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인카운트 (35/152)



〈 35화 〉인카운트

정확히 17시가 되자 하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하늘을 중심으로 하늘이 십자로 터져나가듯 찢어지며 그 안에서 차원수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얼추 눈으로 확인되는 것만 다섯.

방금 전 까지 별 일이 있겠냐고 말하던 파일럿도 당황해서 대피하는 것이 기체의 모니터 아래로 보였다.



군사목적 2세대 양산기 케루브.


딱 봐도 이건 양산기에요 싶은 느낌이 드는 기체지만 나름 성능은 나쁘지 않다.


현재 4세대에 속하는 베레시트 시리즈를 제외하면 가장 안정적인 출력을 보여주는 차원기다.

사도처럼 날렵한 느낌은 주지 못하지만 튼튼한 외장을 가지고 있고

어깨나 허벅지, 허리에 있는 하드 포인트를 이용해 각종 무장과 보조 장비를 장착할  있다.

자금을 잘 투자해서 개발계획을 계속 발전시킨다면 최종장 근처까지 몰고 갈 수 있는 기체다.


이런걸 운 좋게 얻을 줄이야.


워커같은것만 있으면 어쩌지 정말 사도를 불러와야하나 고민을 했는데 이거라면 할 수 있다.

조종석에 앉으니 사도 때와 마찬가지로 조종방법을 원래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바로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위잉..

접혀있던 무릎 관절이 올라가며 기체가 두 다리로 일어섰다.

<묘월씨.. 들려?>


통신모듈의 전원을 올리자 노이즈 없이 맑은 류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들려요. 그쪽은 어때요?"


<아까 아저씨.. 따라서 안전한 곳으로 왔어.>



"잘됐네요. 어때요? 하실  있겠나요?"

<응.. 할 수 있을  같아.>


"모니터에 잡히는 차원수의 숫자는 얼마나 있나요?"

<빨갛고  게 세개.. 작은 건 일곱개.. 그런데 그 가운데에 조금 다른 색이 있어.>

대형 3개.. 아니 튜토리얼 부터 대형이 나타날 리는 없으니깐


중형 3개에 소형 7개인가.. 혼자서는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가운데에 있는건 아마.. 교단일 것이다. 케루브가 아무리 뛰어나도 상대하긴 힘들 텐데..



<가운데 있던 게 사라졌어..>

게이트만 열고 사라진 것인가. 조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어디까지나 주인공군이 도착하기 전 까지의 시간벌기가 목적이지. 교단과 상대할 여유까지는 없었다.


"고마워요. 총 열 마리 라는거네요."


기체의 배터리팩은 교전상황을 가정하면 아마 40분 정도.. 30분까지 버티면 이 쪽의 승리다.




<묘월씨가 초보는 아니라고 했지만.. 열 마리 상대로는 힘들지 않을까..?>

그녀의 걱정은 합당했다.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대다 승부는 무모했다.



"걱정 마세요. 괜히 독립기관의 파일럿이 아니니깐요."

<힘내..>


철컥

기체의 옆에 비치되어있던 라이플을 챙기곤 열려있는 역의 플랫폼을 지나 게이트가 열린 전장으로 향했다.



---

전장으로 바뀐 도시는 갑자기 나타난 차원수에 당황해 도망치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한낮도 아니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질 시간대에 이런 초거대형 게이트가 도심 위에 열릴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그래도 괜히 게이트가 열리는 세계가 아닌 건지 이런 재난상황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는  질서 있게 대피하는 것이 보였다.


우선 사람이 없는 쪽을 노려볼까.


사람이 비어있는  도로를 네발로 걷는 짐승과도 같은 차원수 두 마리가 달리고 있었다.

<500m 2시 방향에 차원수  마리.. 크기는 소형이야.>

류하연의 보고를 확인하자 기체의 모니터 위로 표시되는 정보가 갱신되었다.

크기는 각 3m 정도..

격납고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개체인 것 같았다.

케루브의 전고가 10m 조금 넘는 정도니 기껏해야 무릎 근처까지 오는 소형 사이즈였다.



"네 확인했어요. 그럼 우선  마리."


기체의 손에 들린 탄창이 달린 라이플을 겨누고 아직 이쪽을 확인하지 못한 차원수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 퍼억!

총에 맞았다기 보단 마치 고깃덩어리를 다지는 소리가 나며 두 마리의 차원수 중 한 마리의 목덜미가 크게 날아갔다.

"아.. 이런. 역시 영점은 안맞나보네."


머리 가운데를 향해 조준하고 쏘았을 텐데 조정도 없이 바로  기체여서 그런지 예상과는 다른 곳에 맞았다.


- 거어억..

목 뒷덜미가 날아간 차원수는 이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결국 남아있는 살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목이 아래로 꺾여 찢어지며 그대로 쓰러졌다.


