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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건 (1) (156/200)


전쟁이라는 건 (1)
2022.04.05.



“무슨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하고 있나?”

백태성 대표의 물음에 구태양 의원은 내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별 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전상국 대표와 관련되었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아, 그거라면 나도 관심이 있는데.”

그는 반갑게 눈썹을 들썩이며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정말 잘했네, 최 의원. 내 자네를 민국당에 들여온 게 최근 내 인생의 최대 업적이라니까. 하하하핫.”

“영광입니다, 대표님.”

“마음 같아서는 그 무용담을 더 듣고 싶지만, 난 이제 슬슬 가볼 시간이 되어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다음에 식사하면서 같이 이야기하자고.”

“예. 들어가십시오.”

“그래.”

그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의한회를 빠져나갔다.

백태성 의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구태양 의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깜짝 놀랐네.”

“하하, 그러게요. 목소리가 조금만 컸으면 위험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듣지는 못한 것 같아.”

“예. 맞습니다.”

“그래서 원제로 돌아와서, 이익현 그 인간을 조져야 하는데…….”

지이잉-.

휴대폰에 진동이 격하게 울렸다.

단순히 내 휴대폰뿐만이 아니다.

회장에 있던 수많은 휴대폰에 벨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뭐?!”

먼저 전화를 받은 저쪽 의원은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필시 보통 일이 아닐 터.

바로 옆에 있던 구태양 의원 또한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내게 눈빛을 주며 자리를 옮겼다.

내 전화의 발신인은 강선우 보좌관.

“어, 나야.”

-의원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백령도 인근에서 북한과 해상전이 일어났습니다.“

“……해상전?”

보통 일이 아니다.

포격이나 국지도발 따위가 아니라, 해상전.

한국과 북한 양측의 군함이 서로 부딪쳤다는 뜻이다.

“지금 바로 의원실로 갈게.”

-알겠습니다.

* * *

“어떻게 된 거야?”

강선우 보좌관이 브리핑을 시작할 무렵, 마돈나도 헐레벌떡 의원실로 뛰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얼른 앉아.”

그녀가 착석한 뒤, 강선우 보좌관은 곧장 브리핑을 시작했다.

“백령도 해상에서 국내 군함 세 척과 북한의 군함 다섯 척이 전면 대치를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북한의 어선 한 대가 NLL을 이남으로 넘어오는 듯하여 연신 경고 방송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선은 그것을 무시하고 NLL 이남을 휘저었다.

따라서 한국군은 정해진 경고 방송 이후, 경고성 사격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경고성 사격은 직접적으로 어선을 타격하지 않는다.

돌아가라는 의미로 위협을 하는 것이지.

그런데 그 경고 사격을 하기 무섭게, 바로 북한군으로부터 포격이 쏟아졌고.

국내 군함 세 척 중 한 대가 침몰했다고 한다.

대응 사격을 하여 북한 군함 두 척이 침몰했지만, 딱 거기까지.

이후 북한 어선은 NLL이북으로 회항하였고.

군함은 후퇴하여 물러났다.

“현재 침몰한 초계함에 타고 있던 해군 33명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25명은 사망이 확인되었고, 나머지 8명은 실종 상태입니다. 생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만…….”

해가 저버린 지 오래인 늦은 시간이기에 제대로 된 수색이 어려울 터.

부디 살아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누르며 물었다.

“한국 군함은 포격을 직접적으로 맞은 건가?”

“그건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에서는?”

“짧은 전투를 했다는 사안 외에 정식 발표는 미루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발표는 없었고?”

“예. 현재 통일부에서 접촉 중이라고는 하나, 북한에서 응답이 없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이런 양아치 새끼들.

“북한에서 먼저 공격한 건 확실하지?”

“그렇습니다. 저희 쪽 군함의 해상레이더 기록도 남아 있고, 본부와의 통신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건 내일 오전에는 국회 쪽으로도 전달해준다고 합니다.”

늘 그렇지만, 한국에서 먼저 포격을 하는 일은 없다.

저렇게 먼저 시비를 걸어놓고, 모르는 척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저들의 승리로 포장하기 일쑤니까.

“따로 준비할 사안이 있을까요?”

“아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펜을 놓았다.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상황 있으면 보고만 해.”

“알겠습니다.”

내가 국방위원회 소속이라면 모를까, 법사위 소속이었기에 지금 상황에서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야당으로서의 언플이야, 당 수뇌부에서 논의한 뒤, 당 대변인을 통해 발표할 터.

그것도 우선 현재 일이 수습된 다음에 할 일이지, 지금은 아니다.

수습은 국방부의 문제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이번 포격 사건이 왜 일어났느냐다.

북한에서는 절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중대한 일을 벌이지 않는다.

필시 무언가 노리는 게 있을 터.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최근 들어 기침이 잦으신데, 당신의 건강과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 터.

느낌이 좋지 않은데.

지잉지잉-.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 최택 의원.

-잠시 후에 민국당 긴급회의가 있습니다.

-시간: 오후 11시 30분.

-장소: 민국당 대 회의실.

