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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카페 (12/152)



〈 12화 〉카페

백묘월


조금 묘한 어감의 이름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름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사내에게 적당히 알려준 이름이었다.


곧바로 준비해준다고 했지만 위장신분이라는게 일 분만에 뚝딱 나오는 물건은아니다. 그가 방금 보여주었던 작업은 어디까지나 관련 바이어에게 연락을 넣은 것이지 짠하고 바로 신분증을 건네주는게 아니었다.


약간 시간이 걸릴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와 같이 다시 카페로 돌아갔다. 블러핑으로 떠  관계인 사람과 오래 붙어있는 것은 좋을 일이 없긴 하지만 아직은 교단도 활동하기 전이니깐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겠지


우리가 이십여  정도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딱히 손님은 오지 않았던 건지 아르바이트생은 하품 을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 아 점장님."


"그래 별 일 없었고?"

하필 하품하고 있을  고용인인 그와 딱 마주친 아르바이트생이 조금 당황하는 듯 했지만 점장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건지 그냥 가볍게 넘어가주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분명 돌려보냈어야 할 내가 왜 돌아온 건가 싶은지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 의문에 대답해주듯 말했다.


"사실 얘가 알고 보니깐 조카더라고. 누나네 딸. 이번에 이 근처 고등학교 오면서 인사차 들린다는  장난을 좀 친거라네"

어느새 나는 그의 조카가 되어있었다.  적당히 짜 맞추기엔 적절한 관계겠지. 하지만 자기 조카도 못 알아보는 삼촌이 있는건가 싶어 조금 실망했다는 듯  눈으로 점장을 바라보는 아르바이트생의 시선이 느껴졌다.


"얘가 그 있잖아.. 게이트에 노출되어서 변해버리는거. 그거라네."

대답을 듣자 아르바이트생은 아아 라고 알겠다는 듯 한 표정으로 납득이 간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머리색이나 눈의 색. 게이트에 영향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특징은 선천적으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변하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의 경우 후자로 알고 있는 거겠지.

"삼촌한테 그런 장난을 칠 줄은 몰랐지."

"미안해요 삼촌 헤헤..."

연기를 하는 그에게 적당히 맞춰주듯 삼촌과 조카를 아르바이트생 앞에서 연기했다.


"삼촌 나 목 마른데.."


"뭐 마시고 싶은데? 저기 언니한테 부탁해. 삼촌은 잠깐 나갔다 올게"

"밀크티 라떼 하나 주세요"


단기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갈 비즈니스 관계가 될 텐데 이 정도 얻어마시는건 괜찮겠지.
나의 신분 처리를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우는 그를 배웅하곤 주문을  뒤 아까 대화를 나누었던 카페 테이블에 가서 앉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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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라떼를 받고  음료를 마시면서 조금 기다리자 점장이 조그마한 쇼핑백을 가지고 돌아왔다.

삼십 분정도 시간을 보냈는데 정말 카페에 아무도 안 오다니, 이제 곧 근처 학교가 끝날 시간인데도 장사가 안되는 게 좀 안되보이긴 했다. 3월 이후에 들러서 매상이라도  올려줘야지.

그가 나에게 쇼핑백을 건네며 안에 들은 내용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현금과 체크카드 그리고 신분증과 연락용 통신기다."

먼저 포장  신분증을 들어 포장을 찢고 확인하자 이름은 아까 말했던 대로 백묘월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내가 알고있던 주민등록증과는 다르게 사진이 비어있었다.
 세계에서는 게이트에 의해 후천적으로 외모가 변하는 사람도 많은 탓에 사진은 쓰지 않는다. 대신 게이트가 열린 덕분에 사람들에게 생긴 고유 패턴. 코어를 응용한 기술력이 지문보다도 더 정밀한 판별력을 가진 구별체계를 만들어냈다.

신분증 하단의 작은 백색 사각형위에 덮인 필름을 떼어내고 나의 패턴을 등록하기 위해 엄지로 누르자 반응하듯 신분증이 붉은 빛을 띄었다.

"역시 빨강인가.."


붉은 빛은 적합자. 파란 빛은 그 외의 나머지 일반인이다.


신분증 아래의 백색 사각형이 붉게 물드는 것을 확인하고 쇼핑백 속에 그가 말한 통신기를 확인해 꺼냈다.


통신기라고 하지만 그냥 평범한 스마트폰이다.


"외부 통신사에 기록이 남지 않는 처리가 되어있다. 필요한 연락은 이쪽을 통해 하도록."

