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잡으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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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잡으면 (2)
2022.04.15.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머리가 지끈지끈거려 왔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아침 6시.
워낙 고민이 깊어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결국 밤을 새우고 말았다.
“후우…….”
결국 이불을 걷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을 못 자서 그런 건지, 고민이 깊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너무 뜨거웠다.
지금이라도 자면, 한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왠지 잠들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쏴아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며 머리를 식혔다.
거울로 바라본 내 눈은 새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미래 문자로 본 내용이 사실일까,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걸 의심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버지가 암이라니.
그걸 알고도 묵인했다니.
단순히 첫째 형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모르는 척한 건 차치하고, 셋째 쌍둥이들은 아버지에게 암을 유발했다.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췌장암을 일으키도록 만든 것이지.
아마 첫째 형의 오해는 아닐 터.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태욱 비서실장이 오늘 아침부터 바로 아버지의 치료를 준비한다고 했으나, 단순히 항암 치료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패륜을 저지른 녀석들에게 철퇴를 내리쳐야 하니까.
몸을 적셨던 물기를 털며 나오자.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발신인은 고태욱 비서실장.
“네, 최지훈입니다.”
-도련님. 혹시 주무시고 계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씻고 있었어요. 말씀하셔도 됩니다.”
-조금 전에 각하와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이 시간에요?”
-예. 청와대 주방장으로부터 오늘 일찍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아아.”
-새로운 주치의 통해서 이상소견 받았고, 아마 종양인 걸로 추정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
치아를 질끈 지르물었다.
최지만, 최은실, 최지곤. 이 새끼들도 자식이라고…….
-악성인지 양성인지 확실하진 않다고는 하나, 정밀 검사 직후에 확인이 되면 오늘 바로 수술을 들어갈 예정입니다.
“아버지 공식 일정은요?”
-전부 취소했고, 외부에는 휴가로 보도가 나갈 예정입니다.
“잘하셨습니다.”
국가 원수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게 외부로 나가면 좋을 게 없으니까.
특히나 현재 정세를 보면, 북한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알고 있는 게 몇 명이나 되죠?”
-주치의와 병원 관련자 외에는 국무총리 한 명이 다입니다. 국무총리께선 당분간 업무 대행을 하셔야 되어서 어젯밤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수술이 급하게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단순히 청와대 소속 의사들 외에도 추가적으로 최상급 인력의 의료진들도 이미 수배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외부 일정도 다 취소된 거죠?”
-예. 국외 관련 업무는 국무총리님께서 대행하실 겁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절대 다른 형제들에게 퍼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특히 첫째 형이나 둘째 형에게 들어가면 이 상황을 어떻게 악용할지 모르니까.
-저는 추가적으로 셋째 최지곤 도련님이 제약회사에 대해 조사해 보겠습니다.
“예. 저도 진행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젠장.
속에서 울분이 마구 끓어올랐다가 겨우 추스르기를 반복했다.
감정을 억누르고 나서, 다시금 차분하게 미래 문자를 다시금 떠올렸다.
첫째 최지만은 이번 상황에 대해 분명 자세히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건이 건이다 보니, 그를 찾아가서 추궁하면 내게 정보를 내어줄 수밖에 없을 터.
허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그대로 지켜보려 했던 녀석이다.
그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인간에게 지금 바로 접근하는 건 굉장히 위험할 테지.
그렇다면 내가 만나야 될 사람은 정해져 있다.
셋째 최지곤.
쌍둥이 최은실은 여전히 정계에서 아버지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아버지의 췌장암을 유발한 게 최지곤과 최은실이 함께 한 짓이라고는 하나, 최지곤은 이미 정게를 떠났다.
최은실은 당연히 능구렁이처럼 숨길 테지만.
후계 구도에서 떨어져 나간 최지곤은 숨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사건을 제대로 알고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휴대폰을 꺼내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자다 깬 듯 완전히 잠긴 목소리.
“어, 형. 나야.”
-막내, 네가 아침부터 웬일이야?
“잠깐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 얼굴 보고 대화하자. 형 요즘 어디에 있어? 해남 별장에 있나?”
-그렇기는 한데…… 무슨 일인데?
“가서 말해 줄게. 내가 아는 바닷가 별장 거기로 가면 되지?”
-그래. 언제쯤 도착하는데?
“한 6시간 정도 걸릴 거야.”
-직접 차 몰고 오려고?
“응.”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 * *
철썩-.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아름답게 들릴 소리였겠지만, 지금은 내 귀를 괴롭히는 어지러운 노이즈일 뿐이었다.
똑똑.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안에 있는 건 알고 있기에 난간에 기대고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5분쯤 지났을까.
벌컥- 문이 열리며 셋째 최지곤이 등장했다.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기는 한 듯 수더분한 느낌.
“왔어?”
“응.”
“들어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현관으로 발을 들였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그의 멱살을 잡고 협박을 해서라도 이번 일의 인과 과정을 알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말할 위인이 아니란 걸 알기에 최대한 분을 죽였다.
“이거 받아.”
“뭐야?”
“쌀과자. 오는 길에 샀어.”
“고맙다, 야. 여기 살다 보니 군것질을 안하게 되어서 심심했거든. 식사 외에 입에 대는 거라고는 담배뿐이라니까.”
