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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틴달로스 (14/152)



〈 14화 〉틴달로스

정말 틴달로스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찾아왔다.


언제 나타날지 몰라서 일정을 비워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슬슬 지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틴달로스와 조우한지 벌써 4일이 지나 금요일이 되었다.


사실 교단의 추격보다 더 걱정했던 건 연락용으로 주었던 스마트폰이 정지당할까 걱정한 게 더 컸다. 그래도 그런 쪼잔한 짓은 안하는게 틴달로스 다웠다.
신기하게 사도 안에 있으면 스마트폰의 베터리는 거의 달지 않았고, 내버려두면 충전까지 되는 덕분에 갖고 놀기 좋았다.

물론 너무 갖고 놀면 엘에게 혼나는 탓에 한 번씩은 그녀와 커뮤니케이션을 꼭 가졌다. 주 된 이야기는 교단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랑 그들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두루뭉술한 정보였지만


혼자 사색에 잠길 때처럼 아무말도 해주지 않던 것 보다는 나은지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틴달로스는 오늘은 과연 어떤 장비를 하고 올까.


일부러 기체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놀아주고 있었지만 성체가 아닌 조잡한 장비를 달고 오면 내 기준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건 꼭 부수거나, 스스로 부서지게 내버려두었다.

그 때마다 분한 듯 후퇴했던 게 또 볼만했다. 분명 이렇게 허당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을 텐데. 자식의 새로운 일면을 본 느낌이었다.



- 쌔액..

이 세계에도 존재하는 X튜브를 사도의 조종석에 누워 이제는 스마트 폰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엘과 함께 보던 중, 또 다시 차원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위일까, 아니면 그저께처럼 뒤에서 나타날까. 아니면 자존심도 버리고 다른 간부와 같이 나타났을까?

하지만 게이트는 나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열렸고 그 안에서 천천히 틴달로스가 걸어 나왔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

드디어 고집이 한  꺾였나보다.




---

내 앞에 선 붉은 기체 틴달로스는 태도를 자기 옆의 활주로 바닥에 꽂고  무릎을 꿇은  한쪽 팔을 내려 복부에 있는 조종석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탁


곧 조종석이 수직으로 열리곤 그 안에서 파일럿이 뛰어내렸다.


검은색의 구두에 차콜 색의 바탕에 얇은 붉은 선이 세로로 그어진 정장바지. 그리고 그 위로 입은 바지와 같은 패턴의 베스트 안에는 붉은 셔츠와 검은 넥타이.


키는 제법 커 보였다. 얼추 보기에도 170은 넘을 듯한 키가 멋진 수트핏에 어울렸다.


단정하게 입은 베스트 위로 부푼 풍만한 가슴과 그 위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조금 긴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한 갈래로 묶어 내리곤, 적합자라는  나타내는듯한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상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성실해 보이는 느낌을 주었다.


옷 위로 드러나는 여성성과는 다르게 강직해 보이는 표정과 입술. 과연 고집이 세다는 걸 증명해주는 얼굴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가 기체에서 내렸다는  더 이상 싸움이 무의미 하다는 걸 인정한 거겠지.



-툭

나도 그녀의 대화요청에 응해주듯 사도의 무릎을 꿇려 정지시키곤 사도의 목 뒤를 통해 조종석을 열곤 땅으로 내려왔다.

속옷은 괜히 찝찝한 느낌에  번 갈아입긴 했지만 결국 복장은 큰 차이 없는 청바지와 티셔츠 위에 점퍼를 입은 오버핏 소녀의 느낌이었다.

"안녕 틴달로스"

"뭣... 너가 저 차원기의 파일럿이라고..?"


주의 깊게 내가 사도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있던 그녀가 막상 내려온 것이 자기보다 작은 여자아이라 놀라는  같았다.


"뭘 그렇게 놀라? 박쥐를 통해 사진도 봤을 거 아니야?"

"당연히 미끼로만 쓴 건줄 알았다..."


키가 20cm 가까이 차이가 나는 바람에 아래에서 그녀를 올려다보게 되었지만 아래에서 봐서 그런가 그녀의 입가에 당혹함이 서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건 기뻐. 점심은 아직 이지? 들어와. 한끼 정도는 대접해줄 테니깐"


"그.. 그러도록하지."

