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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황후 마리아-47화 (47/120)

47화

마리아는 상의의 단추를 하나씩 푸는 그의 손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탄탄한 구릿빛 가슴이 조금씩 나타나자, 마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스스로 미친 게 아닐까 의심도 했다. 한 번도 남자의 몸에 흥분한 적이 없었건만. 섹스는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황손을 잇기 위한 신성한 의무라 여기며 살았던 저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군터는 완벽한 육체로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완전히 상의를 탈의하자, 마리아는 나직하게 신음했다. 하지만 그가 하의까지 벗는 광경을 지켜보기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내 마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외면하지 마. 나를 똑똑히 보란 말이야.”

여지없이 군터의 핀잔이 날아왔다. 마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그를 응시했다.

“눈으로 즐겨.”

‘즐기라고.’

마리아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양, 얼얼했다. 원래 즐기는 거였나.

‘그래, 나는 여태껏 즐기지 못했어.’

섹스는 인간의 쾌락 중의 하나였다. 더욱이 오감으로 즐기는 것인데 자신은 그러질 못했다. 저조차 여자는 아이를 낳는 수단이라는 여겼다.

‘안 낳으면 어때? 못 낳으면 어떠냐고.’

갑자기 저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제 세상이 전부인 양,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 그렇다고 헨리처럼 외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주눅 들었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했다.

마리아는 군터의 말대로 눈으로 즐길 참이다. 이내 군터가 바지 버클을 풀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근육 덩어리의 절정을 보게 될 터. 곧 근육의 결대로 쪼개진 그의 굵은 허벅지가 드러나며 바지는 저 멀리 날아갔다. 이젠 군터도 완전한 나신으로 마리아 앞에 섰다. 마리아는 도발하듯이 그의 얼굴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를 감상하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어때? 만족스럽나?”

군터는 두 팔을 허리에 올리더니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몸만 본다고 여자는 막 흥분하지 않아요. 제대로 유혹해 봐요.”

마리아는 약간의 허세를 부렸다.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여자가 본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유혹당하고 싶다는 거지?”

“흥분하면 더 좋고요.”

지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군터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군터는 마리아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마리아를 만지지는 않았다. 그는 마리아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거머쥐었다. 그녀의 눈을 희롱하며 감질나게 굴어야지. 그녀를 보고만 있어도 욕정에 사로잡혀 발정하고 마는 자신의 육체를 똑똑히 보여 줄 참이다. 그는 마리아의 눈을 응시한 채 아주 열심히 유혹했다.

“으……. 윽!”

그의 잇새에서 신음이 흐르며, 그녀의 시선도 한껏 부풀어 오른 그의 욕망을 주시했다. 사람이 품을 수 없는 거대한 욕심이 연신 제 눈에 치받쳤다. 군터는 마리아의 붉은 입술을 보며 온갖 음란한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향한 도발은 멈추지 않았다. 신음이 커지고 유혹의 속도가 빨라지자, 마리아가 은근하게 다리를 꼬며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아!”

기어이 눈으로만 보고도 그녀의 잇새에서 교성이 새어 나오자, 군터는 흥분의 막바지에 몰려 자신을 다급하게 몰아쳤다. 곧 응축된 욕망이 하얀 불꽃이 되어 마리아의 몸에 튀었다. 그는 자연스레 그녀와 입술을 겹치고 짜릿한 쾌감을 마저 즐겼다.

“이젠 같이 즐겨야지.”

“?”

군터는 마리아의 손목을 묶은 비단 끈을 풀어 주곤 그녀를 안아 침대로 데려갔다. 한데 어떻게 인간이 이토록 빨리 흥분할 수 있는지…….

“나를 얕보지 마. 밤새 할 수 있으니까.”

그냥 허풍이라고 하기엔 그의 또 다른 자아는 이미 성이 잔뜩 난 상태였다. 군터는 마리아의 입술로 시작하여 아주 정성스레 그녀의 몸을 애무했다. 소유욕에 치받쳐 무작정 움켜쥐고 아프게 했던 전과는 달리, 말캉한 혀로 부드러운 젖가슴을 맛본 뒤, 우아하게 뻗은 곡선을 따라 자신의 타액을 묻혔다. 이내 마리아가 숨을 헐떡였다. 그가 억지로 하지 않아도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되레 그녀는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군터를 가둬 버렸다.

“시발, 돌겠군.”

그의 입에서 나직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마리아와 처음 하는 섹스라서 느긋하게 즐기며 하고 싶었는데 몸뚱어리가 도와주질 않았다. 그녀의 다리가 제 허리에 닿는 순간, 그의 분신이 쾌락의 늪지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정말이지, 제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아……! 읏.”

그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마리아는 크게 교성을 질렀다. 한데 제 몸에 딱 맞춘 듯이 아주 부드러운 데다가 틈 하나 없이 꽉 맞물렸다. 그제야 군터는 마리아도 저처럼 흥분했음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전희를 할 여유 따윈 없었다. 어서 빨리 불길처럼 치솟는 본능을 잠재워야 할 때였다. 군터는 제 욕망을 그녀의 몸 안에 아주 깊이 박았다. 땅에 박혀 절대 빠지지 않는 나무처럼 뿌리까지 완벽하게 심었다.

