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마리아는 침대에 던져진 후에야 짐승 같은 숨소리를 내며 자신을 잡아 온 사람이 군터임을 알아챘다. 아니, 잡히는 순간 알았다. 어떻게 그의 체취, 감촉, 숨소리를 모를까.
“군터, 정말 왜……!”
침대에서 팔짝 일어나 그에게 한바탕 쏘아붙일 참이었다. 물론 그 전에 군터의 힘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마리아는 대자로 엎드린 채 옴짝달싹 못 했다. 군터가 제 두 다리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군터는 마리아의 다리뼈가 상하지 않게 최대한 조심했다.
“놔줘요. 말로 하자고요.”
“말로 할 필요 없어. 못된 망아지는 매가 약이거든.”
“뭐라고요?”
매가 약이라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마리아는 자신을 망아지라 칭하는 군터의 말에 경악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군터는 마리아의 치마를 뒤집어 올리더니 그녀의 얼굴까지 완전히 덮어 버렸다.
‘이 미친 남자!’
가까운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게다가 군터는 일국의 대왕인데 하는 짓이 이토록 거칠어서야. 마리아는 팔을 허우적대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힘을 당해 내긴 역부족이었다. 그 자세로 군터가 자신의 마지막 속옷까지 벗기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당신! 정말 용서 안 할 거야!”
“용서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지.”
군터는 마리아의 하얗고 탐스러운 엉덩이를 연신 손으로 쓰다듬었다. 마리아는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알 듯했다.
“나한테 수치심을 주겠다는 거예요? 이런 저질!”
“내가 고급은 아니지. 하지만 상과 벌은 확실하다.”
찰싹! 그의 커다란 손이 마리아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
마리아는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냈다. 지금 이 남자가 제 엉덩이를 때린 건가? 의구심이 드는 찰나 군터는 그녀의 나머지 한쪽 엉덩이도 내리쳤다.
“나를 감히 거절한다고 했나? 다시 말해 보지.”
사람을 바짝 약 올려 놓고 온종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겠다? 찰싹! 그는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가며 때렸다. 왕비를 안 하겠다, 사랑하지 않겠다, 자신은 볼모다. 마리아는 자신이 들으면 화날 만한 말만 골라서 했으니, 벌을 받아야 했다.
“아파요!”
“좋으라고 때리는 건 아니거든. 아니지, 어쩌면 좋을 수도 있으니 잘 느껴 보라고.”
“당신이 이러고도 대왕이라 할 수 있어요?”
“침실에선 대왕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 그냥 네 남자다.”
찰싹! 그는 강약을 조절하며 마리아의 엉덩이를 때렸다. 그녀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런데 마리아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
분명히 그가 제 엉덩이를 때리는 게 무척 아픈데, 어째서 한편으론 짜릿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막 흥분이 된다고 할까.
‘뭐야? 나 변태야? 왜 느껴?’
갑자기 소변이 마려운 것처럼 아랫도리가 저릿저릿했다. 이젠 아픈 것보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음란함에 당혹스러웠다. 이제껏 묻혀 있던 제 은밀한 감각이 밖으로 까발려진 느낌이랄까.
“자, 잘못했어요.”
아무튼 이 불편한 감각에서 벗어나려면 군터의 행동을 저지하는 게 급했다.
“진실성이 부족해.”
“정말이에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소리 안 할게요.”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 싶었다. 이대로 가다간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질지도……. 마리아가 울먹이며 애원하자, 그제야 군터는 더 이상 마리아의 엉덩이를 때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만든 붉은 손자국을 혀로 핥았다. 타액을 축축하게 묻혀서 상처를 보듬듯이 마구 핥았다.
마리아는 차라리 맞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가학적인 행동 뒤에 야살스럽게 제 살갗을 애무하는 남자라니. 따뜻하고 말캉한 혀가 얼얼한 부위를 어루만질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했다.
“아……!”
마리아의 잇새에서 자연스레 신음이 흘렀다. 그때 군터의 혀가 길게 난 음지로 향했다.
“안 돼!”
엉덩이를 핥는 것도 창피한 마당에. 하지만 이미 그의 손이 좁디좁았던 길을 양옆으로 활짝 벌려 버렸고, 군터는 그 사이에 입술을 묻었다.
“아아앗!”
그가 가장 예민한 제 말초신경을 거칠게 탐하자, 마리아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군터는 이미 자신의 목적을 잊은 지 오래였다. 제 애무에 따라 마리아가 보여 주는 변화무쌍한 반응이 이리도 큰 자극이 될 줄은 몰랐다. 그는 마리아의 탐스러운 살점에 입술을 묻은 채 마음껏 느꼈다. 그러다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든 마리아도 더 큰 욕망을 갈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가장 여린 살까지 마음껏 음미하다 갑작스레 멈춰 버렸다.
