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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르려는 녀석들은 (1) (94/200)

기어오르려는 녀석들은 (1)2022.02.02.

“예약하셨나요?” “김한음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점원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제일 안쪽에 커다란 룸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똑똑 노크를 한 뒤, 조심스레 문을 열어 주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어, 왔나?” 내부에서 나를 반기는 인물은 민국당의 당대표 백태성 의원. 홀로 앉아 있었다. 일어나려는 모션을 취하기에. “앉아 계십시오.” 손짓으로 무마하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당연히 일어날 생각도 없었을 터. 말 그대로 액션이지. 식당의 예약된 이름 ‘김한음’은 백태성의 보좌관 중 하나. 원래 높으신 양반들은 어딜 예약하든 간에 본명을 쓰는 경우가 없으니까.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네. 나도 방금 왔어.” 그는 웃으며 안부를 물어왔다. “각하께선 잘 지내시나?” “예. 정정하십니다.” “다행이네.” 백태성 의원은 내 양은사발에 막걸리를 채워 주며 말했다. “요즘 공식 석상에 안 보이시길래 무언가 일이 있나 했어.” “특별한 일이 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 때문에 굳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긴, 결과도 그렇고 영 불편하실 테니까.” 우리는 가볍게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자네도 요즘 조용한 것 같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떠들썩하던 시국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야.” “폭풍전야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무언가 알고 있는 게 있나?” “농담입니다.” 나는 코를 찡긋하며 덧붙였다. “6월 임시 국회도 끝났고, 껄쩍지근하지만 지방 선거도 마무리되었으니 소강상태가 된 거겠죠.” “그랬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9월 정기 국회가 열리기 전까지 이 시기는 보통 지역구에 열중하는 타이밍이긴 하지. 우리 청와대도 지방 선거가 끝났기에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얼굴을 트기 바쁘니까. “그건 그렇고…….” 백태성 의원은 젓가락을 들어 내 앞접시에 육전 한 장을 올려 주었다. “생각은 해 봤나?” 예나 지금이나 성격이 참 급하다. 박무원 의원에게 들었던 제안, 서울시장 공천에 대해서 묻는 것일 터. “예. 오래 고민은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 보게.” “만약에…….” 나는 그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제가 거절할 경우엔 어떻게 됩니까?” “거절이라…….” 백태성 의원은 천천히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아마 새로운 후보를 찾아야 하지 않겠나?” 그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자네가 이렇게 물어본다는 건,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지?”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돌려 말하거나 간 보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저에겐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위험성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에요.” “그럴 만하지.”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다가 각하께서도 가만히 있지 않으실 테고.” “예. 그게 제일 큽니다.” 현 상황에서 내가 민국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를 하게 된다면, 서울시장 자리를 포기했던 둘째 최지원도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형성된다. 나의 당선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아버지가 보기에 아들 세 놈이서 서울시장을 두고 다투는 게 달가울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아직도 머릿속으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그래서?” “만약 제안이 유효하다면, 다음 선거에선 함께 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있을 수도 있다라…….” 그는 술잔을 빙그르르 돌렸다. “가능성은 열어 두지만, 확실하진 않구먼.” “예. 4년 뒤의 일을 벌써부터 확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인 건 알겠지?” 백태성 의원은 돌리던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번 제안은 한 번으로 끝이야. 아까 말했지만, 우리도 새 후보를 찾아야 돼.” “당선되지 않을 가능성은 크죠.” “지난 상황 못 봤나? 정춘식이 당선됐어. 물론, 우리 민국당에서도 예측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내년엔 이길 수 없으실 겁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최소한 올해와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 그의 심기가 불편한 걸 증명하는 콧바람이 푹 새어나왔다. 최지만과 최지원이 둘 다 출마하지 않는다는 건 민국당에서도 충분히 예측할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다른 제안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백태성은 예상외의 말에 흥미롭다는 듯 젓가락까지 내려놓았다. “말해 보게.” “까놓고 말해서 어차피 다음 보궐 선거에서 저보다 좋은 후보를 찾기는 어렵지 않으십니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그의 눈썹이 들썩였다. “혹시 아나, 우리 측에서 또 자네와 같은 사람을 찾을지?” 역시나 백태성. 민국당 당대표답게 쉽지 않은 인물이다. “다만, 우리도 가능성은 열어 두겠네.” 그는 완급 조절을 하려는 듯 유연하게 밀고 당겼다. 당겼으면 끌려가 줘야지. “제가 이번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리스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 그건 이해하네.” “민국당을 달고 서울시장에 출마를 한다는 건,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리스크뿐만이 아니라, 대한당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이니까요.” “맞는 말이야.” “그래서 말씀드리면, 제가 최소한 민국당에 대해 믿을 만한 구석은 심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 정도 리스크를 안고 가려면, 민국당에서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백태성 또한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을 터. “원하는 게 뭔가?