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틴달로스
하늘을 찢고 나타난 붉은 외팔의 차원기.
하늘을 찢었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게이트를 열어 공간을 찢고 그 자리에서 나타난 것이다.
본 시나리오대로라면 카페 점장의 배신을 알게 된 주인공군이 그를 추격하던 도중 나타나서 주인공군을 빈사의 상태까지 몰고 가는 상당한 강적이다.
주인공군의 차원기와는 설계 방식부터가 다른 교단의 신 세대형 병기. 무슨짓을 해도 초회 플레이엔 잡을 수 없는 강적... 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시나리오 중반을 넘긴 다음의 이야기이다.
아직 시나리오가 시작도 되지 않은 지금은 개발 도중인 미완성된 결함기라고 따끔한 평가를 해줄 수 있다.
제대로 테스트가 되지 않은 기체를 간부 본인이 급하게 몰고 올 정도로 간부에게 큰 관심을 줬나보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너는 누구냐>
일부러 사선으로 비스듬히 서 아직 완성되지 못한 오른쪽을 보호하듯 태도를 겨누고 있는 기체에서 다시 통신이 들려왔다.
"교단에서 사냥개까지 보내줄 줄이야. 역시 세례자는 사랑받는 건가?"
<...!>
사냥개라는 키워드를 듣자 붉은 기체가 잠시 몸을 뒤로 빼는 듯하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깡!
어느새 나의 뒤에 나타나 태도를 내려쳤지만 이번에도 간단히 왼팔로 그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두 번이나... 막을 줄이야>
하지만 이번에는 막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방금 공격을 막았던 팔이 아닌 다른 팔로 기체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 콰악!
조금 뭉개지는 듯 한 소리. 상대는 급습으로 승부를 보는 기체인 만큼 내구도는 그렇게 튼튼하지 않았다. 한 방 먹이자 붉은 기체가 잠시 사라지더니 조금 떨어진 정면에 나타났다.
<성체 중 하나인 이 기체가 데미지를 받았다고 ..?>
상대의 당황한 통신이 들렸다. 본인은 나를 압도할 생각이었겠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되려 당하고 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그만 돌아가 주겠어? 틴달로스."
<뭣..? 어떻게 네 녀석이 나의 세례명까지...!>
"그 잘난 첩보원에게 못 들었어? 나는 '거듭난 자' 라고"
거듭난 자 라는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붉은 기체는 들고 있던 검을 순식간에 휘둘러 베었다.
- 쐐애액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공간을 찢은 참격이 날아왔다. 아직 성능이 완전하지 않은데도 기체의 부하가 심한 기술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고작 말 몇마디 뿐이었는데 너무 몰아붙인건가.
불완전한 공격이면 한번 사도의 내구를 시험해보기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그 공격을 받아주었다.
- 파스스..
그을린 것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공격이 사도의 표면에 닿자 마치 산들바람을 맞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서 참격이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내 생각엔 없었던 일이다.
<거짓말... 말도 안 돼... 분명 성체를 사용한 공격이었는데...>
절망에 빠진 듯한 통신음. 방금 전의 공격으로 기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기체의 연결부에서 파직 거리는 소리가 나며 자세가 불안정해진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무인이라면 이길 수 없는 상대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어때?"
<큭...>
- 쌔애액..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이야기가 자존심을 찌른 것일까. 기체 주변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갈라지더니, 갈라진 공간이 기체를 삼켜내며 사라졌다.
처음으로 차원기끼리 벌이는 전투였지만 조금 시시하게 이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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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기체가 사라지자 다시 격납고로 돌아와 사도를 정지시키곤 조종석 안에서 기지개를 피자 서브 파일럿모드로 작동하던 엘이 페어리 모드로 돌아왔다.
[마스터... 방금 그 붉은 기체는...]
이번에도 알려주지 않을 거라 생각한건지 무언가 물어보려다가 포기한 듯 한 말투로 엘은 나의 눈치를 살피듯 작게 날았다.
"틴달로스의 사냥개. 외부인이 교단에 너무 발을 깊게 들이면 찾아오는 처형인이야."
틴달로스의 사냥개. 원래 있던 세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생물의 이름이다. 금기에 범접한 인간을 처형하는 외신의 사냥개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런 범 우주적인 존재의 이름을 처형부대에 붙이기엔 너무 거창했지만 원래 그런 이름일수록 무언가 더 멋지게 보이는 법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어줬던 이름이니 만큼 더 멋져보였다.
자화자찬은 그만두고, 오늘 카페에 방문해 일부러 빈틈이 많은 행동을 벌인 것은 일부러 사냥개를 불러오기 위한 거였다. 그래도 교단의 성체를 타고 등장할 줄은 몰랐지만.