아직도 당황한 그녀를 뒤로 하곤 격납고로 먼저 들어갔다.


---



평소 같으면 사도 안에서 엘과 함께 스마트폰을 보면서 보내냈을 점심시간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손님이 와있었다.

아쉽게도 손님에게 내어줄만한 멋진 의자와 테이블은 없지만 그 대신 격납고에서 주워  항공 부품이 담겨있던 나무 궤짝 큰것과 작은것 두개 이 정도면 다과 테이블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앉으라며 작은 궤짝 하나를 가리키곤 내가 먼저 다른 궤짝에 앉아 조금 높은 탓에 다리를 까닥거리며 흔들자 곧 그녀가 마주 앉았다.

"아쉽게도 먹을 건 별로 없네. 칼로리 스틱이랑 건빵이랑 이온음료 정도... 인데 오늘은 특별히 손님이 왔으니깐 초콜릿도 꺼냈어."


 궤짝 위에는 포장재가 깔려있고 내가 직접 쪼갠 칼로리 스틱과 건빵 몇 개, 그리고 초콜릿을 하나씩 꺼냈다. 저번에 이걸 사느라 버스비만 남기고 돈을 다 썼었지..


지금의 내 기준으로 하루를 먹을 양이었지만 손님에겐 잘 대접해야지.

이온음료를 섞어둔 물병을 멍하니 있는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종이컵은 사둘걸 그랬나. 뭐 병은 넉넉하니깐 그냥 통째로 줬지만

"... 평소에도 이런걸 먹고 지내나?"


"응. 그치만 돈이 별로 없는걸."

때마침 배가 고파져서 먼저 칼로리 스틱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곤 우물거렸다. 먼저 먹는게 그녀의 경계를 풀어주기도 좋겠지


"... 잘 먹겠다."

내가 먼저 먹는 것을 보자 그녀도 손에  장갑 한쪽을 벗더니 건빵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 먹었다.



---

서로 그렇게 말없이 식사를 하다가 내 배가 먼저 찬바람에 식사를 멈추자 그녀도 식사를 멈췄다. 이런건 신경써주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지.

"... 질문해도 되나?"


조용해진 분위기를 해소하듯 그녀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허락을 구했다.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전부는 말 못해주겠지만 고집을 꺾고 식사자리에도 같이 참석해준 그녀에게 특별히 대답을 해주자.


"소속은 어디인가?"


"소속? 그런거 없는데... 음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야. 어디 속한데 없어."


없다는 말에 잠깐 그녀가 뭐라 말하려는  했지만  손을 들어 말을 막곤 정말 속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3월 이후면 몰라도 지금은 격납고에서 혼자 지내고 있으니깐.


"이 정도의 강자가 혼자라고..?"

납득하지 못하는 듯  태도였지만 거기에 미소를 지어주며 대답해주었다.

"네 지금은 솔로랍니다. 자 그러면 다음 질문은?"

"그러면... 어디에서 온 거지?"

"하늘에서 내려왔어."

"장난하지마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대답에 그녀가 발끈한 듯 한 손으로 궤짝을 쾅 치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서 움츠려버렸다.

"히익... 진짜야.. 거짓말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여전히 작은 일에 깜짝  놀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네.

내가 잠깐 쫄아서 얼어있자 그녀가 미안해진 건지 사과를 했다.

"놀라게 만든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믿을  없는 말이다."


"내가 틴달로스의 세례명과 성체를 알고 있던 건 괜찮고?"


"!"


미안한듯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내가 들려주는 말에 놀란 듯 움찔한 것이 보였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거니깐 뭐든지 알 수 있지요. 이거 말고도 '노란 옷의 왕' 아저씨나 '성찬식' 같은거? 음... 아니면 '투신' ?"


거기에 결정타를 먹이듯 아직은 교단 내부의 간부만 알고 있는 정보를 세 개나 말했다. 나의 말에 그녀는 누가 있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아.. 알겠다!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믿어 줄테니깐.. 더 이상 교단의 정보를 발설하지 마라.."

