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이중계약
프로젝트 타브하.
현 인류를 차원 너머 미지의 존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과도 같은 프로젝트.
나와 개발자군이 만든 게임의 제목이자 주인공군이 속한 핵심 세력의 이름이었다.
추모공원에서 타브하의 사령관에게 사도를 드러내자 그는 기꺼이 나를 돕겠다고 말하며
타브하의 비정규 일원으로써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언뜻 보면 쉽게 합류한 것 같지만 사실 이 뒤에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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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브하의 사령관은 10년전 이 나라에 열린 게이트 사건의 생존자이자, 그 때 부인과 사별한 사람이다.
사령관의 부인은 이 별의 주민이 아니다.
교단이 결성되기도 전,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차원도약 시험 운용기를 타고 나타난 차원 너머의 주민이다.
15년 전 그녀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차원도약을 시도하다가 15년 전의 사령관.. 아니 그 때는 신 에너지 연구소의 말단 직원이었던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대로라면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이 쪽 세계가 모두 무너질 것이라며 부디 자신을 도와 달라 요청했고
그는 그녀의 부탁을 따라 자신의 집에 시험기를 숨겨주고 그녀를 돕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녀의 말을 전부 믿지 못했지만
점점 이 세계에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가 잦아지고, 연구 관계자에게만 전달되는 차원수에 대한 극비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으로 13년 전 부터 차원수에 대항하기 위해 차원기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13년 전 이래봐야 2009년이었을 텐데. 아직 스마트폰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시대에 그럴 정도의 기술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넘어오는 신 에너지원과 차원수에게서 코어가 발견되었다고 두 발로 걷는 마법과도 같은 병기는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개발할 수 없었다.
그 때 차원기 개발의 토대가 된 것이 그녀가 타고 온 차원도약 시험 운용기 였다.
그는 그녀의 동의를 구하고 그녀가 넘어온 세계와 차원 너머의 기술력을 연구 관계자들에게 제공하였다.
그 후 그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 뒤 결혼식을 올려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차원을 넘나드는 사랑하는 한 쌍의 탄생이었다.
차원 너머의 기술을 바탕으로 2009년부터 기술의 진보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졌고 곧 있으면 두발로 걷는 병기의 완성도 목전이었다.
시범적으로 개발 된 코어를 응용한 기술력은 기존의 무기를 차원수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대로 차원수와 게이트의 위협에서 세계는 안전하게 지켜지는 건가 싶었지만..
2012년에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고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이계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나타난 게이트를 닫을 기술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점점 게이트가 넓어져가며 그 안에서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것이 나오려고 할 때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그녀가 자기가 타고 왔던 시험기를 타고 게이트로 돌입했다.
큰 폭발과 뒤틀림이 발생하며 넘어오려던 것은 다시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 그대로 게이트는 닫혔다.
이것이 본편이 시작되기 15년 전과, 1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전말이다.
언뜻 보기엔 역사책에도 기록될 만한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0년 전 게이트를 닫은 수석 연구원의 부인은 차원 너머에서 넘어온 인간 이라는 것이다.
대중에게는 그녀의 정체가 차원 너머의 주민이라는 것은 밝혀지지 않고, 개발을 시작한 1세대 차원기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전해졌다.
아직 차원 너머에는 차원수만 있는게 아니라 이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지성을 가진 인간도 존재한다는 것은 특급 기밀 사항이었다.
곧 있으면 교단이 선전포고를 하며 알려지게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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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쪽 편에만 설 수없다.
세계를 지키려는 타브하. 반대로 세계를 차지하려하는 교단.
이 양쪽 모두 히로인이 존재했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으니 내가 바라는 해피엔딩을 위해서는 두 세력 모두에 걸칠 필요가 있었다.
교단은 이미 틴달로스를 통해 발을 들였지만, 타브하는 아니었다.
내 정체와 힘을 밝히면 쉽게 타브하의 일원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메인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완전히 타브하의 일원이 되면 교단을 돕기도 힘들어질 테니깐.
그래서 나는 15년 전과 10년전의 설정을 통해 사령관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사령관은 부인과 사별한 뒤로도 기적을 바라고 있다.
차원 너머에는 그녀와 같은 세계의 주민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며 우리를 도울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커다란 게이트가 닫힌 10년 전 부터 계속 기다려왔다.
하지만 어줍잖게 다가가 협력자가 되겠다고 말한다면 그는 되려 경계할 것이다.
분명 지난 10년간 그의 상심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겠지.
결과적으로 나도 그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 되겠지만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서는 최고 사령관인 그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그를 나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한 것이 지난 5일간의 연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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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일 전..
"좋아 엘. 내 뒤에서 불가시 모드를 풀어봐."
[이렇게 말인가요?]