최신기종이면 좋았을 텐데 한 두세대 전의 스마트폰인게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은 불만을 가질 때가 아니었다. 필요하면 나중에 사면 되는거니깐


"입학 수속은 내일 중으로 처리하도록 하지"

주민등록이라는 거대한 호수에 작은 돌을 하나 던져넣는 정도의 조작은 눈에 띄지 않지만, 학교같이 작은 개울과 같은 사회에서는 하루 만에 학생을 한명 새로 넣으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걸 위한 준비 시간정도로 하루 정도면 빠른 샘이다.


"그 외에 질문은?"


활동비에 신분증, 그리고 통신기까지 모두 지급이 된 샘이지만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서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 신분증에 나온 나이는 왜 열일곱이지..? 분명히 열 여덟이라고 했을 텐데"


"이미 과가 배정된 2학년은 넣기가 힘들어. 그리고 쓸데없이 눈에 많이 띈다."

학교에 잠입하기 위해서 만든 신분인 만큼 모쪼록 이면 눈에 띄지 않는편이 활동하기 좋겠지.
생각해보면 주인공도 이제 고1로 올라가니깐 동급생인편이 임무에 적합할 것이다. 사실 나이는 그냥 내 순수한 고집일 뿐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았다. 신분을 얻기 위한 핑계일 뿐 정말 학교를 다니란 법도 없으니깐..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음료는 잘 마셨어."


그가 건네 준 쇼핑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손을 흔들곤 카페를 나섰다.



---




카페를 나서서 바로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활동비를 지급받아서 다행이었지, 만약 어정쩡한 의심만 사거나 그가 교단 사람이 아닌 것처럼 잡아 땠다면 지금쯤 그  거리를 걸어서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격납고를 향해 걸으며 인적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주머니 속에서 엘이 무서우리 만큼 강하게 진동하며 점퍼의 주머니에서 뛰쳐나왔다.


[마스터!!]

오히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녀가 참고 있던 게 이상한거겠지. 내 눈을 마주하듯 머리 주변에서 부들부들 거리며 공중에서 웅웅 울려댔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위험해보이는 사람에게 찾아간 건가요! 마스터는 이 별에 처음 내려와본게 아니었던 건가요 ?!]


당연히 그녀가 알지 못할 일을 벌였으니 저렇게 크게 당황할 만도 했다. 오히려 내 기준으로 보면 어제 피복창고를 뒤져 돈을 찾은 게 더 수상해 보일텐데 그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이었던걸까

"진정해. 현지임무는 현지조달이 원칙. 그래서 신분을 현지조달 한 것 뿐이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

"어라 어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


적당히 말을 돌리자 그녀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건지 점차 웅웅거리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내가 이 세계의 창조주 중 한명이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나와 그녀, 그리고 사도의 존재 자체가 이레귤러인데 더 이상의 이레귤러적인 변수는 만들 수 없으니깐.

 뜻을 헤아린 걸까 아니면 더 이상 질문하기를 포기한 걸까. 방금 앞일이 전혀 예측가지 않은 도박을 한 주제에 너무나 태연한 나의 모습에 대꾸를 포기한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격납고에 도착하자 그녀가 작게 말했다.

[... 언젠가는 꼭 알려주시기에요]

그녀에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주곤 사도의 조종석 안으로 들어가 쇼핑백을 한쪽 구석에 두곤 스틱을 붙잡았다.


"전투준비를 해줘"


[전투요? 아무것도 감지된  없는데..]

"아니 곧 올 거야."

[서브 파일럿 모드로 변경할게요.]

 갑작스러운 말에 엘은 살짝 의문을 가진 것 같았지만 조종 보조를 위해 조종석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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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을 움직여 사도를 깨우곤 격납고 앞의 잡초가 무성한 활주로에 서서 모니터를 통해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조용히 바라봤다.



- 쐐애액



곧 하늘이 찢기는  한 소리가 나더니 공중에서 거대한 붉은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매섭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 깡!

그 붉은 무언가는 한 팔에 든 검을 내리쳤지만 금방 사도의 오른팔에 의해 막혀버렸다.
붉은 것은 급습이 실패한 것을 깨닫고 나서 재빨리 몸을 뒤로 빼 사도의 팔을 피하듯 뒤로 물러났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으면 주먹에 맞고 날아갔을 텐데 현명한 판단이네.



방금 전의 급습으로 인한 흙먼지가 점차 흩어지자 붉은 것의 모습이 드러났다.


차원수가 아닌 붉은 차원기.

그러나 붉은 차원기는 오른쪽 팔이 없고, 왼쪽 팔에 기체의 색 처럼 붉은 태도를 든 채 이쪽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그런가. 아직 이 때면 완성이 되지 않았을 때구나.

<너는 대체 누구지>

사도 안에서 통신을 통해 붉은 차원기의 파일럿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붉은 차원기와 그 파일럿.


이름 없는 교단의 간부 중 한명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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