고작 몇 명 안 되는 간부 두 명의 이름과, 의식을 말했을 뿐인데 너무 눈에 띄게 당황하네. 무인으로선 몰라도 교섭인으로선 탈락이야.


"네 그러면 하늘에서 왔으니깐 다음 질문 받을게요."


당황하는 그녀와 대조되는  한 태도로 나는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만든 아이와 대화하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저 것은... 성체인가?"

격납고 밖을 향해 틴달로스의 앞에 무릎을 꿇고 활동을 멈춘 사도를 가리키며 그녀가  번째 질문을 했다.


"으음.. 글쎄 성체라고 보기엔 좀 다른 것 같은데... 사실 나도  몰라. 나중에 알게 되면 알려줄게."

애매모호한 대답이 되었지만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방금 전 처럼 추궁하진 않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 이제 마지막 질문시간. 질문이 끝나면 낮잠을 잘 시간이에요. 틴달로스도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다른 교단 사람들이 의심하겠지?"


지난 4일간 그녀와의 평균 교전시간은 30분 내지는 40분 정도였다. 아이의 학예회를 보듯 내가 여유롭게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시간이 길어진 거였지만... 이제는 얼추 10분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너는 교단의 적인가..? 아니라면 함께해줄 수는 없겠나.."



마지막 질문은 그녀가 조금 고민하다가 말하는 듯 했다. 적이라면 반드시 꺾어야 할 텐데 전혀 싸움이 안되는 것을 지난 4일의 교전으로 그녀도  알고 있을테니깐.

적이 아니라면 포섭하려고 한 것일까. 나를 꺾는 대신 자기 자존심을 꺾기로 결정한 듯 결국 영입제안이 와버렸다. 여기서 이 제안을 받아버리면 내가 아는 시나리오와는 완전히 달라지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시작조차 못한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주인공군의 성장도 보고 싶었고.


"적은 아니야. 하지만 교단으로 갈 수는 없어. 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래도 방해는 안할게. 곧 있으면 3월이라 바빠지잖아?"

"이미 우리들이 무엇을 하려는지도 알고 있었나... 정말 알 수 없는 상대다."


"응원하고 있을게? 자 이걸로 질문시간은 끝. 돌아갈 준비해야지? 뒷정리는 내가 할테니깐 내버려두고. 아 그런데 나 신분증이랑 돈은  필요한데, 그거 뺏진 않을 거지?"

"그런 소인배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코어도 받았으니.."

이걸로 해산이라고 말하며 손바닥으로 박수를 두 번 짝짝 쳤다.
아직도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적어도   보다는 경계가 많이 풀린듯한 말투와 태도였다. 장하네 잘했어.

"맞다 틴달로스군."

작은 궤짝 위에서 일어나 떠나려는 그녀를 잠깐 불렀다.
방금 떠나보낸다면서 그녀를 부르자 의아한  했지만 궤짝 위에 두 발을 딛고  나에게 다가와서 무슨 용건이 남았냐며 궤짝을 밟고 서자 겨우 비슷해진 키로 그녀를 마주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넥타이 목을 잡아 내 쪽으로 당기고 가까워진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성녀님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다른 간부들한테는 비밀이야?"

"!.."


성녀라는 이야기를 듣자 굳어버린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의 넥타이를  손을 놓아주고 셔츠 깃과 넥타이를 정돈해주었다.
무인이라지만 자기의 체취는 신경 쓰는 것인지 옅게 뿌린 향수가 성숙한 느낌을 주었다. 어른이니깐 그 정도는 당연한가.


"그럼 다음에 봐.  때 과자라도 사오고."




---



틴달로스는 무어에 홀린 듯 말없이 걷다가 기체의 조종석 위에 올라타곤 나를 향해 짧게 고개를 까닥여 목례하곤 다시 게이트를 열어서 떠났다.


[돌아갔나요? 마스터]


"응 갔어. 부탁한 분석은 해봤어?"

[네. 사도 앞에 있던 차원기... '틴달로스'  분석이 끝났어요]

"분석 결과는?"


[역시 저 차원기... 이 별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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