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첫 전투
"나는 누구야?"
[뭐든지 물어도 된다고 했지만 이상한걸 물어보시네요. 마스터가 누구냐니 그야 당연히.. 어?]
나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원반이 대답을 멈추고 침묵했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마스터에 대한 정보는 파일럿의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서 등록되있을텐데..]
원반조차 지금의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가
"질문을 바꿔볼게. 이 기체와 너의 임무는 뭐야?"
적어도 무엇을 위해 제조되었는지 확인해본다면 대략적인 배경스토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의 임무요? '약속의 때' 까지 마스터를 보조하도록 되어 있어요]
"뭐? 약속의 때? 그게 뭔데"
[키워드로 입력되어 있긴 한데 정보는 제 권한으로 열람할 수 없다고 나오네요.. 죄송해요 마스터]
"아니야 죄송할 것 까지는 없어."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이는 듯 비행속도가 줄어든 원반을 위로하듯 손가락으로 원반 끝을 툭툭 문질러주었다.
나의 손짓에 마치 작은 동물처럼 기대어 오는 원반을 만지던 중 조종석의 모니터 한쪽이 붉게 물들며 원반에서 작은 비프음이 울렸다.
[적이네요]
"적?"
적이 나타났다는 원반의 이야기를 듣고 모니터를 유심히 쳐다보자 그 위에 작은 창이 나타나 해당 지점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하늘 위에 작은 게이트가 있고, 그 밑엔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늑대와 비슷한 세 마리가 있었다.
"아.. 차원수지 저거?"
게이트를 통해 넘어오는 마물.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다고 차원수라고 불리는 마물들이었다.
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인 동시에, 차원수에게서 나오는 코어는 기체들을 움직이는 핵심 기관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불가시 모드를 다시 활성화 시켜서 지나쳐 보낼까요?]
차원수들은 다른 코어의 반응에 민감해서 코어를 가지고 있는 기체들을 최우선 적으로 인식해서 공격한다.
하지만 이 기체는 코어가 없으니 가만히 숨어있다면 발각될 리가 없었다.
"아니. 이 기체의 성능 실험도 해보고 싶었고 싸워볼게"
[네 그러면 전 다시 이 사도 안으로 들어가 있을게요. 또 감정 모듈은 꺼두어야 겠지만요...]
[페어리를 서브 파일럿 모드로 전환합니다.]
원반이 감정이 사라진 듯 한 말투로 말하더니 처음 분리되어 나온 곳으로 다시 들어갔다.
드디어 첫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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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수들은 게이트에서 나온 뒤 주변을 살피듯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야 당황할 만도 하겠지 파괴 본능이 들끓는 생물들인데 주변엔 아무것도 없으니깐
-끼이익..
격납고를 열고 나오자 차원수 세 마리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는 것을 느꼈다.
"일단은 격투로 싸워볼까"
격납고를 나온 뒤 기체의 양 주먹을 들어 올리고 가볍게 패달을 내려밟자 기체의 몸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슈파아아악 퍽
주먹을 휘둘러 가장 오른쪽에 있던 차원수의 옆구리를 후려치자 순식간에 차원수가 뭉개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야수형 차원수는 가장 저급의 마물이긴 해도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질 정도는 아닌데
역시 커다란 주먹이 달린 게 격투 특화 기체인가?
동료 한 마리를 잃자마자 다른 차원수가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확인했다
왼팔을 들어 막아내자 차원수가 조금 뒤로 튕기듯 물러났다.
"격투 말고 다른 무장은 없는 거야? 아까 보니깐 2번까지 뭐가 있던데"
[무장 요청을 확인. 창을 실체화 합니다]
네비게이터의 알림을 듣자 방금 차원수를 뭉갰던 오른 주먹 위에 달린 수정에서 빛이 나더니
오른손 안쪽에 빛의 입자가 모이다가 흩어지더니 하얗고 매끈한 막대와 비슷한 창을 만들어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기까지 생성하다니.. 대단하네"
오른손에 생성된 창을 쥐고 다시 달려 들어오는 차원수를 향해 내지르자
스스로의 추진력이 오히려 자신을 창에 꿰어버린 꼴이 되어 버린 차원수가 몇 번 발버둥치더니 곧 축 늘어졌다.
30초도 안되서 순식간에 두 마리나 제압하다니
어쩌면 내가 소질 있는 파일럿이 아닐까? 기체빨도 좀 있겠지만..
순식간에 다른 두 마리 동료를 잃어서인지 다른 한 마리는 신중해보였다.
이쪽과의 거리를 둔 채 경계하면서 언제든지 다시 뛰어들 수 있는 것처럼 긴장된 태도였다
"다른 무장도 써보고 싶어. 순식간에 제압할만한 그런거 없어?"
