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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6)
2022.04.29.


서울시청의 시장실.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최지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형.”

“어, 지원아.”

최지만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왔어?”

“응.”

최지원은 시장실의 책상을 스윽 훑어보고는 넌지시 물었다.

“뭐 바쁜가 봐?”

“당내 경선 준비지, 뭐.”

평소라면 견제도 모자라, 해코지까지 할 사이였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우애가 깊어지는 형제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최지만의 입장에서 최지원의 등장은 굉장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전에 약속을 잡아 둔 것도 아니고,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해서 직접 이곳에 찾아온다고 했으니까.

“그나저나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형이랑 아무래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서.”

“뭔데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

“대선 관련 이야기거든.”

“……이미 정리된 거 아니었어?”

최지만은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혹시나 최지원이 생각을 바꿀까 싶었으니까.

“당내 경선으로 결정하기로 했잖아.”

“나도 그러려고 했거든.”

“그런데?”

“이젠 그럴 때가 아니야.”

“갑자기 대세가 바뀐 거라도 있어?”

“오늘 아침에 오민택 의원이 다녀갔어.”

“오민택이면, 대한당 최고위원이잖아.”

“맞아. 나랑 굉장히 가깝기도 하고.”

“본론부터 말해 봐.”

“대선 후보를 우리 둘 중 한 명으로 정해야 돼.”

“당내 경선 없이?”

“응.”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 봐.”

“고 실장이 출마할 거야.”

“거기까진 예상했던 바였잖아.”

그래서 최지원과 최지만이 손을 잡은 것이었으니까.

“아버지가 개입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잖아.”

“……뭐?”

최지만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들어온다는 건데?”

그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

“설마 너를 후계자로 결정하신 거야?”

“그랬으면 좋겠지만…….”

최지원은 애석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 실장을 밀어 주시려는 것 같아.”

“이런 미친!”

최지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말이 돼?!”

그는 육성으로 욕을 내뱉었다.

“X발!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야?”

“진정해.”

최지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나도 쉽게 납득은 가지 않으니까.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최지만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장남도 아니고, 차남도 아니고…… 뭐? 고 실장?”

어느새 그의 주먹엔 힘이 꽉 들어갔다.

“그게 말이 되냐고. 얼마 전에 갑자기 국무총리로 올리는 게 이상하다했더니만…….”

최지만은 책상 위에 있던 차키를 챙겼다.

“지금 당장 청와대로 가야겠어.”

“가서 어쩌려고?”

그와 달리, 최지원은 차가운 눈동자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 흥분할 때가 아니야. 어차피 아버지의 마음은 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잖아.”

“…….”

아무리 따져 봐도 귓등으로도 들은 체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보다 둘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아버지께서 호통 치지 않으시면 다행일 터.

그렇기에 최지만은 어쩔 수 없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금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런 제기랄…….”

최지만은 이마를 감싸며 물었다.

“그거 확실한 거야?”

“어. 100%야. 지금 내부에서도 갈리고 있어.”

“갈린다니. 설마 고 실장 쪽으로 붙는다는 거야?”

“몇몇은 그쪽으로 가려는 것 같아. 김명석 의원도 아마 그쪽일 것 같고.”

최지만은 소파에 머리를 푹 기댔다.

“이런 배신자 놈들…….”

“따지고 보면 배신자는 아니지. 원래 대한당의 중심은 아버지였으니까.”

동생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최지만은 눈을 부릅떴다.

“넌 어떻게 그렇게 태연해?”

“태연한 게 아니라, 억누르는 거야. 지금 이 상황에서 흥분해 봤자, 어차피 우리 손해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었다.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올수록 대선까지의 하루하루를 굉장히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이전과 달리, 최준석 대통령이 사망하게 되면, 분명 대한당뿐만 아니라, 다른 당에서도 대권에 대한 야욕을 드러낼 테니까.

“우선, 우리 측으로 붙은 사람이라도 최대한 확보해야 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너랑 나 중에서 한 명을 밀어야 된다는 거지?”

“맞아.”

대권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은, 대선 날짜가 잡혀야 치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최준석 대통령이 사망해야 한 명으로 결정이 된다는 뜻이다.

언제 당내 경선이 치러질지 모른다는 뜻이지.

둘이서 막연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고태욱은 홀로 대선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것이다.

안 그래도 국무총리직까지 겸하면서 선거를 대비한다는 걸 생각하면, 최지만 최지원 형제의 입장에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이지.

“형. 냉정하게 가자.”

최지원은 최지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둘 중 하나만 가야 돼. 더 오래 못 끌어.”

“…….”

“내가 갈게.”

최지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알잖아. 여기서 당 분열되면, 형이 이기는 건 불가능해.”

최지만도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포기하고 최지원을 밀어주는 게 그나마 고태욱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을.

허나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한순간에 저버리겠는가?

“네가 한 번 당선되면, 내게는 다시 기회가 오지 않잖아.”

이번에 권력을 쥐게 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생을 집권할 수 있는데, 그걸 형에게 넘겨줄 리는 없었으니까.

“맞아.”

최지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대신 큰 자리를 줄게.”

