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토요일
격납고 앞에 서서 이야기 하기 조금 뭐하니 안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녀가 준 선물 상자를 직접 들고가려니 기어코 자기가 들고 가겠다며 도와주려 하길래 그 도움을 받기로 했다.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것이길래 저렇게 친절해진 걸까.
이번 주 초반에 말도 안 듣고 붉은 틴달로스로 무리하게 몰아붙이던 그녀가 맞나 싶었다.
뭐 시나리오에서도 몇 번 쓰러뜨리다 보면 고집 같던 성격이 바뀌어가는게 눈에 보였지만, 태도가 유순해지는 게 빠르다 싶긴 했다.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주인공군과의 관계이고 나랑은 상관없겠지. 나랑 친해진 거지, 주인공군과 친해진게 아니니깐.
그거 같은 거다. 애가 집에서는 푼수처럼 하고 다녀도 집 밖에선 착실하게 지내면 노터치 하는거.
나는 기본만 잘 지키면 터치 안할 테니깐. 지금처럼 기본만 잘 하라구.
- 파드득
외출하기 전에 격납고 문을 꼭 닫아두어서 후문을 통해 들어갈까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과연 교단 최강의 무인. 어깨에 상자를 걸치고 있는데 그냥 한 손으로 열어버리네. 대단해.
너무 강한 탓에 격납고 문의 녹이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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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납고로 들어오자 어제 그녀를 맞이하느라 썼던 궤짝들이 어제와 같이 책상과 의자의 모습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짧은 궤짝 두개를 이어붙이고 그 위에 피복창고에서 쓰던 낡은 천막을 여러 겹 접어서 깔아두었다.
이러면 소파처럼 쓸 수 있더라고. 비록 느낌은 딱딱하긴 했는데 사도의 조종석은 120~140도 정도까진 꺾여도 180도 접히진 않아서
오랜만에 누워서 뒹굴 거리고 싶길래 이런 유사 소파를 만든 것이다. 이 정도면 지금 내 체형이면 충분히 누워서 뒹굴 거릴 정도는 되니깐.
격납고 에폭시 맨바닥은 냉기 올라와서 좀 싫더라..
그런 살풍경한 격납고의 모습을 보던 틴달로스는 잠깐 말이 없었다. 분명 속으로 그런 생각하고 있을 거다.
이게 과연 내가 그렇게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던 적이라고..? 같은 생각.
"자리가 좀 좁아졌지? 그냥 옆에 앉아."
어제처럼 마주보고 앉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소파(임시)의 왼쪽에 앉곤 틴달로스에게 이 쪽에 앉으라며 손으로 빈 곳을 팡팡 두들겼다.
"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런 행동은.."
지하철에서 빈자리 두개를 보고 먼저 달려가서 앉고 빈자리를 두들기며 자식에게 빨리 앉으라고 하는 어머니를 본 기분이라도든건지, 아이 취급하는 것이 좀 별로였나 보다.
어쩌겠어 내가 보기엔 모두 같아 보이는 아이나 다름없는데.
곧 옆자리에 앉는 그녀. 그녀와의 신장 차이는 앉은키에서도 제법 크게 느껴졌다. 이제보니 엄청 왜소해졌구나 내가..
"그래서 뭘 부탁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그녀가 발치에 내려놓은 상자에서 조금 비싸 보이는 초콜릿을 하나 꺼내서 포장을 까고 한입 물었다. 아 달달하니깐 기분 좋아진다. 아까 한두 개 정도 부탁 들어준다는거, 한 세 개까지만 들어줄까.
나의 질문에 마치 생각하던 것을 들킨 것처럼 흠칫하는 틴달로스.
딱봐도 정말 그냥 인사차 왔을 리는 없는데 자기 목적이 들켰다는 것에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어제랑 똑같아. 대답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답해줄거고,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들어줄거야."
이런건 말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어제처럼 면접이라도 보는 것처럼 마주보는게 아니라 이렇게 나란히 옆에 앉은것이기도 하고.
"그대가 어딘지 모르게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쯤은 둔감한 나라도 알 수 있다."
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는구나. 그런데 그대라니 좀 옛스럽네.
"그렇다면 이 쪽에서도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허름한 곳이 아니라 교단의 본부에서 지낼 생각은 없는가?"
"켁"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조금 놀라서 사레가 들려버렸다. 잠깐 입을 가리고 기침을 좀 했다.
설마 했던 스카웃 제의.
"미안 그건 안 돼."
"교단의 일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면 교단에서도 그대에게 편의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받고 있잖아? 편의."
내가 먹고 있던 초콜릿을 살짝 손으로 들고 눈앞에서 흔들어 보여주었다.