남은  마리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듯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 탕!



방금 전의 교전으로 가열되어 연기가 조금 올라오는 라이플을 달려오는 차원수를 향해 겨누고 쏘았다.

하지만 영점문제인지 겨누었던 가슴을 맞추지 못하고 오른 다리를 긁고 스쳐지나간 정도에 그쳤다.

"아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면 귀찮은데.."




가급적 직접적인 근거리 교전보다는 원거리 상대로 서서히 체력을 빼고 상대하는 방식이 편하지만

이렇게 달려든다면 어쩔  없이 근거리 교전을 해야 한다.

"근접전투 갑니다~"

조종석의 오른 레버를 안쪽으로 바짝 당긴 뒤 엄지 안쪽의 버튼을 누르며 앞으로 밀었다.


- 빠악!

기체가 방금 전까지 쥐고 있던 라이플의 방아쇠 올에서 손을 풀어 총몸을 잡은 채 개머리판으로 차원수의 머리를 날렸다.


- 그으윽..


차원수 자신이 달려오던 관성도 있던 탓에 머리를 얻어맞자 크게 주춤해 한쪽 다리가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 파아악!


무너져가는 차원수를 한쪽 발을 들어 걷어차듯 건물에 꼽은 뒤 머리를 향해 라이플을 한발 갈겼다.

 거리라면 영점 문제는 필요 없겠지.



프하악!

아까처럼 고기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차원수의 머리가 짓이겨져 건물벽을 타고 줄줄 흘렀다.



"이걸로 두 마리."




순식간에  마리를 해치웠지만 고작 소형을 두 마리 잡았을   너머에는 아직 여덟 마리가 남아있었다.


남은 활동시간은 30분.. 예정대로라면 20분 뒤에 주인공군의 첫 등장이 시작될 것이다.

뭉개진 차원수  마리의 시체를 뒤로 하곤 다음 작전지를 향해 이동했다.



---



<1500m 떨어진 곳에 큰 게 하나.. 작은게 둘이야. 이쪽을 향해 오고 있어..>



 마리를 잡았다고 세 마리 까지 한번에 상대하는 것은 버거울 텐데..

하지만 저  마리 조합은 반드시 잡아야하는 상대였다.

나머지 다섯 마리가 사람들이 대피한 도시 주변을 부수고 있는 반면, 저 세마리는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아마도 베레시트 1호기의 코어에 이끌린 거겠지..



이대로 계속 오게 내버려둔다면 튜토리얼의 배경처럼 역은 엉망진창으로 부숴져버릴 것이다.


주인공군이 오기 전까지  세 마리를 처리하면 이쪽의 승리다.




우선 작은 것 두 마리부터 처리해볼까.

기체를 움직여 건물사이의 길을 이동해 차원수 무리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크게 돌아갔다.


바스스스슥...

짐승과 같은 두 마리와는 다르게 크기가 케루브의 잔고에 맞먹는 지네와도 같은 모양을  차원수.

중형 차원수가 양 옆에 소형 두 마리를 낀  달리고 있었다.

옆이라면 기습 정도는 되겠지.



탕! 타악! 탕!


작은 2층 상가의 옥상 위에 라이플의 탄창부분을 거치한 채 연발로 세발 갈겼다.

세발 중 한발이 중형 차원수의 옆구리를 스치며 왼쪽에 있던 차원수의 머리를 터뜨렸다.

영점이 맞지않아도 감으로 조정하다 보니 얼추 맞았다.

- 까아아아악!!



소름끼치는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중형 차원수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아직 이쪽을 상대할 여유는 없었다.

- 파사 아아아..

기체의 페달을 세게 내려밟자 케루브의 거체가 공중으로 뛰어 오르며 등 뒤에 달린 버니어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작은 상가 건물을 넘어 텀블링을 하듯 도로를 향해 날아갔다.



탕! 탕! 파아악!



소형 차원수를 향해 노린 탄환이 두발은 스쳐지나갔지만 마지막 한발은 차원수의 가슴팍을 뭉개며 코어가 있을 자리를 터뜨렸다.


- 끼이이이이익..



텀블링 상태에서 사격을 끝내고 기체의 팔로 땅바닥을 긁으며 자세를 돌려 착지했다.



"남은 건 중형 하나인가."


라이플을 가까이서 맞추더라도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의심이 가는 크기를 가진 중형 차원수였다.


- 까아아아악 !!!



주변에 있던 다른 차원수 두 마리가 순식간에 터져나가는 것을 보자 이쪽을 향해 분노하는 것인지

입가 주변에 달린 작은 다리와도 같은 턱들이 빠르게 떨리며 이쪽을 향해 돌진했다.



- 빠아아아악!!

기체를 빠르게 돌려 회피했지만 라이플의 뒷부분이 차원수의 턱에 갈려 끊어져버렸다.

