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입학식
제 1 공업 고등학교의 입학식.
입학식이라곤 하지만 특수 목적으로 운용되는 고등학교이며
10년 전 열렸던 대형 게이트 사건으로 인구가 줄어든 탓에 학생의 수는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백 명이 안 되는 학생이 올해 입학생의 전부였다.
애초에 학교 이름이 따로 없고 제 1이 붙은 이유도 전국에 다 합쳐봐야 다섯 개가 안되는 수준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날 문자로 안내받은 학급은 3반이었지만 반의 의미는 크게 없다.
본인 적성에 따라 재편성도 이루어지고 수업자체는 따로 듣기도 하니깐 반은 잠깐 모이는 장소에 불과했다.
솔직히 커리큘럼은 생각하지 않고 주인공군을 감시하기 위해 들어온 학교니깐..
대충 주인공군이 무슨 커리큘럼을 듣는지 확인하고 그거에 맞춰서 쓰면 되겠지.
성실하게 학교를 다닐 생각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입학식이 진행 될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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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안은 학교가 제법 돈이 있는 건지 넓었다. 워커 몇대 정도가 다니더라도 문제없을 정도로 컸는데
인구가 줄어든 대신 학교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기로 한건지 내 기억속의 고등학교 시설과는 많이 달랐다.
깔끔한 목조 코팅 바닥 위를 운동화로 걷자 조금 미끄러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발이 편안한 게 제대로 관리가 된 시설이구나 싶었다.
"토끼씨."
그렇게 바닥을 발로 툭툭 치던 중 귓가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조금 놀랬다.
뒤를 돌아보자 나의 뒤에 가깝게 붙어있던 교복차림의 소녀가 있었다.
약간 펌이 들어간 짧은 갈색머리의 소녀. 류하연이었다.
"262시간 만에 만나네.. 잘 지냈어?"
시간 단위로 일주일 넘는 기간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다시 봐도 정말 조금 무섭긴 했다.
"아..하하..네.. 잘 지냈죠?"
분명 여고생 둘의 대화였지만 왠지 업무차 만난 사람과 대화하는 듯 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긴장되었다.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분명 웃고 있지만 약간 서늘해 보이는 저 눈빛. 여기선 잘못 대답하면 저번과 같은 심문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냥.. 먼 친척쯤 되는 분이랑 만나서 그 곳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령관의 부인이랑 아는 사이라고 주장했으니 사령관과도 먼 친척쯤 되지 않을까.
"..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네?"
어떻게 간파하고 있는 걸까. 그녀의 직감은 나를 언제나 긴장하게 만들었다.
"제가 하연씨에게 속이는게 있을리가 없잖아요?"
"조금 거짓말 같은데."
그녀의 이어지는 추궁에 도망칠 방법을 세 가지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으런..것보다 하연씨의 반은 어디에요?"
"나는 토끼씨와 같은 3반.."
다행히 말 돌리기가 잘 먹혔는지 금방 대답이 들어왔다.
"우리 이제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었죠? 나만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아서 슬픈데.."
여기에 한 번 더 몰아 붙여봤다.
"묘..묘월씨.."
"잘했어요. 그렇게 우리 조금씩 더 친해져봐요."
"으..으응.. 알았어.."
논리적으로 다가가는 건 잘해도 이렇게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약한 것 같았다.
만약 논리와 감정 두개 모두 갖춰진다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되었겠지
본 시나리오의 프롤로그편 부터 누군가에게 패배하는 건 거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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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입학식이 시작되지 않았던 탓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을 걸었다.
우수인재만 뽑는 학교라 그런 것인지 적합자들도 제법 있는 듯 머리색이 다양했다.
물론 적합자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검은 머리가 대다수 였지만..
몇몇은 이미 아는 사이인건지 자기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혼자 서있는 신입생들도 보였다.
나는 저 두 그룹 중 원래 두 번째에 속하는 삶을 살았지만.. 이번 학교생활은 나를 위해 살.. 아니 아무튼 혼자서 살진 않을 거다.
내가 친구를 사귀려고 신입생들을 살펴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 있어야하고, 앞으로 계속 관찰해야할 주인공군을 찾고 있었다.
단지 지금의 내 키가 작은 탓에 키가 큰 남학생들이 앞에 서버리면 어디 있는지 볼 수 없어서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있었다.
"토.. 아니 묘월씨.. 누굴 찾고 있는 거야?"
"그런건 아니에요. 단지 우리 반에 누가 있을까 살펴보는 것 정도에요"
"그런것 같지 않아. 너무 열심히 살펴보는 것 같아.."
나와 키가 같은 그녀의 시선이 바로 내 눈과 같은 높이에 맞춰지며 물어오자 시선을 피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그녀의 키가 컸다면 살짝 눈을 내리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 그쪽에.. 단상.. 의자.. 저쪽..
그런 심문을 받는 사이에 조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에 매고 있는 타이 색이 다른 학생들. 아마 입학식 준비를 위해 차출된 선배들인 것 같았다.
한 손에는 접이식 의자나 강당 위에 올릴 목재 단상을 들고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진짜로! 만났다니깐!!"
"또 또 그 소리한다. 정비과는 커녕 다른 과에도 그런 애 없다니깐?"
의자를 옮기던 선배들이 있는 쪽에서 제법 큰 목소리가 오갔다.