"단순한 기호품뿐만 아니라.. 적어도 좋은 숙소를 제공해줄 수 있다."
"걱정 마. 잠은 제대로 저 안에서 자고 있는걸"
따로 정비나 청소를 안 해주어도 백색으로 옅게 빛나고 있는 사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이런 간식이랑 숙소로 꼬셔보려는 생각이었던 걸까. 하지만 아직 교단에는 갈 수 없다.
만약 틴달로스가 이직을 제안하는 헤드헌터였다면 아무런 실적도 못 올리는 영업맨 이었을 거다.
"교단에는 꼭.. 교단의 일을 하는 자만 있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중립적인 자도 있다."
"'투신' 말이지? 내 기본 행동방침은 그 사람들 이랑은 조금 달라서.. 으음 나는 중립이라기엔 조금 다른가.. "
".. 성녀님도 어째서인지 그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말 와줄 수는 없는건가..?"
"성녀님은 좀 신경 쓰이긴 하는데.. 아직은 안 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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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웃 제의는 이렇게 거절해주었다.
권유할거면 적어도 6월은 넘어서 권유해주지 그랬어. 지금은 외팔이 붉은 틴달로스처럼 미숙한 틴달로스잖아.
그 때면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와서 재밌어서라도 따라가줬을텐데
"틴달로스."
자신의 회유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자 풀이 죽은듯 양 손을 살짝 쥐고 무릎위에 얹은 그녀를 부르자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이쪽을 쳐다봤다.
"자. 아앙~"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단게 최고지, 얼른 입을 열어보라고 말하며 한 손에 초콜릿을 들자 잠깐 움직임이 멈추었다가 확 당황하는 틴달로스를 볼 수 있었다.
"무..무슨! 그대는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것 같다!"
"네 시끄러워요. 자 다시 아앙"
"아..아아..ㅇ"
자기를 어린아이 취급하지 말라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재촉하자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여는 그녀였다.
눈은 왜 감고있는건지, 모처럼 지금의 나처럼 예쁜 붉은 눈이 안보여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들고 있던 초콜릿을 조금 떼어서 그녀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참 잘했어요."
입에 초콜릿을 넣어주자 결국 그걸 받아 우물거리는 그녀에게 잘 했다며 칭찬해주곤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 생각해보니 틴달로스는 사냥개고, 개한테 초콜릿은 주면 안되는거긴한데... 뭐 정말 개는 아니고 이름의 유래가 된 생물도 개는 아니었으니 괜찮을 거다.
키는 이렇게 큰 주제에 사석에선 이런 소녀다움을 보여주는 갭이 정말로 귀엽다.
"그럼 교단으로 가는건 안되지만. 다른 부탁할 것은?"
".. 처음 부탁만을 생각하고 왔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타입이라니 교섭인으로써는 다시 봐도 0점이구나.
보통 이직제의 같으면 여기서 바이바이지만 지금 상황은 자식이 부모에게 부탁을 하다 거절한 것처럼 느껴지니깐
여기선 부모로써 한 가지 정도 선물을 주도록 할까.
"틴달로스의 그거는 이 별의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거지? 데려다 줬으면 하는 곳이 있는데."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모든 곳은 아니다. 가본 곳에 한해서, 코어의 동조율이 높은 곳에서만 가능하다."
차원을 가르는 게이트를 열어 이동하는 것도 마냥 만능은 아니다.
정말 만능이었다면 정적의 본부로 그 거체를 이동시켜 난동부리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었을테니깐 사소한 제약이 몇 개 정도 걸려있다.
"아 괜찮아. 내가 말하는 곳은 그런 제약 없이 갈 수 있을 거야."
"그대라면 직접 갈 수도 있지 않는가..?"
나 정도 되는 실력자가 무엇이 아쉬워서 그런 부탁을 하는 건가 하고 의문을 띈 표정을 짓는 틴달로스.
"그 곳에는 틴달로스, 너와 같이 가고 싶은걸."
".. 그대가 나와 말인가?"
"응"
잠깐 얼굴에 여러 표정이 지나간 듯 복잡한 고민을 띄고 있는 듯 한 그녀.
그럴 만도 하지, 교단에는 협력해줄 수 없다. 방해는 하지 않겠다 라고 선을 그은 주제에 염치없게 이 쪽에서 부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깐.
"... 알겠다. 그래서 그대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이 별의 끝에 있는 영구동토."
나의 입에서 영구동토라는 말을 들은 틴달로스는 방금까지 복잡해하던 표정을 잃고 충격을 받은 듯 그 예쁜 입이 조금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