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도서관 (24/152)



〈 24화 〉도서관

도서관의 서고에서 책은 읽지 않고 지금까지의 흐름을 노트에 끄적이며 정리하던 중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잡는 것을 느끼고 돌아보자, 그 곳에는 류하연이 있었다.

분명 그녀는 카페에서 밖에 만날 수 없을 텐데. 그녀도 시나리오가 변경되며 행동이 바뀐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곧 손에 든 두꺼운 책을 보자 그 이유를 알  있었다.


그녀가 카페에 가는 이유는 책을 읽기엔 사람의 시선이 부담된다고 느껴서.

하지만 책을 빌리려면 도서관으로 와야하니깐 책을 빌리기 위해 들린 것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  걸까. 아직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적조차 없었을텐데..

"토끼..."

모두가 조용한 도서관임에도 거의 들리지 않을 듯한 목소리로 그녀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눈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뭔가 무서운데

"이..일단 나가서 이야기 할까요..?"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며 그녀와 서고를 나섰다.


---


서고를 나와 같은 층에 있는 천장이 열린 구조로 되어있는 휴게실로 들어왔다. 여기라면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적당하겠지.


이쪽으로 나오는 동안 뒤통수에 꽂히는 그녀의 시선을 바짝 느낀 탓에 왠지 모르게 맹수 앞의 먹이가 된 듯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나랑 비슷한 키에, 적합자도 아닌 그녀가 뭐가 무섭다고 이렇게 긴장한 건지 모르겠다.

정신 차리자 나는 사도다. 나는 사도다.. 나는 사도다...


이제는 사도라는 말이 멘탈을 잡는 키워드처럼 되어버렸다.



적당히 비어있는 휴게실의 벤치에 앉자 곧장 그녀가 내 바로 옆에 붙었다.

저기 너무 가까운데요..

가까이 붙어 앉은 그녀는 지그시 나의 눈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내가 먼저 말이라도 건네봐야겠다.

지금의 관계는 그저 내가 카페에서 한번 마주친 정도니,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이상하겠지. 아예 여기서 처음본 것 처럼 행동하자.


"저.. 그래서 누구신가요? 처음 보는거 같은.."


"거짓말"

히익




내 옆에 앉아 나의 눈을 쳐다보던 갈색머리의 그녀는 바로 내 말을 잘라내며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191시간 전 카페에서.. 11시 38분에 만났어."


일주일을 시간 단위로 분해해서 기억하고 있다니 시나리오에서 굵직한 사건을 기억하고 조언을 해주는 조언자라지만 이렇게 세세한 시간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 그  카페에서 말인가요..?"


얼핏 지나가서 기억이 잘 안난 것처럼 말을 늘였다.

"날 보고 웃어줬어."

아 내가 바라본걸 들켰을까봐 살짝 미소 지었던 그거 말인가..


"그래서 그 다음날도 찾아왔어."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런데 왜 안 왔어?"

류하연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녀의 조곤조곤하지만  없이 밀어붙여오는 말에 아마 내 얼굴은 살짝 하얗게 질려버렸을 것이다.

"바.. 바쁜 일이 있었거든요.."


"무슨 일?"

심문을 받는다는  이런 느낌일까.


"학교 입학 준비 때문에.. 학교에 가보느라.."

영구동토에서 발견한 파편의 분석과 자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느라 그랬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

"이 도시 어디에도 토끼씨는 없었어."
"내가 알만한 곳을 전부 뒤졌어."
"학교의 CCTV도 뒤졌어."
"그런데 없었어."
"왜?"

무.. 무서워

빠르게 쏟아지는 그녀의 추궁에 정말 겁이 났다.


분명 그녀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얌전한 히로인 이었을 텐데 이렇게 무서운 아이는 만든 적이 없어요..



아 생각나버렸다. 개발자군이 류하연을 디자인 할 때 했던 말. 분명 이렇게 얌전한 애가 알고 보면 가장 위험한 애 일거라고.

교단과 이계의 괴물이 난무하는 전장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적합자도 아닌 그녀는 정해진 조언 이벤트를 위해 카페에 빼먹지 않고  방문한다.

심지어 시나리오 막바지에 가서 카페건물의 천장이 전부 날아가 버렸는데도 그녀는 정해진 대화 이벤트를 위해 멀쩡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자들 속에 섞여있는  마리의 양이 알고 보면 가장 무서운 존재일 것이라는 개발자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단순히 독서만 즐기는 카운셀러가 아니라 도시의 모든 전산망을 엿보고 있다.

