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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황후 마리아-70화 (70/120)

70화

다행히 마리아의 몸 상태는 다시 좋아졌다. 잔뜩 긴장했던 군터도 마리아가 활짝 웃어 보인 후에야 안심했다. 그래도 궁의의 치료를 받아 보면 좋으련만. 마리아가 극구 거부해서 더는 강요할 수가 없었다.

“마리아, 오늘은 무리하지 마라.”

군터는 마리아가 침대에 누워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모나가 다급하게 두 사람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대왕님, 에로 언니한테 소식이 왔어요.”

“그러하냐?”

대답은 군터가 했지만 먼저 문 쪽으로 향한 건, 마리아였다. 그러잖아도 에로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군터는 그런 마리아를 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잠시라도 침대에 잡아 두려 했는데. 무슨 여자가 저리도 행동이 빠른지.

“뭐 하세요? 얼른 스톤의 방으로 가야죠.”

“그래.”

마리아는 한달음에 달려가 묵직한 군터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는 못 이기는 척했지만, 이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마리아의 손을 잡고 스톤의 방으로 향했다. 얼마 뒤, 솔샤르와 노라까지 다 모이자, 라모나는 에로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을 모두에게 읽어 주었다.

마침내 모니카와 약혼했으며 1000만 골드짜리 어음으로 라스토니아의 황제와 귀족들의 인정을 받아 냈노라 말했다. 이제 남은 건 헨리 왕의 인장을 가로채는 일이라고 했다.

“에로가 약혼하다니.”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단연코 솔샤르였다. 모두 꾸며진 일이란 것을 아는데도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내 군터가 솔샤르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또한 라모나는 라스토니아 황실의 반응도 전해 주었다.

“몇 개월 내에 헨리 왕이 대왕님께 항의 서한을 보낼 거래요. 위자료도 요구할 거고요.”

“그렇겠지. 돈을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주지 뭐.”

군터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뇨. 단 한 푼도 주지 말아요.”

마리아의 단호한 목소리가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 놓았다. 모든 이의 시선이 분노로 이글대는 마리아에게로 쏠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궁금하다는 반응이었으나, 당사자인 마리아는 달랐다. 마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꼭 쥔 채 군터를 향해 말했다.

“군터! 저를 돈으로 산 게 아니잖아요? 애초에 이혼을 요구한 것도 그쪽이 먼저였고, 저를 폐위시킨 것도, 우리 가문을 짓밟은 것도 헨리가 한 짓이었어요. 당시에 군터가 저를 구하러 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교수형을 당했겠죠. 그런데 이제 와서 위자료를 요구한다고요? 저는 헬랜드의 왕비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실내가 갑자기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마리아가 뿜어내는 냉기에 공기가 차가워질 정도였다. 군터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말을 아꼈다.

“나는 라스토니아를 패망시키고 말 거예요.”

마리아의 선언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그때 스톤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마리아,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안 돼. 라스토니아는 마리아의 고국이잖아. 게다가 잘못은 황제가 했는데, 왜 무고한 제국민들이 고통받아야 하지?”

“이젠 제 나라는 헬랜드입니다. 저와 라스토니아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마리아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가능하다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짓밟아 줄 생각이다. 저 자신도 한때는 제국민들을 믿었다. 하지만 황궁을 빠져나올 때 들었던 그들의 함성을 어찌 잊을까.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던 마녀, 마리아 스튜어트는 지옥으로 떨어져라.]

[남자들과 난잡하게 몸뚱어리를 굴리며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악녀.]

[지독한 성병 때문에 아이기 안 생긴 거래요.]

[스튜어트 가문을 몰살시키자!]

자신이 라스토니아의 황후였을 적, 누구보다 제국민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건 비난과 저주뿐.

“마리아의 말이 옳다. 황제의 잘못으로 인해 제국민들이 고통받는 건 안타깝지만, 그런 게 역사란 거다.”

군터는 마리아의 복수를 도울 생각이다. 처음에는 마리아가 복수에 물들어 흑화되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것이 평생 마리아를 힘들게 할 바엔 과거의 일을 청산해 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때론 과거가 현재의 자신을 괴롭히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길을 묶어 버리기도 하니까.

“라모나, 에로한테 인장을 손에 넣는 즉시 찰스 대공부터 경계하라고 전하세요.”

“찰스 대공은 왜 경계하십니까?”

솔샤르가 의아하게 묻자 마리아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찰스 대공은 굉장히 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어요. 게다가 황위 서열 1위입니다. 애초에 로랑이 낳은 아이는 사생아라서 호적에 오를 수조차 없죠. 그를 적으로 돌리면 우리한테 불리해요. 대공은 언제라도 군대를 일으켜 반란을 꾀할 수 있는 작자거든요.”

마리아의 설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솔샤르, 직접 전사들을 이끌고 라스토니아로 가 주세요. 찰스 대공은 의뭉해서 사람을 잘 믿지 않아요. 자칫 에로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예……? 예.”

