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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4) (102/200)

핏줄 (4)2022.02.10.

똑똑. “비서관님. 서울시장님 오셨습니다.” “어,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최지만이 한껏 웃으며 실내로 들어왔다. “막내야!” “왔어?” 최지만은 흡족스레 두 팔을 번쩍 벌리며 내게 다가왔다. “한 번 안아 보자!” “됐어, 오버는.” 나의 거절에도. “하하핫!” 최지만은 한껏 나를 품에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일단 앉아.” “그래.” 우리가 소파에 앉자마자 신혜지가 커피 두 잔을 내왔다. “잘 마실게요.” “고마워요. 혜지 씨는 바로 퇴근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최지만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소파에 몸을 푹 기대었다. “사무실 깔끔하고 좋네.” “생각보다 괜찮지?” “응. 정무수석실 비서관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나름 크네.”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즉에 와 봤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그럴 수 있지.”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여하튼 축하해. 서울시장 된 거.” “고맙다. 네 덕분이야.” “내가 아니었어도 당선은 됐을걸.” “겨우 당선되는 거랑, 압도적인 득표율 차이나는 건 아예 급이 다르지.” 맞는 말이다. 지지율이 높은 채로 당선이 되면, 시민들 또한 그를 믿고 지지하며 힘을 실어 준다는 의미고. 이는 단순히 서울시장이 된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행보와 그 결정력에서 가지는 파워가 다르게 만들어 주니까. “어중간하게 당선됐으면, 아버지가 따로 부르지도 않았을 거야.” “그건 모르는 일이지.” “이건 확실하게 알아. 100%지.”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막내야.” 오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 “난 사실 조금 놀랐어.” “왜?” “네가 이렇게 도와줄 줄은 몰랐거든.” 최지만은 허심탄회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만날 때도 그렇고, 늘 우호적이라서 내 편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확신은 없었단 말이야.”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매번 함께한다, 도와준다는 이야기는 했어도.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적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럴 만한 기회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이번에는 이익 관계가 겹쳐서 지원 사격을 한 것뿐이다. 물론, 최지만은 워낙 위험했던 상황이라, 조금 더 감동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디 마음을 조금 더 흔들어 볼까? “예전부터 나도 도와주고 싶었지.” 나는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그런데 나도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래서 나 먹고 살기도 바쁘더라고. 게다가…….” 그를 향해 슬쩍 몸을 기울였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봤잖아. 그때는 워낙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가 형을 도울 수가 없는 여건이었고.” “그랬지.” 최지만은 이해한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기에 이번엔 꼭 형을 한 번 도와주고 싶었어. 워낙 위험한 상황이었잖아. 단순히 지지율 문제가 아니라 여러모로…….”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 없어. 나도 알아. 이번에 당선되지 못하면 아버지가 날 어떻게 보실지 그림이 뻔했거든.” 누구보다 자신의 상황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 단순히 평소 선거 구도로 붙었으면 당연히 내가 되었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워낙 특이했잖아?” “그렇지. 야당에서 죽어도 안 하던 단일화를 했으니까.” 민국당과 만세당이 주요 선거에서 단일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대선에선 아직까지 역사가 없고.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최초. 물론, 실패했으니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 “막내야.” “응?” “내가 너 믿으니까 하는 이야기야.” 최지만은 문득 목소리를 깔며 진지한 얼굴을 했다. “이번 선거는 굉장히 새로운 구도였잖아? 그런데 이 뒤를 살펴보니까…….”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더라고.” “어땠는데?” “난 지원이 그 녀석이 순순히 나한테 양보를 하길래, 내가 당선되면 무언가 떡고물이라도 건지려는 줄 알았거든?” “설마…….” “그 설마였어.” 최지만은 그가 괘씸하다는 듯 이를 콱 물었다. “알고 보니 최지원 그 녀석이 뒤에서 민국당과 만세당의 단일화를 부추겼던 거야.” “진짜로?” “어. 확증은 없는데, 알아보니까 정황이 보이더라고.” “이야…….”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최지원이 순순히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러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줄이야.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지난 지방 선거에서 나와 경쟁할 때 썼던 자료들을 고스란히 성문종에게 넘겼더라고.” 어지간히 음흉한 인간이 아니다. “난 처음엔 그 녀석도 핏줄이라고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날 엿 먹이려고 계획을 짜뒀던 거야.” “허허…….” 역시 최지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인간 중 겉과 속이 가장 다른 남자. 알면 알수록 더 위험하다. “그런 상황에서 딱 네가 구세주처럼 나타난 거지.” 그의 입장에선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핏줄에게 배신당하고 또 핏줄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니까. “그래서 너한테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나야 당연히 형을 도와야지.” “그렇지?” 최지만은 눈썹을 들썩였다. “나도 이젠 너밖에 없다. 진짜로.” 나밖에 없다라…….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선거에서 최지원 외에 다른 형제들이 꽤나 조용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슬쩍 그를 떠봤다. “지곤이 형은 어쩌고? 그래도 나보단 셋째 형 먼저 챙겨야지.” “그 자식?” 최지만은 불만이라는 듯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스읍 숨을 들이마셨다. “요즘 그놈은 뭐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 그토록 함께하자고 나불대더니, 지난 지방 선거에서 내가 패배한 이후로 뜨문뜨문하더니,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아예 연락도 없더라고.” “뭐 하고 다니는데?” “나도 모르겠다는 게 문제야.” 그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요즘 보아하니, 최은실이랑 같이 어울려 다니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지 감이 안 와.” “누나랑 다닌다고?” 