[요청을 확인. ...를 활성화합니다]
앞에 달린 모니터에 읽을 수 없는 붉은 글자가 나타났다.
기체가 살짝 자세를 바꾸는 듯하더니 한 손에 쥔 차원수가 꿰인 창을 내려놓고
양 팔을 벌리는 것을 기체 외부의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래서야 무방비함 그 자체인데
기체의 머리에 달려있던 헬멧이 앞으로 내려오더니 전방의 눈을 가렸다
뒤로 향해있던 토끼의 귀와 같은 양 뿔은 앞으로 꺾여 전방을 향해 내려왔다.
양 손목에 달렸던 건틀렛이 위로 밀려 올라가자 좀 전까지 건틀렛에 가려 드러나지 않던 손등이 드러났다.
검은 장갑을 쓴 듯한 손등위에는 헬멧에 달린 것과 비슷한 붉은 수정 두개가 달려있었고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기체는 토끼의 이미지는 사라진 듯한 투사의 느낌이 났다.
-위잉!
양 손등의 수정과 공명하듯 머리위의 수정도 빛이 나더니 차원수를 향해 빛을 내뿜었다.
머리에서 쏘아진 빛이 순식간에 차원수를 흔적도 없이 태워.. 소멸시켜버렸다.
[목표 섬멸을 확인. ...를 종료합니다]
네비게이터의 종료 메세지를 듣자 헬멧이 다시 올라가며 원래의 토끼와 비슷한 머리로 역변형 하는 것을 확인했다.
"성능이 굉장한 건 알겠는데.. 지금의 소동으로 누가 오지 않을까? 게이트가 열리기도 했고.."
아 생각해보니 이 부근은 다른 이벤트와 충돌을 막는다고 따로 괴리 시켜둔 공간이었다.
게임 원래의 설정을 따라간다면 여기서의 전투로 다른 세력을 불러올 일은 없겠지
[주변 감시체계를 확인.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니깐 안심해도 되겠지
차원수 세 마리가 1분도 안되어 전부 제압당하자 작아 보이는 게이트는 힘을 잃은듯 뒤틀려 사라졌다.
임팩트를 발동시키면서 옆으로 내려두었던 창은 서서히 다시 빛의 입자로 변하더니 사라져버리곤 꿰뚫려 죽은 차원수의 시체만을 남겼다.
"역시 코어는 회수해야겠지?"
아까 주먹으로 뭉갠 차원수의 시체를 뒤져 목 아래의 가슴 부위를 살살 눌러보자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수정이 떨어져나왔다.
크기는 거대한 기체에 타고 있더라도 작은 사이즈였다. 세심하게 쥐어보자 기체의 엄지와 검지 끝에 겨우 잡힐 사이즈였으니깐
창에 뚫렸던 시체는 창으로 뚫으면서 코어도 파손된 것인지 가슴 주변에선 검게 부스러진 덩어리만 조금 나왔다.
그리고 머리에서 빔(가칭) 을 맞은 차원 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첫 전투에서 셋을 상대로 얻은 코어가 하나. 출격 비용을 생각하면 엄청난 손해인데
다행히 이 기체는 동력원이 공짜에 가까웠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내 잘못이지
"전투종료. 수고했어."
[서브 파일럿 모드를 종료. 페어리 모드로 전환합니다]
전투가 끝난 김에 네비게이터를 다시 불렀다. 아까처럼 자그마한 원반이 공중에 멈춰 섰다.
[어떠셨나요 제 유능한 보조 능력은]
곧바로 칭찬을 바라는 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 들어 귀엽게 다가왔다.
"잘했어. 그런데 기체가 피로 더러워졌는데 괜찮아?"
검지 끝으로 원반의 위를 쓰다듬어주자 또 기쁜 것 처럼 원반이 붙어왔다.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전원이 정상 유지중이라면 형상관리를 위해 이전의 완벽한 상태를 불러오거든요]
-파스스..
원반의 말이 끝나자 기체의 주먹과 몸통에 튀어있던 피가 분쇄되듯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아까 뒤집어쓴 창고의 먼지도 전부 사라져있었네
"아음.. 그런데 엄청 졸리네"
[첫 전투셨으니깐요. 긴장이 풀리셔서 졸음이 몰려오시는 걸거에요. 마스터는 아직 15세니깐 늦은 밤은 힘드실지 모르겠네요]
"뭐???! 열다섯???"
세상에 반 토막이잖아 삼십대에서 반삼십으로 훅 떨어졌네
긴장이 풀려 나른했던 잠이 잠깐 싹 달아나버렸다.
[이 곳의 기준으로 보면 15세로 볼 수 있겠네요. 정보모듈을 통해 추론한 신체 나이에요]
삼십대 아저씨가 열다섯 미소녀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