"일요일에 정비복 입고 마트까지 올 사람이 여기 학생 빼고 더 있냐고오!"
"근처에 정비복 입는데는 여기밖에 없긴 하지만.. 정비과 직접 가봤잖아. 선생님도 그런 애는 없다고 하고"
"내가 신발까지 신겨줬다고! 결제내역도 있어!"
"정비과에 18살짜리 키 150cm 짜리 예쁜 은발 여자애가 있다고? 우와 신기하다. 우리학교 학생은 학생인데 실제로 존재는 안 해서 신기해.."
"폰친구 아니라고!!"
파이프 의자를 깔던 여자 선배 두 명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왠지 좀 잊고 있었던 듯 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선배들의 소란 때문에 주변에서 흘긋거리며 쳐다보던 학생들을 조금 밀치곤 그 앞으로 점차 나가봤다.
"어.. 너가 말하던 애 혹시 쟤 아니야?"
의자를 나르던 선배 중 한명이 이 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응? 누구? 그런 애가 여기 있어?
"어..어 너!"
방금까지 그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가 내 쪽을 놀란 듯 쳐다보며 손가락을 역시 이쪽을 향해 가리켰다.
"차..찾았다!"
아.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 중 한명
내가 처음 외출했을 때 신발값을 만원 깎아준 고마운 히로인
서예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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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너 2학년이라며.."
나를 발견하자 같이 대화를 나누던 선배를 그 자리에 내버려두고 서예린은 내 쪽을 향해 성큼 다가오더니 바로 나를 내려다 보고 말했다.
"아..그게..저.."
뭐라고 변명할게 없었다. 여기서 어줍잖은 거짓말을 해봐야 지금 내 옆에서 '저 여자는 누구?' 라는 표정으로 올려보고 계신 조언가에게 바로 들켜버릴거다.
서예린의 시선과 함께 같이 의자를 나르던 선배들의 시선
그리고 신입생들의 시선까지.. 아직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인데 엄청난 시선의 수에 부담이 된다.
".. 아니다. 이 학교 학생은 맞는 것 같으니깐. 나중에 이야기해."
내 곤란한 표정을 그녀가 읽은 것인지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뭐라 말하려던 것을 멈췄다.
과연 지휘과의 에이스.. 현재 상황을 파악해내는 능력이 대단했다.
그대로 떠나려고 하던 그녀가 잠깐 멈추고 내 앞에 서더니 내 블레이저 윗 깃을 살짝 잡았다.
본래 학생이라면 명찰이 있어야 할 자리지만 난 아직 명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잡은 손을 풀어주곤 말했다.
"이름. 이름만 정확히 알려줘."
"백.. 묘월이에요."
"1학년 백묘월.. 기억했어."
그녀는 그것으로 용건을 마친 것인지 의자 설치가 끝난 선배들과 함께 강당을 빠져나갔다.
중간 중간 야 진짜 있었네. 근데 1학년이래라는 소리가 들리며 선배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입학식부터 선배한테 찍혔다.
바이바이.. 내 평화로운 학창생활아..
지휘관님이 말해주신 재미있는 학창생활이란 게 이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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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을 무렵 옆에 계속 있던 류하연은 내 쪽을 말없이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아까 서예린과 있을 때는 그녀가 있던 탓에 낯을 가려서 말을 걸지 못했던 것일 텐데 둘만 남게 된 지금도 이렇게 쳐다보기만 하는 게 무서웠다.
"..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다는데. 토끼씨는 외로울 일이 없겠네..? 벌써 선배랑도 친한 것 같고.."
왠지 뼈가 담긴 듯한 말에 빨리 살 궁리를 짜내야했다.
이대로면 본 시나리오가 시작되기도 전에 각성해버린 그녀에게 뭔가 당할 것 같았다.
이럴 땐..
"하연씨"
무턱대고 그녀의 손을 양 손으로 붙잡곤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친구죠?"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면역은 없는지 나의 행동에 그녀가 잠깐 주춤한 게 보였다.
"토.. 아니 묘월씨랑 나는 친구야.."
"맞아요 우린 친구에요. 아까 그 사람은 그냥 선배일 뿐이에요.."
아직까지 서예린과 접점은 크지 않았으니 지금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 정도가 맞았다.
"그 사람은 그냥 선배.."
"네! 그냥 선배에요!"
변명하듯 말하다보니 말이 조금 크게 나왔지만,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일부러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냥 선배.. 나와 묘월씨는 친구.."
"네 맞아요. 학교 오기 전부터 친해진 친구잖아요?"
좋아 거의 먹혔다.
"아..알았어.. 우.. 우린 친구야."
넘어갔다.
"고마워요 하연씨."
안도감이 들어 밝게 웃었다. 영웅의 기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원래 친구와 무언가 어색해지려 하면 친구아이가! 로 사소한건 벗어날 수 있는 법이다.
- 학생들 각자 반 배정 위치에 맞춰서 이열로 서주세요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났을 때 어느새 강단 위에 선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9시 하고 조금 넘은 것이 입학식이 시작되려는 것 같았다.
"자 우리도 빨리가요. 여기 서있지만 말고."
"으..응 알았어.."
계속 손을 잡고 있던 탓에 놓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고 3반이 모이는 구역으로 갔다.
줄을 서기 위해 온 순서대로 맨 뒷줄로 향하자..
그 곳에서 주인공군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