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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토요일 (16/152)



〈 16화 〉토요일

틴달로스와 격납고 안에서 다과회  점심식사를 나누는 동안 엘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었다.

사도의 기능을 사용해서 교단의 성체 중 하나인 붉은 틴달로스를 분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이게  된 목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틴달로스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강인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사적으로 파고들면  없이 어설프며 오히려 신경써줘야 하는 아이다.


전투 외엔 유약한 그녀의 멘탈케어를 위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성녀' 비록 교단의 간부는 아니지만 교단에서 중요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여자다.

두 눈은 감겨져서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성격만큼은 자애로운 그녀. 성격이 제각각인 교단의 간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아마 오늘 패배하고 멘탈까지 쪼였던 틴달로스라면 그런 자애로운 성녀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울었겠지.


본래 시나리오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최강의 무인. 주인공군과의 전투는 압도적인 승리를 계속해서 거두는 강자, 무력으로는 교단의 '투신' 다음으로 가는 실력자다.


주인공군은 그녀를 힘으로 꺾고 완파된 틴달로스에서 억지로 꺼내버렸을 때 교단의 사냥개가 성숙한 여인임을 처음 알게 된다.


교신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노이즈 낀 기계음 같은, 탑승자의 정체를 가리기 위한 처리가 되어있는데다가 말투도 무뚝뚝하니깐.

그 뒤로 그녀를 본부의 유폐시설에 감금시키게 되는데 계속해서 탈출을 반복하는 그녀에게 대화를 시도하면서 그녀가 교단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고.. 히로인으로써의 길이 열린다.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시나리오가 후반에 들어가기 전에 그녀를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따내야한다.
어쭙잖은 실력으로는 완전한 상태의 틴달로스를 이길 수 없고, 설령 적당히 강해져서 틴달로스를 궁지에 몰아도 일정 체력 이하로 떨어지면 차원을 찢고 도망쳐버린다.

최소 체력이 절반이 넘을 때 한방에 틴달로스를 격추 시키는  조건이다. 무인을 상대로 무로 인정받아야 한다. 심플하지만 어려운 조건.

1회차에는 도달 불가능한 스펙이지만 2회차라면 가능할 조건이다.


하지만 아직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전이라면 붉은 틴달로스는 완전하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아직 발굴 전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발굴은 끝내고 기동을 갓 시작한 상태였던 듯하다.


생각이 다른데로 흘러갔지만 엘의 분석결과를 모니터에 띄우고 살피자 예상한, 내가 설정했던 초안 그대로였다.

틴달로스는  지구의 차원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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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달로스와 같은 교단의 '성체' 는 인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지는 차원기가 아니다. 교단 사제들의 '성찬식' 을 통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인식 밖의 존재다.


교단은 어째서인지 이런 성체를 여러 대 소유하고 있고. 그 성체의 수만큼 강한 간부들을 가지고있다. 3월 이후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나타나야 할 텐데

 라는 이레귤러가 교단의 계획 밖 존재인 만큼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기 위해 틴달로스를 보낸 것 같았다.

그나마 틴달로스의 세력인 사냥개를 들쑤셔서 다행이었지, '노란 옷의 왕'의 세력을 건드렸다면 아마 내가 있는 도시를 순식간에 파괴하면서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아직 이야기가 시작도 되기 전인데 시나리오가 망가지는 것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붉은 틴달로스와 다르게 '노란 옷의 왕' 은 지금도 완전한 상태니깐 말이다.

승리여부를 떠나서 나와 개발자군이 만든 도시가 무너지는 것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사냥개는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나만을 노리고 외진 격납고로 찾아왔으니 알게 모르게 내가 이 도시를 지켜준 꼴이 되었다.


틴달로스. 그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기도 했고 직접 얼굴을 마주보는 이야기도 끝마쳤으니 한동안은 성체를 타고 습격할 일은 없겠지.


드디어 다시 여유로운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래도 오늘 행선지는 정해져있다.

2022년 2월 12일 토요일. 09시 57분.

토요일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스마트폰은 좀 줄여야 겠다고 생각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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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릴 행선지는 틴달로스의 세력권인 카페. 점장을 통해 받은 체크카드 덕분에 저번처럼 버스에서 초등학생 요금을 받는 일 없이 카드로 편하게 찍고 카페에 도착했다.


주말 오전 아침인데도 여전히 카페는 한가했다. 장사가 안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일단은 첩보기관이니깐 카페 자체는  한가해도 되겠지.