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던 대답이 나왔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주십시오.” 서울시장 선거와 달리, 대한민국에만 무려 300석이라는 자리를 두는 국회의원. 그 중에서도 지역구만 250석에 육박한다. 민국당을 달고 국회에 입성해도 대한당에서 싫어할 리는 없으니까. 오히려 협상 가능한 사람이 생겼다고 좋아할 가능성이 높을 터. “그건 어렵지 않지.” 백태성 의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능력이라면 충분히 받을 만해.” 허나, 거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단순한 공천이 아닙니다.” “…….”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종로.”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종로를 제게 주십시오.” “……허.” 그는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탄성을 내터뜨렸다.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종로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과거에 비해 그 빛은 적어졌다고 한들,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가 종로라는 사실만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백태성 의원은 기가 막힌다는 듯 엉덩이까지 들썩거렸다. “최 비서관. 종로에 누가 있는지 알아? 전상국 의원이야, 전상국 의원.”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더욱 잘 알고 있다. 대한당의 당대표로 실권을 잡고 있는 인물. “그것도 경기도에서 3선, 종로에서만 무려 4선을 했어.” 도합 7선. 차기 총선은 8선에 도전하는 셈. 국회의원 배지를 무려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려놓지 않은 거물. “자네가 전상국 그 자식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쉽지 않겠죠.”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그래도 다른 민국당 의원들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 그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동안 전상국에게 도전해 놓고 종로에서 비참하게 깨진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백태성 의원도 마찬가지. 현재 백태성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동작구. 대한당의 텃밭이라는 전라도에서 민국당을 달고 무려 3번이나 당선되는 기적을 선보이며 기세등등하게 종로에 출사표를 내밀었지만, 전상국을 만나 비참하게 깨졌다. 그리고 4년이라는 공백 동안 동작구에서 힘을 쌓아 다시 당선이 되며 추가 3선에 성공했다. 이렇듯 민국당의 어나더 레벨이라는 백태성조차 전상국에게 깨진 경력이 있으니, 위처럼 말하는 건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다음 총선에서도 공천권 하나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백태성 의원이 처참하게 깨진 뒤로, 지금까지 민국당에선 중진 의원들 중 그 누구도 종로에 공천을 하지 않았다. 신인 정치인. 그 중에서도 젊은 층의 관심을 받거나 새롭게 떠오르는 인물들을 종로로 보냈다. 결과는 당연히 참패. 어차피 전상국 의원에게 깨질 거, 이름값이나 키워 보자는 의미였겠지. “이제는 탈환하셔야죠. 종로를 못 뺏으면 민국당은 평생 야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종로 지역구를 버리는 셈 쳤다고 한들, 정치판에서 종로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건 누구보다 이 바닥에서 오래 버텨 온 백태성 의원이 제일 잘 알 터. 그렇기에 종로에 공천을 한다는 것은 즉, 민국당에서 제대로 밀어준다는 걸 의미하는 셈이었다. 앞으로 민국당에서 키울 사람이라는 증거. 이러면 2026 지방 선거에서 나를 서울시장으로 밀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지.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출마해야 되는 건 아니다. 최소한 내가 뒤통수를 맞지 않을 보험을 들어놓는 것. “종로입니다, 종로. 어차피 민국당에선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후보를 찾아 넣을 것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저보다 더 화제를 몰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 백태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부정하지 못할 테지. 그는 한참의 고민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관.” “예, 의원님.” “이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없다는 건 알지?”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젓가락을 들었다. “천천히 생각하십시오. 아직 총선까지는 2년이나 남았잖습니까?” “그래.” 백태성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패기가 좋아.” “예?” “젊으니까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어느새 그는 우수에 잠긴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난 절대 못 하거든.” 나는 슬쩍 백태성의 사발에 막걸리를 채워 주었다. “의원님도 이러던 시절이 있으셨잖습니까? 그랬으니 지금의 자리에 계신 거고요.” “그래. 그렇지.” 그는 클클거리며 잔을 받았다. “어쨌든 최 비서관 생각은 잘 알았네. 자네가 민국당에 왔을 때의 효과는 내가 모를 리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럼요.” “공천 건은…… 내 천천히.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 봄세.” “감사합니다.” “한잔하지.” “예.” 우리는 잔을 부딪쳤고. 그는 시원하게 한 잔을. 나는 고개를 돌려 사발을 꺾었다. “내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지.”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백태성 의원이 떠난 사이,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마돈나에게서 문자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보낸 이: 임지현. -다음 주 화요일에 JK컬처 본부장과 약속 잡아 뒀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직접 보고드리겠습니다. 역시 마돈나다. JK컬처 본부장. 스폰서 의혹이 있는 당사자와 약속을 잡다니. 이거 아주 재미있는 만남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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