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인카운트 (34/152)



〈 34화 〉인카운트

"도와달라니 무슨 이야기야..?"


군사구역에 당당하게 들어오고 처음 건넨 이야기가 도와달라는 이야기라니. 그녀가 당황  만했다.

"하연씨만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어요."



발을 멈추지 않고 경계하던 군인을 지나 안쪽을 향해 계속 걸었다.


이 자리에 서서 설득을 하는 것 보다 직접 보고 설명하는 편이 효율적일 테니깐

얼마 걷지 않아 가장 안쪽 플랫폼에 도착하자 군복과 정비복을 입은 사람이 많아졌다.



그 주변을 경계하듯 군용 차원기가 한대 보였다.

시가지 전투를 상정한  회색톤의 밋밋한 기체 한대가 라이플을 무장한  한쪽 무릎을 꿇어 대기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게 튜토리얼 때 배경에 반파되어있던 기체구나.


아직은 게이트가 열리기 전이라 그런지 부서진 흔적도 없고 깔끔했다.


주차되어있는 군용 차원기를 지나 그 아래에 철도 위에 놓여있는 천으로 덮인 화물 앞에 멈춰 섰다.

두꺼운 위장 천으로 덮여있어 다른 사람들은 무슨 물건인지  수 없었지만.

나는 저 천막 아래에 있는 물건을 알고 있다.


주인공군이 파일럿이 되어 앞으로 교단과 차원수와의 싸움을 시작할 차원기.


타브하의 차원도약 실전 운용계획. 베레시트 계획의 시작 1호기.


10년 전 영웅과 함께 실종된 기체의 후속 계획으로 만들어진 최신예기다.



하지만 오늘 나의 목적은  1호기가 아니다.


 곳에서 발생할 피해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것 뿐.



군사구역 깊이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온 나를 의심이 섞인 표정으로 보고 있는 그녀에게 이 곳에 데려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저의 전속 오퍼레이터가 되어주세요."

---



"오퍼레이터..? 나 아직 학생인데..?"

군사구역에 들어와 건네는 이야기가 오퍼레이터가 되어달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당황한듯했다.


"그리고.. 묘월씨의 전속..? 묘월씨.. 학생이잖아.."


"네 맞아요 학생. 하연씨랑 똑같은 신입생이에요."

들고있던 음료를 한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며 역에 설치 된 전광판의 시계를 확인했다.



16시 45분.




"하지만 단순한 학생이 아니에요."




...앞으로 15분.

"저는 타브하 소속 백업기관 베타니아의 유일한 파일럿."

"백묘월입니다."

그녀의 눈을 당당하게 바라보며 양팔을 허리에 얹고 자신만만한 자세로 말했다.


나름 지금 자세 멋지게 보이지 않았을까.


"..진짜? 묘월씨가.. 파일럿?"

당당한 자세로 말했는데 별로 위엄은 없어보였는지 시선이 살짝 의심이 담겨있었다.


내 당당한 커밍아웃에도 그녀는 왠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나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 거짓말은 아니네"

내 눈을 잠깐 바라보던 그녀는 스스로 납득한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두번째로 만났을 때 내 거짓말을 간파해버린 일은 조금 소름끼쳤지만 지금은 든든한 능력이었다.

"믿어줄게.. 묘월씨의 말이니깐."

다행히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다른 증명을 할 필요 없이 나의 말을 믿어주는 류하연.



"곧 있으면  도시는 전쟁터가 될 거에요."

"여기가..?"

"네 이곳에서요."

게이트가 열리기 까지 앞으로 15분. 쏟아져 나오는 차원수의 숫자는 아마 다섯 정도..



"그럼 묘월씨가 싸우는 거야..?"


"저는 어디까지나 백업. 싸우게  주인공은 따로 있어요."

그 때까지 안전하게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이니깐. 나는 백업만 잘 하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한테 전부 맡기면 되잖아.."


"안돼요. 그 사람은 아직 생초보. 그래서 제가 오늘 이 곳에 온 거에요."

주인공군에게 맡기면 사건은 해결될 테지만 시설과 인원의 로스는 피할  없다.

"묘월씨는 초보가 아니야?"

"네 아니에요."


차원수 상대로 실전 경험은 한번 뿐이지만 있긴 하니깐 아무튼 초보는 아니다.



"오퍼레이터 같은거 해본 적 없는데.."

"우리가 두 번째 만났을 때 보여주셨잖아요?"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 나의 행선지를 전부 파악했던 일.




"단순히 도시의 기록을 뒤졌을 뿐.."


"그 정도면 충분해요."




조언가로서 그녀의 능력은 그 단순한 도청과 기록추적이 아니다.


어떻게 자신이 속하지 않았던 모든 이벤트의 기록을 꿰고 주인공군에게 조언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그녀가 예전 시나리오에서 설정되어있던 오퍼레이터였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수정되면서 오퍼레이터의 역할은 다른 캐릭터에게 주어졌지만. 그녀는 그 설정의 잔재를 아직도 가진듯 뛰어난 분석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의 기록을 뒤지다니 그건 이미 단순한 고등학생의 분석 능력을 넘어선 일이다.