“윽.”

‘너무 커.’

마리아는 나름대로 경험이 있었지만 생전 처음 겪는 일처럼 생경했다. 제 몸이 그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군터의 분신은 몸 전체를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군터는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헉헉대는 숨소리조차 관능적인 남자. 그가 주는 쾌감이 너무 좋아서 마리아는 연신 고개를 흔들며 교성을 질렀다.

마리아의 몸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짜릿했다. 비좁은 길을 타고 흐르는 축축한 액체가 그를 부드럽게 감쌌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빨려 들어갈 때는 잠시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쾌감이 자신의 욕망을 휘감아 버릴 땐 눈앞이 아득했다. 더는 무리일 정도로 빠르게 절정에 다다랐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마리아는 그에게 매달렸다. 두 사람은 경쟁하듯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깊이 빠져들었다.

“아아읏!”

마리아는 거칠게 도리질하며 허리를 들썩였다. 절정이 임박한 것이다. 군터는 그녀와 함께 황홀한 희열을 맛보려 속도를 맞추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함께 도달해 보지 못한 쾌감의 절정에 이르렀다.

“아!”

“헉.”

마리아의 두 허벅지가 쾌감에 파르르 떨리고, 군터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짐승처럼 포효했다. 비로소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군터는 마리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요동치는 그녀의 심장 소리를 즐겼다.

‘완전한 내 여자다.’

제 귀에 들리는 심장 소리가 환청은 아닐 터. 두 사람이 입으로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환영은 아닐 테니까. 그때 마리아가 군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어찌나 다정하던지. 둘만이 할 수 있는 친근함의 표현.

‘옳지, 그렇게 나를 사랑해라. 몸으로든 뭐든 상관없으니.’

* * *

솔샤르가 랑데스에서 돌아왔다. 물론 함께 갔던 에로도 무사했다. 그녀는 오자마자 한달음에 마리아와 노라를 찾았다.

“두 사람이 실제로 봤어야 해. 우리 솔샤르 님이 얼마나 멋지셨는지.”

“봤다.”

노라가 일부러 심통 맞게 대답했다.

“아잉, 마물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근데 너는 거기까지 왜 쫓아간 게야? 딱히 할 일도 없어 보이드만.”

“어머머! 제가 왜요? 솔샤르 님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어 드리잖아요.”

“우웩!”

노라가 일부러 토하는 시늉을 하자 에로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반면 마리아는 에로가 데리고 온 여자가 궁금했다. 대략 스물한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가씨로 차림새가 매우 허름했다. 무엇보다 얼굴 반쪽을 붕대로 가리고 있어서 더 눈에 띄었다.

“에로, 저 아가씨는 누구야?”

“어머나, 내가 깜빡했네. 세라두성에서 구해 냈어. 돼지우리에서 똥을 치우고 있더라고. 내가 씻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구구절절 길게 말하는 에로를 향해 노라가 눈을 부릅떴다. 그 바람에 에로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한데 마리아는 에로가 굳이 저 아가씨를 데려온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곳에나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흔한 거니까.

“로랑 세라두 그 여자의 시녀였는데……. 에이, 직접 들어 보는 게 낫겠다.”

‘로랑의 시녀였다고.’

“이름이 뭐예요?”

“라모나 테일입니다.”

“반가워요. 라모나.”

마리아는 라모나를 세심하게 살폈다. 붕대로 가리지 않은 반쪽 얼굴은 꽤 예쁘장했다. 키는 작지 않았지만 몸은 심하게 말랐다. 특이한 게 있다면 머리 색깔이 분홍색이라는 것이었다. 보기 드문 색으로 일부러 염색하지 않는 한, 분홍색 머리를 하고 다닐 사람은 없었다.

“깊은 속사정은 차차 듣기로 하고, 일단 좀 먹여야겠어.”

노라는 라모나의 앙상한 팔목을 보며 혀를 찼다. 그때 제이미가 다급하게 응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리아 님, 문이 열렸어요.”

“제이미, 문이 열리다니? 설마 스톤의 방문이 열렸다는 거야?”

“네, 대왕님도 부관님도 전부 달려가셨어요.”

제이미의 말에 그곳에 있던 모든 여자는 응접실을 뛰쳐나갔다. 그 와중에도 에로는 라모나를 챙겼다. 스톤이 깨어나려면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그래서 군터가 놀라서 뛰어간 모양이다. 드디어 스톤의 방문 앞에 도착하자, 거대한 빛이 안에서 쏟아졌다. 모두 손으로 눈을 가릴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보아하니 스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듯했다. 그때 안에서 밝은 빛을 등진 채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무언가가 좀 이상했다.

‘스톤인가?’

마리아는 의아한 얼굴로 문 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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