<라이플 파손!>

류하연의 보고와 함께 모니터 위에 표시된 무장의 색이 붉게 변하고 연결이 끊어졌음을 알리는 메세지가 위에 붙었다.


"이 기체로도 가능하려나?"

반밖에 남지 않은 라이플을 옆으로 던져 치운  페달을 밟고 레버를 당겨 자세를 잡았다.

"하연씨.  차원수의 코어는 어디에 있죠?"


<목 아래.. 명치 위에 있어!>

목이 굽어진 채 이쪽을 향해 무수히 많은 칼날과도 같은 턱을 움직이고 있는 차원수.


저 차원수의 코어를 부수려면 가까이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은 활동시간은 20분. 앞으로 10분만 더 버티면 된다.

- 쾅   콰앙!

"으랴아아아아앗--!!"


기체의 자세제어 모듈을 풀자 묵직한 중량이 바닥에 꽂히며 차원수를 향해 달려갔다.



- 파가아아아악!! 바드드드득..




그리고 한 팔을 들어 차원수의 턱 아래에 쑤셔 넣자 기체의 팔이 바로 갈리며 부숴져가기 시작했다.

<오른팔 파손! 제어 불능!>

모니터에 표기되는 기체의 위에 팔에 해당하는 부분이 붉게 물들며 상실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한쪽 팔정도는 내줄 수 있다고!"

- 위이이이잉!! 파가악!



레버의 검지를 강하게 누르며 한 바퀴 돌리자 끊어진 팔이 빠르게 회전하며 기체의 팔 프레임이 차원수의 턱 아래에서 강하게 돌아갔다.





- 끼이이이잉!! 까드득!

그대로 반파된 팔 프레임을 안으로 깊게 쑤셔 넣자 목 아래에 숨겨진 차원수의 코어를 쑤셔 박아 밀어갔다.




"터져라!"

파아악!!

중형 차원수의 코어가 터지자 남은 팔을 갈아내려던 차원수의 턱이 멈추고 기체를 향해 엎어졌다.

"남은 수는 다섯.. 하지만 전투 속행은 불가능인가."


스무 발도 안 되는 장탄을 가진 라이플이 무장의 전부.


호송 도중 소형 차원수를 마주칠까봐 호위를 위해 파견한 기체인 만큼 다수를 상대로 한 전투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


"기체의 오른팔을 분리해주세요."


<오른팔 퍼지!>


- 파악 깡!




작전 모듈을 통해 기체의 어깨에서 형상도 거의 남지 않은 오른팔이 떨어져나갔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주인공군이 오기 전까지 최선은 다 한 샘이었다.

후덥지근하게 열이 오른 기체에서 머리가 엉겨 붙는 느낌이 들어 앞머리를 쓸자 조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추위는 안타는데 더위는 좀 타는 건가. 고작 기계열 정도로 땀을 흘리다니.

"남은 건 중형  마리와 소형 세 마리인가.."


이 정도의 수라면 초기에 기획했던 튜토리얼 전투와 다르지 않았다. 남은 건 여유롭게 주인공군이 등장하면 되는거겠지.


"..!"

하지만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조종석의 왼쪽 레버를 당겨 재빨리 자세를 고쳤다.



- 빠아악!


내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트럭이 날아와 뒤에 있던 역 건물의 외벽을 무너뜨렸다.



그르르르르륵...

거대한 지네와도 같은 모습을 한 중형 차원수 두 마리가 이쪽을 향해 기괴하게 움직였다.

하필 아까 중형 차원수의 코어를 부순 탓에 이변을 느낀 다른 차원수들이 전부 이쪽을 향해 온 것 같았다.


남은 활동시간.. 13분.. 앞으로 3분만  버티면 주인공군이  줄텐데.


한쪽 팔도 없고 근접무기도 없는 기체로는 교전은 커녕 도망이 전부였다.



"하연씨 차원수들을 유인할 경로를 알려주세요.."


<그 상태로?! 무모해!>



"조금이라도 시간 벌이 정도는  수 있으니깐요.. 여차하면 기체를 버리고 도망치면 그만이에요."

<안돼! 기체에서 탈출할 동안 막아줄 사람이 없어!>


류하연의 말은 정론이었다.


기체를 버리고 뛴다 하더라도 기체에서 내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시간을 차원수들이 가만히 내버려둘리가 없었다.


역시.. 사도를 가져왔어야 했나 하고 작게 한숨을 쉬고 엘에게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 사아아아 !!!



역의 노상 플랫폼에서 하늘을 찌르듯 푸른 빛이 내뿜어져 나왔다.

<차원기에 타신 분! 도망치세요!>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젊은 소년의 목소리.

푸른 빛 사이에서 나타난 파란색의 거신.

베레시트 계획의 시작 1호기.

튜토리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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