"성체는 교단 내에 몇 대 없는 귀중한 차원기. 아 틴달로스라는건 부대 이름이 아니라 간부 본인의 이름이자 차원기의 이름."
성체라 불리는 강력한 차원기는 교단의 간부 전용기이다. 교단의 차원기를 신이 내려준 성찬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기체의 이름을 간부 자신에게 붙이는 것이다.
"뭐 설명은 여기까지.. 아마 내일이면 또 올걸?"
지는걸 정말 싫어하는 성격이니깐. 분명 내일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 때까지 일단 오늘 받은 스마트폰이나 가지고 놀아볼까. 이 세계의 스마트폰도 내가 살던 시대랑 같을까.
스마트폰을 보다가 좀 늦게 잠들었다. 이 세계도 정보의 바다는 역시 재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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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 또 흐트러짐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미소녀의 상태로 일어나게 되었다. 때 하나 남지 않는 미소녀라고 해도 세면정도는 해야지.
아침식사로 칼로리 스틱과 건빵 몇 개, 그리고 사도 내부에서 생성되는 파일럿 생존용 식수에 이온음료 분말을 타서 흔들어 섞곤 식사를 마쳤다.
이 몸으로 바뀌고 나서 입이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가끔은 맛있는 것도 먹고 싶긴 한데. 오늘은 그럴 날이 아니었다. 분명 틴달로스가 다시 올테니깐.
어차피 이 주변은 보는 눈도 없겠다 당당하게 사도를 격납고 앞에 세워두곤 스마트폰을 즐기다가 둘만 있을 때는 제법 대화를 나누었던 엘이 내가 새로운 장난감에 푹 빠진 모습을 보자 좀 마음에 안들었던건지 토라져 보이는 것을 달래주느라 혼났다.
그리고 점심쯤 될 시간에 다시 하늘이 찢어졌다.
- 쐐애액
마치 전투기가 지나가는 듯 한 소리가 나며 이번에도 위에서 급습해오는 틴달로스를 한 팔로 가볍게 막았다.
"역시 올 줄 알고 있었어."
<시끄럽다..!>
이번에도 역시 외팔의 기체... 오 이번엔 제대로 된 팔을 달고 왔다. 그래봐야 성체 본연의 팔이 아닌 급조한 군용 차원기의 오른팔이었지만.
"성체로도 승산이 없는 걸 그런 조잡한 팔을 달아온다고 될까?"
<무인은 싸움에 가진 수를 모두 끌어다 쓰는 것..!>
나와 개발자군이 만든 아이지만 정말 꽉 막혔구나. 그래도 그런 일차원적인 성격 나는 좋아해.
- 후우욱
그런 틴달로스의 기대를 정면에서 박살내주듯 태도로 위에서 가속하여 무게로 찍어 내리는 기체의 오른 정강이를 잡고 멀리 던져버렸다.
<아아앗!...>
이렇게 날아갈 줄은 몰랐던 건가. 간부라지만 아직 이 때면 실전 경험은 부족할 테니 이런 대처는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귀여운 비명을 듣자 웃음이 나왔다.
"후후..."
그래도 곧바로 자세를 고치곤 다시 이 쪽으로 태도를 들고 달려오는 게 어린아이와 놀아주는 기분이 들어서 즐거웠다.
- 카아앙..
"검 처럼 정말 올 곧기만 한 공격뿐이구나."
<네 녀석이 대체 나에 대해... 그리고 교단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방금 날아갔던 게 분했던 건지 조금 분한 목소리로 따지는 게 들렸다. 여전히 나에게 유효타는 전혀 주지 못하고 어제부터 사도의 팔에 막히고 있었지만.
"차원 가르기는 안 쓰는 게 좋을거야. 급조 된 파츠로는 출력을 못 견뎌."
<시끄러워!>
방금 내 조언을 뭐로 알아들은 것인지 어제처럼 외팔의 동작이 아닌 양 팔로 태도를 쥐곤 이 쪽을 향해 휘두르려고 했으나..
- 콰쾅!
틴달로스의 태도에 모이던 에너지가 기체를 휘감다가 급조 된 오른팔의 연결부가 터져버렸고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버렸다.
"내 말대로지?"
<크윽...>
"내일도 올 거지? 내일 일찍 놀러오면 점심이라도 대접해줄게."
<누가 네 녀석 따위와..!>
- 파사악..
한 쪽 무릎을 꿇은 틴달로스가 태도를 왼쪽으로 크게 휘두르며 게이트 속으로 먹혀 사라졌다.
분명 내일도, 모레도 납득할 때 까지 찾아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