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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황후 마리아-60화 (60/120)

60화

군터와 마리아는 손을 잡은 채로 침실로 돌아왔다. 곧 문이 닫히자, 군터는 소년처럼 수줍은 얼굴로 마리아를 보며 말했다.

“그 말, 다시 해 주면 안 되나?”

“응?”

군터에게 많은 말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해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 남자라는…….”

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 귀여워.’

덩치는 커다란 남자가 말을 다 잇지 못할 정도로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미치도록 순수해 보였다.

“왜 그 말이 다시 듣고 싶은데요?”

“어? 그건 말이지, 뭐랄까. 네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라니.’

마리아는 갑자기 군터가 애잔하게 느껴졌다. 강하디강한 남자인 줄로만 알았건만, 그의 속에도 여린 아이처럼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여린 면이 존재했다. 더욱이 저처럼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더더욱 결핍이 컸을 터. 마리아는 두 팔로 그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곤 말했다.

“내 남자, 군터 플레이슬리. 누구한테도 빼앗기지 않아요.”

애절한 고백처럼 듣기 좋은 말. 군터의 눈동자가 감동으로 일렁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느꼈다. 비록 서로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의 감정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내 두 입술이 맞물리며 서로의 숨결이 하나가 되었다. 달콤하고 야릇한 키스가 오랫동안 이어진 뒤, 마리아는 군터한테서 한 발짝 떨어져 돌아섰다.

그녀는 그에게 돌아서서 보란 듯이 드레스를 벗었다. 곧 붉은 용이 새겨진 마리아의 맨몸이 드러났다. 마리아는 군터를 유혹하고 싶었다. 왕비 마리아가 아닌, 그의 여자로서 충분히 매혹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마리아가 단정하게 올린 머리를 풀자, 그녀의 잿빛 머리가 쏟아져 허리에서 출렁였다. 마리아는 말없이 요염하게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비록 군터를 등지고 있으나 그의 시선이 뜨겁게 제 몸을 데우고 있음을 느꼈다.

“이리 와요. 내 남자.”

마리아는 옆으로 누워 군터를 불렀다. 군터는 확연히 달라진 마리아의 태도에 한껏 흥분했다. 그녀는 공적인 자리에선 누구보다 진지하며 교양이 넘쳤다. 하지만 제 남자를 유혹하는 이 순간만큼은 지독하게 음란하고 치명적이었다. 군터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옷을 벗는 손길이 다급해졌다. 한데 갑작스러운 마리아의 도발에 그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예전의 자신이 그녀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는 야한 눈으로 군터를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

마리아는 군터가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제껏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음란한 행위를 먼저 했다. 부드럽게 만져 주다가 때론 강하게 자극을 주었다. 제 몸 중에서 어느 지점이 쾌락의 핵심인지 너무 잘 알기에 손이 스치기만 해도 저절로 교성이 나왔다.

군터는 자신의 쾌락을 좇는 마리아를 보며 같이 할 때보다 더 큰 흥분에 휩싸였다. 어째서 저 여자는 저런 행위조차 아름다운 걸까. 나른한 봄날, 목욕을 마친 여신이 유희를 즐기는 것 같달까. 그때 마리아가 몽롱한 눈으로 군터를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이에요. 당신이 내 안으로 들어올 차례예요.”

군터는 주저 없이 침대로 올라가 한층 달아오른 마리아의 몸 안을 꿰뚫었다.

“아……. 읏!”

물론 통증은 없었다. 부드럽지만 찰기 가득한 밀가루 반죽처럼, 마리아의 몸은 축축하면서도 따뜻했다. 군터는 그녀의 몸 안에서 소용돌이를 쳤다. 강하게 몰아치다가 감질나게 빠져나오기도 하면서 마리아의 반응을 즐겼다. 그러다 군터는 일순간 멈춰 버렸다. 과연 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안 돼, 나를 그냥 두지 말아요.”

마리아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그의 사랑을 갈구했다. 아니, 그녀의 두 팔이 이미 그의 목을 잡아당겨 제 몸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밀착시켰다. 군터는 장난스러운 제 행동이 쑥스럽긴 했지만, 충만한 희열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마리아가 일어나 체위를 바꾸며 군터의 몸을 더 깊이 제 안에 박았다. 두 사람은 앉은 자세로 몸을 하나로 밀착한 채 절정을 향해 달렸다.

“허……억!”

어느 때보다 강렬한 쾌감이 두 사람을 강타하며 이제껏 도달하지 못했던 황홀함에 휩싸였다. 마리아의 몸이 뒤로 휘어지며 긴 머리가 침대에 닿았다. 그녀는 입만 벌린 채, 교성조차 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이런 육체의 기쁨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군터도 마찬가지였다. 마리아와 한 섹스 중에 단연코 가장 강렬했다.