드넓은 활주로에서 나는 교복을 입고 엘에게 사도의 조작을 맡긴 채 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정밀한 조작은 힘들지만 간단한 운용정도는 내가 직접 탑승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었다.
- 슈우..
나의 지시가 떨어지자 엘은 사도의 불가시 모드를 해제하여 내 뒤에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으음.. 아니야 이건 좀 임팩트가 약한데."
뒤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사도. 존재감은 넘치지만 임팩트는 없어 보였다.
"다시 불가시모드에 들어갔다가 공중에서 내려오면서 풀어볼래?"
[이렇게요?]
- 콰아아아!
내가 직접 탑승하지 않았던 탓인지 소닉붐에 가까운 바람이 일어났고
활주로가 움푹 패면서 내 교복치마가 거의 뒤집어지듯 흩날린 탓에
새하얀 팬티가 펄럭거리는 치마 안에서 드러났다.
"아니.. 아저씨 상대로 이건 완전 아웃이잖아. 치녀냐고 무슨."
덤으로 머리도 엉망이 되었고..
"조금 천천히, 너무 높게 뛰지 말고 아주 살짝만.."
[다시 해볼게요.]
- 샤아아..
이번엔 조금 은은하게 신비감이 있긴 한데, 역시 임팩트는 약했다. 정말 임팩트라도 기동시켜서 빔이라도 쏴볼까.
"엘 한번만 더 해보자.."
이 연출의 준비에만 3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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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나타나는 건 아마 이번 주 금요일.. 매주 들린다니깐 꼭 오겠지."
스마트폰의 캘린더를 확인하며 소장이 언제 추모공원에 방문할까 시간대를 짐작했다.
불가시모드의 유지 시간도 있으니 너무 긴 시간은 곤란했고, 전 날 미리 추모공원에 사도를 숨겨놔야 했다.
"음 어디 다시 한 번 연습해보자.. '소장님. 아니 사령관님이라 불러드리면 될까요' "
사도의 불가시모드를 응용해 만든 거울을 보며 표정과 대사를 연습했다.
" '저는 교단'.. 아니 교단 이야기는 빼는 게 낫겠다 음.. '차원 너머에서 왔어요'"
연습장에 끄적인 대사를 리허설하며 여러 번 수정했다.
" '이대로라면 그녀가 지키려던 세계가 다시 부서질거에요..' "
거울을 보며 조금 애절한 표정. 아니 이건 너무 오버했네, 조금 잔잔하게.
아침에는 사도를 통한 연출의 연습을. 그리고 밤에는 대사 연습을 하다 잠들었다.
가장 힘든 건 역시 눈물 연기였는데, 저번 류하연의 앞에서는 잘 됐는데 막상 해보려니깐 안되는 게 힘들었다.
"흑흑.."
원래도 잘 안 울고 살았는데, 지금도 잘 울 수 있는건 아니라 한참 연습했다.
슬픈 생각... 슬픈 생각...
내가 기대하던 시리즈의 후속작이 7년이 더 지나도록 후속작이 안 나오고 있던 기억?
기껏 컴파일 다 했는데 사소한 에러로 7시간이나 디버깅했던 기억?
같이 일하던 동업자가 형상관리를 제대로 안하던 탓에 내가 작업하던 게 전부 덧 씌워진 기억?
분노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연습 끝에 거짓 눈물도 겨우 채득했다.
이건 두고두고 쓸 데가 있겠지.
미소녀의 눈물은 엄청난 무기다.
어딘가에는 미소녀가 세 명 이상 울지 못하게끔
미소녀의 눈물의 군사적 목적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약도 있을 법 하다..
남은 건 다음 날 옷을 사오는 정도겠지.. 검색해보자. 장례식 복장.. 추모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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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결전의 날 금요일.
미리 새벽에 사도를 적당한 곳에 숨겨두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불가시모드로 연출을 할 시간을 벌 수 있겠지.
꽃도 새벽에 사두었으니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사도의 조종석에서 추모공원의 입구를 주시하자
혼자 승용차를 타고 온 사령관이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사도에서 내려 조심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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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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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사령관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비록 그의 지시를 따르며 직접적인 도움은 줄 수 없지만 나 역시 먼저 간 그녀의 뜻을 따라 이 세계를 돕겠다고 말하자.
나의 정체를 숨겨주고, 활동하기 위한 거점을 얻게 되었다.
타브하에서 일하지만 독자 행동권을 가지는 독립기관.
사실상 나만을 위해 급하게 창설 된 1인 기관. '베타니아'에 소속 되었다.
주인공군의 백업을 위한 조직이었을 텐데 이런 뒷 설정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타브하에서 주인공군을 관찰할 수 있고 타브하의 제약도 없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러면 가볼까. 새 집으로."
교단의 선전포고를 4일 앞둔 2022년 2월 28일 월요일.
나는 베타니아의 베이스로 향하며 한 달간 신세를 진 격납고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