솔샤르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뛰쳐나갔다. 시간이 좀 흐른 뒤, 경직되었던 분위기를 해소시킨 사람은 당연히 노라였다.

“왕비님, 역정 그만 내시고 우리 여자들끼리 온천욕 어떠세요?”

노라는 마리아가 라스토니아의 소식을 듣는 내내 몸을 너무 떨어서 보기가 불편했다. 저러다 나중에 화가 풀리면 몸뚱어리의 이곳저곳이 아프기도 해서, 지금이라도 그녀를 안정시켜 주고 싶었다.

“노라, 좋은 생각이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해서…….”

마리아는 자신이 과도하게 역정을 낸 것을 뒤늦게 깨닫곤 얼굴을 붉혔다. 세 여자가 스톤의 방을 나간 후에야 군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저 멀리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스톤을 무섭게 쏘아봤다.

“야! 스톤.”

“야?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이봐, 내가 헬랜드의 대왕이거든?”

“나는 헬랜드의 정령이야. 이 땅이 곧 나 자신이라고.”

“됐고, 이번 일은 안 보이냐?”

겨울잠 자는 동안 여러 능력을 얻게 되었다며? 그럼 뭐든지 척척 알아맞혀야 옳지. 마리아가 말하는 동안 어째서 잘난 척을 안 하는지 궁금했다. 무언가를 알고 있더라면 가만히 있을 스톤이 아닌 것을.

“난 정령이지 신은 아니야.”

“그래? 그럼, 지난번에 네가 했던 망할 소리도 정확하진 않겠군.”

역시 헛소리였다. 제 입으로 정령은 신이 아니라고 했으니, 잘못 꾼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애초에 정령 따위가 사람의 운명을 가늠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랬으면 좋겠다.”

“뭐?”

“아쉽게도 마리아의 운명은 딱 거기까지야. 그래도 거스를 방법은 있으니, 내 예측이 완전히 맞는다곤 할 수 없겠지.”

스톤의 진지한 대답에 군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염려 마라. 네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내가 증명할 테니까.”

“나도 그러길…….”

간절히 바랐다. 마리아는 이제 모두에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 *

군터는 복잡한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곤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마리아의 향유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오늘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려고. 군터는 설레는 마음으로 침실로 들어섰다. 역시 예상대로 마리아는 막 목욕을 마쳤는지 머리가 젖어 있었다. 그녀는 수건으로 연신 젖은 머리를 닦아 냈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행동조차 유혹처럼 느껴졌다.

“시녀들은 어쩌고?”

“조금이라도 빨리 군터를 보고 싶어서요.”

“!”

어쩌면 사람의 말이 저리도 달콤할까, 귀가 녹아 버리는 것만 같았다. 더불어 제 안의 욕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앞으론 조심해야 하고 자제해야 하건만, 벌써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지만 마리아는 거침없이 슈미즈를 벗어 던지곤 그를 향해 걸어왔다.

“후!”

남자의 눈을 녹이고 심장을 태우는 농염한 자태. 사랑하는 여자의 몸은 언제나 다디단 과실과 같았다. 매번 느끼지만, 마리아의 나신은 사내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한편으론 매우 성스러웠다. 허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몸. 옥에 티라고 하면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등에 새겨진 용 문신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다시 되돌린다고 해도 자신은 마리아의 등에 제 것이라고 문신을 새길 것이다. 백 번, 아니 천 번이라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입술이 맞물리며 군터는 금세 나신으로 마리아와 얽혔다. 군터는 마리아의 달콤함을 모든 감각으로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을 완전히 탐미하기도 전에 인내력은 바닥나 버렸고 그대로 마리아의 여린 속살을 헤집었다.

“아……!”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터지는 신음. 몽롱한 눈빛만으로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군터는 허기진 사람처럼 그녀의 몸을 탐했다. 소중해서 아끼고 싶어도 막상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면 난폭한 포식자에 불과했다. 가차 없이 제 본능에 따라 움직이곤 만다. 한데 그 상황을 즐기는 마리아를 보면 멈출 수가 없다.

수동적이기만 했던 처음과 달리, 그녀도 쾌락을 좇는 모습이 미치도록 관능적이었다. 이내 마리아가 엉덩이를 들썩이자, 군터는 하체에 피가 쏠리며 금세 절정이 임박했다. 그때 군터는 머릿속을 강타하는 자각과 함께 마리아한테서 재빨리 떨어져 나갔다.

“헉……!”

군터는 수건으로 제 하체를 감싸며 신음했다. 반면 마리아는 한창 쾌감이 고조되던 찰나였다. 제 온 신경이 막 치고 올라가던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몸을 뗀 군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원래 군터는 한번 시작하면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뿜을 때까지, 그것도 제 몸 안을 흠뻑 적시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요?”

마리아가 일어나 돌아선 군터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왠지 마지막을 홀로 마무리하는 것만 같은데? 마리아는 군터의 이상 행동에 의구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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