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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황후 마리아-29화 (29/120)

29화

마리아의 등에 붉은 용이 완벽하게 새겨졌다. 붉은 선이 지나는 자리마다 그녀의 붉은 피가 흥건했다. 스톤은 제 할 일은 다 했다며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왜냐하면 군터는 마리아가 성인 남자가 된 스톤을 모르길 원했기 때문이다.

“으…….”

마리아가 나직하게 신음하자, 군터는 그녀의 등에 입을 맞췄다. 아니, 피가 맺혀 흐르는 곳마다 자신의 혀로 피를 핥아 주었다.

“아……!”

마리아는 쓰라린 제 상처를 그가 부드럽고 따뜻하게 핥아 주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그의 입술과 혀가 제 등 전체를 아우르며 피를 닦아 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쓰리던 상처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저릿한 전율이 일어 몸을 움찔거렸다.

군터는 이제야 제 소원을 이룬 양 기뻤다. 머릿속으로만 막연하게 상상했던 일이 제 눈앞에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니, 마리아와 살아갈 앞날이 기대됐다.

‘너와 나는 하나다.’

마리아 스튜어트가 제 여자라는 각인. 쉽게 빼 버리는 혼인 반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결속력을 가졌다.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륙의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군터는 스톤이 준 병을 가져와 마리아의 등에 천천히 쏟았다. 노란빛의 오레가노 오일이 굴곡진 그녀의 몸을 타고 주르르 흘렀다.

“!”

“오일이다. 상처를 금세 아물게 해 주지.”

군터는 마리아의 등 전체에 오일을 펴 바른 뒤,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둥근 어깨와 어쩌면 천사의 날개가 있었을지도 모를 날개뼈를 지나 유려하게 팬 허리까지.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마사지하다가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이내 마리아의 잇새에서 나직하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경직된 근육이 나른하게 풀어지자, 그녀는 군터에게 제 몸을 완전히 맡겼다.

“후!”

군터가 미약하게 숨을 내쉬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감촉은 그의 욕정을 한껏 부추겼다. 오일 범벅이 된 손이 가지 말아야 할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을 매만지다 배꼽까지 스르륵 내려왔다. 그는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마리아를 바로 눕혔다.

“아주 고역이군.”

군터는 이를 악문 채 씹어뱉듯 말했다. 오일에 번들대는 여체가 어찌나 육감적인지 눈이 아플 정도였다. 보고 만질 순 있어도 그녀의 몸 안에 제 욕구를 풀 수가 없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마리아는 두 팔로 제 가슴을 가리곤 다리를 꼬았다. 이미 군터는 제 알몸을 보았지만, 그래도 정면으로 다 드러내는 건 여전히 부끄러웠다.

“참을 거다.”

군터는 가슴을 가린 그녀의 두 팔을 풀어내며 말했다. 말과 달리 그의 눈동자엔 들끓는 욕정으로 가득했다. 솔직히 참고 싶지 않았다. 말하는 중에도 북받치는 욕구와 부단히 싸우는 중이었다.

“내가 그리 무식하진 않아.”

등에 피가 흥건한 여자에게 욕정을 풀 만큼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자신이 참지 못하고 마리아를 건드리는 순간, 그녀의 등은 마구 쓸려서 아플 테니까. 그러나 이렇게라도 그녀를 느끼는 건 포기할 수 없기에 군터는 마리아의 가슴과 배, 다리까지 오일을 흠뻑 쏟았다.

군터의 손이 마리아의 두 팔을 자연스레 위로 쓸어 올렸다가 제 눈을 희롱하는 하얀 젖가슴을 조심스레 마사지했다. 이내 그녀는 눈을 스스륵 감았다.

‘마리아, 넌 수치심도 없는 거야?’

그녀는 저 자신에게 물었다. 어째서 군터 플레이슬리, 이 남자와 나누는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는지,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아니, 그의 행위는 대담하면서도 원초적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자신의 몸을 만질 때마다 은근히 즐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멈추지 않기를, 미처 자신이 알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워 주기를 바랐다. 그때였다. 군터의 손이 마리아의 가장 은밀하고 예민한 신경을 건드렸다.

“앗……!”

마리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튕기며 신음했다. 쾌감의 정점을 자극하는 그의 손이 싫지 않았다. 더는 하지 말라며 그의 손을 저지해 보지만, 맥없이 내쳐질 뿐. 그의 손은 욕망의 도구가 되어 그녀의 은밀한 곳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아……. 읏!”

요망한 생명체가 제 손을 축축이 적시며 오물거리는 감각을 느끼던 군터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마리아의 속에 웅크리고 있는 욕망을 밖으로 꺼낼 참이었는데, 되레 그녀를 만질수록 제 몸뚱어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후우!”

호흡을 조절하며 참아 보아도 그녀의 다리에 숨겨진 늪지에 빠져 마구 허우적거리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다. 이내 군터의 손놀림이 빨라지며 마리아를 쾌감의 정점으로 인도했다. 마리아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신음하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는 감각에 휩싸였다. 곧 짜릿한 전율이 그녀의 온몸을 강타하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허공으로 부유한 채 희열에 몸부림치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쾌감이 파도처럼 다시 한번 몰아쳤다. 마리아도 미처 몰랐다. 자신도 욕망에 몸부림치며 더한 쾌감을 갈구하는 여자라는 것을.