그는 조소를 지으며 소파로 향했다.
“앉아.”
“응.”
그래도 내가 오는 시간동안 집을 정리하긴 한 건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서울에서 이 먼 곳까지 왔어?”
그는 쌀과자를 뜯으며 물었다.
“네가 직접 올 정도면 필시 평범한 건 아닐 테고.”
와그작.
쌀과자를 씹은 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달보드레하네.”
“전라도 사투리야?”
“아니, 순우리말. 달큼하다는 뜻인데…… 감칠맛이 있게 꽤 달다. 뭐 이런 뜻이야.”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요즘 할 게 없어서 글이나 쓰고 있거든. 예쁜 표현들 많더라.”
“그래?”
적당하게 대답을 했다.
쌀과자를 한 네 개쯤 먹고 나서야 최지곤은 손을 탁탁 털며 물었다.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인데?”
그제야 나는 본론을 꺼냈다.
“아버지 때문에.”
그는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아버지에게 외면당한 최지곤에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아버지가 왜?”
쌀쌀맞은 목소리를 내뱉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암이시래.”
“……그래?”
꿈틀.
그의 눈이 미세하게나마 움직이는 걸 보았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최대한 태연한 척 연기하려 했겠지만, 갑자기 그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는 대비하지 못한 티가 났다.
물론, 아직 아버지가 암에 걸린 건 아니다.
현재 정밀검사 중이고, 결과는 저녁에나 나온다고 했으니까.
그를 떠보기 위해 꺼낸 말이다.
그리고 최지곤의 반응을 보면, 미래 문자 내용이 확실하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무슨 암인데?”
“췌장암.”
“…….”
“형도 알고 있었잖아.”
“내가?”
그는 태연하게 눈을 크게 뜨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너한테 처음 들었는데.”
“그렇겠지.”
나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암을 유발하긴 했어도, 아직 확정이라고는 못 들었을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최지곤은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다 알고 왔어.”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아버지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 자체가 이곳에서 그에게 모든 걸 캐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 뭐 어떻게 된 거야?”
“…….”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지곤은 찬장에 있던 보드카를 꺼내 왔다.
내게 내밀어 보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홀로 술잔을 채우며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데?”
“형이랑 은실이 누나가 아버지께 췌장암을 유발했다는 거.”
“그건 팩트가 아니야.”
그는 보드카를 단숨에 들이켰다.
40도가 넘는 술인지라, 인상을 한껏 구기며 입술을 훔친 뒤에야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은실이가 한 거지.”
“형은 아니라고?”
“중간에 가담은 했지. 마지막에 발은 뺐어.”
“거짓말하지 마.”
“진실이야.”
최지곤은 태연하게 대답하며 다시금 보드카를 따랐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중간까지는 네 말이 맞아. 아버지께 암을 유발하려고 은실이랑 같이 준비했어.”
“왜?”
“그래야 첫째 형이랑 둘째 형에게 기회가 덜 갈 테니까.”
그는 소파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넌 막내라 일부러 욕심을 내지 않는 건지, 숨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형들이랑 같이 자랐는데 나만 안 되는 거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격차는 더 커지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기회가 올 것 같았거든.”
“…….”
“그런데 돌아가시기는커녕, 건재하게 살아계실 때 내가 나가리가 되어버렸지.”
왠지 모를 답답함에 그의 잔을 빼앗아 보드카를 들이켰다.
최지곤은 묵묵히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난 손을 뗐어. 어차피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내게 돌아올 건 없으니까.”
“누나가 이어간 거고?”
그는 끄덕였다.
“막바지긴 했지만, 은실이는 막을 수 있었어. 다만, 욕심에 막지 않은 거지.”
최지곤의 말을 100% 믿을 수는 없다.
중간에 그가 발을 뺐는지도 확실치 않고.
또 빼먹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 최지곤 외에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이걸 걸러서 듣는 게 나의 몫.
“형이 손을 뗀다고 멈추는 플랜이었어?”
“…….”
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불리한 정황이 드러난다는 뜻이지.
예를 들어 막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든가.
중간에 발을 뺀 만큼 그의 몫을 돌려받는다든가 하겠지.
대한민국 정계는 권력과 돈. 두 개가 전부니까.
“지곤이 형.”
나는 소파에서 반쯤 걸터앉으며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증거가 필요해.”
피식.
그는 조소를 지었다.
“내가 줄 것 같아서 말하는 건 아니지?”
최지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이게 밝혀진다고 해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계획에 가담했던 아들을 누가 이해할 수나 있겠어?”
“형이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어.”
그가 나서지 않으면 최은실을 잡을 수 없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를 암살하려고 세운 계획이다.
들키지 않기 위해 온갖 미로와 트릭을 깔아뒀을 터.
물론, 최지곤도 마음 같아서는 용서하고 싶지 않다.
인륜을 저버린 게 괘씸하지만, 그는 이미 정계에서 떨어져나간 인물.
그렇기에 이 사건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장본인이니까.
그를 포섭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실도 밝힐 수가 없다.
사실을 밝혀야만, 최은실과 첫째 최지만을 처벌할 수 있다.
최지곤을 용서하고 말고는 아버지의 몫.
“형.”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솔직하게 물어볼게.”
이것뿐이다.
“정계로 복귀하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