빠져나갔다. * * * “이번 법안,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대통령 최준석의 물음에 비서실장 고태욱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했다. “현재 환노위에서 법안 검토 중이고, 다음 주 중에 법사위 통과되면 정식으로 9월 임시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만한 건 없고?” “예.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이번엔 민국당도 쉽게 건들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최준석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그래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실업률이 너무 높아. 빨리 통과시켜야 돼.” 일자리를 만들고 서민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지지율이 올라간다. 아무리 장기 집권 체재에 돌입했다고 해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지지율이 곧 정권의 힘의 크기와 비례하니까. “이번 법안은 민국당에서도 반대를 할 테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굴복할 겁니다.” “언론 쪽은 미리 준비해 뒀고?” “예. 반대할 기색이 보이면 바로 일자리와 연관시켜서 언플을 통해 공격할 예정입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흡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문제는 법안보다도 자식 놈들인데…….” 그는 천천히 의자의 팔걸이를 툭. 툭. 두드렸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 기사 때문에 그러십니까?” “맞아.” 얼마 전, 애국일보에서 둘째 최지원과 관련되어서 이상한 보도가 터질 뻔했다. 고등학교를 외국에서 나온 만큼, 녀석의 유학 시절 마약과 관련된 이야기. 기사가 터질 뻔했지만, 둘째가 뒤늦게라도 알아차려서 보도가 터지기 직전에 신문이 인쇄되었다가 회수되어 막았다는 사실이 청와대로 보고되었다. “문제는 둘째를 건든 녀석이 누구냐는 건데…….” 고태욱 비서실장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은연 중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도는 데다가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는 둘째 아들을 건드는 건,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 다만, 그를 노릴 만한 다른 인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첫째 아니면 셋째 놈이겠지?” 고태욱 비서실장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일을 벌일 만한 유력한 인물은 대통령의 다른 자식들밖에 없었으니까. “조치를 취할까요?” “아니.” 최준석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버려 둬. 둘째도 인지했으니까 지켜봐야지. 내 둥지에서 벗어나 살아남으려면 홀로서는 연습을 해야지. 언제까지고 내가 보듬을 건 아니잖아?” 정식으로 후계자가 정해지기 전까지, 정치판에서 한번 살아남아 보라는 말이었다. 그래야만 진정한 정치인으로서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고태욱 비서실장의 귀에는 다른 말로 들렸다. ‘저들끼리 싸우면서 천천히 상처를 입고, 그동안 막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겠어.’ 허나 그 사실을 고태욱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예, 맞습니다.” “조용히 지켜보다가 새로운 사실 생기면 바로 보고해.” “알겠습니다.” * * * -도련님, 임지현입니다. 방금 메일 하나 보냈는데 혹시 확인하실 수 있을까요? “어, 안 그래도 방금 열고 있었어.” 마돈나의 전화를 받으며 바로 메일함에 들어갔다. 발신인 불명으로 짤막한 제목의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김태원 기자 관련 사항] 보나마나 임지현 비서관이 보낸 것일 터. “지금 파일 열었어.” 보고서의 내용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 -우선, 예상했던 것보다 더 구린내가 나는 녀석이었더라고요. 범죄를 목적으로 저지른 건 아닌 것 같고요. “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건가?” -예, 맞습니다. 기자라면 으레 있을 만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취재 과정으로 거물급에 대한 정보, 특종을 얻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 그렇기에 기자로서 이름을 날리려는 욕심이 생긴다면, 선을 넘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기본적으로 익명의 제보자에게 사례금을 지급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위층에 대한 성접대는 물론, 온갖 불법 침입과 정보를 위한 협박까지 일삼아야 제대로 된 건이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법이니까. 흔히 말하는 ‘기레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밝혀지는 사실이 있기에 그나마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었으니까. 이러한 기자들이라도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정치인들의 부패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테지. -세부 내용들은 세 번째 파일에 적어 뒀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또 주시할 만한 사항은 있나?” -최근에 낸 기사들이 꽤 영향력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만세당의 중역 중 하나와 내통하는 것 같습니다. “만세당이라…….” 160석의 대한당과 80석을 갖고 있는 민국당에 비하면 50석밖에 되지 않는 작은 당이지만,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국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꽤나 얻고 있는 만큼 정계에서의 힘은 적지 않다. 그곳의 중역과 내통한다면, 정보력은 어지간한 언론사보다도 위에 있을 터. “주요 기사들 위주로 정리해서 링크 보내 줘.” -알겠습니다. 마돈나는 깍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후에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저번에 미뤄 뒀던 최준용 검사에 대해서 다시 조사해 봐.” -네. 빠른 시일 내로 정리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 * * 집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오는데 문득 우편사서함에 꽂혀 있는 갈색의 서류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가는 길에 확인했을 땐 우편사서함이 비어 있었으니까. 게다가 오늘은 다름 아닌, 일요일. 우편 집배원이 다녀갈 리도 없다. 그렇다는 말은 누군가가 와서 직접 꽂아 놓고 갔다는 뜻. 나는 서둘러 서류 봉투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내용물을 확인했다. “허…….”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고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어떤 새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서류 봉투 속엔 사진 세 장과 작은 메모가 하나 들어 있었다. 마돈나가 입원했을 당시, 내가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는 모습과 나오는 모습. 그리고 그 건으로 경찰서에 들렀던 장면이 찍힌 모습.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꽤 오래 전부터 나를 지켜봐 왔다는 뜻일 터. 보통내기가 아니다. 내가 마돈나와 관련된 걸 알면서. 송병준 의원이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참았다는 것이니까. 당시에 움직였다면, 나를 언론에 노출시켜 난처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도 그걸 참은 것이기도 하고. 물론, 스스로 참았는지 아니면, 터뜨리려고 했으나 불발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점은 지금까지 녀석이 이걸 누군가에게 넘기거나 기사화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건,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는 뜻이라는 사실. 돈이 목적이거나, 그 외의 다른 것이 목적이거나. 그 증거로 작게 붙어 있는 메모장에는. [내일 22시 국회도서관 뒤 산책로.] 만날 시간과 위치가 적혀 있었다. 이 장소를 택했다는 것부터 뜨내기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는 국회도서관에서 연결된 예산정책로 근처의 산책로에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국회에서 일하는 인물이거나, 최소 국회의사당을 자주 드나드는 인물일 터. 우선 만나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