* * *

마리아는 제 등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에로가 눈물을 보이며 사과했다. 백옥 같은 마리아의 등에 흉흉한 붉은 용 문신이 웬 말인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아 한동안 말을 잃을 정도였다.

“영광 아닌가.”

노라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세상에 대왕과 같은 문신을 할 수 있는 여자는 오로지 한 명일 테니까. 그건 곧 마리아는 군터의 여자라는 뜻이니, 아직 혼인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마리아는 곧 헬랜드의 왕비가 될 것이다.

“아잉, 참! 저게 무슨 영광이에요?”

에로는 노라의 말이 야속한지 툴툴거렸다.

“이 답답한 것아, 마리아는 곧 헬랜드의 왕비가 된다는 뜻이잖어.”

“왕비요? 얘기가 그렇게 되나.”

마리아는 에로의 손을 잡으며 ‘나는 괜찮노라’ 손짓으로 이야기했다. 에로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적당히 해, 이년아. 마리아 덕분에 남자도 생기고 여자로 살 수도 있게 됐는데……. 질질 짜기나 하고. 우라질!”

“좋아서 그러죠.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해서요.”

에로의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끄떡였다.

‘에로, 너는 행복해도 돼.’

비록 말로 할 순 없지만, 그녀에게 환하게 웃어 주는 것으로 제 뜻을 전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라스토니아의 상황이 아주 안 좋은가 봐.”

노라는 뜨개질을 하면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마리아를 보곤 아차 싶었는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고, 내가 주책맞게 괜한 소리를 했네.”

한때 라스토니아의 황후였던 마리아 앞에서 굳이 할 얘기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무심코 말해 버렸다. 한데 마리아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래서 더 놀랐다. 되레 마리아가 노라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툭툭 치며 말해 보라 재촉했다.

“황제의 정부들끼리 매일 싸움질하고, 선황후라는 여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자들을 궁으로 불러들이고, 황제는 세금을 더 거둬 들이라고 귀족들을 압박한다지 뭐야.”

노라의 말에 마리아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미 예상한 일이긴 하나, 고국의 사정이 엉망진창이라는 소식이 썩 기쁘진 않았다.

“참, 라스토니아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곧 헬랜드로 온다던데요?”

에로도 솔샤르에게 들은 소식을 전했다.

“그중에는 한때 귀족이었던 사람도 있고, 기사들도 있대요. 평민이나 농노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황후였던 마리아도 여기 있는데 말해 뭐 해?”

노라가 큰 소리로 떠들자, 에로가 눈치를 주었다. 곧 노라는 두꺼운 손으로 제 입을 톡톡 때렸다.

“이놈의 주둥아리.”

마리아는 헬랜드로 이주하는 라스토니아 사람 중에서 자신이 아는 사람도 있기를 바랐다. 혹여 부모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공식적으론 처형이 됐지만, 스톤의 말로는 분명 살아 계신다고 했으니, 희망적인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들었다. 마침 마리아의 시녀가 찾아왔다.

“마리아 님, 대왕께서 찾으십니다.”

마리아는 군터가 자신을 왜 찾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스톤이 오늘부터 겨울잠에 들기에 인사하라는 뜻일 터. 당연히 스톤을 봐야지 싶었다. 마리아는 두 사람에게 잠시 다녀오겠노라 손짓한 뒤 방을 나섰다.

“노라, 저 이상한 말 들었어요.”

에로는 마리아가 나가자마자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부관님께 들은 거냐?”

“네. 그런데 좀 이상해요.”

“뭐가?”

에로는 솔샤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녀들이 겨울 제례를 위해서 궁으로 오게 되면 마리아를 각별히 살피라고 했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겨울 제례가 시작되면 마리아한테 문제가 생기나요?]

[그런 건 아니고. 제례를 지내는 날, 마리아와 함께 밤을 보내 줘라.]

[왜요? 대왕께서 절대 허락 안 하실 것 같은데…….]

[그런 게 있다.]

“그런 게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에로의 말을 들은 노라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군터는 광산에 있을 때도 마리아를 자신의 막사에서 재웠다. 한데 겨울 제례가 뭐라고 그런 마리아를 떼어 놓겠다니. 설마……?

노라가 답을 찾은 얼굴로 에로를 쳐다보았다.

“맞아요. 겨울 제례가 끝나면 그날 밤은 대마녀와 밤을 보내신대요.”

“이런! 우라질!”

노라가 펄펄 뛰며 화를 냈다. 제 여자라고 등짝에 흉한 용 문신까지 박아 놓고는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낸다니.

“이제껏 그렇게 해 왔다고.”

“그게 말이야 발이야? 난 용납 못 해!”

공교롭게도 그때 문이 열리며 마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로와 노라는 급하게 표정을 바꾸느라 우왕좌왕했다.

‘마리아가 못 들었겠지.’

에로는 제 말을 마리아가 못 들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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