“아……. 응!”
그녀는 허리를 뒤틀다 연신 다리를 꼬았다.
“더 해 줄까?”
“윽.”
마리아는 야릇한 신음으로 대답했다.
“아니, 애원해 봐. 나를 원한다고, 멈추지 말아 달라고.”
하읏! 마리아의 잇새에서 뜨거운 숨결이 연신 새어 나왔다.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했다.
“당신을 원해요, 제발 멈추지 말아요.”
“옳지, 그렇게 하는 거다. 아주 예뻐.”
군터는 마리아가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강한 자극을 선사할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밖으로 드러낸 뒤, 마리아의 여린 속살을 단번에 정복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교성에 군터는 더 흥분하여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욕정이 커져 버렸다.
마리아는 일순간 감당하기 버거워 신음을 뱉었지만, 그녀는 곧 군터의 분신을 부드럽고 촉촉한 황홀경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아직 거센 파도는 몰아치지 않았다. 군터는 쉴 새 없이 무섭게 불어닥쳤다. 마리아의 몸이 위아래로 마구 흔들리고 침대 시트가 엉망으로 이지러져도 멈추지 않았다. 마리아는 엉덩이를 맞을 때보다 더 요란스레 교성을 질렀다. 질척하고 찰진 소음이 침실 안을 가득 메우며 두 사람이 내뿜는 열기에 공기가 뜨거워졌다.
“허으윽.”
처음의 목적을 잃은 남녀는 오롯이 쾌락에 몸을 실은 채 달렸다. 마리아는 야만적이고 짐승 같은 교미에 제 육체가 흠뻑 빠질 줄은 몰랐다. 아니, 너무 좋았다. 그가 밀어닥쳤다가 쓸려 갈 때마다 희열은 배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잡념 없이 사랑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내 둘은 절정이 임박했는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누가 먼저가 아니라 함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였다. 마리아가 쾌감에 젖어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바람에 군터의 절정은 아주 빠르게 찾아왔고, 그는 거칠게 으르렁대며 뜨겁게 쏟아 냈다.
* * *
군터는 제 품에 안겨 잠든 마리아를 새벽녘까지 바라보았다. 저 자신도 잘 모르겠다. 어째서 마리아에게 장난기 가득한 소년처럼 함부로 했다가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아까워하는지. 얼마 후, 마리아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잠에서 깼고,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응시했다.
“제가 열다섯 살 때 말이에요.”
마리아는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군터가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했다면 지금 우린 어땠을까요?”
“내가 두려웠나?”
군터는 엄지로 마리아의 입술을 매만지며 물었다.
“아뇨. 조금도 두렵지 않았어요.”
“그럼, 동정했나?”
“동정이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저는 이미 군터에게 다가가고 있었어요.”
“처음이었다.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온 여자가 없었거든.”
“운명이니까요.”
“!?”
마리아의 말에 군터의 눈동자가 빛으로 일렁였다.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우리가 운명이 아니라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
그렇지. 한 사람을 오랫동안 갈망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잊힌 인연을 다시 만나 강하게 엮인 것도 우연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제가 군터한테 다가갔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도록 해 줘요.”
마리아는 그에게 제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더는 너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
“저한텐 군터가 있잖아요? 힘이 돼 줄 거잖아요? 무엇보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시간을 두고 용의주도하게 해야죠.”
라스토니아로 돌아가 과거를 청산하는 일, 그건 오로지 제 손으로 해야만 한다고 설득했다. 쉽지 않을 거고, 제 목숨을 노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제 일이 끝나면 군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약속 따위를 받아 내고 싶지 않았다.
“네가 존재하는 게 가장 중요해.”
마리아가 제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괜찮았다. 마리아 스튜어트가 제 곁에 존재하기만 해도 자신은 충분히 만족스러우니까. 하지만 마리아의 말에 굳건했던 제 의지가 꺾여 버리고 말았다.
“제가 군터 플레이슬리의 아내이자, 아 나라의 왕비가 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에요.”
그녀 입으로 제 아내가 된다 했다.
“마리아.”
군터는 설렜다. 자신을 향한 마리아의 진심이 무언지.
“나를 사랑하나?”
“!?”
마리아가 대답 대신 난감한 표정을 짓자 군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거짓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해 주길 바랐는데. 마리아는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 군터는 찰나였으나 머릿속에 온갖 의심이 뒤섞였다. 혹여 마리아가 자신을 복수의 도구로만 여기는 건 아닌지, 자신을 이용한 뒤 떠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차올랐다.
마리아가 그리 이해타산적인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독한 비극을 겪고 난 뒤 복수에 눈이 멀어서 그런 건 아닌지 온갖 의구심이 다 들었다. 자신이 마리아에게 바라는 건,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것을.
“저는 군터를…….”
그를 오래 응시하던 마리아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