나는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눈을 꿈뻑였다. “원래 둘이 친했어?” “아니. 친한 건 아니지만, 쌍둥이라서 어릴 때부터 다른 핏줄들보다 서로 애증스러운 건 있지.” 최지만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지곤이도 한창 바쁜 것 같긴 하다만…….” “뭐 하는지는 알아?” “기업을 만나고 다니더라고. 돈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다른 게 있는 건지 모르겠어.” 최은실은 카지노에서 돈을 모으고. 최지곤은 기업을 만나고 다닌다라……. 분명 수상하다. 다만,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가늠이 안 가는 게 문제지. “한 번 알아봐야겠네.” “그래. 나오는 거 있으면 최대한 공유해 줄게.” 눈빛을 보아하니, 이건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 덕분에 제대로 마음을 얻은 모양. “알았어. 나도 아는 거 생기면 말할게.” “그래.” 그는 내 허벅지에 손을 턱 얹으며 진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네가 내 곁에 있어서 든든하다. 다른 놈들보다 막내인 네가 제일 나아.” “나도 형 열심히 보필할게.” “그래. 내가 먼저 올라가고, 그 다음은 너야. 알았지?” 나는 대답 대신 한껏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처럼 똑똑한 녀석이 동생이라 든든하다니까.” * * * “어, 왔어?” “예, 아버지.” “지훈이 만나고 온다더니, 혼자 왔네.” “네. 괜히 들르면 아버지 부담스러워하신다고 바로 퇴근한다고 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최준석 대통령은 아쉬운 속내를 감추며 말했다. “지만이 엄마, 숟가락 하나 치워도 되겠어.” “알았어요.” 영부인은 부엌을 한 번 훑고 간 뒤, 드레스룸에서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 “나는 다녀올게요.” “조심히 갔다 와.” 최지만은 숟가락을 들며 물었다. “어머니 어디 가십니까?” “청담동. 국무총리 와이프랑 몇 명해서 티타임이라도 가진다네.” “아, 그렇군요. 어머니도 요즘 밖에서 사람 뵙고 다니시는 걸 보니 제가 다 보기 좋네요.” 최준석 대통령은 따로 대꾸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식사하는 동안 그렇다할 대화는 없었다. 대통령은 점심을 다 먹고 나서야, 수저를 내려놓으며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봤다.” 그는 장남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했다.” 그 한 마디에 최지만은 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 이 세 글자를 듣기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지경. “감사합니다.” 그는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결과는 좋았어. 다만…….” 최준석 대통령은 냉정하게 말을 덧붙였다. “정말 위험했다. 알고 있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번 보궐 선거만이 아니라, 지난 지방 선거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하여 말하는 것일 터. “다음부터 이러한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됐어.” 최준석 대통령은 물을 한 잔 따르며 다시금 최지만을 불렀다. “아들아.” “예, 아버지.” “하나 물어볼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이번 선거는 온전히 네 실력으로 봐도 되느냐?” 최지만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진심으로 묻는 것일지. 아니면, 알고 물어보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으니까. 본인의 공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만에 하나 후자일 경우엔 오히려 아버지가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지훈이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의외의 답변에 최준석 대통령은 놀랐지만, 짐짓 그 속내를 감추고 되물었다. “……막내가?” “예. 마지막에 지훈이가 크게 도와줬습니다.” 그렇다고 겸손하게 자신의 결과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었다. 자기 어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쳐낼 수 있는 게 아버지라고 판단했으니까. “물론, 그게 아니어도 당선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렇겠지.” 최준석 대통령의 머릿속엔 다양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허나, 여기서 시간을 끌면 막내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는 걸 첫째가 눈치챌 수도 있기에 빠르게 다른 질문을 꺼냈다. “다른 형제들은?” “아무런 도움이 없었습니다.” “단일화는 어떻게 된 거고?” “지원이가 도움을 주긴 했습니다만, 본인을 위함도 있었습니다.” 사실대로 전부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 말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래.” 최준석 대통령은 물을 한 잔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쉬었다 가거라.” “예, 아버지.” 그는 최지만을 뒤로하고 홀로 서재로 향했다. 의자에 앉은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첫째는 리스크를 안고 도전해서 성과를 얻어냈다. 둘째는 위험성보단 안정성을 택했다. 그리고 막내는 자칫 당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대한당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최지만이 직접 설명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마지막에 터진 그 사건을 막내가 준비했겠지. 대통령 자신과 대한당에는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최지만을 돕는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어마어마한 결단력이다. ‘마치 내 젊은 시절과 같은 판단이야.’ 그는 흡족스레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심스레 피어오르는 걱정에 그는 보안 전화를 들어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각하. “어, 고 실장. 지금 밖인가?” -아닙니다. 비서실에 있는데 서재로 갈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최준석 대통령은 문이 닫혀 있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조만간 막내 한 번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따로 전할 사유가 있을까요? “아니.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나 들어보게.” 만에 하나 최지훈이 진심으로 최지만을 돕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웠기 때문. 물론, 사서 하는 군걱정이었다. -알겠습니다. 또 지시하실 사항 있으십니까? “요즘 최은실이랑 최지곤 둘이 조용하네. 아는 거 있어?” -따로 보고된 건 없습니다. 한 번 알아볼까요? “어. 조용한 녀석들이 원래 무서운 법이야. 무슨 작당을 꾸미고 있는지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전화를 끊기 전 최준석 대통령을 붙잡았다. -참, 각하. “말해.” -다음 주 월요일에 이치현 의원 수사 기사 나갈 겁니다. 기다리실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그래,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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