어차피 주인공군에게는 다른 오퍼레이터가 주어질테니 이번 시나리오에선 전장에서 활약할 일이 없는 단순한 조연으로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를 나의 오퍼레이터로 데려가도 괜찮지 않을까.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그녀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부탁했다.

"..알겠어. 도와줄게."

내밀어진 나의 오른손을 붙잡은 그녀.

베타니아의 전속 오퍼레이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16시 55분


이제 남은 시간은 5분밖에 없었다.

위장천이 덮인 1호기의 옆에 세워둔 기체의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파일럿에게 다가갔다.


"2022년  3월 2일 16시 55분. 지금부터  기체를 징발하겠습니다."

"뭐..? 무슨소리야 그게."


어린 소녀가 다가오더니 자신의 기체를 징발하겠다고 하자 당황보다는 황당한듯한 파일럿이 나에게 대꾸했다.


"사령부 직속. 베타니아 입니다."




그의 앞에 ID카드를 꺼내보이자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쳇.. 소문의 베타니아인가. 알겠어. 가져가"



 대로 되라는 마음에 꺼낸 카드였지만 의외로 순순히 비켜주었다.

 안되면 5분  혼란이 생긴 틈을타 뺏어 탈 생각이었지만 사령관이 이야기를 잘 해둔 듯했다.


사도를 격납고에 두고 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원래 파일럿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이대로 사고가나서 기체가 대파해도 징발해간 쪽의 잘못이지. 직전 파일럿이었던 그의 잘못이 아니다.



"작전보조용 모듈은 어디에 있죠?"


"작전 모듈까지 징발이냐.. 여깄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발치에 있던 은색 케이스를 건네주었다.


차원기를 운용하는 동안 현장을 보조하기 위한 통신 단말기.

이 작전모듈이 있어야 기체가 보지 못하는 곳 까지 오퍼레이터나 지휘관이 커버를 해줄 수 있다.


은색 케이스를 펼치자 그 안엔 군용사양으로 제작된 노트북이 들어있었다.

화면에는 현재 기체의 위치를 나타내듯 녹색 광점 한 개가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었다.


가운데 불이 꺼진 듯한 회색의 점은 아마 1호기겠지.

그 외에도 각종 버튼이 달려있어서 기체 주변의 보조카메라를 통해 파일럿이 미처 보지 못한 곳 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 되어있다.


"사용법은 아시겠나요?"

".. 입시 준비할  조금 다뤄봤어."

실전은 해본 적 없다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다뤄본 경험은 있던 것 같다.

실습위주의 커리큘럼이 많다보니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중학교에서부터 예습해서 오는 사람들도 많으니깐.




"그걸 가지고 저 분을 따라 안전한 곳에 있어주세요."

"나 혼자..?"

"아쉽게도 이 기체는 1인승이니깐요."



어쩔 수 없어서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좁은 조종석에 두 명이나 태우긴 힘드니깐.

위험할지 모르는 곳에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은 내쪽에서 사양이었다.



"이걸 같이 가져가세요.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 카드를 보여주시면 될거에요."

나의 베타니아 소속 ID카드를 그녀에게 같이 건내주었다.

군사지역에 나 없이 민간인이 있다면 의심을 살테니 건네준 것이다.



"알겠어.. 대신 위험한 일은 하지 마."

"네 약속할게요."

그녀는 나에게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며 말하곤 품에 은색 케이스를 안은채 다른 호송인원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이봐 베타니아. 고작 호송임무인데 자기 여자 앞에서 그렇게 폼을 잡을 필요가 있어?"

나와 그녀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기체의 원래 파일럿이 싸구려 드라마를 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나는 베타니아라는 이름을 앞세워 자신의 임무를 빼앗은 녀석 정도로 보이겠지.




그리고 자기 여자는 뭐냐고. 나도 이제는 여자아이인데.



16시 59분.



그런 그를 등지고 기체의 조종석으로 올라가 조종석의 입구를 닫았다.


다행히 기체의 조작계는 사도와 크게 다른게 없어보였다.

조금 투박하고 녹색의 도장으로 덮인 군사목적이라는게 뻔히 보이는 인테리어였다.




"아뇨.  임무는 단순한 호송임무가 아니에요. 파일럿씨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주세요."

"안전한 곳은 무슨.. 게이트가 열릴 기미도 없다고? 그냥 단순한 화물 운송이잖아."





17시 00분.


- 카아아아아아앙 !!

무언가 파열하듯, 터지며 찢어지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역 위에 펼쳐져있던 푸른 하늘의  가운데가 붉게 물들더니 그 곳을 중심으로 공간이 십자로 찢어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거대한 이계의 괴물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기이잉..


사도가 아닌 군용기의 조종석에서 레버를 가동시키자 회색의 거체가 한손에 굽혔던 무릎을 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체의 머리에 달린 주 카메라 모듈. 두 눈에서 녹색의 빛이 퍼져나갔다.



"타브하 소속 베타니아의 파일럿. 지금부터 교전을 개시합니다."



시나리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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