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막간 : 홀로 기도하는 자
교단
이름 없이 그저 교단이라 불리는 집단이었지만 어떤 이는 '이름 없는 교단' 또는 '무명 교단' 이라며 굳이 이름을 붙여 부르곤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단이 알려지고 난 뒤의 이야기, 지금은 그저 교단으로 불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치 넓은 신전과도 같은 교단의 공간은 경건해보이지만 강건하고, 불길하면서 불경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 쌔액
그런 교단의 입구쯤에 해당하는 돌바닥이 깔린 빈 공간이 세로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붉은 외팔의 차원기.. 아니. 교단의 성체인 틴달로스가 나타났다.
곧 게이트가 닫히며 붉은 틴달로스는 비어있는 철골의 격납고 사이로 들어가 가동을 멈추고 안에서 성체와 이름이 같은 간부 틴달로스가 내렸다.
그런 그녀를 배웅하기라도 하는 듯 하얀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의 훈련을 끝내신 겁니까? 오늘은... 어딜 부수진 않았군요."
"내가 나가면 꼭 어딘가 부수는 것처럼 말하는군."
"이번 주는 적어도 사실이지 않았습니까?"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는 틴달로스의 정비 담당. 교단의 말을 빌리자면 '축사하는 자' 였다. 신성한 성찬식의 성체는 아무런 어중이떠중이가 관리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성체를 더럽히는 이계의 육신을 붙이자는 말은 더 이상 안하셔서 안도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성체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한 시련이었다."
성체는 신성하다.
그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는 용서될 수 없었지만 성체와 운명을 같이하는 세례 받은 자 라면 그 정도의 시련은 용서받을 수 있었다.
"뭐 이걸로 자매님의 믿음도 깊어지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성체의 축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원래대로라면 점검이나 아직 미완성된 오른팔의 작업을 마저 해야 했지만 특별히 오늘일 필요는 없는 듯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성녀님은... 안에 계신가?"
"네 안에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홀로 기도하는 자'라도 그 마음씨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알겠다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하곤 틴달로스의 정비고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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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한쪽에 위치한 거대한 방.
신전에 가장 어울리는 듯 한 넓은 방이었지만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딱 한명 교단의 성녀. '홀로 기도하는 자' 를 제외하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이었다.
많은 장의자 중에 한 곳에 앉아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그녀.
새하얀 세마포를 쓴 그녀는 홀로 기도하고 있었다.
이 신전에 거하는 다른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가올 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 곳에 들어온 틴달로스는 조심스럽게 기도를 하는 성녀의 옆에 앉아 가볍게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성녀와 다르게 틴달로스는 신앙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상대에게 맞추어 격식을 차리듯 예의를 갖춘 것에 불과했을 뿐이다.
"당신의 기도는 닿았나요? 틴달로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녀가 조용히 입을 열어 틴달로스를 향해 고개를 들렸다.
"요즘 자주 출정하신다고 들었어요. 그 곳에서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찾았나요?"
"아닙니다 성녀님... 저는 감히 성체의 믿음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자애롭게 말하는 성녀에게 죄를 느끼는 듯 틴달로스는 회개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성녀에게 죄를 고하듯 목소리 끝이 떨렸다.
"성체는 그 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 없는 사랑의 약속.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작은 투정도 용서해주신답니다."
"성녀님... 저는.."
곧 고개를 숙인 틴달로스의 얼굴에서 작게 눈물이 방울져 그녀의 정장 바지 위로 몇 방울 떨어졌다.
"가까이 오세요 가여운 틴달로스... 당신의 얼굴을 만질 수 있게 해주세요"
울음을 참는 듯 한 틴달로스는 마치 어머니의 품에 가까이 다가가듯 그녀를 향해 조금 붙어 앉곤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잡은 뒤 자신의 얼굴 위에 얹어주었다.
"눈물은 당신이 누구보다 순수하다는 증거. 강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슬픔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답니다."
성녀의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틴달로스의 붉은 눈에서 흐르는 투명한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틴달로스가 진정하는 듯하자 성녀는 미소를 지으며 틴달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성녀님... 성녀님께 알려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아온 거군요."
"... 네 그렇습니다."
이 곳을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잠깐 말이 멈춘 틴달로스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하늘의 너머에서... 성녀님을 알고 있는 세례자를 만났습니다."
"하늘의 너머에서요?"
하늘의 너머라는 이야기에 성녀도 잠깐 놀란듯한 반응을 보이다가 잠깐 작게 웃었다.
"재밌는 이야기네요. 제 기도는 저 하늘 너머에도 닿은 것일까요? 어떤 분이셨나요?"
"새하얀 성체와 비슷한 것을 다루는.. 하얗고 어린.. 저와 같은 눈을 한 소녀 였습니다."
새하얀.. 이라는 단어를 성녀는 입에서 작게 말해보곤 이내 미소 지었다.
"성인이라도 되시는 분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아니에요. 제 기도를 하늘의 너머에서도 듣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는걸요."
자신의 기도가 하늘 너머에도 닿았다는 것을 기뻐하는 성녀는 틴달로스의 머리를 살짝 품에 끌어안아주곤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어요 틴달로스. 교단의 모두가 구원받을 길이 가까워졌어요."
틴달로스를 쓰다듬는 세마포의 수녀의 두 눈은 감겨져 있었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손끝으로 교단의 형제와 자매들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가장 불경해 보이는 장소에서 가장 신성해 보이는 자. 그녀가 '홀로 기도하는 자' 였다.
그녀가 기도하는 곳의 가장 높은 제단에는
흑색으로 빛나는 이음새 없는 검은 관이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