둘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서로를 떼어 놓지 않은 채로 잔물결처럼 몰아치는 쾌감을 즐기다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 * *

초록색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라락 소리를 내고, 시원한 바람이 마리아의 금빛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그녀의 갈색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날이 더워 나무 밑에서 낮잠을 청했는데, 왠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리아가 곧 눈을 뜨자 희미한 시야로 낯이 익은 인영이 들어왔다.

‘어머니.’

‘마리아, 우리 아가.’

엠마는 제 무릎을 베고 잠든 마리아를 사랑스레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 딸의 머리를 만지며 봄볕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어머니, 제 곁으로 돌아오신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는데.’

‘정말이요?’

‘그럼.’

그 순간, 마리아는 복통을 느꼈다.

‘어머니, 배가 아파요.’

‘단것 좀 적당히 먹으라니까.’

엠마는 마리아의 배를 슥슥 문질러 주며 콧노래를 불렀다. 어릴 때 배가 아프면 엠마가 따뜻한 손으로 문질러 주었다. 그러면 감쪽같이 낫곤 했는데. 점점 복통이 잦아들자, 마리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한데 얼마 뒤부터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 눈을 떴다.

‘어머니!’

아무리 불러도 엠마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마리아는 공작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어머니! 같이 가요.”

마리아는 허둥대며 번쩍 눈을 떴다. 어두침침한 침실, 화려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옆에선 새근새근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마리아는 잠든 군터를 보곤 자신이 꿈을 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악몽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항시 꿈을 꾸고 나면 그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데, 이번 꿈은 따뜻했다. 왠지 제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달까. 하지만 아쉬움도 기쁨만큼 차올라 기어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어요.’

언제쯤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지. 마리아는 제 배를 만졌다. 그리고 간절하게 신께 기도했다. 다시 배가 아프면 그때는 꿈이 아닌 실제로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게 해 달라고. 그때였다. 커다란 손이 마리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악몽을 꾼 건가?”

언제 깼는지 군터가 마리아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때문에 깬 거예요?”

“내가 말했지? 나는 눈으로만 너를 보는 게 아니라고.”

제 모든 신경이 마리아에게 쏠려 있음을 그녀는 아직 믿지 않는 모양이다.

“악몽, 아니었어요.”

마리아는 꿈에서 어머니를 만나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노라 설명했다. 한데 군터가 아주 뜻밖의 말로 마리아를 놀라게 했다.

“나도 너와 만나기 전에 가끔 꿈을 꿨다. 대부분 노예 시절의 악몽이었지만, 언제부터가 다른 꿈을 꾸기도 했지.”

“무슨 꿈인데요?”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

“믿어요.”

그녀의 대답에 군터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왠지 입에 발린 말 같아서 안 믿을 줄 알았는데.

“마리아, 너를 꿈에서 만나면 참 행복했다.”

“!?”

군터는 10년 전에 함께 했던 일들이 가끔 꿈으로 나타나 고단한 제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녀와의 추억은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 준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재주가 없어서 자신이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가 제게 무얼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알아요.”

“응?”

“그리고 기뻐요. 제가 군터에게 기쁨이 되어서.”

마리아가 군터의 품으로 파고들자, 그는 그녀를 깊이 제 안에 가뒀다.

* * *

“염병할!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노라는 연신 홀로 분통을 터뜨렸다. 쳐 죽여도 시원찮을 로랑을 대접해 주라니. 노라는 마리아를 이해하려고 해도 이런 부분에선 도저히 동조할 수가 없었다.

[노라, 죄인은 오랜 여정으로 고단할 거예요. 일주일간 충분히 쉬게 해 주세요.]

[예? 그럼 감옥에도 가두지 말라는 거예요?]

[네, 좋은 방을 배정해 주고 음식도 귀빈 수준으로 주세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목욕은 물론이고 좋은 옷도 입혀 주라니. 말로는 대등한 위치에서 대결하기 위함이라곤 하나, 죄인에게는 너무 과한 대접이었다. 다만 마음대로 도망만 못 가게 감시하라고만 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니 굳이 지시하지 않아도 따를 터. 한데 노라는 마리아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수상했다.

[노라, 로랑의 시중은 남자들이 들게 하세요. 이왕이면 젊고 미남에, 몸도 좋은 시종으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지?”

그러다가 막상 결투에서 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노라는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로 로랑의 방으로 향했다.

로랑은 젊은 남자 시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마친 뒤, 화려한 침실로 들어섰다.

“오호라, 내게 과시라도 하고 싶은 거야? 폐황후가 아니어도 이렇게 잘 먹고 잘 산다고.”

그녀는 침실 곳곳을 다니며 라스토니아 황궁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한데 비교할수록 점점 화가 치밀었다. 라스토니아, 아니 랑데스 황궁보다 값비싼 장식에 조각물, 바닥에 깔린 카펫 하나만 봐도 여타의 황궁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급이었다. 하물며 변기마저 황금이라니. 음식은 또 어떻고, 구하기 어렵다는 고급 식재료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는 저조차 처음 먹어 보는 것도 있었다.

“아! 짜증 나! 내가 마리아를 지옥으로 보낸 게 아니라 천국으로 보낸 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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