그는 다른 제안을 내밀었다.

“나 약속 지키는 사람이야. 형이 원하는 자리 줄게. 평생 보장해. 원하는 직위가 없다면, 내가 새로운 보직을 만들어서라도 줄 거야. 형 자식들도 내 조카잖아. 내가 다 챙길게.”

“…….”

최지만은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최지원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형, 대통령은 상징적인 거야. 그에 못지않은 권력을 줄게.”

“아무리 그래도…….”

최지만은 입을 꾹 닫았다.

대통령의 장남인 최지만의 입장에서는 그 상징적인 게 무엇보다 중요한 입장이었으니까.

일련의 상황들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기에 쉽사리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이 가슴 깊이 사무치고 있었다.

그렇게 효도를 했는데.

지금까지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수십 년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버텨 왔는데.

돌아온 거라고는 남보다도 못한 푸대접이라니.

‘차라리 셋째 쌍둥이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어.’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최지만은 한참의 고민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원아.”

“응. 말해.”

“내가 조금만 더 고민해 볼게.”

“알겠어.”

최지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도 오래 못 기다려. 알지?”

“그래. 나도 최대한 빠르게 결정할게.”

“나를 도와주기만 한다면, 형이 원하는 걸 약속할 수 있어. 그건 내가 보장할게.”

“알았다.”

“그래, 쉬어.”

* * *

“어, 지훈아!”

접견장에 들어서자마자 최은실은 백마 탄 초인을 본 것 마냥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왔어?”

“기다렸나 보네.”

“너만 기다렸지.”

그녀는 주인을 기다리던 새끼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살가운 목소리를 냈다.

“점심은 먹었어?”

“응.”

나는 최대한 친절한 척 연기했다.

“안에선 밥 잘 안 나오지?”

“아니야, 괜찮아. 먹을 만해.”

최은실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이야기했다.

“지훈아.”

“응.”

“나 정말 네가 시킨 대로 다 말했어.”

그녀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진짜 다 불었어. 관련자들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 연관된 사람 전부 다 검찰에 말했어. 너한테 말한 것 중에 나 숨긴 거 하나도 없다. 진짜 다 말한 거야.”

“알아.”

“그, 그렇지?”

최은실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날 바라봤다.

“지훈아. 나 한 번만 살려 줘.”

“걱정 마. 담당 판사랑 검사들까지 미리 다 이야기 끝내 뒀어.”

“아, 정말?”

순간,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맙다. 진짜 너밖에 없어.”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나는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해서…… 엄청 걱정했다니까. 다들 주변에서도 상황 안 좋다고 하고…….”

“다 잘될 거야.”

“그래, 고마워.”

최은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기도 잠시.

슬쩍 눈썹을 들썩이더니,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 너도 조금 불만이 있었던 거지?”

“불만?”

“아버지가 너무 첫째, 둘째만 편애했잖아. 어렸을 때부터 나는 딸이라고…….”

목숨을 구걸한 지 몇 초나 지났다고 벌써 마음이 편해졌는지, 아버지의 험담을 하기 시작한다.

본인이 그렇게 할 만한 당위성이 있다는 그딴 소리나 씨불이려는 거겠지.

역겹기 그지없었다.

지가 왜 이곳에 와 있는 줄 아직도 모르고.

허나,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만 쳐 주었다.

그래야 재판에서 정말 나락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 * *

최은실의 1심 선고일.

수많은 기자들이 찾아왔다.

몇몇 언론에서는 법원 입구에서 생중계를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

나는 방청석에 앉아 조용히 그 장면을 모두 지켜봤다.

이미 공판이 몇 번 이어진 뒤였기에 재판 과정은 원활하게 진행이 되었다.

최은실은 자신에게 묻는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에선 자신감까지 느껴질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생각 안에서는 이미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잘하면 집행유예.

못하더라도 징역 몇 년 정도가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마지막 결론.

“주문. 피고인 최은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탕!

경쾌한 망치 소리와 함께 내려진 선고.

검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어?”

최은실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졌다.

“뭐야? 무기징역이라고?”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변호사를 향해 재차 물어보았으나.

“왜? 뭔데? 내가 잘못들은 거야.”

변호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1심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는지.

“이게 무슨 개 같은 판결이야!”

최은실은 책상을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녀가 난동을 부린다고 생각한 경비원들이 재빨리 그녀를 제압하며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최지훈!”

아니나 다를까, 최은실은 살벌한 눈빛으로 방청석에 있는 날 바라봤다.

“너! 이 개X끼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그시 그녀를 응시했다.

“네가 그렇게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그제야 배신당한 걸 눈치 챈 모양.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러니까 왜 그딴 패륜 짓을 저질러?

“이거 놔아아아!”

최은실은 발악하며 소리쳤지만.

“얼른 끌어내세요.”

재판관의 명령에 의해 포승줄에 묶인 채 최은실은 끌려 나갔다.

그게 내가 본 그녀의 최후였다.

현실로 나올 생각하지 말고 평생 거기서 푹 썩어라.

몸부림을 치며 악을 지르는 최은실을 뒤로하고.

나는 법원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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