카페문을 열고 문 위의 차임을 울리며 들어오자 아르바이트생의 시선이 꽂혔다.

"어서 오세요.. 어 점장님 조카  오셨어요."

나를 알아본 아르바이트생에게 살짝 고개를 꾸벅여 인사하자  근처에 있던 점장이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묘월이 왔니?"

"응 삼촌. 여기서 아는데 는 삼촌네 밖에 없으니깐."


"저번에만 오고 안올 줄 알았는데 삼촌네 음료가 맛있었나봐?"

"삼촌이 이모한테 내가 온 걸 알려줘서 이모랑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또 오고 싶어졌길래.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삼촌 바빠?"


"아니야 괜찮아. 언제든지 놀러오렴. 마시고 싶은거 있니?"

"음... 그러면 이번엔 딸기 스무디."


음료의 주문을 마치고 빈 창가자리로 가서 앉았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삼촌과 조카의 대화 같았지만 그 대화 속에는 뼈가 있었다. 너가 나를 틴달로스에게 알려줬구나 하고 따지는 것처럼.


하지만 사회인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 예산을 썼다면 어디에 썼다고 정확하게 보고를 해야하고,
상사에게 그에 대한 결제를 받을  있어야한다. 그는 조직의 일원으로써 꼭 해야 할 일처리를 한 것 뿐이다.
교단은 제대로 된 조직이었구나...

그래도 나는 자비로우니깐 음료 한 잔으로 용서해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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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점장은 한 손에 딸기 음료를 들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삼촌 고마워. 잘 마실게~"

오랜만에 마셔보는  음료.  세계에 와서 달콤한 것 이라고는 저번 카페에 들렀을 때, 틴달로스와 다과회, 그리고 지금. 딱 세 번뿐이다.


너와 관련될 때 마다 나를 달콤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주는구나 틴달로스.

내가 그렇게 진심에서 나오는 듯 한 기쁜 미소를 지으며 조금 큰 잔을  손으로 받고  위에 꽂힌 빨대로 음료를  모금 마시자 점장이 말했다.

"... 설마 그 분에게 인정받을 줄이야"


"응? 무슨 이야기? 나 이제 고등학교 올라가지만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겠어 헤헤"


"시덥잖은 연기는 그만해라 세례자."

"쳇.. 모처럼 삼촌과 조카라는 역할극을 더 하고 싶었는데. 네 알겠습니다~"


둘만 대화하게 되자 곧바로 태도를 바꾸면서 딱딱한 업무로 들어가는 게 딱 틴달로스의 부하다웠다. 고집스럽네.

"그래서, 부탁한 건 처리했어?"


"끝내두었다. 3월 2일부터 너는 제 1 공업고등학교의 신입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틴달로스는 나를 인정해줬는데, 점장은 아직 나를 인정해주지 않은 듯 의심과 경계가 강하게 섞인 듯한 태도를 고수했지만. 그래도 일은 제대로 처리해주었다.

"이야. 역시 유능하네. 괜히 적지에 혼자 던져둔 게 아니구나."

상대가 여자아이라면 특별히 쓰다듬어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무뚝뚝한 아저씨의 세팅한 머리를 쓰다듬는 취미는 없다. 그냥 말로 칭찬해주고 스무디를 쪽 빨았다.

"교복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직접 맞춰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지시가 왔다."

첩보기관이라면 그것도 알아서 준비할 줄 알았는데 틴달로스가 나를 배려해준 걸까? 쓰리 사이즈까지 전부 파악하고 교복을 바로 건네주면 기겁할까봐?

"그건 좀 의외긴 하네. 아, 교복은 카드로 사도 되는 거지?"

"임무에 필요한 비용이니깐.. 허가한다. 다 마시면 바로 돌아가도록."

"아 그건  곤란해."

다 마시면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거절하자 점장의 눈이 찌푸려졌다.


".. 무슨 꿍꿍이지?"

"오늘 여기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오늘의 외출은 단순히 입학처리에 대한 보고를 듣기 위한게 아니었다. 그것만 들으려고 했다면 굳이 직접 찾아 올 필요 없이 통화로 끝내도 되는 일이었으니깐.

지금 시간은 11시 37분.  있으면 슬슬 들어올 시간이었다.




짤랑




 위의 차임이 울리고 사람이라곤 셋 밖에 없는 카페의 문을 열고 한 소녀가 들어왔다.


오늘 외출의 주 목표.

히로인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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