그녀의 조언은 해박한 지식과 실제 전산망을 참조한 분석 결과를 통해 나오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하필 가장 들키기 쉬운 거짓말을 내가 해버릴 줄이야.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어

멋쩍게 웃으면...

분명 아까 같은 쉴  없는 추긍이 쏟아질 것이다.

그 때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전 세계에서는 절대 쓰지 못한 기술이었지만 지금이라면 내가 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술.

"흑.."

"...으흑.."

"으아앙.."


그 자리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



눈물이라는 게 참 어려운 것일 줄 알았는데 막상 위기가 닥치니 정말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방금 전 까지 빛이 없어 보이는 무서운 눈동자를 나에게 향하고 있던 그녀도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정말..학교에.. 으흑.. 갔는..흑..데.."

나의 울음에 당황하기 시작한 그녀는 어쩌지 하며 당황하다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눈가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미..미안해 토끼씨.. 곤란하게 하려고 했던 건.."

"끄윽.. 너무.. 무서워서.."

"미..미안해.."


여자의 눈물은 같은 여자에게도 무기로 쓸 수 있구나. 좋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오분 정도 울자 휴게실의 다른 사람들도 무슨 일인건가 이 쪽을 쳐다보기 시작하자 그녀는 더욱 곤란해보였다.


 쯤 해둘까.

"흑..끄윽.."

겨우 진정한 것 같이 서서히 숨을 고르며 울음을 멈추자  눈가를 닦아주던 그녀도 안도한 듯 했다.


다른 사람들도 관심이 사라진 것인지 각자 자기들   하러 돌아가기도 했고.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그녀가 무서워보인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자 그녀가 아까처럼 추궁할  같지는 않았다.


"나..나는 그냥 토끼씨가 궁금해서.."

"토끼..?"

"하얀 머리에 빨간 눈이니깐.."

아 그래서 토끼라고 부르고 있었던 걸까. 왠지 납득이 가는 별명이다.

"그래서.. 보고 싶어서 찾고 있었어.."


그거 어떻게 보면 스토킹 같은데..


"웃는 게 너무 예뻐 보여서.. 친해지고.. 싶었어"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평소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그녀 치고는 상당히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비록  노력의 방향이 사아알짝 잘못 된  같아서 무서웠지만..

"아..안될까..?"


토끼씨. 라며 그녀는 작게 말했다.

분명 겁을 먹게 했으니깐 힘들겠지라고 지래짐작하는 것처럼 그녀는 표정에 근심이 가득해보였다.

"저도.."


나의 작은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거절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인지 갑작스러운 나의 목소리에 당황하는  했다.

"삼촌네 카페에서 또래를 만난건 처음이라.. 친해지고 싶어서 웃었던 거예요.."

히로인이라고 내가 눈도장 찍으려고 했던 거니깐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 무서웠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같으니깐.."

거절의 의미가 없는, 망설이다가 수락한 듯한 승낙의 자세를 보이자 그녀의 긴장이 풀어져 가는게 보였다.

"..묘월"


"응?"

"백묘월.. 그게 제 이름이에요.."

아마 그녀라면 알고 있겠지만 직접 알려주는  다르겠지.


"그쪽 이름은요..?"

"류하연.."


"잘 부탁드려요 하연씨.."

그리고 오른 손을 내밀었다.


"으..응 잘 부탁해 토끼씨.. 아니 묘월씨.."


한쪽이 편법으로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라 정식으로 이름 교환을 하며 그녀와 악수를 했다.


---



정식으로 이름을 알게 된 그녀와 짤막하지만 여러 대화를 나눴다.


그녀도 곧 제 1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이야기와 이 도서관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멋대로 CCTV 까지 조회한 것도 미안하다며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거듭 사과를 했다.

이걸로 불리했던 알리바이도 어찌어찌 덮었다.

지금 내가 사도인걸 스스로 밝혀서 시나리오가 꼬여버리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그녀는 내일부터 입학 전까지 일주일간 지방에 있는 본가에 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본가에서 읽을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날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그럼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 묘월씨.."

분명 동갑인 것을 알았는데 내가 먼저 하연씨라 불렀던 것 때문에 나에게 경칭을 쓰는 그녀.


그녀는 나에게 짧게 인사하고 벤치에 내려놓았던 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나중에 봐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작별인사를 하던  그녀가 들고 있던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토끼사냥'

... 정말 내가 일주일만 더 잠수 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섬뜩함이 등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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