-백태성 의원님께서 지방에 있는 의원들 외에는 꼭 전원 참석하라는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1시간 정도 남아있으나, 어차피 의원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른 의원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일 터.

차라리 미리 자리를 옮겨서 다른 의원들과 당 차원에서의 대책을 논의하는 게 낫겠지.

“다들 나가서 일 봐.”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 회의실에 있을 테니까 소식 있으면 실시간으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 * *

백태성 의원은 자리에 도착했으나, 해군 투스타 출신인 이익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국방위원회가 긴급 소집된 탓에 그쪽에 있겠지.

실제로 민국당에서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인물 중 현재 회의실에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지금 여당을 비판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대처를 잘못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닙니까?”

“아직은 아니죠. 우선, 수습이 먼저입니다. 아무리 여당과 야당으로 나눠진다고 해도 대한민국 사람이잖습니까?”

“그런 거 하나하나 챙기다가 대통령 자리까지 넘겨준 겁니다. 언제까지 대한당 뒷바라지만 할 겁니까? 깔 때는 까줘야 우리 권리를 찾는 겁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방위원회 상임위원장도 우리 민국당 소속이니…….”

한참동안 갑론을박이 이뤄졌다.

“최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옆에 있던 구태양 의원에 물음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 개판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쯧쯧.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눈꼴셔서 말하기도 기가 찼다.

이중에 제대로 군대를 나온 인물이 절반이나 될까.

그 중에서 공익이나 방위를 제외하고 현역으로 나온 인물은 따지자면, 총 87명의 민국당 의원들 중 30명이나 되려나 싶었다.

같은 생각인지 구태양 의원도 헛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백태성 대표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한 쪽으로 다가갔다.

짧은 머리에 강직한 인상.

오일준 의원이다.

백태성 대표는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그를 자신의 상석 바로 옆자리로 데리고 왔다.

“다들 그만하지.”

백태성 대표는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시킨 뒤, 자연스레 오일준 의원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그는 백태성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 이 정도면 충분히 의견은 나누셨으리라고 봅니다.”

자연스레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

“우선 이번 백령도 해전에서는 한국의 초계함 한 척과 고속정 2척이…….”

그가 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해군 ROTC 중령 출신의 3선 의원.

군 간부 출신 중에서는 드물게도 국방위원회에 소속되지 않은 인물이다.

아마 지역구의 이해관계 때문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해군에서 복무하던 인물이라 그런지, 현재 상황에 대한 정리 및 판단이 빨랐다.

그렇게 회의를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새벽 1시를 넘어갈 무렵, 백태성 대표의 보좌관이 급히 들어오더니 그에게 귓속말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백태성 대표는 잠시 오일준 의원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현장에서 녹화된 선체 영상이 들어왔는데, 확인할까요?”

조심스레 덧붙였다.

“밤이라 그런지 화질이 좋지는 않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로 확인하시죠.”

“그러도록 하지.”

이내 국방부에서 파견된 직원이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빔 프로젝터를 연결하는 사이, 나는 슬쩍 구태양 의원에게 물었다.

“구 의원님 해군 나오셨죠?”

“그랬지.”

“선체에서 실시간으로 녹화가 됩니까?”

“글쎄. 요즘은 기술이 발달돼서 가능할 것 같은데.”

“의원님 때는 없었습니까?”

“내가 복무한 건 40년도 더 됐어.”

“……아.”

그때는 녹화는커녕, 각 집에 전화도 없던 시절이지.

잠시 후, 커다란 화면을 통해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바닥에 미사일이 떨어진 건지, 선체가 크게 흔들렸고.

영상의 화면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격동적인 상황을 체감하기엔 충분했다.

포격할 때는 순식간에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고.

주변에 포탄이 떨어져 물이 세차게 튀어올랐다.

렌즈에도 연신 물방울이 튀어 시야를 가리기도 일쑤.

저 위급한 상황에서 군인들이 느꼈을 공포와 애국심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렇게 한 10분쯤 봤을까.

바로 근처로 떨어진 포격으로 인해 파도가 심해져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이내 시야에 보이던 초계함 한 척 또한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이내 어뢰를 맞았는지, 순식간에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안타까움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음이 아파서 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주먹을 꽉 쥐고 시청했다.

그런데 그때.

“잠깐만.”

오일준 의원은 펜을 들고 있던 손을 번쩍 뻗으며 말했다.

“거기 다시 돌려봐.”

“예?”

“10초 전. 어, 지금. 멈춰.”

어뢰에 피격을 받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일개 육군이었던 나로서는 특이한 점을 찾지 못했다.

전문 지식이 없었기에 그저 어뢰에 부딪치면 선체에 타격이 가서 침몰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직접적으로 어뢰에 맞은 건 저쪽 하단부가 유일하지?”

“맞습니다.”

“그러면 뭔가 이상한데?”

오일준 의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침몰한 게 태홍함 아닌가?”

“예, 맞습니다.”

“태홍함은 내가 지휘관 시절에 직접 관리하던 배라서 잘 알고 있는데…….”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설계 구조상 저기를 맞는다고 해서 함선이 침몰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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